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하는 일들

조회 수 1217 추천 수 132 2008.03.14 21:01:58
세상이 하는 일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 못하고 나를 미워하는 것은 내가 세상이 하는 일들을 악하다고 증거하기 때문이다.(요7:7)

성경이 말하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요? 세상은 하나이면서 분명하게 구분이 된다고 성경은 곳곳에서 증언하고 있습니다. 같은 세상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분명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하나님께서 만드셨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창세기의 기사 첫장 말씀이 분명하게 증거합니다. 저는 30여년동안 하나님을 모르고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저 아무것도 모르는체로 그렇게 이 세상을 살다가 주님을 모른체로 갈뻔 했던 사람입니다. 정말 주님의 은혜입니다. 알수 없고 설명할 수 없는 은혜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런 저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읽는 순간에 아하 그렇구나하고 믿을수가 있다는게 너무 신기합니다. 그렇다고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부 이해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모르는것이 더 많습니다. 그러나 모르는것과 아는것과 믿는것은 다르지요. 알아도 못믿을수가 있습니다. 몰라도 믿어지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은혜라고 말합니다. 말할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요 자비하심이요 긍휼하심이며 은혜가 임한것입니다. 믿음이란 그렇게 주님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입니다.


아무 한 것도 없고 내 새울것도 없고 공로가 없어도 그저 주어졌습니다. 내가 원한것도 아니요 택한것도 아니요 찾은것도 아니었지만 어느날 주셨고 받았음을 알아버렸습니다. 그것이 너무나 오묘하고 신기합니다. 감사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은혜를 입기전에 보인 세상은 불의하고 부정하고 막막한 세상이었습니다. 눈물많고 두렵고 거치른 험한 세상에서 언제나 혼자였고 마치 망망대해를 위태롭게 떠다니는 조각배같았습니다. 보이는 모든것이 억울한것 뿐이었고 모두가 대적해야할 원수와도 같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주님의 은혜안에서 보는 이 세상은 모든것이 감사할 것이며 은혜로운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분명 같은 하늘이며 같은 사람입니다만 생각이 달라졌고 보는것이 바뀌었으며 가치가 달라졌습니다. 매일 만나는 그 사람인데 이제는 긍휼함으로 보며 나와 다르다는것이 아니라 저 사람도 은혜안에서 만나기를 소망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적인 내면의 변화인 것입니다. 세상을 설명하려다가 여기까지 와버렸군요. 원래 빈 깡통이 시끄러운 법이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세상에 대하여 간단하게나마 성경사전을 찾아보았습니다. 확실히 간결하며 짜임새가 있군요. 아래는 성경사전에서 인용했습니다.

<세상 : world>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는 피조세계를 말한다. 헬라어로는 ‘코스모스’(kosmos)인데 ‘우주’(요 1:10), ‘인간 세상’(요 3:16), ‘하늘과 땅 전체’(행 17:24), ‘지적인 세계’(고전 4:9), ‘사람이 사는 곳’(고전 5:10) 등 여러 가지 의미로 쓰였다. 세상은 특별히 요한과 바울에 의해 신학적인 의미로 발전되었는데 ‘코스모스’는 죄인들의 욕망과 무너진 신뢰감과 출렁이는 분노로 짜여진 현 사회를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세상은 어두운 곳이며(엡 6:12) 사탄이 지배하는 곳이다(요일 5:19). 또한 이곳은 하나님의 원리원칙과는 반대되는 법칙들이 지배하는 장소이기도 하다(고전 2:12; 3:19; 11:32; 엡 2:2; 골 2:20; 약 1:27; 4:4; 요일 2:16). 하나님은 세상을 지으셨으며(요 1:10), 자신의 독생자를 주실 만큼 세상을 사랑하신다(요 3:16).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시며(요 1:29; 요일 4:14), 세상의 빛이시다(요 8:12; 9:5; 12:46). 반면에 요한일서 2:15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고 말씀하고 있다. 성경은 왜 이렇게 대치되는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일까?


요한복음 3:16의 세상은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의 은총을 받을 대상을 뜻하는 반면, 요한일서 2:15의 세상은 멸망받을 자들이나 어두움의 세력들, 곧 사탄의 세력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즉 세상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되었고 또 회복되어가고 있으며 성도는 그런 이 세상 안에 살고 있으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아직도 사탄이 지배를 받고 있는 이 세상 안에 살고 있다. 따라서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는 참 의미는 우리가 이 세상 안에 있으나 이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라는 것이며(요 15:19),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치우치지 말라(요일 2:16)는 말이다.

세상의 크기는 약 40,009km?
욥에게 하나님은 “세상이 얼마나 큰지 너 짐작이나 할 수 있겠느냐?”(욥 38:18)고 물으셨다. 지구의 크기는 남극과 북극의 둘레가 약 4만 9km, 적도의 둘레가 약 4만 53km이다. 약 2200여 년 전 에라스토테네스도 이와 비슷하게 지구의 크기를 계산해냈다. 그는 지구가 둥글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욥 당시만 해도 사람들은 지구가 둥글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지구가 육지와 바다로 이루어진 커다란 평면이며 그 평면은 끝이 없다고 생각했다. 지구 둘레는 바다이며 바닷물이 흘러내리지 않는 것은 지구의 가장자리가 조금씩 솟아올라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시대에 살면서 마치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듯 말하는 욥에게 하나님은“세상이 얼마나 큰 지 너 짐작이나 할 수 있겠느냐?”고 물으셨다. 모든 것을 아시는 이는 오직 하나님뿐임을 말씀해 주셨던 것이다.

자. 이제 윤곽이 잡히는군요. 주님께서는 지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 못하고 나를 미워하는 것은 내가 세상이 하는 일들을 악하다고 증거하기 때문이다

세상이 예수님을 미워하는 이유는 세상을 악하다고 주님께서 증거하셨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왜 그럴까요? 주님께서 행하신 일들은 옳은일만 하셨습니다. 병자들을 고치시고 귀신에 매여 고생하는 자들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배고픈 무리들을 베불리 먹이셨지요. 세상에서 주님이 하신 일은 선하시고 의로우신 일이었습니다. 죄인을 용서하시고 사랑을 베푸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게 하셨습니다. 가난하고 소외당한 인생들을 멀리하지 않으시고 친구처럼 대접해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주님을 미워하고 죽이려고까지 세상은 발광을 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그룹들이 대 제사장들과 서기관들 및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들은 오히려 주님을 환영하고 좋아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들은 성경을 연구하고 가르치며 오실 메시아를 고대했던 사람들입니다. 누구보다 율법과 선지서를 잘 알고 해석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가르치고 이끌어갈 중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이 앞장을 서서 주님을 배척하였습니다. 이것은 그만큼 세상이 부패하였고 타락했으며 어둠에 사로잡혔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유지시키고 지탱해왔던 종교가 유대교가 이방종교와 혼합되었고 거룩성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순결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주님께서 하신 말씀은 정확합니다.

예수님의 모든것이 사실은 세상이 악하다는 것을 증거하는 기준인것입니다. 그의 말씀과 그의 행하심이 곧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이며 선하심이며 그에 반하여 세상은 악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의 절정은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실 그 때 확실하게 보여준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세상이 얼마나 악하고 불의한 것이라는걸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대에서도 주님의 십자가는 계속해서 세상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바로 세상과 석여서 여기가 좋사오니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증거하고 있는것입니다.

이미 십자가에 못 박힐 그 때 세상에 대하여 우리의 자아와 욕심과 정욕들이 함께 못 박혀 죽었고 장사지낸바 되었는데도 우린 여전히 이 땅에서 반응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보혈이 골고다를 적시고 그 십자가아래 있는 우리들을 적셔주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덮어버렸습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우리는 그 피를 믿지 못하고서 스스로 깨끗해지려고 열심을 내지는 않는지요. 이 시대의 바리새인들과 제사장들이 혹시 우리가 아닐런지요?


많이 알면 그만큼 더 율법주의로 혹은 사랑이 식어지는 정죄하는자로 늘 서있는 자신을 돌아봅니다. 자꾸만 기준을 새우고 조건들을 만들어서 나는 너희들과 다르다고 구별하는 모습을 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는 아무런 조건도 없었습니다. 오직 죄인만이 주님의 부르심의 대상이었습니다만 지금의 내 모습은 자꾸만 따지고 가리고 조건을 내 새웁니다. 나는 은혜안에 있다고 생각했지만 어느새 바리새화 되지는 않았는지 돌아봅니다. 아직도 내 안에 더 많이 갖고 싶고 더 높아지고 싶고 더 크고싶은 것들이 없는지 살펴봅니다. 정말로 주님만으로 만족하는지 항상 물어봅니다. 그리고 그 질문에 자신있게 웃으며 말할수 있기를 소망해봅니다. 나는 아직도 자신하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을 바라볼 뿐입니다. 그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흉악한 내 죄를 살핍니다. 내 죄가 얼마나 더럽고 흉악하고 사악한지를 깨달으며 몸서리를 칩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못 박힘과 그 고통은 죄의 무서움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죄는 간교합니다. 영악합니다. 우리가 조금만 틈을 보인다면 여지없이 달려들어와서 숨어있다가 발톱을 드러낼 것입니다.


다윗의 기도가 마음을 울립니다.
내 속에 숨은 죄악을 찾아내셔서 멀리 도말하여 주옵소서
주의 긍휼과 자비를 소망합니다

오직 주만 나의 쉴곳 나의 피난처이며 요세이며 반석입니다
나의 힘이며 능력이신 주를 의지합니다
날마다 십자가 그늘아래 내 짐을 내려 놓기를 원합니다


2008/03/15. 작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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