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3:4-9) 이스라엘과 하마스, 누구를 편들어야 하나?

하나님의 공의와 인간의 고통 (7)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빌3:4-9)

 

종교적 의인 바울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따르고 있는 신자라면 악인이 형통하고 의인이 고통받는 사회 현상을 보면 의로운 분노가 치솟을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 열심당원이 될 정도로 도덕적 의협심이 강했던 가룟 유다는 로마와 유대의 정치적 권력의 횡포로 심한 빈부의 격차가 생겼다고 판단했습니다. 그 굽어진 공의를 바로 잡으려 나름 노력했으나 잘못된 판단과 개인적 욕심 때문에 완전히 실패했고, 스승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는 죄책감에 괴로워서 자살로 그 비극적인 생을 마감했습니다. 

 

종교적 의인이었던 바울은 사도가 되기 전에는 예수 믿는 신자들이 유대 사회의 질서를 무너트리는 사악한 세력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자기가 볼 때는 인간 랍비가 죽음에서 부활해서 하늘 보좌로 올라갔다는 황당하기 짝이 없는 미신을 믿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모르는 죄인인 이방인들과 스스럼없이 교제했습니다. 로마에 빌붙어 치부한 세리는 물론 창녀마저도 그 추악한 직업을 그만두지 않았음에도 형제자매라고 부르면서 자기들의 예배에 동참시켰습니다. 

 

무엇보다 유대인들에게 율법의 제사법과 정결법은 물론 장로들이 제정한 여러 계명은 예수 십자가로 그 효력이 종결되었으니까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예컨대 십계명의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넷째 계명을 무시하고 예수가 부활했다는 주일에 예배를 드렸습니다. 나사렛 출신의 인간 랍비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칭하며 경배하니까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셋째 계명도 위반했습니다. 심지어 예배 중에 사람의 피를 마시고 살을 먹는다는 확인할 수 없는 괴소문까지 들렸습니다.

 

자기 민족을 무력으로 약탈 박해하는 로마제국에 항거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그러려 했던 수제자를 스승 예수가 사탄이라고 야단쳤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예수를 믿는 동족이 점점 늘어나니까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와 히브리인이라는 민족의 정체성이 쇠퇴해 사라질 판입니다.

 

바울로선 아무리 따져봐도 그대로 두어선 이스라엘 안에 이단적 종교가 번창하게 되고 무엇보다 율법을 따르지 않음으로써 사회 질서가 무너질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절대로 좌시할 수 없는 상황으로 하나님을 위해서 반드시 제거해야 할 유대 사회의 공적 일호였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므로 사회적 공의는 반드시 율법을 준행하여 바로 세워야만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유대 전국을 돌면서 신자들을 찾아내어 박해했고 본보기로 스데반의 처형을 주도했습니다.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는 돌로 쳐서 죽이라는 율법 규정대로(레 24:16) 따랐기에 도덕적 종교적 죄책감은 전혀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대적을 제거하는 큰일을 수행했다는 의로운 자부심에 충만했을 것입니다. 

 

다메섹 회심 사건

 

그러나 이스라엘의 공의를 바로 세우려는 바울의 종교적인 시도 또한 무참한 실패로 끝났습니다. 대제사장의 허락을 받아 디아스포라 신자들을 핍박하러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 하늘의 찬란한 빛 가운데 강림하신 부활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일행 중에 바울 혼자에게만 핀포인트(Pin Point) 무대 조명처럼 엄청나게 밝고도 강력한 빛에 노출되는 바람에 완전히 봉사가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부축을 받아야 겨우 걸음을 뗄 정도라 사실상 죽음의 상태에 내몰렸습니다. 그동안 예수 믿는 신자에게 가한 극렬한 핍박에 비추면 즉사시키지 않은 것만도 바울 스스로 너무 신기하고 놀랐을 것입니다. 

 

자기와 일면식 없었던 예수가 하늘에서 먼저 찾아와서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행9:4)라고 물었습니다. 바울이 회심하기 전의 본명인 사울이라고 불렀기에 자신의 지난 모든 행적을 꿰뚫어 아신다는 뜻입니다. 신자들을 핍박했는데도 당신을 핍박했다고 말하므로 신자들이 스승의 사역을 이어받아서 하고 있으며 또 그래서 예수의 영이 그들과 항상 함께한다는 뜻입니다. 요컨대 바울 네가 지금 하나님의 일을 크게 훼방하고 있는데도 죽이지 않고 살려줄 테니 네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잘 따져보라고 명한 셈입니다.

 

앞이 아예 안 보이고 언제 회복될지 모르는 절망 가운데서 그는 어디에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유대 사회의 공의를 무너트리게 만든 이단의 괴수라고 판단했던 예수가 오히려 영계에서 신적인 권능으로 자신에게 벌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봉사가 되고 난 직후에는 혹시 추가로 더 큰 벌을 내릴까 두려워서 전전긍긍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면하면 즉사한다는데 그 찬란한 광채에 눈이 너무 부셔서 순간적으로 잠시 눈을 감았기에 목숨을 부지하게 되었으리라 추측했을 것입니다. 어쨌든 죽이지 않고 살려주었으니 너무 감사하긴 한데 여기서 그치면 앞으로 큰 고통 가운데 너무나 불편하게 살아야 할 것을 생각하니 잠도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식음을 전폐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수와 영적 씨름을 계속하면서 제발 제2의 기회를 달라고 간절히 매달렸을 것입니다. 초주검 상태에서 자기 전부를 예수의 처분에 온전히 맡겨야 했습니다. 그러던 삼 일 후 마찬가지로 일면식도 없었던 신자 아나니아가 예수님의 계시를 받고서 찾아와 기도해 주자 눈에 비늘 같은 것들이 벗겨지고 광명을 되찾았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간절한 기도에 응답해 주셨음을 실제로 체험함으로써 주님께 완전히 항복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가 사흘간의 영적 씨름 끝에 내린 결론은 신자들의 믿음대로 예수님은 죽음에서 부활하여 이 땅을 당신의 주권대로 다스리는 하나님의 아들이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택함을 받아서 아무 공로 없는데도, 아니 하나님의 원수가 되어서 죽어 마땅한 죄인데도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의 은혜가 자기에게도 임했다고 절감했을 것입니다.

 

그 후 삼 년간 아라비아 사막으로 들어가 개인적으로 구약 성경을 연구하며 기도함으로써 예수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 창세기에서부터 구약 내내 계시한 메시아임을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사도들과 주님의 사역과 가르침과 십자가 죽음과 부활에 계시 된 진리로 서로 교제를 나눴습니다. 나아가 성령의 인도 가운데 세 차례의 선교 여행을 하며 온갖 고난과 죽을 고비를 겪으면서도 오직 복음을 전파하며 교회를 세워나갔습니다. 

 

빌립보서를 저작한 것이 로마의 옥중 생활 말기인 AD 62-63년 경이므로 시간적으로만 따지면 본문의 고백을 한 것은 다메섹 회심 사건으로부터 근 삼십 년이 흐른 뒤였습니다.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 가장 귀해서 다른 것 모두는 자신에게 해가 되는 정도를 넘어서 오물이므로 다 버렸다는 이 고백은 그의 고달팠던 평생의 사역을 지탱해 준 영적인 지침이었습니다. 그가 로마 교인들에게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권면한 대로(롬12:1) 바울 본인의 실체적 삶 그 자체였습니다. 그 고백에는 중요한 의미가 많지만, 지금 살펴보고 있는 주제인 하나님의 공의와만 연결해서 따져보도록 하겠습니다. 

  

공의를 어지럽힌 사울  

 

바울이 예수를 알기 전까지 육신으로 자랑했던 내용들을 잘 살펴보면 모두가 부러워할 성공한 인생의 표본이었습니다. 당시 유대 사회에선 도덕적 종교적으로도 아주 선한 모습들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예수를 알게 되자 신자들은 자기와 달리 전혀 그것들을 내세우지도 추구하지도 않았고 또 그런 신자들의 삶이 이전의 자기보다 의롭고 옳았다고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신자들이 유대 사회 공의를 어지럽힌다는 자신의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뜻입니다. 유대 사회의 공의를 종교적으로 바로 세워보려 했던 자신이야말로 하나님의 뜻 안에선 그분의 공의를 어지럽히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먼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았다고 육신적인 자랑을 시작합니다. 유대교 율법을 잘 지키는 부모에게 나면서부터 신앙교육을 잘 받았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덧붙였는데 율법과 할례를 소지한 하나님의 택하신 족속으로서 죄로 타락한 사악한 이방인과는 태생부터 다르다는 것입니다. 베냐민 지파는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과 같은 지파 출신으로 왕족의 후손이라는 뜻이며 또 그래서 자기 이름도 사울로 지었다는 것입니다. 열두 번째 막내 지파지만 선조 야곱이 본처로 삼으려 했던 라헬이 낳자마자 죽는 바람에 야곱이 가장 사랑했던 아들의 지파라는 뜻도 됩니다.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라는 표현이 단순히 유대인의 정체성을 반복해서 강조한 것이 아닙니다. 바울의 부모는 지금의 터키 땅에 속하는 밤빌리아 주의 다소에 살았던 디아스포라 유대인이었습니다. 당시 로마제국 곳곳에 흩어진 유대인들은 아무래도 이방인과 통혼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자기들 부모는 물론 선조 중에도 그런 사람이 없어서 히브리인 순수혈통을 유지했다는 것입니다. 비록 몸은 이방 땅에서 살아도 여호와 신앙에 조금이라도 오염이 될 일은 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자긍심을 끝까지 지켜왔다는 것입니다.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라고 했습니다. 바리새파는 바벨론 포로 귀환 후에 율법을 온전히 지켜서 하나님의 형벌을 더 이상 받지 말자고 중산층 평신도가 중심이 되어 종교적 개혁 운동을 일으킨 사람들입니다. 출애굽 후 이스라엘은 제사장 나라로 세워졌으나(출19:5,6) 그 소명에 충성하지 못해 바벨론 포로가 되는 벌을 받았다고 철저히 회개했습니다. 또 그래서 제사장들이 지켜야 할 정결법 등을 모든 유대인이 준수해야 하고 어기게 되면 반드시 속죄제나 정결례를 행하여 그 죄를 씻도록 했습니다. 바리새라는 히브리어의 어원은 ‘'분리시키다’'는 동사 '파라쉬'입니다. 만약 계속 죄를 짓거나 그런 회개 절차를 거치지 않으면 유대 사회에서 분리해 출교시켰습니다.

 

바리새인이자 율법을 가르치는 랍비였던 바울은 성전 제사와 안식일에 관한 장로의 유전 등을 아주 성실히 지켰기에 율법의 의로 흠이 없다고 자부했습니다. 그러니까 공의를 바로 세울 목적으로 예수 믿는 신자들을 유대 사회에 발도 붙이지 못하게 하려고, 즉 분리 배척하려고 열심히 교회를 핍박했다는 것입니다. 

 

비느하스의 전통

 

그가 ‘열심’(zeal)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음에 주목해야 합니다. 바울이 가룟 유다가 속했다고 알려진 열심당에 소속되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유대 사회에는 여호와를 위해서 유대교의 순수성을 사수해야 한다는 열정적인 사조 내지는 운동이 계속 있어 왔는데, 그것을 ‘비느하스’ 전통이라고 부릅니다. 

 

출애굽 후에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이방인 주술사 발람의 선동에 넘어가 모압 여자들과 음행에 빠지는 바람에 하나님이 염병의 큰 벌을 내렸습니다.(민25장) 모세가 여호와의 명을 받아서 음행 주동자를 죽이라고 하자 대제사장 아론의 손자인 비느하스가 음행 중이었던 두 남녀를 장막에 들어가 창으로 찔러 죽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내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내 노를 돌이켜서 내 질투심으로 그들을 소멸하지 않게 하였도다.”(민25:11)라고 칭찬하고서 염병의 벌을 멈추었습니다. 하나님이 질투했다는 그 단어가 본문의 ‘열심’입니다. 

 

비느하스는 이스라엘의 영적인 순결을 유지하려는 하나님의 질투심, 즉 열심으로 하나님을 대신해 공의의 심판을 내린 것입니다. 성경은 그래서 “그 때에 비느하스가 일어서서 중재하니 이에 재앙이 그쳤도다. 이 일이 그의 의로 인정되었으니 대대로 영원까지로다”(시106:30,31)라고 찬양했습니다. 이 말씀대로 유대인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의를 유대교를 통해 대대로 실현하겠다는 그런 전통을 지켜온 것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죽자, 그의 장군들이 제국을 분할 통치하였는데 유다를 다스리던 폭압적인 안티오쿠스 4세에 의해서 급진적인 헬라화 정책이 시행되었고 예루살렘 성전이 돼지 피로 더럽혀지는 일까지 일어났습니다. 

 

경제적으로 가난했던 제사장 계급 출신인 마카비가 혁명을 일으켜 헬라에서 독립하여서 기원전 142년부터 기원전 63년까지 79년 동안 하스몬 왕조를 설립했습니다. 힘으로는 열세였던 마카비도 게릴라식 테러 전법으로 헬라에 대항해 승리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잠시 독립했던 이 왕조 때 바리새파 운동은 더욱 활발해졌으며, 지금도 유대인들은 그 독립을 기념해서 음력에 따라 크리스마스와 비슷한 시기에 ‘하누카’(수전절) 기념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다 하스몬 왕조도 로마제국에 의해 멸망 당하고 다시 강압적인 식민 지배를 받게 되자 비느하스의 전통을 이어받아 마카비 식으로 로마에 테러를 가해 독립운동을 시도한 것인 바로 복음서가 말하는 열심당(zealots)입니다. 바울은 가룟 유다처럼 정식 열심당원은 아니었으나 대대로 내려온 비느하스 전통을 이어받아 교회를 핍박했다고 말한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과 이스라엘의 율법 전통과 예루살렘 성전의 순수성을 지키려는 목적을 달성하려 했다는 뜻입니다. 지금도 정통 유대인들은 그런 비느하스 식의 열정을 갖고서 십자가 복음을 전하려는 개신교 신자를 아주 미워하면서 폭력적으로 대하고, 이스라엘에 사는 기독교인들을 종교적으로 핍박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우파적 사상

 

바울은 지금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 전까지 자기는 유대교의 최고 열성파, 여호와 하나님의 최고 충신, 유대 사회에서 필요한 모두를 다 갖춘 상위 1%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예수를 알고 나니까 그 모든 자랑거리가 아무 의미가 없었고 오히려 하나님의 일에 거꾸로 큰 훼방이 됨을 깨달았다고 인정했습니다. 그가 자랑한 것들은 평생토록 추구해 달성한 인생 목표이자 살아가는 의미와 가치였으며, 사실상 당시 모든 유대인의 가치관이었습니다. 바꿔 말해서 바울은 모든 유대인이 자기처럼 되면 유대 사회에 하나님의 공의가 온전히 세워진다고 믿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유대교에선 그렇게 함께 유대 사회를 의롭게 세워가는 자들끼리만 서로에게 이웃과 형제가 되며 그러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마땅하다고 취급했습니다. 그래서 율법을 모르는 이방인은 아예 죄인 취급하여 식사 교제도 하지 않았고, 동족이라도 세리 창녀 문둥병자 같은 자와는 상종하지 않았으며, 장애인은 성전 출입도 금지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자마자 앞도 보지 못하는 장애인이 되었으니까, 유다 최고 상류층으로 백성들을 가르치는 위치에서 최고 하층으로 떨어지다 못해 바리새인인 자기가 그 사회에서 분리되어 배척될 판국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은혜로 사흘 만에 불구가 회복되어 출교는 당하지 않게 되었으니까 완전히 죽었다 살아난 것 같았을 것입니다. 그가 기도한 대로 예수님이 제2의 인생을 이전과 전혀 다르게 새로운 모습으로 살라고 허락해 준 것입니다. 

 

사울 때의 바울은 여호와를 위하는 종교적 열성으로 인간사회의 공의를 바로 세워보려 했습니다. 말하자면 각 개인이 율법으로 도덕과 종교 교육을 철저히 받아서 사회 법규를 제대로 준행하는 건전한 시민이 되고 성실히 일해서 경제적 안정을 이루어야 세상에 불의가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지금 식으로 따지면 보수 우파적인 사고였는데, 특별히 랍비인 자기 같은 엘리트들이 사회를 주도해야만 공의로워진다는 조금 극단적 우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더 확대하자면 유대인들만의 공의로운 나라를 꿈꾸었으므로 최고로 우수한 게르만 민족이 세계를 지배해야 평화로운 이상향을 건설할 수 있다고 맹신했던 나치 독일식 사상에까지 비견될 수 있습니다. 

 

참으로 흥미롭지 않습니까? 가룟 유다는 지금으로 치면 진보 좌파였습니다. 부자의 재산을 팔아서 가난한 자의 복지에 사용해야 하고 그래서 모두가 똑같이 잘 살아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유다의 그런 시도는 완전히 실패했고 하나님의 뜻도 아니었음을 지난주에 살펴봤습니다.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그와 반대되는 사상을 지향한 예수님 만나기 전의 사울의 보수 우파적인 시도도 완전히 실패로 끝났습니다. 

 

특이하게도 둘의 기본적 사상은 달랐으나 똑같이 폭력적인 방안도 적극적으로 동원했습니다. 열심당원 유다는 유대 사회의 공의를 어지럽히는 로마라는 정치적 세력에, 바울은 기독교라는 종교적 세력에 테러를 가했습니다. 유다는 로마라는 너무나 강력한 대적을 상대해야 했으므로 불가피한 조치였으나, 바울은 거꾸로 유대교라는 막강한 세력을 등에 업고서 갓 태동한 미약한 예수교와 그 신자들을 극렬히 핍박했으므로 도덕적으로는 유다가 오히려 바울보다 우위를 점하는 셈입니다. 어쨌든 유다는 을의 위치에서, 바울은 갑의 위치에서, 자기 목표만 달성하려고 살인죄도 눈 깜짝 않고 자행한 것입니다. 

 

유다와 바울은 똑같이 나라와 동족을 사랑했고 무엇보다 세상 불의에 분노하고 굽어진 공의를 바로 세우려 했습니다. 그 동기는 분명히 선했으나 그들의 생각이나 방식이 전혀 완전하지 않았고, 근본적으로는 세상 공의가 굽은 현상에 대한 원인 분석이 잘못되었던 것입니다. 유다는 로마와 그에 빌붙은 정치권력이, 바울은 사람들을 도덕적 종교적으로 오염시키는 기독교가 원인이라고 보고 그것들을 제거하면 세상이 바로 서리라 착각한 것입니다. 거기다 둘 다 자기는 누구보다도 의롭다고 자부했기에 자기 외부의 인간사회의 체제만 개선하면 문제가 해결되리라 철석같이 믿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공의

 

그러나 유다는 예수님 십자가에 돌아가시자 도덕적 양심의 가책에 못 이겨서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서 교회를 핍박하는 일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자기 생각을 완전히 뒤집었습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은 보수우파도 진보좌파도 세상의 공의를 온전히 세우지 못한다고 유다와 바울을 들어서 분명하게 계시해 준 것입니다. 

 

기독교를 포함해서 세상의 모든 사상과 종교는 인간 사회 문제의 원인을 무엇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분파가 나눠집니다. 인간사회에 불의 불법이 성행해서 문제가 많으니까 더 살기 좋은 모습으로 바꾸고 싶다는 동기와 열정은 정상인이라면 그 세기만 다를 뿐 다 품고 있습니다. 살펴본 대로 유다처럼 빈부 격차가 근본 원인이라면 공산주의 사회주의가 해결책이 됩니다. 바울처럼 모든 이가 교육을 잘 받아서 건전한 시민으로 살아야 한다면 자본주의 민주주의가 최적의 방안입니다. 

 

기독교 내에서도 사탄이 직접적으로 훼방했기에 세상이 타락했다고 분석하면 성령 은사 주의가 그 해결책입니다. 여성이 심각하게 차별받았기 때문이라면 여성 신학이, 노동자 무산계급이 기득권 유산계급에 박해받았기 때문이라면 해방신학이, 모두가 도덕적으로 타락했기 때문이라면 율법주의를 최우선으로 강조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더 정확히는 예수님은 세상 불의의 원인이 무엇이며 그 해결책은 무엇이라고 가르쳤습니까? 한마디로 인간이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멀리하거나 그분의 뜻대로 살지 못해서 세상은 죄악으로 타락했다고 합니다. 물론 인간이 고안한 사회 정치 문화 경제 정책을 포함해 도덕과 종교가 그 선한 동기와 방식으로 간혹 좋은 열매도 맺습니다. 그럼에도 그것들의 우열이나 또는 제대로 실천되지 못한 것이 인간 세상에 문제가 생기는 근본적인 원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골고다 언덕에서 모든 세대의 모든 인간이 자기만 높이려는 교만과 탐욕에 젖어 있기에 그것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세상은 절대로 바로 세워지지 않는다고 당신의 몸으로 선언했습니다. 인간의 근본 심령부터 뜯어고치는 것이 궁극적으로 유일한 해결책이므로 주님은 이 땅에 오셔서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가르침은 하나도 주지 않고 십자가에 아무 말씀 없이 달리신 것입니다. 

 

바울은 지금 그런 십자가 예수를 알고 나니까 세상을 바로 잡으려고 자신의 최고 수준의 도덕과 종교로 최선을 다해서 스스로 노력했던 모든 일이 오히려 헛수고였다고 고백합니다. 거꾸로 자기는 동족을 죽이는 잔인한 살인자가 되었고 그래서 하나님의 가장 큰 대적이 바로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처절하게 깨달은 것입니다. 천하 죄인 중의 괴수라는 신음이 저절로 그 입에서 새어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 다시 오시면

 

작금의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을 보면서 많은 신자가 어떤 신앙적인 입장을 견지해야 할지 곤혹스러워합니다. 근본적으로 교회가 구약 성경을 해석하는 법을, 특별히 구약에 계시된 이스라엘의 위치와 역할에 대해서 정확하게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인데 그것을 설명하자면 끝이 없습니다. 대신에 살펴본 대로 유다와 바울의 실패가 그 정답을 명료하게 제시해 줍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에 비해 힘으로 너무 열세인지라 열심당원 유다처럼 게릴라 테러로 독립하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유대교의 압도적인 힘으로 기독교인들을 말살하려고 했던 바울처럼 여호와를 위한 열성으로 하마스를 지구상에서 멸절시키려고 엄청난 박해를 가하고 있습니다. 그 시발은 분명히 테러와 인질극을 벌인 하마스의 잘못 때문이었지만 그들은 유다이고, 이스라엘은 인질 해방이라는 의도는 좋으나 무자비하게 보복하니까 바울인 셈입니다. 도덕적으로, 특별히 역사적으로 따져서, 어느 쪽이 우월하다고 절대 판단할 수 없습니다. 종교적으로도 이슬람과 유대교 둘 다 예수님을 끝까지 완악하게 부인 대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과 유대인을 아직도 하나님의 특별 대우를 받는 선민의 위치와 역할에 남겨 두려는 신자가 아니라면 어느 쪽도 편을 들어선 안 됩니다. 둘 다 예수님의 뜻과는 완전히 상치되게 악을 자행해서 하나님의 공의를 굽게 만들고 있을 뿐입니다. 이스라엘을 여전히 구약 안에 묶어서 편애하는 신학적 사조를 세대주의라고 하는데, 따지고 보면 성경을 문자적으로만 해석한 것입니다. 구약 유대인들과 예수님 당대의 바리새인들이 율법을 제정하신 하나님의 뜻은 외면하고 문자적인 의미와 표현에만 집착했던 오류를 지금도 똑같이 범하고 있는 셈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누가 봐도 세상의 악인 로마를 무너뜨리기는커녕 야단치지도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안에서부터 동기는 좋으나 불완전하고 영적으로 무지하여서 때로는 하나님의 대적이 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것도 지도층 안에 유다와 바울 같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니 세상 사람 전부가 그러하니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도긴개긴끼리인 인간의 제도 법률 사상 종교는 아무리 바꾼들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각기 장점은 분명히 있으나 상대적 일시적 부분적 표피적 불완전한 장점일 뿐입니다. 인간의 눈에는 의로워 보여도 종종 하나님의 뜻을 위배하는 악한 결말로 끝납니다. 한마디로 인간끼리 서로 잘 되려다가 세상 공의를 인간끼리 굽게 만드는 것입니다. 

 

실제로 여성 신학은 역차별적 페미니즘 논쟁을 낳았고, 해방신학은 공산독재로 가는 계기와 신학적 배경을 제공했습니다. 직접 사탄과만 상대하려는 은사주의는 단지 사탄에 미혹되었을 뿐인 일반인에게 적용하는 데에 한계를 드러냅니다. 영적 전투만 강조해선 현실 세상과 동떨어지므로 그에 반발하는 또 다른 율법적 경건주의가 나타납니다. 더 큰 문제는 하나님의 능력만 이용해 자기 혼자 형통하려는 기복주의적 종교들이 세상을 오염시키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따져도 인간이 고안한 의로운 방안이 하나라도 사회 전체로 봐서 제대로 성공한 것이 없습니다. 도덕적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따져서 그나마 자유민주주의 자본주의 체제가 아직은 최선의 방안이라고 간주하지만, 그 폐해가 점점 심해져서 지금 완전히 다른 새 체제가 필요하다고 모두가 공감하고 있습니다.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인간들이 인류 역사 내내 성령 하나님이 그 모두를 아우르면서 인류의 멸망을 막아주고 있는 줄을 전혀 모르고서 말입니다.

 

지금 같이 하나님이 실종 부인되고 있는 세태가 이어지면 이 세상은 어떻게 변화하겠습니까? 너무 빤한 결말인데 이미 서서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작금 인간이 만든 AI에 윤리적 규정을 제정해서 통제해야 한다고 나섭니다. 참으로 우스꽝스러운 짓 아닙니까? 인간 생활의 편의와 유익을 위해서 고안했기에 가치적으로는 완전히 중립입니다. 그런데도 그것이 인간사회를 멸망으로 이끌 것이라고 지금 모두 두려워합니다. 근본적으로 인간사회 문제의 원인이 바로 악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불신 세상도 인정한 것입니다. 

 

이런 판국에 예수님의 십자가 외에 인간사회의 불법과 불의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과연 따로 있겠습니까? 진보좌파도 보수우파도 정치적인 방안으로는 절대 해결이 안 됩니다. 예수님이 지금 다시 오시면 이스라엘과 하마스 어느 쪽도 편들지 않고, 틀림없이 양쪽의 일반 시민의 대피소와 병원에만 방문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에 분명 비느하스적인 전통을 이어가려는 유대교적인 선한 의지가 있겠지만, 여전히 선민인 유대인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가야 한다는 사상입니다. 예수님에 의해 베드로는 크게 야단맞았고, 바울의 그런 시도가 철저히 무산되었기에 기독교인이 작금의 그런 시도를 옹호 동참해선 절대 안 됩니다. 굽어진 세상 공의를 바로 세우는 길은 십자가 복음주의뿐입니다. 말 그대로 인류에게 그것이 제일 좋은 소식입니다. 

 

(12/30/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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