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孝)에 대한 오해

◉ 유교의 영향을 크게 받은 동북 아시아권, 특히 한국에서는 효도를 중요한 인격덕목으로 취급합니다. 사실상 유교의 중심사상은 인(仁)으로서 이는 완성된 인격을 지칭하며 충효예(忠孝禮)의 3가지 덕목이 중추적 역할을 감당한다고 보아야 합니다. 이중 효는 자식이 부모에게 대하여 마땅히 지녀야 할 기본적인 인륜(人倫:인간적 도리)으로 가르쳐지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긍정적인 가치와 부정적인 가치가 공존한다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근간 효에 대한 지극히 부정적인 관점의 글을 보았습니다. 한국인의 보편적 효의식과 너무 상이한 주장이기에, 오늘은 이분(이후 글쓴이로 표현하겠습니다)의 글에 대한 가벼운 반론을 제기해 보고자 합니다. 글쓴이의 글을 읽노라면 아리한 아픔이 가슴을 져며 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학식이나 지식이 부족한 분은 결코 아닌 것 같고 지닌 능력 또한 남보다 못하다 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어찌하여 이러한 인식에까지 이르렀는지 고개가 갸웃거려집니다. 무언가 주장하기는 하는데 무슨 내용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저는 글쓴이의 글을 읽는 내내 너무 많은 학문을 습득함으로써 이것이 제대로 정리되지 못하고 오히려 혼돈상태를 불러온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떨쳐내지 못하였습니다. 글쓴이의 주장에 대하여 반론을 제기하려다보니 강한 표현을 했습니다만 이에서 더 나아가면 인신공격으로 비춰질 가능성도 있으므로 이 정도에서 자제하겠습니다. 상세한 내용은 당사자의 글을 직접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 먼저, 글쓴이는 “효라는 개념에서 자녀가 부모를 뛰어넘지 못하게 한다”는 주장을 제기했습니다만, 오해입니다. 고리타분한 공자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이 말은 공자의 제자인 증자가 쓴 효경에 나오는 것으로서, 누구나 알고 있는 말입니다.
   ○ 신체발부수지부모 불감훼상 효지시야 입신행도양명어후세 이현부모 효지종야(身體髮膚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 立身行道揚名於後世 以顯父母 孝之終也 : 나의 몸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니 감히 손상하지 않음이 효도의 시작이요, 몸을 세워 도를 행하고 이름을 후세에 남겨 부모를 높이는 것이 효도의 끝이니라).
   ○ 시효(始孝)는 이렇습니다. 자녀가 아프거나 다친 경험을 한 부모는 한결같은 마음입니다. ‘내가 대신 아프거나 다쳤으면 좋겠다’는 것이지요. 자식의 건강과 무병은 부모의 행복의 한 조건입니다. 따라서 자식이 이러한 부모의 마음을 헤아려 몸을 다치지 않게 하는 것은 효도의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긴 설명이 필요치 않습니다.
   ○ 종효(終孝)는 이렇습니다. 자식이 자기보다 못하기를 바라는 부모는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경험한 바에 의하면, 연령에 따라 자식에 대한 자랑의 내용이 바뀌게 됨을 알 수 있습니다. 어느 학교에 입학하여 졸업하였다, 어떤 며느리/사위를 보았다, 어떤 직장에 취직했다는 등등의 일상적인 것도 자랑거리가 됩니다만, 특히 고시합격은 특별한 자랑에 속합니다. 출세의 지름길이기 때문입니다. 출세하면 누구의 이름이 납니까? 자식의 이름입니다. 어느 부모든 ‘누구누구의 부모다’라는 세간의 평가에 가슴 뿌듯하지 않은 자는 없습니다. 아들의 이름으로 인하여 자기 자신이 높아졌다는 생각을 하기 마련입니다. 이것이 이현부모(以顯父母)입니다.
   ○ 특별하게 사회적 출세를 못해도, 부모는 자녀가 남의 손가락질을 받지 않고 한 사람의 선량한 시민으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작은 분야에서라도 자기(부모)보다는 낫다는 평가를 받는 자식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대중가요에서조차 흔히 들을 수 있는 일반적인 인간의 심리현상이므로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 효의 개념에서 어떻게 부모를 뛰어넘지 못하게 한다는 개념을 도출해 낼 수 있는지 저는 도통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만 못한 자녀가 되기를 바라는 부모가 있다면 그의 인격은 더 이상 거론할 가치가 없는 사람일 것입니다.
◉ “효의 유학으로 버틴 조선사회 600년”이라는 표현은 마치 이씨조선의 멸망 원인이 효도 때문이라는 것처럼 들립니다만 효도를 강조함으로써 이씨조선이 망한 것이 아닙니다. 논리의 비약이 너무 지나친 생각입니다. 또 효도의 강조는 이씨조선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우리민족의 고대사는 거의 유실되었고, 현존하는 최고의 야사인 삼국유사 효선장(孝善章)에는 몇 건의 효행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글쓴이의 사상으로는 극단적인 반론을 제기할 사례 1가지만 소개 드립니다.
   ○ 손순매아(孫順埋兒 )라는 고사성어 입니다. 신라시대 때 가난한 손순이라는 사람이 늙은 아비의 밥상에만 고기를 올려 드리는데 어린 아들이 자꾸 손을 대자 아버지를 잘 모시기 위해 부부가 함께 아들을 산에 묻으러 갑니다. 한참 땅을 파는데 조그만 종이 나옵니다. 뭔가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한 부부는 종과 함께 아이를 데리고 돌아옵니다. 그리고 그 종을 달아놓고 쳐 봤더니 종소리가 너무나 은은하고 좋았습니다. 급기야 그 종소리가 궁궐에까지 들리게 되었고 왕이 불러 사연을 묻습니다. 자초지종을 들은 왕은 그들 부부의 효심을 극찬하며 평생 먹을 양식을 하사합니다. 전형적인 권선징악적 사례입니다.
   ○ 오늘날의 가치기준으로써 권장해서는 결코 안 되는 사례입니다만, 여기서는 이것에 대해 논박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글쓴이가 생각하듯 효도가 성리학의 통치시대인 이씨조선 때에만 강조됐던 덕목은 아니라는 것을 지적하기 위해 인용한 것일 뿐입니다.
◉ “효라는 개념이 만든 특수한 문화가 씨받이 문화이다”라는 언급도 있습니다. 일면 동의됩니다. 하지만, 전부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씨받이의 핵심은 혈통보존입니다. 인간의 자연적 본능에 가까운 염원이지요. 씨받이라는 방법이 권장할만한 방법은 아니지만 혈통보존의 마음까지를 비난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에도 씨받이와 유사한 유대인의 율법이 나옵니다. ‘기업 무를 자’라고 표현되는데 학자들은 이를 고엘 제도라고 설명합니다. 형제가 자식 없이 죽으면 형수나 제수를 자기 아내로 삼아 자손을 낳으면 죽은 형제의 명의로 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양자제도보다 훨씬 성적(性的)인 제도이지요. 성적인 측면에서 보면 씨받이나 고엘 제도나 비등비등합니다. 과거는 오늘날처럼 혈통보존의 염원이 약해진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자손은 가장 큰 가치였었습니다. 그 시대의 가치는 그 시대를 기준하여 평가하는 것이 교양인다운 자세일 것입니다.
◉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자기자아를 실현하는 자유”라고 했는데, 글쎄요, 이것은 성경의 말씀도 아니고 효도와 관련된 것도 아닙니다. 이 말은 마아슬로 교수의 이론일 뿐입니다. 세상 이론임에는 틀림없으나 성경과는 정반대로 대립됩니다. 성경은 자아실현이 아니라 자아부정을 요구하십니다! 이 부분은 대단한 논쟁도 가능한 분야이기에 더 이상 언급은 하지 않겠습니다.
◉ “모든 동식물들이 그들의 자녀들에게 단호히 떠나는 길을 열어주는 삶의 방식을 취한다”고 했는데, 글쓴이의 생각이 확대할 수 있는 보편적 의미라면,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창2:24절 말씀은 동식물처럼 완전한 결별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동식물은 부모자식 간에도 성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인격적 독립을 의미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관계적 단절까지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부모의 형편을 살피고 보양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정확히 일치합니다(성경을 잘 읽어 보십시오). 성경에 기록된 “떠나”라는 문자 하나에 모든 것을 걸어서는 아니 됩니다.
   ○ 부모보양이 인간만의 전유물이라고 오해하지 마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우리가 재수없다고 여기는 까마귀도 부모를 공양할 줄 안다고 합니다. 까마귀는 한자로 효조(孝鳥) 또는 자오(慈烏)라고 합니다. 까마귀는, 어릴 때 먹여주던 어미 까마귀가 늙어서 제 구실을 못하게 되면 자식 까마귀가 먹을 것을 물어다 먹여 살린다고 합니다. 자오반포(慈烏反哺)라는 말입니다. 엘리야에게 고기를 물어다 준 새가 바로 까마귀였음은 아시지요?
   ○ 이 자오반포의 상황을 가장 극적으로 나타내 주고 있는 글이 있습니다. 고문진보에 실려있는 진(晉) 나라의 이 밀(李密)이라는 사람의 진정표(陳情表)라는 글입니다. 진의 문제(文帝)가 그의 학덕이 높음을 듣고 태자를 측근에서 모시는 세마(洗馬)를 제수하여 불렀는데도 조모를 봉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정으로 말미암아 부득이 이런 귀한 벼슬을 사양하게 된 경위를 적은 글이며, 문제는 이 글을 읽고 ‘선비의 이름남이 과연 허(虛)되지 않구나’하고 감동하여 부르기를 중지하고 밀의 조모가 죽어 3년의 복을 마치고 나서야 세마의 벼슬을 주어 상경케 하였다고 합니다. 제갈량의 출사표와 더불어 천고의 문장으로서 많은 선비들이 울며 외었다고 하는 글입니다. 말미에 첨부해 드릴 테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 “부모가 돌아가시기 전에는 끝나지 않는 가도가도 끝없는 고통, 무한한 인고의 시간과도 같다”라는 표현도 있습니다. 부분적으로 공감되기는 합니다. 하지만, 전적이지는 않습니다. 저는 TV를 많이 시청하지는 않지만 ‘인간시대’나 ‘이것이 인생이다’라는 프로들은 가끔 봅니다. 그 중에서 어느 무명가수의 치매모친이 나옵니다. 그 가수는 자신의 처지를 조금도 부담스럽게 여기지 않고 오히려 치매 걸린 모친이나마 함께 살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하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훈훈해졌던 기억이 납니다. 부모를 사랑하고 효도하려는 마음이 없는 이에게는 부모공양이 고통이지만 부모를 사랑하는 이에게는 오히려 행복입니다. 자신이 행복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각박해졌다고 해서 다른 이까지 그래야 한다는 주장은 결코 타당할 수 없을 것입니다.
◉ 출처를 기록해 두지 않았지만 어느 분이 쓴 ‘효’라는 글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지금 왕성한 체력으로 활동하고 있는 자기 자신에 비추어 생각하지 마시고 꼬부랑 할머니와 지팡이 신세를 지는 할아버지의 입장에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누구나 늙으며 세상에서 가장 서글픈 일이 늙음입니다. 아직 이해할 연령에 이르지 못했다면 상상이라도 해 보십시오.
   ○ 늙으면 잔소리가 많아진다(활동력 감소). 모두 받아 들여라. 경험 많은 부모가 자식에게 하는 말 그른 말은 없다.
   ○ 늙으면 먹고 싶은 것이 많아진다(소화의 장애). 구해다 드려라. 많은 분량도 아니고 경제적 부담도 없다.
   ○ 늙으면 노여움을 잘 타신다. 의지하는 자식마저 자기를 소홀히 하니 노엽다. 비위를 잘 맞춰 드려라.
   ○ 늙으면 뭘 가지고 싶어진다(늘 허전). 월급도 드리고 타 쓰는 게 좋다. 노인은 소유욕뿐으로 쓰지는 않는다.
   ○ 늙으면 몸이 근질근질 가려워진다(혈액순환 장애). 가려운 곳을 긁어 드려라.
◉ 이외에도 고려가사 사모곡(思母曲), 고려가요 상저가(相杵歌), 노계 박인로의 오륜가(五倫歌), 송강 정철의 훈민가(訓民歌), 전남 진도의 모심기 노래 등도 읽어 볼만 합니다.
◉ 인간의 무지 가운데 하나는 경험을 해 봐야만 겨우 깨닫는다는 것일 것입니다. 효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가 살아계실 동안에 효도를 제대로 하는 사람은 드믑니다. 그러나 부모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는 거의 대부분 후회를 합니다. 주자십회(朱子十悔) 중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이 불효부모사후회(父母不孝死後悔)입니다. 중국의 고전 한씨외전에는 수욕정이풍부지 자욕양이친부대(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나무가 조용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이 봉양코자 하나 부모가 기다리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청개구리마냥 부모가 돌아가셔야 겨우 정신 차린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이치를 다 알고 있으면서도 살아 생전 효도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게 인간의 한계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한계라는 핑계로 옳음마저 평가절하할 수는 없습니다.
◉ 지금까지는 세상에서 말하는 상식적인 이야기들만 하였습니다. 여기서 성경을 살펴가며 성경이 말씀하시는 효도에 대해서도 언급해 보고 싶기는 하지만, 평신도로서 짧은 시간에 다루기는 벅차기에, 간단하게 정리만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나머지 상세한 교훈은 잘 아시는 목사님들께서 풀어 주셨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봅니다.
   ○ 십계명이 2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우리는 모두가 잘 압니다. 제1계명부터 제4계명까지가 하나님과의 관계 측면(인간구원=본질적 차원)의 조항이고 제5계명부터 제10계명까지가 인간 상호간의 관계 측면(삶의 원리=윤리적 차원)의 조항입니다. 이를 예수님께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요약 정리하셨습니다. 인간의 삶을 규명하는 이웃 사랑의 첫 번째가 바로 부모공경(효도)입니다.
   ○ 세상 이론은 물론 성경도 효도란 인간 본연의 귀중한 덕목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비난받아야 할 고리타분한 독소적 개념이 아닙니다. 효 개념 때문에 인류의 발전이 저해되거나 인간 개개인의 인격적 삶이 방해받지 않습니다. 모르면 모른다고 시인하면 그만이고 또 효를 실행하지 못하면 그냥 효도를 못하는 것일 뿐입니다(대부분 불효자이지요). 내가 불효자라고 해서 효도 자체를 악의적으로 비난해서는 아니 됩니다.
◉ 글쓴이의 마지막 문장 즉, “효는 폐기처분되어야 합니다. 부모들이 전부 부모 자격증을 시험 치르고 거기 무난히 합격된 자들에게만 자녀를 갖도록 사회적으로 허용하지 않는 한에는 자녀를 자유롭게 독립 발전시킬 자격을 가진 부모들이 부모들의 100%를 넘지 않는 한에는 말입니다. 아무리 단 한 사람일지라도 그것이 눈에 보이지 않을 지라도 억압은 억압이기 때문입니다.”라는 말이 가슴을 찌릅니다. “어떻게 효도를 억압으로 해석할 수 있는가? 성경을 인용하면서까지 이처럼 왜곡된 인식을 지니는 것이 가능한가? 도대체 어떤 사상체계에 의한 생각인가?”라는 질문이 저절로 떠오릅니다.
   ○ 추측컨대, 글쓴이는 미혼인 것 같습니다. 만약 결혼하여 자녀를 정성으로 키워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인식에 이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앞에서 살펴본 이론적인 내용들은 몰라도 아무 상관없습니다. 실제적으로 자식을 키우는 부모는 정말로 엄청난 사랑을 쏟아 붓습니다. 세상원리대로 받은 것을 갚는다는 차원에서만 보더라도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정당성을 지닙니다(실패하는 일부로써 전체를 매도해서는 곤란합니다).
   ○ 부모자격증요? 글쎄요, 그 자격을 획득할 수 있는 자가 과연 한 명이라도 있을까요? 부모 노릇도 실수해 가며 힘들게 이행하는 인간 삶 중의 하나입니다. 자격으로 논할 성질의 것이 결코 아닙니다. 만약, 성도로 부름 받을 만한 자격을 지닌 사람만 구원하시기로 하셨다면 구원받을 성도가 한 명이라도 있을까요? 유명한 목사님들을 비롯하여 그 어느 누구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자격증으로 부모 될 수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 인류의 발전은 효도를 부정함으로써 달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효도를 인정하고 장려할 때, 진정한 인격이 완성되며 참다운 인류문화가 꽃 피게 됩니다. 주위의 무수한  사례들을 보면서 느껴보시기를 강력하게 권고 드리고 싶습니다. 이글은 논쟁을 목적으로 작성한 것이 아니므로 두서없이 썼습니다. 그냥 한번 읽는 것으로 충분할 것입니다. 다만, 조금이라도 깨우침을 얻으시면 좋겠습니다. 샬롬.
♣ 별지             진정표(陳情表)  (진 나라 사람 이 밀의 글)
  신(臣)은 본시 박복(薄福)하와 태어난지 여섯 달에 아버지를 여위었삽고 네 살 나던 해에 외삼촌은 싫다는 어미를 우겨서 개가시켜 버렸었나이다. 조모 유씨(劉氏)는 부모 잃고 병약한 신을 가엾게 생각하고 몸소 자기 손으로 길러 주었나이다. 거기다 신은 어려서부터 병추기로 아홉 살이 되도록 보행을 못 하였삽고 외롭고 고달픈 신세, 그런데로 겨우 성년이 되었을 때는 백부 숙부는 다 돌아 갔삽고 형제조차 없고 가문의 복이 엷어 늘그막에 자식을 두게 되었나이다. 밖으로 기공(碁功 : 형제의 상과 그 복을 이름)할만한 세성(勢盛)한 근친조차 없사옵고 집안엔 문간 맞이할 사동(使童)이라곤 없사옵고 홀홀단신 누구 하나 도움이 없고 다만 몸과 그림자가 서로 달랠 뿐이옵니다. 거기 겹쳐 조모는 벌써부터 병져 누워 계시온지라 신이 시탕(侍湯) 간호하랴 잠시라도 곁을 떠나지 못하옵니다. 성조(聖朝 : 진나라를 칭함)를 받들게 이르러 청평(淸平 : 연호)의 선정을 입사온대 전 촉군 태수 가규(前 蜀郡 太守 賈逵)가 신을 선발하와 효렴과(孝廉科)에 천거하였삽고 후임 태수 고영(顧榮) 또한 신을 수재과(秀才科)에 천거하려 하였사오나 신은 조모를 돌볼 사람이 없어서 성상의 부르심에 가 뵈옵지를 못 하였나이다. 마침 조서를 내리사 낭중(郎中)에 임명하시더니 다시 태자세마(太子洗馬)에 서임(敍任)하신다 하시니 외람되게 미천한 몸으로 동궁(東宮)을 모시게 됨을 생각하오면 국은의 지대하심에 신은 목을 끊지 않고서는 어찌 보답을 하여 올릴 수가 있다 하오리까마는 사정이 하도 딱하와 자세한 말씀 표(表)로써 올리옵고 부임하지 못 하였나이다. 그러했사온데 이내 다시 조서를 내리사 신의 태만함을 꾸짖으시고 고을 수령들은 그들대로 찾아와 빨리 상경하라 독촉이옵고 주사(州司 : 도지사격)까지 찾아와 독촉이 성화 같사와 신도 조서의 뜻을 받들어 달려 가옵고 싶었사오나 조모의 병세는 날로 무거워지기만 하온지라 아무래도 사정(私情)에 끌리게 되어 부임 못 하옴을 호소하였사오나 매양 청허(聽許)하지 않으시니 신의 진퇴는 참으로 낭패인가 하오이다. 굽어 생각하옵건데 성상께서는 효로써 천하를 다스리사 널리 연고있는 노인들까지도 가엾게 여기사 보육(保育) 하시온데 하물며 신과 같이 고고(孤苦)한 형편에 처한 자는 더욱 굽어 살펴 주시기를 바라옵니다. 뿐만 아니라 신은 젊어서 촉나라를 섬겨 상서랑(尙書郞)을 지냈사옵고 본디 사관(仕官)으로 현달하기만 생각하옵고 명예나 절의를 뽐내 보려는 뜻은 없었더이다. 이제 신은 망국의 미천한 포로같은 신분이옵고 천하고도 비루(鄙陋)하온 터에 과분하옵게도 발탁(拔擢)하시니 어찌 감히 주저하와 다시 무엇을 바라오리까. 다만 조모의 사정을 말씀드리자면 서산에 지는 해와 같사와 기식(氣息)은 엄엄하옵고 사람의 목숨은 가냘픈 것이오라 아침 저녁 어느 때 어떨지 요량하기 어렵사옵니다. 신에게 조모가 없었던들 신이 어찌 오늘까지 살아 남았겠사오며 조모는 신이 없이 어찌 명을 제대로 마치겠나이까. 할미와 손자 둘이서 서로 목숨을 도와 이어 왔사온지라 차마 곁을 떠나버리지 못하나이다. 신의 나이 금년에 마흔 넷이 옵고 조모는 아흔 여섯이옵니다. 신이 금후로 폐하께 목숨을 바쳐 충절을 다할 날은 길다고 하겠습니다만 조모를 뫼실 날은 짧기만 하오이다. 까마귀도 반포(反哺)하는 정(情)을 살피사 원하옵건데 조모를 끝내 봉양토록 허(許)해 주시옵소서. 신의 신고(辛苦)는 촉고을 인사뿐만이 아니오라 양익양주 목사 가규 고영 등까지 소상히 알고 있사오매 황천후사(皇天后士)까지도 진정 조감하고 계실 줄로 믿사옵니다. 원하옵건데 폐하께옵서는 신의 어리석은 정성을 불쌍히 여기시고 저의 보잘것 없는 뜻을 살피사 조모가 요행히 남은 명을 마치도록 청허하시옵소서. 폐하의 내리시는 은혜 신이 살아서는 머리를 베어서라도 갚아 올리겠사오며 죽어서는 마땅히 결초(結草)해서라도 갚아 올리겠나이다. 신 밀은 송구한 마음 가누지 못한 채 삼가 절하옵고 표로써 사뢰올리나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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