연시님, 주안에서 반갑습니다. 또 너무나 좋은 글을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님께선 십일조에 관해 제가 올린 글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몇 가지 오해가 있는 듯합니다. 또 따로 퍼서 올려 주신 글(이하 펌 글로 호칭)에 대해선 저도 대부분 공감하지만 한두 가지 생각이 다른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오해와 의견의 차이가 나는 부분들만 다시 간단히 정리하는 것으로 답변을 대신하겠습니다.

-우선 제 글은 어떤 분이 구체적으로 질문해 온 부분에 대한 답변이었습니다. 만약 말라기 3:10에 대한 해석을 의뢰했다면 글의 내용이 조금 달라졌을 것입니다. (아마 올려주신 분의 글과 80-90%는 논지가 같고 한 10-20%만 달랐을 것입니다.)

A. 펌 글에 대한 몇 가지 반론

1. 십일조를 신약 시대에도 해야 하느냐? 하지 않아도 되느냐?

결국 주제는 이것입니다. 성경 구절의 어떤 부분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석하였든지 간에 문제는 이에 대한 명확한 해답이 먼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시험하는 잘못, 도적질하는 십일조, 강대상에서 헌금과 십일조를 강요하는 잘못과 오도된 가르침 등등이 아무리 있어도 성경이 어떤 대답을 하고 있는지부터 확정지어야 합니다.

비유컨대 성경이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치는데 신자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해서 신자가 잘못한 것이지. 기독교 자체는 잘못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십일조에 대해 잘못된 관행과 가르침이 아무리 성행한다고 해도 성경이 십일조를 하라고 하면 십일조는 하는 것이며 하지 말라고 하면 하지 않으면 그만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구약에선 분명히 강조되다가 신약에 와서 구체적인 이야기가 없습니다. 그래서 두 가지 해석이 대두됩니다. 저는 이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 크게 두 가지 기준, 즉 예수님이 어떻게 말씀하시고 적용했는지 여부와 성경 전체에 흐르는 원론적인 뜻이 무엇인지를 알아 그 해석에 적용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1) 예수님의 가르침: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찌니라.”(마23:23) 무슨 뜻입니까? 한 마디로 십일조가 제정된 뜻도 지키고 그 방식도 그대로 준행하라는 것입니다. 역으로 말해 그 뜻을 지키려면 자연히 십일조라는 제도가 계속 유지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펌 글의 저자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살짝 비켜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부활 이후에는 십일조라는 말이 더 이상 나오지 않으며 그리고 헌금이라는 말도 더 이상 나오지 않습니다.” 물론 이 말이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으로 성전 제사 제도가 종식되었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뜻인 줄은 짐작합니다.

그러나 만약 단순히 부활 이후에 아무 말씀을 하지 않았다는 논리로 십일조 제도가 폐지되었다면 다른 모든 가르침도 함께 폐지되어야 한다는 엉뚱한 결론이 나옵니다. 산상수훈도 아무 효력이 없어집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생전에 가르쳤던 말씀을 더 확실하게 깨우쳐 주기 위해 진리의 영인 성령을 받도록 예비시키는 사역만 하셨습니다. 즉 생전에 가르쳤던 것을 수정 취소하거나 추가로 새롭게 더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기독교 신앙에 적용할 최종적인 권위는 성경 말씀, 특별히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예수님이 십일조를 부인하지 않고 오히려 명시적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정말 십일조 제도를 없애려 했다면 명확하게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모든 신자가 가장 궁금해 하고 또 가장 많이 걸려 넘어지는 문제인데 어찌 그냥 넘어갈 수 있겠습니까?

예를 들어 주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앞으로는 예배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의 유대교 식이거나 변형된 사마리아 율법 식이 아닌 오직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는 방식의 주일 예배가 생길 것이라는 뜻입니다. 말하자면 유대교 식의 예배를 분명 금지시킨 것입니다. 예수님은 구약의 십일조 제도를 폐지하기는커녕 오히려 계속하라고 했습니다.

2) 성경 전체에 흐르는 십일조의 원리;

십일조를 단순히 성전 제사와만 연결시키는 것은 무리입니다. 사실은 그 이전에 레위 지파가 기업을 하나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생겼습니다. 그럼에도 레위 지파는 제사장 지파인데 제사 제도가 없어졌으니 십일조도 당연히 없어져야 한다고 우긴다면, 이는 십일조를 제사 제도라는 형식에만 근거해 판단한 것에 불과해집니다.

레위 지파가 제사장 역할을 맡은 것은 분명하지만 지금으로 따지면 따로 생업을 갖지 않는 전임 목회 사역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을 목양함에 있어서 구약 시대에는 레위 지파를 통해, 신약 시대에는 육신적 혈통과는 상관없이 영적 소명을 받은 전임 사역자를 통해 하시겠다는 원리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레위 지파의 전체 이스라엘 인구에 대비한 비율이나, 바벨론 유수 이후 열 가정만 있으면 회당을 만들은 경우를 살피면 하나님의 원래 뜻은 열 내지 열두 가정에 목양자 한 가정을 있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또 그 때 십일조를 하도록 해서 목양자의 생활수준을 전체에서 평균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바꿔 말해 최근에 생긴 대형교회에는 십일조로 교회 안에 재정이 흘러넘치지만, 아직도 열 내지 스무 가정의 소형개척교회에선 오히려 십일조가 성경대로 장려되어야 할 것입니다.  

또 십일조에 포함된 나눔과 구제라는 원리는 지금도 모든 교회가 시행하도록 요구됩니다. 그리고 나눔과 구제에는 사실상 금전적 제한이 없습니다. 구약대로 10의 3까지 해도 모자랄 수 있습니다. 제 글에서 예를 든 대로 미네소타의 한 미국 교회는 헌금의 반을 외부 사역에 충당했습니다. 만약 나눔과 구제의 원리를 실천하려면 오히려 십일조로 제한하는 것, 즉 십일조만 해도 아주 성숙한 신자가 되는 것처럼 여기는 것이 오히려 하나님의 뜻에 더 위배될 수 있습니다.

바로 초대 교회가 그랬지 않습니까?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행4:32) 이때는 십의 일이 아니라 오히려 십의 십을 헌금했다는 뜻이지 않습니까? 또 “바나바가 밭을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행4:37)고 기록하고 있으므로 초대 교회는 분명히 돈으로 헌금을 받았습니다.

요컨대 십일조 제도 자체가 없어지거나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그 제도를 악용한 목사들(일부 신자들도 포함)에게 있습니다. 따라서 펌 글의 저자처럼 말라기를 바로 해석하여 십일조 제도를 가르치면서 온전한 십일조를 바치자는 것은 타당하고 마땅히 그래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로 성전 제도를 폐지했으므로 십일조도 자동 폐지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어떤 제도나 계명을 사람들이 제대로 시행하지 않는다고 해서 없앨 수는 없습니다. 앞에 예를 든 대로 신자들이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도무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오히려 원수를 미워하고 있다고 해서 그 말씀 자체를 없애자는 것은 어불성설이지 않습니까?  

2. 기독교는 돈을 밝히는 맘몬 종교가 아니다.

펌 글에서 “이 시대의 유일한 가치 척도는 돈이며 우리 시대의 유일한 종교는 그 돈을 숭배하는 맘모니즘이라는 데 이의를 다실 분은 없을 것입니다.”라고 한 말씀에 적극 동감합니다. 그래서 저자가 “오늘 한국 교회의 현실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모습은, 철저하게 하나님을 빙자하여 물질 숭배에 빠져 있는 모습, 바로 그 모습이라는 것이 너무나도 선명하며, 거짓된 십일조 강요가 그 중 가장 대표적인 모습입니다”라고 염려한 것도 충분히 공감합니다.

그런데 그 글에서 조금 아쉬운 면은, 우리 한국말 표현이 딱 부러지지 않고 두루 뭉실 한 이유도 있지만, 십일조를 완전히 폐지해야 한다는 것인지, 잘못된 관행만 없애면 존속해도 된다는 것인지 불명하다는 것입니다. 상기 인용문의 “거짓된 십일조 강요”라는 표현만 해도 십일조 자체가 이제 없어졌으니 십일조를 내라고 권유하는 것 자체가 성경에 위배되는 거짓이라는 뜻인지, 아니면 십일조 제도 자체는 맞는데 그 가르침이나 강요하는 관행이 거짓이라는 것인지 불명합니다.

어쨌든 물질 숭배는 한국 교회가 가장 먼저 배척해야할 절대적 잘못입니다. 그러나 십일조와 연관해서 따져 보아야 할 것은 십일조를 권하는 것이 물질 숭배로 흐르게 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아니 그 이전에 하나님이 제정한 뜻이 물질 숭배를 장려하기 위한 것이냐는 것입니다. 성경을 앞뒤로 엄밀히 따져서 십일조가 물질 숭배로 이끌면 잘못이고, 아니면 잘못된 제도가 아닙니다. 또 그 반대로 이끌면 오히려 장려해야 할 좋은 제도라는 뜻이 됩니다.  

이런 맥락에서 성경을 보면 십일조는 오히려 물질을 멀리하라는 가르침을 뒷받침하는 대표적인 계명입니다. 우선 시작된 유래부터 그러하지 않습니까? 레위 족속은 아무 기업을 받지 않았어도, 즉 현실에서 물질을 소유 증식할 수단이 전무해도 하나님의 도우심만 바라보게 만드는 제도였지 않습니까? 그 하나님의 도우심도 하늘에서 만나가 떨어지는 것 같은 초자연적 간섭이 아니라 성도들 간에 나누고 사랑하는 방식으로 채워주시겠다는 뜻입니다. 물질 숭배를 장려하는 의도는 십일조에 한 치도 없고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펌 글의 저자가 예리하게 지적한대로 자기가 받고 싶은 복을 미리 크게 정해 놓고 십일조로 배팅해보라고 가르치는 것은 분명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이미 받은 복에 대한 감사의 표시가 아니라 더 많이 받을 욕심으로 십일조를 내어선 전혀 성경적이지 않고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 리도 없습니다.

3. 십일조는 자기 마음을 확증하는 뜻이다.

한 젊은 부자 관원이 영생을 얻는 길을 물었을 때에 주님이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그것도 율법에 규정된 모든 계명들을 어려서부터 성실하게 지켰음을 자신하는 자에게 말입니다.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막10:21)

예수님이 십일조가 아니라 십의 십을 바치라고 한 것입니까? 물론 아닙니다. 예수를 믿어 영생을 얻는 길은 재물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예수를 따르는데 방해가 되는 재물은 다 없애라고 한 것입니다. 단 가난한 이웃에게 나눠주는 방식으로 말입니다. 결국 예수님은 당신을 좇는 자의 결단이 재물을 귀하게 여기는 가치관과는 절대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그것을 행동으로 바로 실천해 보라고 요구하신 것입니다.

십일조는 예수님이 부자 관원에게 말씀하신 바로 이 뜻과 상통합니다. 신자가 물질에 굴복해서 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인도만으로 살았다는 신앙의 고백으로 최소한 자기 가진 것의 1/10은 하나님에게 내어 놓을 수 있겠느냐고 물으시는 것이 십일조입니다. 다른 종교인이나 불신자에겐 수입의 1/10을 바친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하며 너무나 어리석은 짓으로 비췰 것입니다. 그러나 신자는 오히려 물질에 속박 받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는 신앙의 고백이자 실천으로, 교회나 담임 목사가 아닌 하나님에게 십일조를 드리는 것입니다.

펌 글의 저자도 말라기 3:10의 “시험하라”는 헬라 원어의 의미를 인용하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도 바로 그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마음을 증명한다라는 의미는 하나님 앞에 인간의 마음을 들러냄으로써 그 상태를 증명해 보인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문맥을 따라 그 뜻을 바르게 새겨 보면, 하나님께선 지금 제사장들을 향하여 그들이 십일조를 바르게 관리, 사용하며 또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온전히 드림으로 참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하고 섬기기를 원하는 그들의 마음을 증명해 보이라고 촉구하고 계신 것입니다.”    

물질에 속박 받지 않는다는 신자의 마음을 하나님께 증거해 보이는 최적의 수단은 물질을 드림으로써만 가능합니다. 또 그러려면 제 글에서도 밝혔듯이 바치는 액수가 너무 적으면 누구나 쉽게 드릴 수 있으므로 증거의 효력이 없어지고, 반면에 너무 많아지면 신자에게 부담을 주어서 선의의 마음을 가진 자도 증거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런 측면에서 십의 일을 바치는 것은 마음을 증거하는 데에 많지도 적지도 않은 아주 적합한 수치인 것 같습니다.

4. 기타

결국 십일조라는 제도 자체가 나쁘거나 그 제도에 담긴 원리마저 폐기 되었다면 신약 시대에는 당연히 폐지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이 하라고 하셨기에 제도는 존속하되 십일조에 대한 가르침과 그 운용을 성경대로 정확하게 하면 됩니다.

대표적 예로 온전한 십일조를 두고 수치적으로 어떻게 계산해야 되느냐 하는 복잡한 문제를 제기하는데 사실은 하나도 복잡할 것 없습니다. 제 글에서도 밝힌 대로 세금 후의 순수입의 1/10을 하며 됩니다. 또 부가가치세처럼 매 단계별로 증가된 수입에 대해서만 계산하면 되며, 비용 공제는 개인 봉급생활자, 자영업자, 사업체를 운영하든 일반 세법에서 허용하는 비용을 공제하고 세금을 제한 후에 증가된 순수익에 대해서 하면 됩니다.

세법에서 인용하는 비용과 세금을 공제한 후에 십일조를 하라는 뜻이 세속의 법을 성경보다 우선시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고 십일조부터 떼면 결과적으로 그 부분만큼 탈세를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신자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지 탈법적으로 세상을 벗어나선 안 됩니다.

그러나 너무 온전한 계산을 하려 들다간 안식일 규정을 수도 없이 세분화시킨 바리새인들 같은 우를 범할 수 있습니다. 마음을 증거하겠다는 온전한 뜻이 있으면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선에서 자기가 판단하여 순수입에서 적절히 1/10을 드리면 됩니다.

B. 성경문답의 제 글에 대한 오해

서두에서 밝힌 대로 제 글의 요지도 펌 글에서 말하는 내용과 80-90%는 대동소이합니다. 그 글에서 밝힌 십일조에 대한 저의 주요 인식은 아래와 같습니다.

-받은 것에 감사해서 내어야지 더 많이 받기 위해 하나님을 시험해선 안 된다.
-십일조를 바친 후에 하나님께 받는 복도 기존의 가르침처럼 재물이 아니라 신자 개인과  성도들의 공동체의 영적 유익이다.    
-위에서 밝힌 대로 신약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제도로 신자는 십일조를 드려야 한다.  
-십일조를 잘못 가르치거나 실제 운용이 잘못되었다고 해도 제도 자체는 잘못이 없다.
-그리고 성경에 제시된 하나님의 모든 계명은 신자가 기꺼이 순종하는 것을 전제로 하지 강제적 의무적으로 하라는 뜻은 없다. 예컨대 첫 계명을 위반 즉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과의 관계만 안 생기는 것뿐이지 당장 죽이는 심판을 받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십일조도 각자의 믿음의 분량대로 기쁨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발적으로 해야만 온전한 십일조가 된다.

연시님이 말씀하신 대로 십일조는 기독교의 전부나 핵심이 결코 아닙니다. 예수를 믿어 영생을 얻는 데에 십일조 하지 않았다고 제외시키지 않습니다. 또 구원을 얻은 후에도 십일조 하지 않는다고 별다른 제제는 없으며 천국 가는데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나아가 십일조를 신약시대에 폐지된 제도라고 끝까지 주장한다 해도 어쩔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역으로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십일조가 이제 폐지되었으니 한 달에 헌금하는 총액을(4 내지 5 주의 합계를) 일부러 자기 수입의 1/10 이상 절대 초과하지 않겠다고  조정하는 것도 우습지 않습니까? 십일조 제도의 존속 여부와 상관없이 어떤 방식이 되었든 한 달 헌금 총액이 수입의 1/10이 넘으면 실질적으로 십일조 생활을 하는 셈이 됩니다.

성경에 헌금을 구체적으로 얼마 이상 혹은 이하를 하라는 규정은 십일조나 성전세 같은 것 말고는 따로 없습니다. 오히려 신구약 공히 전 재산을 다 바친 자들을 믿음이 좋다고 칭찬했습니다. 돈을 최고로 많이 바쳤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마음을 오직 주님만 따르기로 확증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또 성전세는 이스라엘을 신정 국가로 만들려는 하나님의 뜻에 비추어보면 주민세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반면에 성경이 십일조에 관해선 비교적 상세하게 그 제도의 제정 배경, 목적, 수행 방법 등을 기술한 것을 보면 하나님이 신자의 믿음 상태를 헌금한 숫자로 판정하겠다는 유일한 기준이 십일조라는 뜻도 됩니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하나님이 십일조 여부로 상벌을 주신다는 것보다는 그것을 성실히 하는 자의 믿음에 유익이 반드시 생기도록 은혜를 베푸시겠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십일조는 자신이 옳다고 믿고 하는 자들에게는 진정한 은혜가 됩니다. 또 실제 십일조 생활을 성실히 하면 금전적 보상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때로는 금전적으로도, 하나님의 은총을 반드시 풍성하게 체험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십일조가 폐지되었다고 믿거나 조금이라도 거리낌이 있다면 안 하는 것이 좋습니다. 사실 억지로 해봐야 아무 은혜가 되지 않을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 않습니까?  

마지막으로 사족을 한 두 개만 더 붙이겠습니다. 제 글에서 밝힌 대로 교회나 목사가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어떤 형태가 되었든 십일조를 비롯한 헌금을 강요해선 안 됩니다. 그러나 교회는 죄인이 모인 곳이며 목사도 그 죄인 중에 한 사람입니다. 십일조나 헌금의 모금과 운용에 과오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헌금 자체를 부인하거나, 혹은 헌금을 독려하는 목사를 무조건 잘못이라고 매도할 수는 없습니다.

비유컨대 감옥에 갔다 온 절도범이 비록 자기는 옛날 버릇이 가끔 나오더라도 자기 자식더러는 절대 절도죄를 짓지 말라고 훈계 하지 않겠습니까? 목사를 절도범과 비교하니까 이상합니까? 그럼 비유를 바꿔보겠습니다. 부모가 비록 본인들도 완전히 지킬 수 없지만 자식에게 이렇게 저렇게 훈계하는 것을 두고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의외로 십일조는 몰몬교 같은 이단들이 잘 지킵니다. 종교적 엘리트 의식을 고양시키는 전형적 수법입니다. 몰몬교에선 실제로 십일조를 잘 바치면(다른 조건들도 많지만) 일등 천국인 “해(sun)의 천국”으로 간다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어지간한 신자는 다 십일조 생활을 철저히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신자가 실직을 당하면 교단에서 직장을 알선해 주고 또 직장이 생길 때까지 생활보조비를 주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십일조로 모은 재정이 풍부하기 때문에  상부상조하는 공동체의 모습을 외부에 실현해보여 전도에 유리하게 이용합니다.

물론 교회는 절대 자선구제 기관은 아닙니다. 죄악과 사단과 사망의 흑암의 권세에 묶인 영혼을 구원해 내는 사역을 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구원 받은 자들이 함께 모여서 사랑으로 섬기는 공동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같이 서로 재물을 통용하며 그 가운데 한 사람도 핍절한 자가 없는 그런 아름다운 모습이 실현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정말 십일조를 별도 회계로 만들어 오직 그 나눔과 구제 용도로만 전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아니 십일조라고 구태여 한계를 정하지 말고 모두가 기꺼이 힘에 넘치도록 기쁘게 헌금하여 정말 하나님의 왕국을 이 땅의 교회 안에서부터 미리 실현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12/2/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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