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풀지 못하는 신자의 숙제(2)

창세기 강해 (70)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더라.”(창13:8,9 & 14-18)

 

 

아브람은 선택하지 않았다.

 

인간은 평생을 선택의 문제로 씨름할 수밖에 없다. 지난주에는 롯의 선택에 대해 살펴보았는데 그의 인생의 실패가 땅을 잘못 선택한 탓이 아니었다. 현실요소를 감안한 자기 판단에 하자는 없었다. 심지어 소돔 땅으로 이주한 것도 잘못이 아니었다. 아브람 같은 여호와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 그의 삶과 존재가 하나님의 보호 인도 밖에 있었으니 실패로 결말지어질 수밖에 없는 인생의 대표적 예였다.

 

오늘은 그럼 아브람의 선택이 어떠했기에 그의 이름이 창대케 되었는지 살펴볼 차례다. 마찬가지로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아브람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선택을 해서 복을 받은 것이 아니다. 아예 선택을 하지 않아서 복을 받은 것이다.

 

본문 9절을 다시 보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롯에게 선택권을 일임했다. 롯이 선택하고 남는 땅을 가겠다고 선택권 자체를 양보 내지 포기했다. 그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더니 척박한 땅 가나안을 선택하라는 그분의 계시나 음성을 들은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겉으로는 양보하는 척하고 속으로는 롯이 나쁜 땅을 택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을 리는 만무하다. 롯과 달리 아브람은 가는 곳마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 믿음의 사람이었다. 그 이전에 조카를 사랑하는 삼촌이었다. 만약에 속으로 순간적으로 기도했다 쳐도 롯이 좋은 땅을 가지게 해달라고 했을 것이다. 이처럼 성경을 아무리 살펴봐도 아브람이 가나안 땅을 이 순간에 하나님 뜻이라고 선택했다는 의미는 본문에는 없다.

 

아브람과 롯이 분가하는 이유는 서로 가축의 떼가 많아져서 물과 목초지가 부족해 목자들끼리 다툼이 일어날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삼촌과 조카의 의까지 상할 판이 되었다. 분가하자는 것은 서로가 잘 되자는 뜻이다. 각자 물이 많은 곳으로 찾아 떠나자는 것이다. 아브람도 척박한 땅으로 갈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실제로 아브람은 두 사람이 지금 서로 합의하여 헤어지는 바로 그 장소에 남아 있었다. 그럼 그 장소에 물이 있는가, 없는가? 많이 있다. 단지 두 집이 나눠 쓰기에 부족할 뿐이다. 롯이 떠났기에 아브람 혼자 쓰기엔 충분하다. 어떤 면에선 롯이 삼촌에게 좋은 땅을 양보한 셈이다. 그는 새로 우물도 파야하고 목장을 건설해야 할 처지다. 실제로도 아브람이 롯더러 앞에 땅이 널려 있으니 떠나라고 먼저 말했다.(9절)

 

분가하는 목적 자체가 삼촌과 조카가 물을 두고 서로 얼굴 붉히지 말자는 것이다. 지금 서로 win-win한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양보하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결말지어졌다. 그래서 롯의 선택에 하자가 없었다고 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구태여 선택이라고 말하고자 하면 둘 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선택을 한 것이다.

 

아브람은 두 땅을 대조 비교해서 가나안 땅을 고른 것은 아니다. 실질적으로 그는 아무 한 일이 없었다. 본문은 신자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선택을 할 수 있느냐를 가르치는 내용이 아니다. 오히려 선택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할 때가 더 많다고 말하고 있다.

 

확률의 게임과 머피의 법칙

 

그렇다면 아브람은 어떻게 선택권을 포기하고 전적으로 롯에게 양보할 수 있었는가?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자의적 판단으로 선택했다가 처절한 실패를 체험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혹시 또 롯의 자의적 선택이 잘못되었다고 확대해석할 필요는 없다. 다시 강조하지만 롯의 실패는 여호와를 완전히 믿지 않아 그분의 언약 안에 동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기중심의 가치관과 그에 따른 잘못된 인생의 방향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한 것이다.

 

성경의 표현이 참 흥미롭다. 롯은 성읍들에 머무르다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다.(창13:12) 도시 생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좋게 해석해서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삼촌과도 헤어진 마당에 사람이 그리웠을 수 있다. 어쨌든 그는 처음에 요단들을 선택했던 목적과 계획을 점점 잊어버렸다.

 

아브람도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기근이 오기도 전에 점점 남방으로 옮겨 갔다고 말한다.(창12:8,9) 옮겨 간 곳이 바로 애굽 근처였다. 비록 가나안 사람들의 멸시를 받긴 했지만 그도 하나님이 가나안 땅을 후손에게 주겠다는 처음 약속을 점점 잊어버렸다. 훼방이 없는 곳을 찾다가 자기가 머물러야 할 약속의 땅과는 점점 멀어졌다.

 

마침 기근이 닥치자 손쉬운 인간적 해결책을 찾아서 애굽으로 넘어갔다. 막상 들어섰더니 이젠 예쁜 아내 때문에 자기가 죽을 판이었다. 그래서 누이라고 거짓말하기로 사래와 공모했다. 아직까지는 확률의 게임이었다. 잘하면 그런 비극이 안 일어날 수 있다는 일말의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인생사에는 머피의 법칙이란 것이 작용한다. 안 좋은 일에 또 다른 안 좋은 일, 그것도 제발 그 일만 일어나지 말았으면 하는 바로 그 나쁜 일이 겹친다. 아브람으로선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다시 담을 방안이 전혀 없었다. 거짓말이라고 실토하면 왕을 모독했다고 그 자리에서 처형당한다. 현실적으로 부부가 다시 결합할 확률은 제로였다.

 

당시의 왕들은 신이었다. 애굽의 바로는 신으로 불렸고 그 증거가 미이라와 피라밋이다. 바로가 죽어도 후궁들은 함께 묻힌다. 애굽이 다른 나라에 침공을 받아 망할 지경에 이르러도 왕은 정말로 사랑하는 애첩 몇 명만 데리고 도주하고 나머지 후궁들은 적국에게 수치를 당할까 다 죽여 버린다.

 

다윗이 압살롬의 반역 때에 후궁을 궁에 남겨 두었는데 꼭 인자한 때문만이 아니다. 이방 대적의 침공이 아니라 아들 압살롬의 반역이었다. 설마 아들이 아비의 애첩을 건드리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아브람과 사래의 부부관계는 완전히 끝났다. 아브람으로선 사래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고 죽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마음이 편할 판이었다.

 

엎질러진 물을 담으시는 하나님

 

바로 그 때에 하나님의 오묘한 간섭으로 바로가 먼저 사래를 돌려주었고 아무 일 없이 부부로 다시 맺어졌다. 세상에 전혀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아브람에게 어떤 생각이 들었겠는가?

 

“위대하신 하나님께 능치 못할 일이 없다. 당신의 약속하신 일은 당신의 이름을 걸고 반드시 이루신다. 내가 아무리 나름 최선의 판단으로 최고의 대책을 세워도(애굽 피신과 거짓말 계책은 현실적으론 나름 최선이었음) 그 길을 인도하시는 이는 하나님이다. 그분이 내 계획을 얼마든지 수정하거나 정반대로 비틀거나 아예 취소시킬 수 있다. 그래서 당신의 더 선하고 거룩한 뜻과 영광을 드러내신다.”는 진리를 절감했을 것 아닌가?

 

다른 한편으로는 기근을 주신 것이 나의 믿음을 테스트해보려는 그분의 섭리였음도 깨달았을 것이다. 현실에서 궁핍하고 물이 없을 때에도 당신의 약속을 붙들고 있는지 아닌지를 말이다. 현실적으로 풍족할 때에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할 자는 없다. 믿음은 환난 중에 필요한 법이다.

 

자기를 최초의 해외선교사로 세우신 하나님이 이방족속의 천대와 멸시는 당연한 것이니까 기근은 그에 대한 준비와 훈련을 시킨 것임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가나안 땅에 남아서 그 땅을 후손에게 물려줄 것이라고 단단히 결심했을 것이다.

 

요컨대 아브람은 자기 계획에 따라 현실적으로 어떤 최선의 방안을 택하든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동행여부가 관건임을 철저히 깨달은 것이다. 그가 조카 롯에게 선택권을 양보한 것은 하나님께 선택권을 일임한 것이다. 그는 가나안 땅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그분 하나님을 선택한 것이다.

 

본문 14절이 뭐라고 시작하는가?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즉, 서로 win-win 하고 난 후에 특별히 아브람이 하나님을 선택하자 하나님은 다시 지금 이 땅이 바로 당신께서 약속하신 땅임을 재확인해주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확장해서 보이는 모든 땅을 주신다고 한다.(15절) 트럼프 같은 부동산 재벌을 만들어주겠다는 뜻이 아니다. 종과 횡으로 행하는 땅을 다 주신다고 한다.(17절) 언제 어디를 가서 무슨 일을 하든지 함께 하셔서 애굽에서처럼 보호해주신다는 것이다.

 

우리의 기도는 어떻게 시작하는가? 고난 중에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간절히 구원을 기도하며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하던 저와 함께 하심을 믿는다는 고백부터 하지 않는가? 다른 말로 제가 무슨 선택을 하던 하나님이 함께 하시어 보호해주신다는 믿음의 고백이지 않는가?

 

그런데도 왜 선택을 잘못하면 어떠나 염려부터 하는가? 엄밀히 말해 잘못 선택해서 하나님께 벌을 받을까 걱정한다면 아주 좋은 믿음이다. 선택을 잘못해 실패할까 염려하는 것이다. 무슨 뜻인가? 내 생각과 계획대로 반드시 성취해달라는 것이다. 내가 주인이고 하나님은 나의 종이다.

 

물론 우리에게 악한 의도는 없다. 탐욕으로 구하지도 않는다. 정욕으로 구하면 응답받지 못함을 잘 알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실현되어 당신의 영광을 보기를 소원하는 기도까지는 못하지만 진심으로 선한 마음으로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한다. 어쨌든 판단하기 힘들어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 자체가 자기는 너무 연약하고 어리석다는 고백이다.

 

거기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종이나 횡이나 어느 쪽으로 가든 함께 하겠다고 했다. 그가 어떤 선택을 하든 함께 하신다는 뜻이다. 아브람의 언약에 동참한 우리 또한 종이나 횡이나 어디로 행하든 그분이 함께 하지 않을 리는 없다. 종과 횡 즉, 가로 세로는 완전 정반대의 길이다. 그런데도 함께 하신다고 하지 않는가?

 

우리가 그분께 묻고 또 물어야 할 일은 한두 사건의 성공을 위한 현실적 대체 방안이 아니다. 인간의 출생에서 죽음까지 즉, 처음부터 끝까지 인생을 주도하는 분은 하나님 한 분 뿐이다. 하나님 그분은 어떤 분인지, 이 땅을 어떻게 다스리는지, 그분의 영원하고 절대적 진리를 알아야 한다.

 

선택하는 어려움이 더 좋다.

 

그런데 우리 인생에 내 생각과 계획대로 흘러가는 것보다 반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일이 훨씬 더 많다. 실제로는 하나님께 은혜 받는 좋은 일들이 훨씬 많으나 고난은 기억이 오래 가기 때문에 인생이 괴롭게 여겨지는 법이다.

 

어쨌든 주변상황을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최고의 지혜를 짜서 최선의 계획을 세웠고 이번만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확신까지 있는데도 일이 엉망으로 꼬여 간다. 제발 일어나지 말았으면 하는 바로 그 일이 수시로 일어나고 전혀 상상도 않았던 고난이 닥쳐서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럼 완전히 망연자실해진다. 사방이 막혀서 출구가 없고 손 쓸 여가가 없이 악화된다. 하나님의 뜻을 물을 기분이 전혀 아니다. 대체 왜 이러는지 이유라도 듣고 싶어 울부짖게 된다. 내가 가진 자원과 능력은 휴지조각처럼 완전히 무용지물이 된다.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주 간단하다. 힘을 쓸 수 없으니 힘을 안 쓰면 된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된다. 본문의 아브람처럼 지금껏 내가 가지려 그렇게 용을 썼던 모든 선택권을 하나님께 다시 돌려드리면 된다.

 

바꿔 말해 인생은 선택할 수 있는 문제들과 씨름하느라 괴로운 것이 아니다. 선택할 수 없는 문제들이 계속 닥치기 때문에 고통스럽다. 아무리 자기 혼자 선한 의도를 갖고 선한 계획을 세워서 선하게 수행하고 있어도 죄에 찌든 인간세상은 경쟁 시기 분쟁으로 이해 안 되는 억울한 고난에 떨어질 때도 많다.

 

사전에 선택할 수 있는 대체방안을 두고 기도한다면 아주 좋은 상황이다. 아직은 확률의 게임이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 어느 쪽에 그 가능성이 많으냐 적으냐만 따지면 된다. 대신에 앞에는 홍해 바닷물이요, 뒤로는 바로의 군대가 쫓아오듯이 진퇴양난의 경우가 많다. 종으로 가든 횡으로 가든 어느 쪽으로 가든 절망과 죽음이다.

 

바로 그 때에 믿음이 동원되어야 한다. 어떤 믿음인가? 엎질러진 물도 다시 담을 수 있는 하나님, 홍해 바다를 갈라서 마른 땅으로 건너게 하고 바로의 군대는 수장시키는 하나님 그분에 대한 믿음이다. 바로 그것이 신자가 가진 특권이자 세상 사람보다 유일한 강점이자 최고의 강점이다.

 

인생 여정은 선택에 오픈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이 계속 닥치는 일들을 믿음으로 맞부딪혀 싸워나가는 과정이다. 결국 신자가 선택할 것은 현실의 방안이 아니다. 하나님 바로 그분이다. 그분이 성경에 계시한 약속이다. 아브람처럼 우리를 저주하는 자는 하나님이 저주해주고 우리를 축복해주는 자를 그분이 축복해주는 바로 그 언약 안에 끝까지 남아서 벗어나지 않는 바로 그것을 선택해야 한다.

 

선택이 차단되는 사회

 

신자가 선택의 문제에서 정작 주목해야 할 사항이 하나 더 있다. 사회적 체계나 영적인 흐름에서 예수 믿는 신자에겐 선택의 방안이 줄다 못해 아예 선택 자체가 금지되는 일들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간단하게는 예수 믿고 나면 세상 친구들은 자연히 떨어져 나간다. 삶의 방식도 거룩하게 제약받는다. 여기까진 우리가 예수님이 가신 좁고 협착한 길을 따르는 자가 적어도 정말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에 기꺼이 선택한 결과다. 신자가 선택하여 걸어가는 길 자체가 비정상이다 못해 불법으로 몰리는 날이 올 것이다. 서서히, 아니 지금 확연히 그렇게 진행되고 있다.

 

가장 이해하기 쉬운 예를 들어보자. 바로 이번 미국 대선이다. 신자의 양심으로는 도저히 선택이 불가능하다. 거짓말의 천재와 불법의 귀재가 맞붙었다. 남편이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 하나를, 제가 그의 입장이었다 해도 거짓말을 했을 것임, 거짓말했다고 탄핵을 당한 뻔 한 것이 겨우 20년 전이다. 이제 그 거짓말 피해의 당사자인 아내는 국가적인 문제를 두고 밥 먹듯이 거짓말한다.

 

또 다른 후보는 자기 회사에 불법과 탈세로 소송에 계류 중인 사건만 수천 건이 넘는 돈 밖에 모르는 자다. 제 3, 4 당 후보를 찍으려니 성경적 가치관과 정반대로 가는 자들이다. 크리스천의 양심으로는 선택할 자가 아예 없다. 차악이 아니라 최악뿐이다. 기권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 외의 미국에서 제기되는 중요 사회적 이슈들에서 크리스천의 발언권이 약화되는 정도를 넘어 아예 선택의 자유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기독교인들에게는 전도의 자유가 없다. 자기들을 따르지 않으면 불법이다. 교회 강단에서 목사가 동성애가 죄라고 설교하면 감옥에 갈 판이다. 동성애자를 사랑하라고 해도 그렇다.

 

극도의 황금만능주의, 개인중심 이기주의, 절대적 진리가 없다는 다원주의 등등 성경의 진리와는 정반대로 흘러가니 도무지 동참할 수가 없다. 하나님을 부인하는 세상이 결국 도착할 종착지는 그분의 심판이다. 하나님 밖에 있던 소돔과 같은 멸망이다.

 

왕따 당함이 참 행복이다.

 

불행하게도 세상은 예수 믿는 신자를 그대로 두지 않을 것이다. 절대적인 선택의 자리에 서게 할 것이다. 도덕적으로 조금 의로운 시늉을 하면서 하나님의 언약 밖에 있었던 롯의 자리에 설 것이냐, 아브람처럼 모든 것을 그분께 의탁하고 끝까지 그분의 언약 안에 있을 것인가를 말이다.

 

이제 곧 단지 예수 믿는 신자라는 이유만으로 왕따 당할 날이 온다. 목사로서 심판을 강조하는 말이 아니다. 여러분이 이미 피부로 실감하고 있지 않는가? 동성애가 죄이고 한 번의 거짓말로 탄핵당할 뻔 한 것이 겨우 20년 전이었다. 생각보다 훨씬 가까운 미래에 그렇게 될 수 있다.

 

그렇다고 절대 실망할 필요는 없다. 여러분 정말로 진지하게 자문해보라. 예수 믿는다는 이유로 세상에서 왕따 당함이 행복인가 불행인가를 말이다. 그 답을 고민할 필요도 주저할 이유도 없다. 행복이다. 너무나 큰 은혜요 기쁨이요 축복이지 않는가?

 

세상 사람은 갖지도 알지도 못하는 권능이다. 세상에선 엎질러진 물을 다시 담을 방안은 결코 없지만 우리는 얼마든지 그렇게 해주실 수 있는 하나님을 알고 있고 그분이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함께 하지 않는가? 특별히 그분의 언약 안에서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든 합력해서 선으로 바꿔주지 않는가?

 

무엇보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만이 인간에게 참 생명, 참 만족, 참 안전을 보장해주지 않는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예수 십자가 안에 들어오지 않는 자에게 기다리는 것은 실패와 절망과 갈증과 허망함뿐이다.

 

아브람은 죽음과 방불한 절망에 빠졌지만 하나님의 회복 나아가 더 큰 은혜를 맛보았다. 정말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을 때에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잠잠히 지켜볼 수 있는 자로 변했다. 그처럼 정말로 꼼짝 못할 정도의 위기는 인생에서 사실은 몇 번 안 된다. 그럴 때는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보셔야 한다. 그럼 하나님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엎질러진 물을 다시 담아주는 기적도 함께 볼 수 있게 된다.

 

9/25/2016


master

2016.09.27 07:12:19
*.50.22.237

이번 주부터 설교하는 모습을 직접 찍은 동영상으로 올리려 계획했으나 몇 가지 기술적인 문제가 해결 안 되어 오디오 올리는 것마저 이틀 늦어졌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샬롬!

master

2016.09.29 08:42:36
*.50.2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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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교회의 영상담당자께서 기술적인 문제를 이제 해결했습니다. 그동안 슬라이드 몇 장의 유튜브 가짜 동영상을 리얼(?) 동영상으로 처음으로 대체해봤습니다. 앞으로도 동영상을 올리는 데는 조금 시간이 걸릴지 모르겠습니다만... 이왕이면 리얼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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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역사상 최고 독종 아브라함 (창세기강해#61-창11:10-13, 26-32)

인류 역사상 최고 독종 아브라함 창세기 강해 (61) “셈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셈은 일백세 곧 홍수 후 이년에 아르박삿을 낳았고 아르박삿을 낳은 후에 오백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아르박삿은 삼십 오세에 셀라를 낳았고 셀라를 낳은 후에 사백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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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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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바벨탑에서 언어가 혼잡해졌을까? (창세기강해 #60 - 창11:1-9)

과연 바벨탑에서 언어가 혼잡해졌을까? 창세기 강해 (60) “온 땅의 구음이 하나이요 언어가 하나이었더라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하고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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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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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피부 색깔이 왜 세 가지인가? (창세기강해#59-창10:6-20)

사람의 피부색깔이 왜 세 가지인가? 창세기 강해 (59) “함의 아들은 구스와 미스라임과 붓과 가나안이요 구스의 아들은 스바와 하윌라와 삽다와 라아마와 삽드가요 라아마의 아들은 스바와 드단이며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처음 영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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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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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취한 노아가 왜 완전한 자인가? (창세기강해 #58 - 창9:18-29)

술 취한 노아가 왜 완전한 자인가? 창세기 강해 (58)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아들들은 셈과 함과 야벳이며 함은 가나안의 아비라 노아의 이 세 아들로 좇아 백성이 온 땅에 퍼지니라 노아가 농업을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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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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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언약의 참 뜻 (창세기강해 #57 - 창9:8-17)

무지개 언약의 참 뜻 창세기 강해 (57)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한 아들들에게 일러 가라사대 내가 내 언약을 너희와 너희 후손과 너희와 함께 한 모든 생물 곧 너희와 함께 한 새와 육축과 땅의 모든 생물에게 세우리니 방주에서 나온 모든 것 곧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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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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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채로 먹지 말라는 계명의 진짜 의미(창세기강해 #56 - 창9:1-7) [1]

피 채로 먹지 말라는 계명의 진짜 의미 창세기 강해 (56)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고기가 너희를 두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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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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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심판대의 네 가지 통과절차 (창세기강해#55 - 창8:20-22)

하나님 심판대의 네 가지 통과절차. 창세기 강해 (55) “노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로 단에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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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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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의 삶을 살고 있는가? (창세기강해 #54 - 창6:15,16 & &7:10-12)

방주의 삶을 살고 있는가? 창세기 강해 (54) “그 방주의 제도는 이러하니 장이 삼백 규빗, 광이 오십 규빗, 고가 삼십 규빗이며 거기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중하 삼층으로 할찌니라.”(창6:15,16) “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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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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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눈에서 자비를 보는가? (창세기강해 #53 - 창6:13-17)

하나님의 눈에서 자비를 보는가? 창세기 강해 (53)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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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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