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판 것보다 더 큰 아브라함의 잘못

창세기 강해 (67)

 

“그 땅에 기근이 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우거하려 하여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를 때에 그 아내 사래더러 말하되 나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고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원컨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대로 인하여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인하여 보존하겠노라 하니라 아브람이 애굽에 이르렀을 때에 애굽 사람들이 그 여인의 심히 아리따움을 보았고 바로의 대신들도 그를 보고 바로 앞에 칭찬하므로 그 여인을 바로의 궁으로 취하여 들인지라 이에 바로가 그를 인하여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 수 나귀와 약대를 얻었더라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연고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 바로가 아브람을 불러서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이렇게 대접하였느냐 네가 어찌하여 그를 네 아내라고 내게 고하지 아니하였느냐 네가 어찌 그를 누이라 하여 나로 그를 취하여 아내를 삼게 하였느냐 네 아내가 여기 있으니 이제 데려가라 하고 바로가 사람들에게 그의 일을 명하매 그들이 그 아내와 그 모든 소유를 보내었더라”(창12:10-20)

 

 

우리들만의 리그.

 

본문의 내용은 신자라면 익히 아는 내용이지만 아주 의아스런 사건이기도 하다. 사래가 그 나이에 예뻤으면 얼마나 예뻤을까? 죄송하지만 바로와 관계를 맺었는지 등등 여러모로 생각해볼 사항이 많다. 다른 것은 두고라도 크게 두 가지 측면은 살펴봐야 할 것 같다.

 

우선 기독교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뜻은 물론 일반 윤리와 상식으로도 이해가 안 되는 너무나 비겁하고 치사한 잘못을 범했다는 것이다. 도대체 그럴 수 있는가? 둘째는 그럼에도 하나님은 선하게 결말지어주시고 추가로 많은 재물을 보너스로 주셨다는 점이다.

 

지금껏 그래서 하나님이 당신이 택한 백성은 어떤 곤경에서도 건져주시고 설령 본인이 큰 잘못을 범했어도 끝까지 보호해주시며 필요하다면 추가로 복도 주신다고 배워왔다. 틀린 것은 아니지만 아주 원론적 해석에 불과하다.

 

우린 그런 잘못을 평생을 두고도 범하지 않는다. 평소에는 열심히 봉사하고 전도한다. 하나님께 큰 복을 받는 것까지는 기대하지 않아도 고난에서 구해달라는 기도는 그렇게 오래 했는데도 감감 무소식이다. 그럼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편애한 것인가? 복의 근원으로 삼는다는 약속은 우리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씀인가? 이런 문제를 진지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하박국 선지자는 모든 신자들이 항상 갖고 있는 두 가지 의문을 하나님께 제기했다. 왜 악인은 형통하는가? 반대로 왜 의인은 고통을 당하는가? 지금 아브라함은 어쨌든 말도 안 되는 잘못을 범했음에도 큰 복을 받았다. 그럼 하박국 선지자처럼 하나님이 잘못되었다고 아니면 정확한 이유라도 알자고 따져야 하지 않는가?

 

나아가 악인이 형통하는데 불만을 제기하는 것이 타당성을 갖추려면 반대로 신자가 까닭 없이 큰 복을 받는 것도 동일한 맥락에서 불공평하다고 여겨야 하지 않는가 말이다. 그래서 저는 이런 큰 은혜를 받을 만한 자격도 없고 그럴 그릇이 안 되며 그럴만한 일을 한 것도 없으니 제발 거두어 달라고 하나님께 요청하는 신자는 왜 한 명도 없는가?

 

설령 신자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 해도 곧바로 불신자 이웃과 나눠야 하지 않는가? 그 전에 저는 필요 없으니 아직 하나님을 거역하는 불쌍한 이웃에게 먼저 복을 주라고 요청해야 마땅하지 않는가? 그것이 바로 지난주에 살펴본 복의 근원이 된다는 의미였지 않는가?

 

지금까지 많은 신자들이 예수 잘 믿으면 하나님이 복을 주시고 그 받은 복을 너무나 당연히 여기고 또 복 받는 것을 신앙의 목표로 삼아왔다. 그러니까 교회 밖에선 예수쟁이 너희들끼리 다 해먹으라고 하고 교회는 우리들만의 리그로 전락했다. 누가 외적으로 더 큰 교회로 성장시키는가에만 모든 관심을 쏟는다. 교회와 교인이 복의 통로가 되지 않고 복을 경쟁적으로 사고파는 영업장이 되었다.

 

당시의 아브라함이었다면?

 

본문은 단순히 이분법적 논리와는 다른 차원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당시의 아브라함의 입장이었다면 어떻게 했을 것 같은가? 자기 아내라고 당당히 밝혔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여자들은 당시에 노예와 방불하게 재산이나 물건 같은 취급을 받았다. 현대의 극단적인 종파에선 아직도 심하게 말해 여자를 파리 목숨처럼 다룬다. 극히 최근까지도 실제로 에스키모와 일본 북해도의 일부 종족은 남편 친구가 멀리서 여행 와서 자기 집에 기숙할 때에 자기 아내를 객고를 풀라고 즉 잠자리를 가져도 좋다고 그 방에 들여보내는 것이 최고 예의요 관습이었다.

 

구약시대에는 아브라함을 비롯해서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도 여러 첩을 두었다. 그나마 잘 데리고 살면 괜찮으련만 아무 이유도 없이 내쫓고 종으로 팔아버리는 것이 예사였다. 오죽하면 하나님이 이혼증서를 주어서 재혼할 권리를 보장해주며 내보라고 했겠는가?

 

예수님 당대에는 그 율법을 문자적으로만 적용해서 아예 증서만 주고서 마음 놓고 이혼했다. 예컨대 아내가 눈만 흘겨도 기분 나쁘다고 아내를 버릴 정도로 타락했다. 주님은 그래서 음행한 연고 외에는 절대 아내를 버리지 말라고 다시 그 율법의 뜻을 풀어주었다.

 

아브라함의 입장에 서서 그를 변호해주자면 자기 목숨이 위급한 지경에 이르자 사래의 동의를 얻었다. 혼자만 살려고 자기 기분 내키는 대로 내쫓은 것은 아니다. 강요하지도 않았다. 혹시 그런 경우가 생기게 되면 거짓말 하자고 짠 것이다. 물론 충분히 그럴 가능성을 미리 예측했기에 고의적인 죄라고 볼 수는 있다. 그러나 돌아가면 굶어 죽으니 차라리 이 길이 낫지 않느냐고 상호 합의 보았다.

 

틀림없이 아브라함은 간곡히 사정했을 것이다. 절대로 네와 헤어질 의사는 없다. 죄라면 네가 너무 예쁜 것 하나인데 그렇다고 내가 죽을 수는 없지 않느냐? 일단 거짓말로 위급한 상황은 모면해보자. 최악의 상황이 닥치더라도 이번 기근만 끝나면 다시 함께 가나안으로 돌아가자고 손가락 걸고 맹세했지 않겠는가? 이는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로맨스이지 않는가?

 

여전한 라멕의 악습

 

상황이 어찌 되었던 연약한 아내를 이용해 자기만 살려는 계략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큰 잘못이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큰 복을 주신 이유는 무엇인가? 노아 홍수 심판을 부른 직접적인 원인은 외모가 마음에 드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았던 것이었다.(창6:2) 그 전에 라멕의 기사에서 보듯이 무력으로 남의 유부녀도 강탈했던 때문이었다.(창4:19-24)

 

본문 12절을 보라 아브람은 애굽 사람이 사래의 외모가 마음에 들면 자기를 죽이고 취할 것이라고 걱정했다. 노아 홍수 심판 전과 하나 다를 바 없다. 아브라함의 죄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애굽인의 죄가 더 크다. 그는 단지 자구책을 강구한 것뿐이다.

 

물론 지금은 홍수전과는 조금 상황이 다르다. 바벨탑 사건 이후 각지에 흩어진 민족들이 고유의 법체계를 정비해 사회질서를 유지했다. 자기들 종족끼리는 그런 일을 하지 않았다. 외국인이 오면 그랬다.

 

그럼 가나안 땅에선 왜 이런 일이 없었을까? 가나안과 애굽 사람들의 미적 기준이 달라서인가? 그렇지 않다. 여자를 보는 남자들 눈은 어디나 똑같다.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 곁의 하란에서 상당히 지체했다. 가나안 문화, 특별히 언어를 익혔다고 봐야 한다.

 

21세기 최고선진국 미국에서도 소수민족들은 여전히 차별을 당하지만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고 미국 문화에 익숙한 자는 절대 무시하지 않는다. 아브라함에게 애굽은 언어도 안 통하는 전혀 생소한 곳이었기에 이런 위험에 부닥칠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을 모르는 인간들의 타락상은 노아홍수와 바벨탑 때와 단 하나 나아진 것이라곤 없었다.

 

아브라함 개인적으로는 아버지 데라가 노쇠해서 하란에서 지체할 수밖에 없었다. 그 배후에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있었다. 그가 생각지도 아니 상상치도 못하는 세밀한 부분에까지 하나님의 은혜는 미쳤다. 최초의 해외선교사였던 그를 미리 준비 훈련시켰던 것이다. 이 얼마나 큰 은혜이며 소름끼치는 사랑인가?

 

당시 외국인이라면 아내까지 무력으로 빼앗기는 정상적 윤리와 상식이 통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하나님은 그를 가나안에선 미리 그곳 말을 하도록 훈련시켜서, 지금 애굽에선 당신마의 특이한 방식으로 끝까지 보호한 것이다.

 

비유컨대 애굽은 지금으로 치면 식인종 지역이나 마찬가지다. 아마존 선교사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Mission을 기억할 것이다. 파송되는 선교사마다 모두 살해당했는데 또 다시 한 선교사가 파송되었다. 그는 자기 목숨을 보존할 호신용 칼이 아니라 달랑 피리 하나를 들고 갔다. 음악으로 그 부족의 마음을 얻는데 성공했다. 영화에선 엔니오모리코네의 음악이지만 실제로는 틀림없이 찬양곡이었을 것이다. 아브라함의 거짓말 임기웅변도 결과적으로 그 선교사의 피리 역할을 한 셈이다.

 

지금 이런 상황 하에선 아브라함이 보호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었다. 하나님은 그 모든 정황을 아셨다. 특별히 애굽인들의 죄가 더 중함을 아셨기에 바로의 집에 사래의 연고로 큰 재앙을 내리셨다.(17절) 아무 일 없이 원상 회복시켰다. 재물을 준 것도 앞으로 혹시 기근이 닥치면 곡식을 사는 재원으로 충당하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하나님이 선교비를 지원해준 셈이다.

 

빈 말을 절대 하지 않는 하나님

 

단순히 하나님의 자녀가 그분을 잘 믿으면 복 주신다는 초보적 신앙은 이제 제발 버려야 한다. 아브라함은 최초의 해외선교사이자 당시 지구상에 참 하나님을 아는 유일한 자였다. 본문에 비유하자면 그는 남의 예쁜 아내를 무력으로 빼앗으려는 생각이 없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로선 가는 곳마다 만나는 사람마다 생명의 위협을 받는 처지였다. 그가 죽으면 선교를 담당할 자는 한 명도 남지 않는다. 다시 믿음의 조상을 세워야 한다.

 

이런 모든 현실적 정황을 떠나 그를 보호해준 하나님만의 이유가 따로 있었다. 아담에게 주신 원시 복음의 언약을 달성해야만 했다. 여자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가 와서 사탄의 머리를 부수고 죄의 노예가 된 인간을 구원해주신다는 약속을 구체적으로 승계 확장 실현시켜야 했다.

 

사래의 태를 순결하게 보존해 열국의 어미로 삼아 약속의 씨앗 이삭을 낳게 해야 했다. 이삭에게서 난 유다 지파와 다윗 가문을 통해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야만 했기에 아브라함을 보호해준 것이다.

하나님은 절대로 빈 말을 하지 않으신다. 약속을 일절 변개도 않으시고 철저히 지키신다. 본문 사건에서 아브라함에게 예쁜 구석이라곤 단 하나도 없지 않는가? 하나님은 거짓말보다 더 중한 살인죄를 범한 모세와 바울을 용서하고 신구약의 가장 위대한 종으로 삼았듯이 당신이 세우신 선교사 아브라함을 살리고 복을 준 것이다.

 

그가 앞으로도 여러 번 잘못을 범할 줄도 다 아셨지만 하나님은 당신이 종으로 세웠기에, 정확히 말해선 당신께서 그를 통해 이루실 일이 있었기에, 더 정확히 말하면 당신께서 약속하셨기에 당신의 이름 때문에 그를 보호한 것이다.

 

대신에 너는 내 약속을 믿기만 해라. 소명에 순종하고 충실하면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신다는 사실을 아브라함더러 철저히 실감하라는 뜻이었다. 우리는 아브라함보다 절대 덜 치사하고 덜 비겁하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동일한 약속의 권능과 사랑에 동참하도록 초대 받았다. 아니 이미 들어와 있다.

 

오해는 마셔야 한다. 신자는 무슨 잘못을 해도 하나님이 다 용서해주고 복을 준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 반대다. 성경은 아브라함이 거짓말로 아내를 판 것보다 더 큰 근본적인 죄가 따로 있다고 선언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순서가 뒤바뀌었지만 본문 바로 앞의 5-9절을 보자.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아브람이 그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 갔더라 아브람이 그 땅을 통과하여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하였더라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그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그곳에 단을 쌓고 거기서 벧엘 동편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는 벧엘이요 동은 아이라 그가 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점점 남방으로 옮겨 갔더라.”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지시할 땅으로 가라는 명령에 순종하여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다.(5절) 그런데 “그 땅을 통과해” 세겜 땅에 갔다고 한다.(6절) 이방인 아브람이 자기들 말과 문화에 익숙했기에 사래가 예뻤지만 빼앗을 생각까진 못하고 자기들 땅에 장막 치는 것은 허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때에 여호와 하나님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겠다고 명확히 다시 약속하셨다.(7절) 자손에게 준다는 것은 자손을 낳을 때까지 떠나지 말라는 것이다. 여기가 네 선교지라는 것이다. 그러니 고난이 닥쳐도 절대 실망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래서 아브람한도 단을 쌓고 하나님께 감사와 헌신의 제사를 드렸다. 그러나 세겜에서도 멸시를 받았고 평지가 아닌 벧엘 산에 겨우 거처를 마련했다.

 

그는 다시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 그런데 8절과 9절을 이어서 읽으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다고 한다. 이는 단순히 연결된 동작을 설명하는 것으로 이동 경로를 밝혔을 뿐이다. 결과적으로 그 이면의 뜻은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음에도 불구하고 남방으로 즉, 자손이 거주할 땅을 버리고 갔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곳이 애굽에 가깝다는 것이다. 마침 기근이 닥치자 아브라함은 가장 손쉬운 해결책을 선택해 가까운 애굽으로 넘어간 것이다. 또 그래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치사한 짓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분명히 하나님은 그 땅을 준다고 약속을 했다. 감사의 제사도 드렸다. 여호와의 이름도 계속 불렀다. 그렇다면 어떤 방해가 있더라도 베델로 세겜으로 다시 올라가야 했다. 그럼 하나님이 당장 기근을 멈췄을 수 있다. 최소한 애굽으로 넘어가지만 않했어도 엘리야에게 까마귀가 물과 음식을 날라줘 살려주었듯이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서 먹여 주었을 것이다.

 

애굽은 알다시피 예로부터 곡창지대다. 아브라함이 떠나온 바벨론과 함께 고대문명의 발상지로 화려하고 풍성한 도시문명을 자랑한다. 그는 어쩌면 두고 온 도시 생활이 그리웠을 수 있다. 어쨌든 곳곳으로 쫓겨 다니며 장막생활을 해야 하는 것에 염증은 분명 느꼈다.

 

더 큰 문제는 고난을 자기 생각과 계획대로 스스로 해결하려 한 것이다.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면 기근이 닥쳤을 때 기도라도 해야 하는데 주저 없이 애굽으로 넘어갔다. 막상 애굽에는 기근보다 더 큰 위협 생명이 날라 갈 판이었다. 또 다른 인간적 모략으로 궁지에서 벗어나려 했다. 거짓은 계속 큰 거짓을 낳는다. 악을 선으로 갚지 않고 하나님께 회개해 용서 받지 않으면 더 큰 악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더 큰 그림

 

이쯤에서 뭔가 하나님의 더 큰 그림이 배후에 있는 것 같지 않는가?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가나안 문화와 언어에 익숙하도록 하란에 지체케 했다. 선교사 훈련까지, 말하자면 아내를 빼앗길 걱정은 하지 않도록 해서 가나안 땅으로 파송했다. 그런데 그 선교지를 떠나려 하자 의도적으로 기근을 주신 것이 아닐까?

 

그는 자기 양떼를 버린 것이다. 아주 심각한 죄다. 선교지에 아무 문제가 없는데 떠나도 큰일인데 기근이 왔는데 떠났다. 자기가 섬길 백성이 고난 중에 있는데 혼자만 살 길을 찾아 떠난 것이다. 끝까지 남아서 엘리야처럼 비를 내려 달라고 기도하지 않고 말이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긍정적 결과로 바꿔준 까닭은 그를 계속해서 선교사 훈련을 시끼려는 뜻이다. 선교사가 이방지역에서 환영 받으리라 기대하는 것이 얼마나 큰 착각인지 깨달으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종 아니 백성은 세상에서 훼방 멸시 핍박 받는 것이 정상이며 목숨까지 걸지 않고는 소명을 달성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정말로 그렇게 한다면 하나님은 끝까지 보호해주신다는 것이다. 너를 저주하는 자 내가 그를 저주하고 너를 축복하는 자 내가 그를 축복한다는 약속을 재삼재사 다짐한 것이다.

 

지금 성경이 말하는 바가 무엇인가? 하나님이 이 사건을 통해 후대의 신자가 꼭 알기를 바라는 내용이 무엇인가? 기독교를 단순히 도덕 윤리 차원으로 접근하지 말라는 것이다. 아브라함을 두고 치사하고 비겁하다고 매도할 자격이 있는 자는 우리 중에 단 한 명도 없다. 모든 이가 도덕적으로 잘나고 못나고를 따질 수 없고 모두가 도토리 키 재기일 뿐이다. 하나님 앞에는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다.

 

그럼 모든 인간에게 가장 큰 죄는 무엇인가? 자기가 죄인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 그분께 철저히 회개하고 순전하게 항복하는 자는 누구라도 용서하심에도 그분을 무시하고 거역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신자에겐 그분께 순종하지 않는 것이다. 그 전에 그분의 약속을 믿지 않는 것이다.

 

요컨대 하나님은 다른 모든 죄는 다 용서해도 당신을 믿지 않는 죄는 용서하지 않는다. 종교적 의무감 죄책감을 부추겨 믿으라고 강권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는 그분과 아무런 관계가 없으니 그분이 예비하신, 약속하신 복을 못 받을 뿐이다. 그분의 언약의 권능에 동참하지 못할 뿐이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믿음

 

아브라함 개인적으로는 하나님께 할 말이 많았을 것이다. 그가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온 사건은 가히 혁명적이었다. 전 인류를 따져 그만한 의인은 없었다. 하나님의 약속만 철석같이 믿고 따라나섰는데 자기 앞에 기다리는 것은 전부 고난 멸시 핍박이었다. 그 편안하고 안락했던 여건을 버리고 떠났건만 그 정도는 안 되어도 기본적 삶을 보장해주기는커녕 장막을 칠 땅마저 허락하지 않았다. 겨우 산에 장막을 쳤어도 곡식을 재배할 수도 없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이었다.

 

그럼 그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그야말로 하나님의 약속뿐이다. 참 오묘하지 않는가? 약속 밖에 안 남았다면 택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더더욱 그 약속을 끝까지 붙들고 믿거나 아니면 포기하는 것 둘 중의 하나뿐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택할 길은 무엇인가?

 

이처럼 하나님이 강권적으로 인간적 모의와 계략을 완전히 다 내려놓게 만드는 경우가 있다. 당신만 온전한 주인으로 삼으라는 것이다. 나와 함께 끝까지 가자는 뜻이다. 내 품을 벗어나는 순간 다시 인간적 모략에 의존하게 되고 그럼 철저한 실패와 사망뿐임을 알라는 것이다.

 

예수 믿는 신자의 일생이 여러분이 지금껏 경험했듯이 고난의 연속이다. 죄송하지만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해도 안 되고 말도 안 되는 환경에 밀려들어갈 수 있다. 그야말로 롤러코스터 같은 인생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기억할 것은 천하 만물을 만드시고 인생 만사를 주관하시는 그분이 우리의 영원한 안전벨트라는 것이다.

 

믿음이란 종착지도 모르지만 하나님과 함께 롤러코스터를 타는 모험을 기꺼이 수행하는 것이다. 그럼 아무리 핍박이 있고 기근으로 먹을 곳이 없더라도 그 땅 즉, 복음으로 변화시킬 사람을 주시고 그 앞에 복의 근원으로 우릴 세우신다. 하나님을 아는 자답게 거룩하게 살 때에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 주어서 넘치지도 부족하지 않게 보호해 주신다.

 

이 모험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는 것이 바로 예수 믿는 믿음의 본질이다. 만약에 이 모험이 싫어서 세상으로 한 발자국이라도 디디면 아내까지 팔아먹는 지경에 처하게 되고 인간적 모략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세상은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출세하고 재물을 모으는데 핏발이 서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화려하고 사치스럽지는 않아도 하나님 주신 선교지에서 그분의 약속만 붙들고 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큰 권능과 은혜인지 실감할 수 있겠는가?

 

8/28/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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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이 받은 복의 실상은? (창세기강해 #65 - 창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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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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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믿어 누리는 최고의 현실적 축복 (창세기강해 #64-창12:1-5)

예수 믿어 누리는 최고의 현실적 축복 창세기 강해 (64)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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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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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떠남의 필요충분조건 (창세기강해 #63 - 창12:1-4)

완전한 떠남의 필요충분조건 창세기 강해(6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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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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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에 관한 하나님의 뜻 (창세기강해 #62-창12:1-4)

미국 대선에 관한 하나님의 뜻 창세기 강해 (62)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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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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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역사상 최고 독종 아브라함 (창세기강해#61-창11:10-13, 26-32)

인류 역사상 최고 독종 아브라함 창세기 강해 (61) “셈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셈은 일백세 곧 홍수 후 이년에 아르박삿을 낳았고 아르박삿을 낳은 후에 오백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아르박삿은 삼십 오세에 셀라를 낳았고 셀라를 낳은 후에 사백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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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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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바벨탑에서 언어가 혼잡해졌을까? (창세기강해 #60 - 창11:1-9)

과연 바벨탑에서 언어가 혼잡해졌을까? 창세기 강해 (60) “온 땅의 구음이 하나이요 언어가 하나이었더라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하고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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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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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피부 색깔이 왜 세 가지인가? (창세기강해#59-창10:6-20)

사람의 피부색깔이 왜 세 가지인가? 창세기 강해 (59) “함의 아들은 구스와 미스라임과 붓과 가나안이요 구스의 아들은 스바와 하윌라와 삽다와 라아마와 삽드가요 라아마의 아들은 스바와 드단이며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처음 영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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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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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취한 노아가 왜 완전한 자인가? (창세기강해 #58 - 창9:18-29)

술 취한 노아가 왜 완전한 자인가? 창세기 강해 (58)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아들들은 셈과 함과 야벳이며 함은 가나안의 아비라 노아의 이 세 아들로 좇아 백성이 온 땅에 퍼지니라 노아가 농업을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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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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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언약의 참 뜻 (창세기강해 #57 - 창9:8-17)

무지개 언약의 참 뜻 창세기 강해 (57)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한 아들들에게 일러 가라사대 내가 내 언약을 너희와 너희 후손과 너희와 함께 한 모든 생물 곧 너희와 함께 한 새와 육축과 땅의 모든 생물에게 세우리니 방주에서 나온 모든 것 곧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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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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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채로 먹지 말라는 계명의 진짜 의미(창세기강해 #56 - 창9:1-7) [1]

피 채로 먹지 말라는 계명의 진짜 의미 창세기 강해 (56)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고기가 너희를 두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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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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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심판대의 네 가지 통과절차 (창세기강해#55 - 창8:20-22)

하나님 심판대의 네 가지 통과절차. 창세기 강해 (55) “노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로 단에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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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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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의 삶을 살고 있는가? (창세기강해 #54 - 창6:15,16 & &7:10-12)

방주의 삶을 살고 있는가? 창세기 강해 (54) “그 방주의 제도는 이러하니 장이 삼백 규빗, 광이 오십 규빗, 고가 삼십 규빗이며 거기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중하 삼층으로 할찌니라.”(창6:15,16) “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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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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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눈에서 자비를 보는가? (창세기강해 #53 - 창6:13-17)

하나님의 눈에서 자비를 보는가? 창세기 강해 (53)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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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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