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나눔] 거짓말은 죄악인가?

조회 수 2641 추천 수 82 2006.01.21 13:42:02
목사님께 부담을 드리지 않기 위해 춘삼월까지는 질문 하지 않겠다 다짐했기에
요즘은 글 남기기가 조금 그렇습니다.

그런데 목사님께서 "성도의 거짓말" 문제를 다루셨네요.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왜냐하면 저 또한 수년 전에 목사님과 비슷한 관점으로 묵상해 본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목사님의 말씀만큼 깊이야 없지만 그래도 관점이 비슷하기에 함께 나누기 원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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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짓말은 죄악인가?

[본문 = 삼상16:7(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 들어가기
   ⊙ 유명한 예화 가운데 이런 것이 있습니다. 육이오 동란 때 어떤 목사님이 국군 패잔병 한 명을 다락에 숨겼답니다. 곧이어 인민군이 와서 “이곳에 국방군을 숨기지 않았는가?”라고 묻자, 목사님은 성도가 거짓말을 할 수는 없기에 고민하다가 마루 바닥을 발로 차며 “여기에는 없소!”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즉, ‘마루 밑에 없다는 뜻일 뿐 다른 곳에도 없다는 말은 아니므로 거짓말이 아니다’라는 나름대로의 위안을 표현한 말입니다.

   ⊙ 성도가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은 아주 당연합니다. 참 말만 해야 합니다. 성경은 분명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출20:16, 레19:11). 그런데 아주 특별한 상황에서는 판단하기가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거짓말이 절대적으로 필요할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자, 이제 어찌해야 할까요? 성경은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하시고 상황은 거짓말이 절대 필요하니 말입니다. 판단이 용의치 않은 주제일 것입니다.

   ⊙ 미리 결론을 말씀드린다면, ‘예화에 나오는 목사님처럼 고민할 것도 없이 아주 당당하게 거짓말을 하라’는 것입니다. 너무 직설적이고 그간 배운 바와 많이 달라 이상한 결론이지요? 예, 이제부터 성경을 상고하며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 참고적으로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해 다윗을 왕으로 세우실 때, 다윗의 형들을 면접하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오늘 묵상은 본문의 뜻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외모가 아닌 중심으로 보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묵상하는 방법으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 성경에 나오는 대표적인 거짓말의 사례들입니다.
   ⊙ 성경에 나오는 최초의 거짓말은 하와를 유혹한 사단입니다(창3:1-5). 그리고 사람으로서는 가인입니다(창4:9). 이 부분은 오늘 묵상의 목적과 일치되는 의미가 아니기 때문에 별도로 묵상하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 부분은 제외하도록 하겠습니다.

   ⊙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자기 자신의 목숨을 건지기 위해 두 번씩이나 아내 사라를 누이동생이라고 거짓말을 합니다(창12:10-20, 20:1-7). 사실상 사라는 아브라함의 이복동생이기 때문에 전혀 틀린 말은 아닙니다(창20:12). 그리고 이러한 아버지를 본받은 이삭도 그 아내 리브가를 누이라고 속입니다(창26:6-11). 사실 리브가는 이삭의 5촌 여자조카이기 때문에 ‘누이’라고 한 것은 완전한 거짓말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나 이삭이 현재의 아내를 아내가 아니라고 한 것은 의도적인 거짓말이라 할 수밖에 없습니다.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이삭도 거짓말에는 재능이 있는 셈입니다.

   ⊙ 우리가 ‘거짓말’이라는 용어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성경 인물은 아마도 야곱일 것입니다. 사실입니다. 그의 인생 전체가 거짓말로 점철되었다 해도 과히 틀리지 않을 정도로 야곱은 거짓말의 대명사입니다. 때로는 속이기도 하고 때로는 속임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잘 아시는 바와 같이 굵직굵직한 것만 살펴봐도, 형 에서의 장자권을 빼앗은 일(창25:27-34), 에서에게 축복하려는 아버지 이삭을 속이고 축복을 가로챈 일(창27장), 외삼촌 라반의 양을 속임수로 자기 것으로 만든 일(창30:25-43), 제일 사랑하는 라헬과 그의 아들 요셉은 뒤에 두고 다른 부인들과 하인들은 앞세운 일(창33:1-2) 등등 이루 말할 수조차 없습니다. 야곱의 일생 자체가 끊임없는 투쟁의 연속이며 속임수가 중요한 생존수단의 일부였음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어쨌든 야곱도 거짓말과 무관한 사람이 절대로 아닙니다.

   ⊙ 창38장에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도 어렵고 윤리적으로도 비난받을 만한 사건이 나옵니다. 원래 유대민족은 형이 후사(후손) 없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와 결혼하여 죽은 형의 기업을 이어야 합니다. 이는 고엘제도의 일종으로서 형사취수법 또는 계대결혼이라 합니다. 유다는 아들 엘과 오난이 후사 없이 죽은 후 셋째 아들 셀라를 며느리에게 주지 않습니다. 혹시 셀라도 죽을까 걱정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다말은 창녀처럼 꾸며서 시아버지를 속이고 그와 관계를 맺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잉태하여 베레스와 세라 쌍둥이를 낳습니다. 지극히 의도적이고 질이 나쁜 거짓을 행했습니다. 그런데도 베레스는 예수님의 직계 조상이 되십니다(마1:3). 뭐라 평할 수 없는 그런 사례라 하겠습니다.    

   ⊙ 출1:15-22에 보면 애굽 왕 바로의 추상같은 명령을 어기고 거짓말로 이스라엘 남자 신생아를 살리는 산파 십브라와 부아가 나옵니다. ‘왜 살렸느냐’는 바로의 추궁에 대해, 산파들은 ‘유대 여인들이 건강하여 자기들이 도착하기 전에 이미 출산했기 때문’이라고 대답합니다(19절). 분명 자기가 아이들을 살렸음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거짓말을 합니다. 이들의 거짓말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에게까지 연결됩니다(17절 -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여하튼 이들 산파도 분명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 수2:1-7절에 나오는 기생 라합의 거짓말은 정말로 압권입니다. 용납할 수 없으리만큼 그 정도가 심합니다. 여리고 성을 정탐하러 온 이스라엘 정탐꾼 2명을 자기 집에 숨겨놓고는 이미 떠나갔다고 거짓말 합니다. 조금 생각해 보겠습니다.

      ○ 라합은 가나안 족속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자기 나라를 침공하려는 적입니다. 적군의 스파이를 의도적으로 숨기는 것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나쁜 죄입니다. 라합은 이처럼 아주 질이 나쁜 죄를 스스럼없이 저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 만약 임진왜란 때 우리의 할머니 중 한 분이 라합처럼 했다면, 아마도 우리 역사는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녀’로 그 이름을 기록하고 있을 것입니다. 구한말의 매국노 이완용이와 똑같은 평가와 대접을 받았을 것입니다.  

      ○ 라합은 분명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녀입니다. 단순히 거짓말만 한 것이 아니라 나라까지 팔아먹은 여인, 그것도 손가락질 받는 기생을 이렇게 높게 평가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 라합은 예수님의 직계 조상 할머니가 됩니다(마1:5).

   ⊙ 사무엘 상 21장에 보면 위대한 왕 다윗의 파렴치한 속임수가 나옵니다.

      ○ 먼저 1-9절에서는, 다윗이 놉의 제사장 아히멜렉을 거짓말로 속이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때는 다윗이 사울 왕의 추적을 피해 목숨을 구걸하던 시기였습니다. 제사장이 놀라서 묻습니다. “왕의 장군이 왜 혼자 다니느냐?”(1절). 다윗은 버젓이 거짓말을 합니다. “특수임무를 명받아 부하들은 다른 곳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먹을 것이 없으니 뭐든 달라”(2절). 제사장은 일반 백성이 먹을 수 있는 항용떡은 없고 제사장만 먹을 수 있는 진설병뿐이지만 군사들이 여인과 함께 하지만 않았다면 진설병이라도 주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거룩한 떡을 가지고 가서 먹습니다. 거짓말로 제사장을 속인 것이지요. 물론 이로 인해 얼마 후 제사장과 그 가족은 사울 왕에게 전멸을 당하고 맙니다. 거짓말의 대가치고는 참으로 엄청난 대가를 다른 사람이 치릅니다.

      ○ 곧 이어 가드로 도망간 다윗은 가드 왕 아기스 앞에서 미친 짓을 하여 그들을 또 속입니다(10-15절). 훌륭한 장군인 다윗을 죽여야 한다고 아기스의 신하들이 주장하자 다윗은 수염에 침을 질질 흘리며 미친 체 합니다. 죽음을 초월한 장군으로서, 그것도 이미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다윗의 처신이라고 믿기 어려운 행동입니다. 체면을 사정없이 구겨버렸지만 이로 인해 다윗은 목숨만은 건집니다. 그래도 치사한 것 같지요? 아무튼 다윗이 거짓말과 거짓 행동을 한 것은 분명합니다.

   ⊙ 수9:3-27절에는 기브온 거민들의 거짓말이 나옵니다. 이들은 진멸을 당해야 할 가나안 족속이지만 아주 슬기로운 기지로써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을 속이고 그 결과 목숨을 건집니다. 거짓말로써 살아난 것입니다. 아마도 이 사실을 염두에 두신 예수님께서, 미래를 대비할 줄 아는 슬기로운 청지기의 교훈을 우리에게 재차 강조하신 것으로 압니다(눅16:1-8). 청지기는 불의했고 또 거짓으로 빚을 조작했으나(아주 악의적인 이중장부를 만든 것입니다), 주인으로부터(예수님으로부터) ‘지혜롭게 행했다고 칭찬’(눅16:8)을 받았던 것입니다. 깊은 영적인 교훈이 있습니다만 여하간 겉보기에는 역시 거짓말과 거짓 행동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건들입니다.

   ⊙ 성경에는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사례도 있습니다. 인간이야 아무리 위대하다해도 어쩔 수 없는 한계 때문이라고 이해할 여지라도 있다하겠으나, 전지전능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까지 거짓말과 연루된 것처럼 느껴지는 구절도 있기 때문입니다. 송구스럽지만 몇 곳만 살펴보겠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별도로 더 묵상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 신23:3절에는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그들에게 속한 자는 십 대뿐 아니라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의 진군을 방해한 죄에 대한 추상같은 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민23:19절의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라는 말씀처럼 ‘거짓말 할 수 없으신 하나님’의 속성에 비추어 본다면, 암몬과 모압 사람들은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교회)에 속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룻기를 보면 황당해집니다. 유대 여인 나오미의 며느리는 분명 모압 여자입니다(룻1:4). 게다가 룻이 그냥 평범한 여인이었다면 그나마 이해라도 하겠지만, 룻은 보통 여인이 아니라 다윗의 증조할머니가 되며(룻4:17) 이는 바로 예수님의 할머니가 된다는 데에 문제점이 있습니다. 약 400여 년 전에 하신 말씀(신23:3)을 까맣게 잊으시고 룻을 다윗과 예수님의 조상이 되게 하셨을까요? 문자적으로, 겉으로만 보면 하나님께서 거짓말 하신 것이라 생각해도 할 말이 없는 그런 예가 될 수도 있는 부분입니다.

      ○ 욥의 경우입니다(욥1-2장). 하나님께서 공연히 욥의 믿음을 자랑하시다가 사단과 내기를 해야 할 지경에 이르고 맙니다.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그럴만한 타당한 이유가 있기에 그렇다는 사단의 거짓말에 하나님은 그대로 속아 넘어가십니다(표현이 그렇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욥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난을 겪게 되지요. 욥의 경우를 꼭 거짓의 사례라고 보기는 어려우나, 하나님께서 괜히 사단과 내기를 하시는 바람에 결과적으로는 욥을 속인 것이나 진배없는 사례라 할 수 있는 곳입니다.  

      ○ 왕상22:19-23절을 보면 더욱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의 사악한 왕 아합을 죽이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거짓말하는 영을 선지자들의 입에 보내십니다. 거짓말하는 영을 통해 거짓말을 믿게 함으로써 아합을 죽도록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거짓을 이중으로 활용한 것이 됩니다. ‘하나님과 거짓이 연계되어 있다?’ 참으로 민망한 생각입니다만, 성경이 그리 말씀하시니 어찌하겠습니까?

      ○ 요7:1-10절은 예수님도 거짓말을 하신 것처럼 보이는 아주 민망한 구절입니다. 유월절이 다가오자 예수님의 친동생들(후일 야고보서와 유다서를 기록한 동생들 포함)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들어 내놓고 사역을 하라며 예수님을 비방하며 비웃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않았다”라며 올라가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조금 뒤에 가서는 “자기도 올라가시되 나타내지 않고 비밀히 하시니라”고 되어 있습니다!(10절). 조금 전에는 ‘올라가지 않겠다’고 하시고는 바로 이어 ‘가만히 올라가셨다’는 것은, 어떻게 설명하든 거짓말의 사례가 아니라고 말하기 어려운 곳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몰라도 친동생들에게는 분명 거짓말 하신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정말 민망한 구절입니다.
*** 이 부분에 대한 해석은 조수현 목사님의 설교(별지)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거짓말과 거짓 행동을 대하는 성도의 기준

   ⊙ 성경의 특성 가운데 한 가지는, 성경은 사람의 생각으로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난처한 사례들도 무척 많이 기록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성적인 잘못, 배신행위, 실패 등등은 물론이려니와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거짓말에 대해서도 때로는 묵인한 것도 같고 때로는 조장한 것도 같은 사례들이 수없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 자, 이제 성도로써 거짓말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보여야 할 것인지를 생각해 봐야 할 때입니다. 예화에 나오는 목사님처럼 ‘무조건 거짓말은 안돼!’라는 생각으로 상황은 고려치도 않고 참 말만 하시겠습니까? 그리고 그 결과가 하나님의 뜻과 전혀 다르게 나타나야만 할까요?(국군 패잔병의 죽음). 아마도 아닐 것입니다. 성경은 다르게 말씀하신다고 받아야 할 것입니다. 두 가지로 정리하겠습니다.

   ⊙ 먼저는, 거짓말이란 누구와 관련된 것이냐의 문제입니다. 하나님과 관련된 것이냐 아니면 사단과 관련된 것이냐의 문제입니다. 요8:44절은 이에 관해 확정적으로 선포하고 계십니다. “사단(마귀)이 곧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라는 것입니다! 사단은 “처음부터” 거짓입니다. 이에 반하여, 하나님은 거짓말과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실 수 도 없으신 분이십니다!(히6:18) 심지어 욥이나 아합의 경우라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거짓을 이용하여 사단을 몰아붙이지 않으십니다. 잘 보십시오. 욥이나 아합의 경우, 모든 것은 사단의 단독적인 판단과 처리였습니다. 하나님은 사단의 생각에 동의하시거나 묵인하신 것이 아닙니다. 사단의 모든 것은 결국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사단은 하나님을 뛰어 넘을 수 없었습니다. 부처 손바닥 안에서 재주부리는 손오공 같다고나 할 것입니다. 욥은 의인이었기에 결국 그 의가 증명되었고(욥42장), 아합은 불의한 자이었기에 불의가 나타난 것뿐입니다(왕상22:35). 하나님께서 거짓말에 속으시거나 묵인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초월하실 뿐입니다. 단지 사람이 그 안에서 허우적댈 뿐입니다.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계22:11). 한 마디로, 거짓말은 하나님과 연계된 것이 아니라 단지 사단과 연계된 것이며 이것이 사람에게까지 영향(죄의 형태로)을 미치는 것일 뿐입니다!

   ⊙ 그리고 다음으로는, 성도로써 불가피하게 거짓말이 필요하다면 신앙양심에 거리낄 것 없이 거짓말을 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참 괴상한 결론이지요? 비록 평소 생각과 다른 결론이지만 이는 사실입니다. 여기에는 대원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 상황에서 하나님은 과연 내가 어떻게 말하기를 바라시는가?’라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심정을 헤아리고 그에 부합되는 것을 말하면 이는 거짓말이 아니라 참 말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 대원칙은 다소 막연하므로, 실제 적용상 어려움이 따릅니다. 그렇다면 이제 실생활에서 적용할 수 있는 실천요령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는, 내 욕심/이익을 위한 거짓말은 일체 허용되지 않습니다. 이 경우 잘못하면 구원을 상실할는지도 모릅니다. 절대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둘째는,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서라면 거짓말을 해도 된다는 것입니다. 아니, 때로는 적극적으로 거짓말을 해야만 합니다. 라합처럼, 룻처럼, 그리고 다윗처럼 의도적으로라도 거짓말을 해야 합니다. 이 결과가 무엇인지는 아시지요? 예, 이들의 거짓말로 인하여 성도의 목숨이 건짐을 받았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는 일에 쓰임 받았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에게는 성도의 목숨이나 우리 믿음의 궁극을 위해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아니 의무가 주어지는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  

▣ 나가기

   ⊙ 거짓말 - 성도로써 거짓말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거짓말은 나쁜 죄악입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펴본 바와 같이, 때로는 거짓말이 허용된다는 사실을 성경은 증거하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성도는 절대적으로 거짓말을 입에 올려서는 아니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필요할 때는 적극적으로 거짓말을 해야만 합니다. 그 기준은 ‘나 자신’이 아니라 ‘다른 성도’라 했습니다. 이는 결국 ‘하나님의 뜻(심정)’으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과 다른 성도의 목숨을 위해서라면 거짓말이 하나님의 의의 기준을 벗어난 잘못이 아님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거짓말에 관한 하나님의 본심은 ‘근본적으로 거짓된 사람들의 계획과 말에 얽매여 참된 하나님의 뜻이 방해받는 것을 옳다 하지 않으시며, 인간적인 시각에서의 거짓말의 기준을 뛰어 넘는 한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사람들을 보존하는 것을 우선하신다.’는 것입니다! 즉, 거짓말은 사람들(궁극적으로는 사단)과 관련된 것이지 결코 하나님과 연관된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여, 사람이 옳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옳으시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 오늘 본문은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고 했습니다. 성도의 마음 중심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 그렇습니다. 비록 겉보기에는 거짓말인 것처럼 보일지라도, ‘다른 성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해야 할 경우, 가슴을 찢으며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는 성도의 아픈 선택’을 주님은 다 아십니다. 인간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 - 이것이 성도의 마음 중심입니다. 이 상황에서는 마음껏 거짓말을 하십시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행동인 것입니다. 라합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았기에 아무 거리낌 없이 거짓말을 했고 이것이 오히려 그녀의 놀라운 하늘나라의 상급이 되었던 것입니다(사실 라합은 신명나게 거짓말을 했으며 만약 그녀가 인간적인 판단으로 말 했더라면 그녀도 여리고와 함께 망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히브리산파도 다윗도 라합도 모두 모두 거짓말쟁이거나 매국녀가 아니라, 하나님의 본심(本心)을 읽을 줄 알았던 하늘나라 백성이었던 것입니다!

   ⊙ 조금 어려운 주제를 묵상해 보았습니다. 충분한 묵상은 아니었을 지라도 약간의 의미는 있었을 것입니다. 아주 조그만 깨우침이었으나 매일 매일 조금씩이라도 전진해 나간다면 우리의 믿음이 온전을 향해 나아가는 기쁨을 체험하게 되리라 믿으며 줄입니다. 샬롬. ♥  

한은경

2006.01.22 13:00:52
*.121.225.127

위 내용 중

정순태님께서 쓰신 <예수님의 친동생> 이라는 귀절에 대해 이의를 드립니다.
이하 위키 대백과에 나온 예수의 형제들(갈 1:9)에 대한 초기기독교 해석입니다.

The exact relationship between James and Jesus is a point of controversy. Several early writers (the Clementine literature, Hegesippus-Eusebius) consider him merely the half brother to Jesus. This view says that Joseph had children from a previous marriage, and that Mary, the mother of Jesus, was not James' mother. This claim is first described in the 1st and 2nd century texts The Gospel of the Nativity of Mary, The Protoevangelium of James, and in the 1st century Liturgy of St James.

사실, 성경 어디에도 야고보 들에 대해 마리아의 아들 이라고 표현된 곳은 없습니다. 성경에 예수의 형제 란 표현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예수의 형제 라는 귀절이 반드시 마리아의 친아들 내지 예수의 친형제 를 뜻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구분하시면 좋겠습니다.

전승에 의해 우리들은 요셉은 나이가 많았으며 마리아는 젊었다고 믿어지고 있습니다. 그럴 경우 과연 요셉에게는 마리아와 결혼이 초혼이었는지 아무도 아는 예가 없지만, 상식적으로 보아 요셉이 나이가 많았다면 먼저 결혼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오히려 2000 년 전 같이 의료시설이 빈약하던 당시에는 다산으로 인해 부인들이 종종 아이를 낳으면서 목숨을 잃는 일이 다반사 였으며 그러므로 요셉에게 마가복음에서 말하는 여러 아들과 딸들까지 있었다면, (요셉이 예수님이 성인이 되기 전에 죽었으리란 전승에 의한다면 마리아가 그 많은 형제들을 낳기도 힘든 기간이라 할 것입니다. ) 마리아 이전에 혼인을 이미 한 두 번은 했을 가능성이 2000년전이라는 상황을 고려할 때 가능하다고 보이는 것입니다.

아래는 요셉이 마리아님과 결혼하기 이전에 선행하여 다른 결혼을 했을 가능성을 말하는 초기 기됵교 및 복음주의 입장의 해설입니다.
Jesus is described as being the brother of James, Joses, Jude, and Simon, and several sisters (Mark 6:3; Matthew 13:55). A tradition at least as early as the second century, still adopted by Eastern Orthodoxy, explains that these "brothers and sisters" were from Joseph's marriage to an unnamed woman, before Joseph married Mary and so making them step-brothers and step-sisters. This version of events is related in the apocryphal History of Joseph the Carpenter. The Roman Catholic tradition, along with many Evangelical or Fundamental Protestant traditions hold that these were cousins of Jesus, and that Joseph was celibate, while some other Protestant denominations no longer espouse strong views on the subject.

그러므로 예수의 형제 들 이라는 것을 그대로 옮기는 것은 (바울의 입장에 따라) 상관이 없겠으나 예수의 <친형제> 들 이라고 정순태 님 自意의 생각을 그대로 옮겨 마치 마리아 님이 예수 외에도 다른 아이들을 출산한 것 처럼 옮기는 것은 聖經에 대한 왜곡의 다른 형태 라고 말씀드립니다.
마리아에게 친자녀들이 예수 님 외에도 있었다면 예수님께서 굳이 고통의 극한인 십자가 상에서 자신의 모친을 부탁하는 말을 굳이 요한 사도에게 남기었을 리가 없으리란 것을 한 번 생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정순태

2006.01.23 04:46:26
*.95.73.2

지적 자체는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한은경님의 말씀에는 몇 가지 논리적 모순(?)이 발견됩니다. 논쟁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구체적인 언급은 자제하고, 다만 우려되는 점 2가지만 짚고 넘어가고자 합니다.

먼저, 비록 정규신학을 공부하지는 않았으나, 성경의 참 뜻을 찾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성도로서, 신학/교리사를 완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 정도는 잘 알고 있습니다. 분명 크게 참고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초기의 자료요 신뢰할 만한(?) 교부들의 해석이라 하더라도 이를 성경 위에 두려 해서는 아니 된다고 믿습니다. 지적해 주신 몇 가지 전승적 견해들은 이미 저도 많이 접해 보았던 생각들입니다. 하지만 저는 전혀 동의하지 않는 것들입니다. 길게 말할 필요 없이(70-80 여 종에 이르는 신약외경들은 논외로 하더라도), 근대에 발견된 ‘도마복음’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 묻는 것으로 저의 이의를 대신하겠습니다.

둘째, 마리아가 오직 예수님만 출산하고 다른 자녀들은 출산하지 않았다는 설명은 천주교의 알마논쟁을 염두에 둔 것처럼 느껴집니다. 알마논쟁(마리아의 평생 처녀설)은 무흠수태설 및 성모승천설까지 연계될 수밖에 없음을 인지해야만 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천주교의 양보할 수 없는 핵심교리이며, 이는 진정 성경을 완벽하게 왜곡하는 것임을 강조해 두고자 합니다. 설마 이러한 이해를 기저에 깔고 지적하신 것은 아니기를 기대합니다.

변명 하나 하겠습니다. 저 개인의 “自意의 생각”이라는 표현을 하셨는데, 제 생각 아닙니다. 한 인간의 지적 능력이 아무리 우수하더라도 오직 혼자 힘으로 모든 지식을 습득할 수는 없습니다. 현재 저의 지식 또한 저 스스로의 능력으로 홀로 깨달은 것은 거의 없습니다(저는 천재는커녕 겨우 범재 수준의 지능지수를 지닌 보통사람일 뿐입니다). 다른 분들이 먼저 깨우치신 것을 제가 차용하여(배워서) 지금의 지식수준에 이른 것입니다. 그 중에는 동의되는 것들도 있고 부동의 되는 것들도 있습니다. 그 취사선택은 불가불 각 개개인의 몫입니다. 한은경님이 말씀하신 주장들은(저도 이미 접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부동의 하는 부류에 속하는 것들입니다. 한은경님께서도 성경에 기록된 몇몇 인물들이 “예수님의 친형제”라는 견해를 접해 보셨을 것입니다(물론 부동의 하시겠지만). 따라서 제가 “예수님의 친형제”라고 표현한 것은, 제 스스로의 자의가 아니라, 제가 동의하는 많은 학자들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개인적으로 권고 드리고 싶은 것은, 마태복음 12:48을 전후 문맥을 고려하여 해석해 보신다면, “예수님의 친형제” 견해의 타당성을 어느 정도 이해하실 수 있으실 것이라는 점입니다.

사족입니다. “왜 예수님은 친형제가 아닌 사도 요한에게 마리아를 부탁했을까?”는 저도 궁금하게 생각하는 것 중의 하나입니다. 전 이렇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부탁을 하실 때 당연히 제자들(사도들)과 형제들의 미래도 아셨을 것입니다. 비록 주님께서 육신의 제한 속에 사셨지만, 이는 전능자로서의 능력을 스스로 제한하신 것이지 능력 자체를 보유치 않으신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이 생각도 심각한 논쟁을 불러일으킬 수 있겠지요). 아무튼 마리아가 죽을 때까지, 사도들과 형제들은 모두 순교 내지 사망할 것이고, 오직 사도 요한만 살아남아 있게 된다는 것을 주님은 아셨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요한에게 마리아 봉양을 부탁하신 것은 필연적인 귀결입니다!

고마우신 지적이지만 저로서는 수용하고 싶지 않은 견해임을 분명히 합니다. 샬롬.

한은경

2006.01.23 07:54:45
*.121.225.94

저는 성경대로 말씀드린 것입니다. 예수의 친형제 라는 말로써 마리아의 다른 자녀 출산을 강조하시는 정순태님의 발상이야말로 성경과 맞지 않습니다.
예로써 야곱의 열두 아들들은 형제로 불리지만 그들은 각기 어미가 레아와 라헬과 그 여종 둘 까지 도합 네 어머니 아래 태어난 자녀들이었습니다. 성경은 이들을 그냥 한 형제로 부르고 있습니다.
마리아와 혼인할 때의 요셉의 나이가 많았다는 전승으로 보아 -- 이 역시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예수의 공생애 이전에 죽은 것으로 보면 적어도 십여세의 마리아 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추정합니다. - 그가 반드시 마리아 처럼 초혼이란 단정을 우리는 내릴 수 없습니다.

굳이 야고보를 <예수의 친형제> 라고 님이 믿는 것은 성경의 근거가 아니라 님의 개인적 믿음에 속합니다. 제가 위 글을 굳이 올린 것은 님의 글을 읽는 다른 분들을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의 친형제 라는 주장을 입증하는 자료는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아셨으면 합니다. 오히려 이복형제 일 가능성 또는 사촌일 가능성이 신약의 전반적 상황을 보면 더 짙습니다.

마리아에게 예수님 외에 다른 자녀들이 있었다면 마리아가 굳이 요한사도와 말년까지 같이 거하고 요한사도가 그 여생을 돌볼 이유 또한 없는 것이니, 님이 우기는 <친형제론> 이야말로 제가 보건대는 성경에 나오는 다른 상황들과 맞지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상 칠언에 대해,, 그 메시지를 추상적 포괄적 개념으로"만" 받아들이는 것도 님의 믿음 소관이지만, 실제로 우리들이 예수님을 알게 된 후에 보면 주님의 메시지는 굉장히 개인적으로 올 때가 많습니다. 그렇게 요한사도에게 네 어머니다 라고 하신 말씀은 홀로 남은 어머니를 걱정하는 아들로서 개인적인 메시지가 더 크셨으며 그 어머니를 부탁한다는 요청이 간절하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요한은 그 말씀을 실제 그의 전생애를 통하여 이룬 것 아니겠습니까 ?

마리아님에게 님의 주장대로 다른 아들들이 있었다고 한다면 죽어가는 십자가상에서 굳이 그렇게 자기 모친을 유독 한 제자에게 부탁하는 모양 자체가 심히 이상하며 납득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님의 주장대로 보편적, 추상적 지시로 해석하여야 한다면, 정순태 님이야말로 마리아를 어머니로 섬겨야 하는 입장이 되어야 하십니다. 그러십니까 ?

님께서 수용하고 싶지 않은 견해 라 하여 성경의 각종 정황이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야곱의 열 두 아들이 모두 한 형제로 통칭되었다는 것을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정순태

2006.01.23 14:50:46
*.152.78.29

한은경 자매님(이 호칭을 양해바랍니다).

자매님의 글을 읽으면서 왜 그리 아리한 느낌이 드는지요. 제가 지금 천주교인과 논쟁한다면 얼마든지 이해하고 토론해 나갈 것입니다. 그런데 제 추측에 자매님도 개신교인이신 것 같으신데, 어찌 이번 말씀만큼은 천주교의 주장과 한 치의 차이도 없으신지요?

자매님께서 지금 주장하시는 것이 속칭 ‘마리아 숭배사상’임을 부인하시겠습니까? 헬라어를 확인해 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동생들’이라는 단어가 헬라어로는 ‘이복형제’나 ‘사촌’ 등의 의미를 지닐 수는 있을 것입니다. 문자적 해석의 한계를 지적하고자 하는 뜻입니다. 하지만, 성경 해석은 그 이상이어야 합니다. 아무튼, ‘성경대로 말한다’는 자매님의 주장은 이해가 안 됩니다. 자매님은 오직 ‘전승대로만’ 말씀하고 계실 뿐이기 때문입니다!

충분한 것은 아니겠으나 제가 지금껏 습득했던 지식들을 간략하게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1. 왜 자매님의 주장이 마리아 숭배사상인가?

○ 우선, 자매님의 주장의 근거가 모두 교부들의 주장입니다. 이 주장들은 천주교에 의해 정통교리로 발전되었습니다. 그러나 개신교에서는 그 주장이 옳지 않다고 보는 이들이 훨씬 많습니다. 말미에 첨부해 드릴 주석의 예를 참조해 주십시오.

○ 마리아 숭배론의 의미는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낳으신 마리아는 너무나 거룩하신 인간이다. 이런 분이 죄인인 요셉과 육체관계를 맺고 다른 자녀들을 출산한다는 것은 신성모독이다(평생처녀설). 마리아는 태어날 때부터 죄가 없으신 분이다(무흠수태설 또는 무염시태설). 뿐만 아니라 사망 후 예수님처럼 부활승천하셔서 지금도 예수님 옆에서 하나님이 어머니의 역할을 수행하고 계신다(성모승천설).】 자매님은 문자적으로 무흠수태나 승천론을 거론하지는 않았으나, 평생처녀설을 주장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평생처녀설은 무조건 무흠수태설과 승천설로 발전될 수밖에 없습니다!

2. 교리사는 마리아 숭배사상을 어떻게 정리하고 있는가?

○ 초창기 사도들에 대한 사랑

- 절대적인 사랑 : 베드로, 바울, 스데반, 마리아, 세례 요한 등

- 세월이 흐른 후 순교자들이나 영적 지도자들이 첨가 됨 : 수도사 안토니, 감독 아타나시우스, 암브로스,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 등.

- 이런 분들에게 예수님께 중재해 달라고 기도하게 됨.

○ 마리아 숭배사상의 대두

- 4세기 말경 마리아는 위의 모든 성자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존재로 부상.

- 4세기 ‘주의 어머니’ 주장이 제기되었다가, 5세기 ‘하나님의 어머니’로 발전되었음. 따라서 마리아는 어머니의 태로부터 죽을 때까지 처녀로 묘사되었으며 죄가 없는 이로서 ‘천국의 여왕’으로 인식되기에 이르렀음. 사랑과 자비가 한량없는 분으로 하늘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고 믿게 됨. 아들인 예수가 들어주지 않을 부탁은 존재하지 않는다고까지 확대되기에 이르렀음.

○ 5세기 초 지도자들의 공방

-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감독인 씨릴의 가르침 :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인간의 두 성품이 함께 있었지만 너무나 위대한 하나님의 성품에 이성을 가려지고 말았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성품만을 보여주게 되었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하나님을 낳은 하나님의 어머니가 되는 셈이다.”

- 428년 콘스탄티노플 감독인 네스토리우스의 반박 :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이 혼합되어서는 안 된다. 마리아에게서 난 것은 인간이고 신이 아니다. 그리고 인간으로서 우리의 주로 계신 것이다. 물론 인성은 신성과 연합되어 있지만 혼합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어머니’일 뿐이다.”

- 네스토리우스가 콘스탄티노플 총주교로 부임했을 때 기독론 논쟁이 진행 중이었으며, 한 파는 ‘하나님의 어머니’(Theotokos)를, 다른 파는 ‘인간의 어머니’(Anthropotokos)를 주장하고 있었는데, 네스토리우스가 ‘그리스도의 어머니’(Christotokos)라 할 것을 제안했다. 그의 사상은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이 혼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 이후 이 논쟁은 정치적인 싸움으로 번졌고 결국 교회의 분열로 이어졌다.

○ 중세 이후의 마리아 논쟁

- 마리아 숭배를 향한 교리적 징조가 나타나기 시작함 : 라트람누스(Ratramnus of Corbie)와 라드베르투스(Radbertus of Corbie) 사이에서 발단된 ‘마리아의 종신 처녀성’ 문제를 중심으로 한 논쟁임.

- 수도사 라트람누스는 예수의 탄생 이후에도 마리아의 처녀성을 인정하였으나 출생 과정에서 그리스도의 인성을 가현설적으로 보는 견해를 물리치고 탄생 과정의 자연적 실재성을 주장함.

- 동료 라드베르투스는 마리아가 태 내에 죄가 없으므로 마리아는 전 인류의 숭배대상이라고 주장함. 당시의 풍조를 따른 신비주의적 경향의 주장이었음.

- 라트람누스가 예수의 초자연적인 잉태와 탄생을 주장하였지만 결과는 라드베르투스의 승리로 돌아감. 당시는 신비주의적 경향이 강하고 마리아의 거룩성과 무죄성이 강하게 주장되고 있었기 때문임.

3. 현대의 천주교인들은 마리아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가?

○ 천주교 선교용 소책자 ‘천주교를 알려드립니다.’의 22항 성모 마리아와 성화상 공경.

- 성모 마리아 공경 : 마리아는 구세주의 구세 사업에 비길 데 없는 협력을 해 드렸다. 성모와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일치는 동정녀로서 그리스도를 잉태할 때부터 그리스도께서 죽으실 때까지 나타난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어머니요 그리스도의 지체들인 신자들(교회)의 어머니가 되어 교회를 위하여 ‘신앙과 사랑의 모범’이 된다. 오래 전부터 마리아에 대한 교회의 신심은 그리스도교 예배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구원을 위한 은혜를 사람들에게 얻어주는 마리아의 모성적 역할은 그리스도의 중재 역할을 감소시키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그리스도의 능력을 나타낸다. 사실 마리아의 온갖 영향은 그리스도의 넘치는 공로에서 나온다. 마치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성직자나 평신도가 여러 모양으로 참여함을 배제하지 않고 요구되는 것과 같다.

- 천주교회는 하느님과 마리아를 혼돈하지 아니 한다. 하느님께서는 마리아를 포함하여 만물 위에 높이 공경하는 흠숭지례(欽崇之禮)를 바치므로, 마리아에게 기도하는 것이 하느님의 존엄성을 모독하는 것이 아니다. 성모 마리아를 믿는 교회가 아니라 ‘주님의 어머니’(눅1:43)로 사랑과 공경을 드린다.

- 천사와 성인을 초월하는 성모 마리아에게 드리는 예(禮)는 상경지례(上敬之禮)이며, 천사와 성인들에게 드리는 예는 공경지례(恭敬之禮)이다. 성모 마리아와 천사와 성인들께 기도하는 것은 전구(傳求) 또는 대도(代禱)로 칭한다.

- 성모 마리아와 천사와 성인들에게 바치는 기도는 우리 죄인을 위하여 “빌으소서” 하고, 하느님께는 “우리 죄인을 구원하소서.” 한다.

○ 천주교 예비자 교리서 ‘초대받은 당신’ / 가톨릭 교리신학원 역음 / 가톨릭출판사
“마리아의 영광스러운 특전”

- 평생 동정이심 : 마리아의 예수 잉태는 성령에 의한 것이었다. 마리아가 “이 몸은 처녀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눅1:34) 하고 묻자 가브리엘은 “성령이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감싸 주실 것”(눅1:35)이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가톨릭 교회는 마리아가 예수를 낳기 전은 물론이고 낳은 후에도 평생 동정녀였음을 서슴없이 고백하는 것이다.

- 원죄없이 잉태되심 : 마리아는 예수의 공로를 미리 입으시어 원죄에 물들지 않은 채 태어나셨으며 죽기까지 죄에 떨어지지 않는 특별한 은혜를 받으셨다.

- 승천하심 : 1950년 11월 1일 교황 비오 12세는 오랫동안 신도들 사이에 전승되어 오던 마리아의 승천에 대한 신앙을 “지상의 생애가 끝나자 죄에 물들지 않은 하느님의 어머니요 항상 처녀인 마리아는 영혼이 육신과 함께 천상 영광 속으로 받아들여졌다.” 하고 믿을 교리로 선포했다.

- 하느님께서 마리아에게 주신 특전은 그분이 인간에게 내리신 큰 은혜와 세말에 있을 구원의 보증이 된다. 또한 인간인 마리아를 통하여 하느님께서 큰일을 하셨으므로 마리아를 통하여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리는 데 그 뜻이 있다.

○ 천주교 평신도들 간의 질의 답변

- 질문 : 평생 처녀이셨다는 것인데 예수님의 동생은 누가 낳았습니까?

- 답변 : 성서 어디에도 예수님의 동생을 낳으셨다는 얘기는 없습니다. 평생 동정이라는 것은 평생처녀라는 개념과는 차이
가 있습니다. 평생 동정으로 보고 있는 천주교의 교리상, 마리아께서 낳으신 예수님의 동생은 없습니다.

○ 기타 단편적 주장들.

- 마리아는 14세에 약혼했으며 15세에 예수님을 출산했다.

- 마리아의 승천은 이렇다 : 소아시아 에베소 지역에서 사도 요한과 생활하다 64세에 죽었다. 장사한 지 3일 후 무덤을 열었을 때 마리아의 시신은 없고 수의만 남아 있었다. 따라서 마리아가 승천한 것으로 믿어야 한다.

4. 개신교 학자들은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주석의 예 3곳).

○ 마12:46절(그 모친과 동생들) 주석 = 13:55-56에 의하면 예수에게는 모친 마리아와 그 형제들 야보고, 요셉, 시몬, 유다와 그 누이들이 있었다. 여기 언급된 형제들은 같은 어머니에서 출생한 예수의 동생들이다. 그런데 신약 성경이나 초대교회 교부들과는 거리가 먼 것이지만 마리아의 평생 처녀설을 주장하기 위해 로마 카톨릭은 다음과 같은 견해를 펼친다. 즉 로마 카톨릭은 '형제들'이 요셉의 전처(前妻) 사이에서 출생한 아들들이거나(Hillary, Epiphanius) 아니면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똑같은 이름을 지닌 동생 마리아에게서 출생한 아들들이라는 견해이다(Lange, McHugh, Jerome, Lightfoot). 사실 '형제들'이란 남자 친척들이라는 광의적인 의미로 사용될 수도 있다(행 22:1). 그러나 이런 광의적 의미에 근거하여 '형제들'을 전처 소생으로 본다면 예수는 법적 측면에서 다윗 왕위를 계승할 수 없게 된다. 또한 이름이 동일한 마리아의 여동생의 아들이라고도 볼 수 없는데, 이유는 두 딸에게 똑같은 이름을 지을 부모가 없는데, 이유는 두 딸에게 똑같은 이름을 지을 부모가 어디 있겠느냐는 것이다. 따라서 전통적 견해로서(Tertullian, Heggesipus) '형제들'은 예수의 친동생으로 봄이 옳을 것이다. 한편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훗날 예수가 최후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그 무리에 함께 가담하여 예수의 처형장면을 지켜보았으며(요 19:25) 예수가 승천한 이후에는 오순절 사건에 참여하였다(행 1:14). 또한 주의 형제 야보고는 초대교회의 중요한 지도자 중의 한 사람이 되었다(행 15:13 ; 21:18 ; 고전 15:7 ; 갈 1:19 ; 2:9, 12 ; 유 1:1).

○ 마12:48절(누가 내 모친이며 동생이냐) 주석 = 이는 어머니와 동생들의 존재, 즉 혈연관계를 부인하려는 것이 절대 아니다(요 19:26, 27). 이 말은 출생과 유전(遺傳)으로 이뤄지는 혈연관계보다 영혼의 거듭남으로 이뤄지는 하나님과의 영적, 신앙적 관계가 더 중요함을 보여주는 것일 뿐이다. 실제로 예수는 당신의 죽음과 부활로 세워진 교회를 통하여 보다 더 위대하고 영속적인 영적 가족관계를 형성하기 위한 기초적인 노력으로 이 땅의 한 가정에 태어나 혈연관계를 맺으셨던 것이다. 한편 본문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대하여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아니할 것임이니라"(호 1:9)한 선언과 긴밀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바로 본문의 이 구절이 예수의 '로암미(Lo-Ammi) 선언'에 해당한다. 이미 선택된 백성이라고 해서 개별적으로 영원히 선택된 각각의 인격들이라고 볼 수는 없듯이,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는 자는 비록 혈연적 가족일지라도 예수가 선언하시는 하늘나라의 영적 가족이 아님을 선언하신 것이다.

○ 막6:3절(주님의 형제들 및 자매들) 주석 = 이들은 예수의 사촌(Jerome)이나 요셉이 마리아와 결혼하기 전에 다른 여인과 결혼하여 낳았던 자녀들(Epiphanius)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예수의 친 형제요 자매들이다. 사실 제롬과 에피파니우스의 견해는 모두 마리아가 죽기까지 순결(virginity)을 지켰다는 로마 카톨릭의 교리에 큰 영향을 받은 것이다. 더욱이 제롬의 견해는 심지어 요셉의 동정성(童貞性)까지 가능케 하였다. 그러나 위의 두 견해는 성경적 근거를 갖지 못한 그릇된 가설에 불과하다. 실로 여기 언급된 형제, 자매들은 예수의 동정녀 잉태와 출산 후, 마리아와 요셉 사이에서 자연스런 성관계로 인해 출생한 예수의 친동생들인 것이다(Helvidiys). 여기서 "야고보"는 예수의 바로 아래 동생으로 여겨지며, 초대교회에 지대한 역할을 했으며 특히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로서(행 12:17 ; 15:13 ; 21:18 ; 고전 15:7 ; 갈 1:19 ; 2:9, 12) 그의 이름으로 된 서신서(야고보서)의 저자이기도 하다(약 1:1)/ 그는 유대사가 요세푸스와 유세비우스의 기록에 의하면 변사(變死)한 것으로 나온다. 한편 "유다"는 공동 서신 가운데 유다서의 저자로 여겨진다. 그리고 요셉과 시몬 및 기타 자매들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으나 예수의 부활, 승천 이후 회심하여 초대교회의 성장에 밑거름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행 1:14).


주님 안에서 사랑하고픈 자매님,
자매님의 기대와 다른 반론을 드려 대단히 죄송합니다만,
자매님 말씀대로 이 글은 다른 성도님들께서도 읽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혼돈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게시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위의 긴 글을 주의 깊게 읽어 보셨다면 감 잡으셨겠지만
자매님의 주장은 성경에 의한 주장이라기보다 ‘전승(그것도 가설)에 의한 주장’입니다!
제가 첫 반론 리플을 달 때부터 이러한 신학지식을 머리에 두고 그런 글을 썼던 것입니다.
당연히 이런 지식들은 먼저 깨우친 분들의 덕을 톡톡히 본 것입니다.

아마도 동의하시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무언가 또 다른 반론을 하시겠지요.

하지만 저는 이제 그만 하겠습니다. 더 이상의 반론은 없을 것입니다.

혹시라도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이 계신다면,
그분들께서 그분들 나름대로의 판단기준을 가지고,
자매님과 제 글의 타당성을 판가름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매님의 신앙이 더욱 성숙되시기를 기도드리겠습니다. 샬롬.

평신도

2008.06.06 20:22:17
*.155.225.242

제가 생각할 때 기독교(천주교, 정교회, 성공회, 개신교)의 핵심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라고 봅니다.
천주교에서의 주장과 개신교에서의 주장이 다르지만 그 다른 주장이 서로 일리가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어떤 것이 맞고 어떤 것이 틀리다라고 확신할 수 있는 부분은 없습니다. 그리고 개신교의 주장을 받아 들여도, 천주교의 주장을 받아 들여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천주교의 주장은 마리아를 높이기 위해서 그런 교리를 만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높이기 위해서 그런 교리를 만든 것이고 개신교는 성경에 명확하게 나와 있지 않으니까 그러지 말자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정확하게 알려는 노력은 필요하지만 가장 핵심인 사랑을 잃으면서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비유를 한다면 부모가 있고 자식이 여럿 있습니다. 한 자식은 똑똑해서 부모가 어떤 분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고 한 자식은 똑똑한 자식보다는 잘 모릅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눈치 빠른 자식과 약간 둔한 자식이 있습니다. 부모 입장에서 조금 눈치 없다고 해서 내 자식이 아닌가요? 부모 집에 살면서 부모님께 잘 하려고 노력하지만 눈치가 없는 것 뿐입니다. 부모는 두 자식이 눈치가 있네 없네 서로 싸우기보다는 사이좋게 지내길 바라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기왕이면 정확하게 알면 좋겠지만 아무리 잘 몰라도 옆집 아저씨한테 아버지라고 부르지는 않지 않나요? 그렇다면 별 문제가 없을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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