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 도약하는 단계를 거쳤는가?

창세기 강해 (68)

 

 

“아브람이 애굽에서 나올 새 그와 그 아내와 모든 소유며 롯도 함께 하여 남방으로 올라가니 아브람에게 육축과 은금이 풍부하였더라 그가 남방에서부터 발행하여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니 그가 처음으로 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창13:1-4)

 

 

가룟 유다보다 더 비겁한 아브라함

 

아브라함은 애굽에서 엄청나게 치사한 잘못을 저질렀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놀랍고 오묘한 간섭을 하셔서 원상회복 시키고 추가로 보너스까지 주었다. 약속의 땅으로 돌아온 그는 하나님께 감사 제사를 안 드릴 수 없었다.

 

그런데 아무리 당시 정황상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쳐도 애굽에서의 아브라함의 실패는 따지자면 가룟 유다보다 더 비겁한 짓이었다. 생판 남이었던 예수님을 3년간 스승으로 따르다 배반한 것과 수십 년간 살을 맞대고 함께 산 조강지처를 버린 것 중에 당연히 후자가 더 큰 잘못이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그랬다. 유다의 경우 당시 예수님이 메시아인줄 확신도 못한 상태였지 않는가?

 

인류역사상 배반의 아이콘인 유다보다 더 치사하다면 아브라함이야말로 인류 역사상 최고로 비겁한 자로 비난 받아야 마땅하지 않는가?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런 아브라함을 기독교 믿음의 조상으로 세웠다. 그분의 선택에 하자가 있는 것은 아닌가? 계속해서 그를 보호하고 복의 근원으로 삼은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

 

본문처럼 그분께 제사 지내며 철저히 회개했기 때문인가? 그렇지 않다. 회개로 따지면 유다가 더 철저히 행했다. 자기 잘못을 깨닫자 양심의 가책에 못 이겨 자살했다. 자기 목숨으로 자기 잘못을 씻었다. 아브람과 유다를 도덕적으로 따져 우열을 가릴 수 없다.

 

두 사람의 차이는 딱 하나다. 같이 회개했지만 스스로 행했느냐 하나님께 했느냐의 차이다. 유다도 하나님에 대한 죄책감이 분명 있었겠지만 그분만이 주관하는 생명을 스스로 끊음으로써 그분을 무시 거역했다. 자기 잘못을 자기가 씻어서 자신의 의로움을 자기가 세우려 했다. 아브라함은 오늘날의 우리에게마저 치사했다는 평을 계속 받을 정도인데도 사람들 사이의 평판과 관계없이 끝까지 하나님의 긍휼만 바라보며 그분의 품 안에 남아 있었다는 차이다.

 

기도밖에는....

 

성경은 12장에서 본문에 이르도록 아브라함이 세 번의 제사를 지냈다고 기록하고 있다. 단을 쌓는 것은 동물 희생 제사를 드린 것이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은 그분을 찬송 기도 예배했다는 뜻이다.

 

저희는 1991년 유타주 솔트레이크시로 이민 왔다. 이민은 가족 친척 친구가 있는 곳으로 가서 그들의 도움을 받아 정착하는 것이 보통인데 전혀 연고가 없는 곳으로 갔다. 사방에 저희를 도와줄 사람은 한 명도 없었고 오히려 저희가 도와주어야 할 형편이었다. 그러니 매일 저녁 가족끼리 저절로 손잡고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 이삿짐이 도착하지 않아 카톤 박스 위에 흰 종이를 깔고 식사하면서 그랬다.

 

안전이 보장되고 생활여건이 풍족한 20세기 미국이지만 문화 언어 관습이 생소해 하나님의 도움만이 절실했다. 아브라함은 그 위에 항상 생명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었다. 정말로 기도하지 않으면 생명마저 유지하기 힘들었다. 기도는 문자 그대로 그의 생명을 유지하는 호흡이었다.

 

성경을 볼 때 기록되지 않았어도 당시 상황과 인간의 보편적 속성에 비추어 행간의 개연성 있는 의미를 추적해봐야 한다. 그는 우리와 성정이 동일한 연약하고 소심한 자였다. 아내 사래와 거짓말하기로 공모했지만 제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했을 것이다. 막상 그런 사태가 닥치고 부부가 생이별을 한 후에는 더더욱 뜨겁게 기도했지 않겠는가?

 

말하자면 하나님이 그를 보호한 것은 두 사람의 간절한 기도에 응답했다는 측면을 간과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지금 하나님이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려 작정하고 모든 여건을 그렇게 예비한 후에 그를 훈련과 연단의 과정으로 이끌고 있는 중이다. 그럼에도 막상 그의 믿음의 기도가 없었다면 그 영광스런 계획은 진척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뜻이다.

 

바로가 사래와 관계를 맺었는지 여부도 전혀 의심할 필요가 없다. 이미 살펴본 대로 사래는 예수님을 잉태할 선조요 믿는 자의 어머니로 세워졌기에 하나님은 그녀를 반드시 거룩하게 지켜주셔야만 했다.

 

그 위에 당시 이방의 왕들은 후궁을 마치 취미처럼 수집해서 할렘을 만들었다. 솔로몬도 말년에 타락하여 후궁을 천명이나 두었다. 천명이라는 것은 의도적으로 그 숫자를 채웠다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에스더서에 보듯이 예쁜 여자들을 일단 분단장해서 대기시켜 놓고 왕이 언제든 기분 내키는 대로 골라서 관계를 맺었다.

 

죄송하지만 천명을 매일 저녁 상대를 바꿔 관계를 맺는다 해도 근 3년이 걸린다. 평생 왕의 은총을 입지 못하는 후궁도 있었다는 뜻이다. 사래에게 아무 일이 없었던 것은 하나님의 뜻이자 당시 문화적 상황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마찬가지로 그런 불행한 일이 생기기 전에 하나님이 재앙을 바로 집에 내려 사래가 풀려난 것은 두 사람의 간절한 기도가 바탕이 되었음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세 번의 다른 제사

 

아브라함이 드린 세 번의 제사에서 그가 기도하고 감사한 의미와 믿음의 내용은 각각 다르다. 첫제사는 세겜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드렸다.(창12:6,7) 가나안 땅에 입경했지만 괄시를 받아 지나치고 세겜까지 와서야 겨우 장막을 칠 수 있었다. 어리둥절하고 혼돈된 상태에 빠졌는데 곧바로 하나님이 당신의 언약을 다시 견고히 확인해 주었다. 갈대아 우르를 떠나 이곳에 이르도록 어쨌든 큰 어려움 없이 세밀히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절감했다. 앞으로도 그 언약이 반드시 성취될 것을 믿고 감사의 제단을 쌓았다.

 

저희가 예수 믿은 후 처음 얼마간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는 연속이었다. 한 번은 추석에 생전 처음으로 갈비를 짝으로 선물 받았다. 사업이 쫄딱 망해서 아이들 제대로 먹이지도 못할 때였는데 그런 선물을 받을만한 위치와 상황이 도무지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집사람과 저가 동시에 더 어려운 사람에게 갖다 주자고 합의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두 짝을 더 선물 받았다. 그래서 또 한 짝을 다른 이에게 주고 나머지 한 짝으로 저희 식구가 갈비파티를 했다.

 

언젠가 나눈 대로 하나님은 저에게 금빛 십자가를 보여주심으로 당신의 실재하심에 더 이상 의심의 여지가 없게 해주셨다. 당신의 실존하심 위에 당신의 백성을 세밀히 보호하시고 나누는 자에게 더 부어주신다는 진리를 실제로 여러모로 체험케 했다. 저희도 아브라함의 첫 제사와 같은 의미의 감사가 처음에는 넘쳤던 것이다.

 

아브라함은 벧엘과 아이 사이에 장막을 치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두 번째 제사를 드렸다.(창12:8) 첫 제사와는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세겜에서도 멸시 받고 평지가 아닌 벧엘 산지에 겨우 자리 잡을 만큼 가는 곳마다 훼방을 받았다.

 

하나님이 지시할 땅을 주겠다고 했는데 거주는커녕 하루 저녁 장막 치기도 힘들었다. 서서히 하나님에 대한 의심과 불만이 쌓였을 것이다. 최소한 하나님의 뜻이 과연 어디에 있는지 묻고 또 물었을 것이다. 첫 제사가 기쁨과 감사의 제사였다면 이 두 번째 제사는 한숨과 눈물의 제사였다.

 

엄청난 기적의 간증

 

순전히 이해를 돕기 위해 제 간증을 하나 나누겠다. 예수 믿은 처음에는 오묘하고 풍성한 은혜를 자주 체험했다. 그럼에도 제 사업은 회복 불능이라 사무실을 축소 이사하기로 했다. 북창동 조선호텔 앞 번화가의 빌딩 7층에 있었는데 변두리로 옮기려다 엄청난 사고가 났다.

 

창문 밖으로 삐져나온 에어컨 밑의 받침이 볼트로 고정되어 있지 않고 그 무게로 지탱되어 있는지도 모르고 들다가 그 철제 앵글이 아래로 툭 떨어진 것이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식사하러 가는 직장인들이 가뜩이나 번잡한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한 젊은 여직원이 그 앵글을 머리에 맞고 그 자리에 피를 흘리고 쓰러졌다. 행인들이 부랴부랴 택시에 태워 명동성모병원 응급실로 실어갔다.

 

제가 회사대표였기에 모든 책임을 저야 했다. 혹시 죽으면 어쩌나 눈앞이 캄캄했다. 절로 기도가 쏟아져 나왔다. 솔직히 하나님에 대한 의심과 원망이 안 생길 수가 없었다.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끔찍한 일이 왜 하필 나에게 왜 사업에 실패해 돈 한 푼 없는 이때에 일어났는가 말이다. 그 많았던 은혜, 갈비짝으로 부어주신 사랑은 어찌되고 지금 이건 대체 무슨 상황인가? 아브라함의 베델에서의 두 번째 기도와 같았다.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직원들 생각 않고 회사를 파산시켜서 나 몰라라 할 수 있지만 형사적 책임은 어떻게 되는지 미처 몰랐다. 솔직히 마누라 아이들 두고 혼자 외국으로 피신해야 하나 어처구니없는 생각마저 스쳐지나갔다. 아브라함은 마누라만 버렸지만 자식마저 나 혼자 살려고 버리는 너무나 비겁한 저였다.

 

정말 속으로 울부짖는 기도를 하며 병원 응급실로 찾아갔다. 급히 연락을 받고 온 피해자 아버지의 저를 향한 첫마디가 무엇이었는지 아는가? “박군(그 때는 삼십 초반이었음), 자네 장가갔는가?”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데 혹시라도 뇌가 손상되어서 불구자가 되면 저더러 평생을 책임져야 하지 않는가라는 뜻이었다. 결혼해서 아이가 둘이라고 그 자리는 모면했지만 가슴이 더 철렁했다. 도대체 어디까지 얼마나 보상해주어야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다행히 목숨에 지장이 없을 뿐 아니라 뇌의 외피만 손상을 입어 이틀 만에 퇴원했다. 아무 이상이 없었다는 것은 기적 중의 기적이다. 철제 앵글이 7층에서 떨어지면 가속도 중력 무게가 합해져 즉사할 수 있다. 모서리로 맞지 않고 평평한 면으로 머리숱이 많은 젊은 여성에게 비스듬히 맞고 튕겨나가서 그 정도로 그친 것이다.

 

그것으로 다가 아니다. 피해보상금을 합의해야 한다. 딸을 평생 책임지라고 저에게 장가갔는지 물어볼 정도면 어마어마하게 요구할 것 같았다. 민사소송으로 가도 변호사와 소송비용도 없었다. 밤에 잠을 설치며 그저 기도만 했다. 다른 뾰족한 수단이 전혀 없었으니 말이다. 당시는 초신자 시절이라 기도가 무슨 의미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그저 “Help me”만 되풀이 했다.

 

지금도 그 장면이 생생하게 기억나는데 이태원의 해밀턴 호텔 커피숍 앞에서 에스더처럼 죽으면 죽으리라 심호흡을 한 후에 들어갔다. 그런데 완전히 반전이 일어났다. 그 아버님은 너무나 점잖고 합리적인 사람이었다. 우선 병원비는 당연히 물어야 했고, 뇌 검사하느라 삭발을 했으니 가발 하나 값, 사고 당시에 옷에 피가 묻었으니 사무실 출근용 정장 한 벌 값, 사고로 충격을 받았으니 몸보신할 한약 한재 값을 합해 백만 원만, 80년대 중반이라 큰돈이긴 했지만, 달라고 했다.

 

만약에 정신적 피해에다 나중에 후유증이 생겼다고 다시 병원에 드러누우면 감당하지 못한다. 정말로 속으로 할렐루야가 절로 터져 나왔지만 겉으로 표정관리 하느라 힘들었다. 그걸로 충분하겠느냐고 두세 번 다짐 받고 그 자리에서 돈을 찾아서 영수증을 받고 지불했다. 물론 그 뒤로 일절 연락도 없다.

 

이 일은 도무지 확률로 따질 수 없다. 죽지 않고 두뇌외피만 상한 것, 그 떨어지는 속도 방향, 머리숱 많은 여자가 피해자인 것, 점잖은 부모 만나 순조롭게 합의한 것, 그전에 제가 그 사무실을 얻고 마침 에어컨에 받침이 고정 안 된 것 등등 모든 요소를 감안하면 세상에 없는 확률이다. 인간이 드라마를 짜서 일부러 만들려 해도 도무지 불가능한 일이다.

 

하나님이 주관하실 수 있는 완벽한 섭리였다. 지금 목사가 된 후보다 더 순전하고도 간절히 기도만 했다.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뿐이었다. 그리고 그 기도에 너무나 정밀하게 보살피는 권능에 소름이 끼치도록 항복했고 입술에는 그저 감사만 넘쳤다.

 

할렘에서 탈출은 불가능

 

사래가 바로의 할렘에서 무사히 구출되어 가나안 땅으로 되돌아간 것도 세상에 없는 확률로 일어난 기적 중의 기적이다. 에스더서에 보듯이 왕비라도 왕에게 알현 허락을 사전에 받지 않고 나가면 폐위 되거나 왕이 기분 나쁘면 그 자리에서 처형될 수 있는 시절이었다.

 

세계 최강국 애굽 왕의 할렘에 뽑혀 들어가면 죽기 전에는 못 나온다. 물론 하나님이 바로의 집에 큰 재앙을 내리셨기 때문이다.(창12:17) 그러나 그것이 다가 아니다. 출애굽 사건 때에 어떠했는가? 모세를 통해 열 번째 재앙으로 바로의 장남까지 죽자 그때서야 겨우 이스라엘을 풀어주었지 않는가? 왕에게 거짓말하면 그 위신 때문에라도 반드시 아브람과 사래 둘 다 죽이는 것이 상례이다. 지금 하나님이 바로의 집에 재앙을 내려도 출애굽 때의 열 가지 재앙보다는 약했을 것이다.

 

바로에게 아브람을 살려줄 마음이 순간적으로 든 것이다. 감히 제 경우에 비교하는 것이 죄송하지만 아주 점잖고 합리적인 바로를 만난 것이다. 그런 마음이 자기도 모르게 생기도록 하나님이 성령으로 간섭한 것이다. 요컨대 하나님의 절대적이고 완벽한 권능이 역사한 것으로 인간 세상에선 있을 수 없는 기적이었다. 그리고 그 기적의 직접적인 도화선은 아브라함의 기도였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성경이 세 번이나 제사를 드렸다고 기록했다면 사실은 그는 가는 곳마다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뜻이다. 최소한 항상 기도는 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하나님을 모르는 불신자도 그런 상황에 닥치면 천지신명을 붙들고 “비나이다!, 비나이다!”하며 지극 정성으로 기도하지 않는가?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가나안 약속의 땅을 받을 것이며 복의 근원으로 세워서 이름이 창대케 된다는 언약을 재삼재사 확인했다. 그 전에 인간 탐욕과 죄악이 관영한 우상숭배의 세상을 버리고 유일하신 창조주 참 하나님을 모든 것을 버리고 따랐다. 그런 그가 기도를 이런 상황에서 쉬었을 리는 만무하다.

 

세 번째 제사의 의미는 전혀 달랐다.

 

아브라함이 드린 세 번째 제사의 의미는 판이하게 달랐다. 그는 애굽에서 너무나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했다. 성경기록상 그가 하나님께 직접 받은 첫 번째의 은혜다. 그 첫째 은혜가 세상에 일어날 수 없는 기적이었다. 하나님 앞에 완전히 납작 엎드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는 애굽 들어가기 전에 비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이다.

 

저 또한 에어컨 사건 전과 후의 믿음이 완전히 달라졌다.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여 초자연적 응답을 받음으로써 그분의 실존에 대한 의심은 완전히 사라졌다. 에어컨 사건이 났을 초기에는 하나님에 대한 의심과 불만만 가득 찼었다. 그러나 생각지도 않게 너무나 원만하게 다 해결되었다.

 

겨우 일주일 남짓의 기간 동안 일어난 일이었는데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완전히 지옥으로 떨어졌다가 다시 살아난 기분이었다. 하나님이 저를 마치 세탁기에 집어넣어서 완전히 믿음의 Brain Washing을 시킨 것이었다. “자 이제 내가 누구인지 제대로 깨달았는가? 내가 너를 얼마나 세밀히 사랑하는지 알겠는가?”

 

이 사건으로 하나님이 당신의 자녀로 택한 자는 반드시 보호해주심을 절감했다. 그때는 목사가 되리라 꿈도 꾸지 않았지만, 뭔가 앞으로 내 인생에 하나님이 계획을 갖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은 들었다. 무엇보다 어떤 위험한 일이 닥쳐도 그분이 보호해줄 뿐 아니라 그 고난에도 당신만의 뜻과 계획이 있다는 깨우침을 얻었다.

 

한마디로 더 이상 아무리 눈에 보이는 상황이 절망이라도 절대 소망을 잃지 않을 근거는 붙잡았다. 그렇다고 저의 현실적 여건이 나아진 것은 아니었다. 결국 한국에서 살 길이 막막해 미국으로 이민 왔고 지금 이런 영광스런 자리에 서게 되었다.

 

아브라함의 첫 번째 제사는 기쁨과 감사의 제사였다. 둘째는 의심과 불만이 내포된 제사였다. 마지막 세 번째는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과 완벽한 섭리와 오묘한 역사에 대한 확신에 가득 찬 제사였다. 그의 변화된 모습을 다음 주에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지만, 내가 어떤 형편에 처하든지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은 반드시 하시고 나에 대한 약속을 끝까지 지키시는 신실한 분이라는 점에 한 치의 의심도 없어진 것이다.

 

역사상 최고로 비겁했던 그를 하나님이 믿음의 조상으로 삼은 하나님의 이유와 아브라함이 갖고 있었던 자격은 단 하나다. 가는 곳마다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기 때문이다. 자신의 연약함, 무능함, 어리석음을 솔직하고도 겸허하게 인정하고 하나님의 긍휼한 도우심 없이는 단 한시도 살 수 없음을 매순간 고백하고 그렇게 살았다.

 

아브람이 우리의 믿음의 조상이면 우리 또한 그처럼 최소 세 번의 제사 체험이 있어야 한다. 첫째는 하나님의 실존에 대해서 또 당신이 사랑하여 택한 자를 끝까지 보호한다는 사실을 기도를 통해 생생히 체험해야 한다. 둘째는 이해도 안 되는 고난이 닥칠 때에 하나님에게 의심과 불만을 품더라도 그 뜻을 묻고 물어야 한다.

 

그래서 세 번째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방식이 우리가 기대하는 것과 전혀 다름을 분명하게 체험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믿음의 눈이 뻥 뚫려야 한다. 신앙이 한 단계 도약 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렇다고 여러분더러 제가 겪은 것 같은 끔찍한 일을 다 체험해야 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주의 종으로 세울 자는 더 큰 환난을 겪게 하신다. 나아가 제가 너무나 교만했기에 그런 극단적 방식이 아니고는 당신께 완전히 항복하지 않음을 하나님은 잘 아셨던 것이다.

 

신자마다 전과 후과 완전히 달라지는 자기만의 신앙체험이 있어야 한다. 그 후에도 물론 계속되는 고난으로 괴롭고 불편할 것이다. 그러나 더 이상 절망에 빠지지 않을 근거와 이유는 소유해야 한다. 그 근거는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절대적 사랑이며 그것을 체험하는 길은 기도가 호흡이 되는 것 말고는 없다. 그것이 바로 유다와 아브라함의 차이였다.

 

9/11/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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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7-17
  • 조회 수 429

과연 바벨탑에서 언어가 혼잡해졌을까? (창세기강해 #60 - 창11:1-9)

과연 바벨탑에서 언어가 혼잡해졌을까? 창세기 강해 (60) “온 땅의 구음이 하나이요 언어가 하나이었더라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하고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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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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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피부 색깔이 왜 세 가지인가? (창세기강해#59-창10:6-20)

사람의 피부색깔이 왜 세 가지인가? 창세기 강해 (59) “함의 아들은 구스와 미스라임과 붓과 가나안이요 구스의 아들은 스바와 하윌라와 삽다와 라아마와 삽드가요 라아마의 아들은 스바와 드단이며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처음 영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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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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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취한 노아가 왜 완전한 자인가? (창세기강해 #58 - 창9:18-29)

술 취한 노아가 왜 완전한 자인가? 창세기 강해 (58)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아들들은 셈과 함과 야벳이며 함은 가나안의 아비라 노아의 이 세 아들로 좇아 백성이 온 땅에 퍼지니라 노아가 농업을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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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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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언약의 참 뜻 (창세기강해 #57 - 창9:8-17)

무지개 언약의 참 뜻 창세기 강해 (57)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한 아들들에게 일러 가라사대 내가 내 언약을 너희와 너희 후손과 너희와 함께 한 모든 생물 곧 너희와 함께 한 새와 육축과 땅의 모든 생물에게 세우리니 방주에서 나온 모든 것 곧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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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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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채로 먹지 말라는 계명의 진짜 의미(창세기강해 #56 - 창9:1-7) [1]

피 채로 먹지 말라는 계명의 진짜 의미 창세기 강해 (56)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고기가 너희를 두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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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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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심판대의 네 가지 통과절차 (창세기강해#55 - 창8:20-22)

하나님 심판대의 네 가지 통과절차. 창세기 강해 (55) “노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로 단에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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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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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의 삶을 살고 있는가? (창세기강해 #54 - 창6:15,16 & &7:10-12)

방주의 삶을 살고 있는가? 창세기 강해 (54) “그 방주의 제도는 이러하니 장이 삼백 규빗, 광이 오십 규빗, 고가 삼십 규빗이며 거기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중하 삼층으로 할찌니라.”(창6:15,16) “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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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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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눈에서 자비를 보는가? (창세기강해 #53 - 창6:13-17)

하나님의 눈에서 자비를 보는가? 창세기 강해 (53)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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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5-22
  • 조회 수 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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