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8:30-39) 진짜 믿음과 가짜 믿음

구원 얻는 믿음 (12/완)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당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0-39) 

 

정함이 먼저다. 

 

한 죄인이 어떻게 구원을 얻으며 그 후로 어떤 신분이 되는지를 가르치는 본문으로 “구원 얻는 믿음” 시리즈에 대한 결론으로 삼으려 합니다. 한마디로 구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이 주관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후에도 하나님은 신자를 한순간도 떠나지 않으면서 모든 선한 것을 주시기에 신자를 대적할, 특별히 그분의 사랑에서 끊을 존재는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자가 된 후로는 아무리 현실이 고달파도 실제로 그분의 사랑을 받아 누리며 살고 있어야 합니다. 최소한 고난 중에도 그분의 사랑이 어떻게 자신에게 작용하고 있는지 알아보려고는 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이요, 구원받지 못한 셈입니다. 

 

바울은 먼저 구원을 단계별로 한 단어로 축약해 설명하는데(30절), 그 첫 단계는 하나님이 누구를 구원해줄지 미리 정하셨다고 합니다. 바꿔 말하면 구원은 인간이 소원하거나 노력한다고 해서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인간 쪽의 성품, 자질, 조건 등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구원에 단 한 치도 영향을 끼치지 못합니다. 모든 인간은 인정하기 싫어도 영적으로는 시체라 구원 문제에 관해선 완전히 무지하고 무력합니다. 성경은 이 진리를 확실하게 증명해주는 사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잘 아시는 베드로가 스승을 세 번 부인한 사건입니다. 자기 목숨까지 바쳐서 주님을 지키겠다고 큰소리친 지가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막상 자기 목숨이 걸리니까 한순간도 망설이지 않고 저 사람과 나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손사래를 세 번이나 쳤습니다. 그는 삼 년간 주님과 동고동락하면서 천국 복음을 직접 배웠고 사역과 기적의 현장에 항상 동참했습니다. 스승이 어떤 분인지 가장 정확히 알며 그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수제자가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자신을 봐도 너무나 창피하고 비참해져서 밖으로 뛰쳐나가 통곡했습니다. 

 

그가 나쁜 사람이라고 정죄하려는 뜻은 전혀 없습니다. 전쟁 같은 비상 상황이 아닌 다음에는 다른 이를 위해서 자기 목숨을 바칠 인간은, 자식을 살리려는 엄마 말고는 없습니다. 베드로가 스승을 부인한 것보다 아무리 통곡해본들 마땅한 후속 조치가 없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였습니다. 로마제국에 저항하는 문제가 아니라 그의 영혼의 상태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로선 죽을 때까지 그날 밤의 그 처참했던 실패가 두고두고 괴롭히며 생의 의욕마저 앗아갈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선 아무런 일이 없었던 양 일상생활을 해나갈 것이나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지 자기는 잘 압니다. 그날 이전과 이후의 그는 전혀 다른 인간이 될 것입니다. 어떤 일을 해도 완전한 만족과 기쁨은 생기지 않고 항상 우울해질 것입니다. 다른 제자들은 다 도망갔지만 자기는 그래도 대제사장의 관정에까지는 따라갔다는 사실도 전혀 위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남들 앞에 창피한 꼴은 안 보였으나, 자기는 비천한 여종에게마저 천하의 치사한 놈이라고 두고두고 놀림 받을 판입니다. 

 

그가 예수님에게서 천국 복음을 열심히 배웠으나 종교적 지식에만 머물고 삶에 실현하지 못했습니다. 그로선 이스라엘과 자기 인생이 새롭게 바뀔 것을 소원하고 추구했으나 자기도 몰랐던 자신의 최대 관심사는 이 땅에서의 자기 형통과 안위였던 것입니다. 주님을 따라서 대제사장 관저까지 따라간 이유도 스승이 염려되긴 했지만, 혹시 스승이 초자연적인 권능을 발휘해서 로마의 압제와 부패한 유대 당국을 넘어뜨리는 기적을 보여주리라는 일말의 기대를 품은 것입니다. 그의 기대는 분명히 선하고 의롭긴 하지만 그것 또한 궁극적으로 눈에 보이는 현실에서의 안락과 풍요에 관한 문제일 뿐입니다. 

 

제자 열두 명 중 한 명은 스승을 팔았고 열 명은 전부 걸음아 날 살려라 도망가버렸습니다. 그나마 스승이 염려되어 대제사장의 관저까지 따라 간 자는 그가 유일했습니다. 확률적으로 따지면 인간 사회에서 도덕적 종교적으로 최고로 의로운 사람이라도 베드로 수준밖에 안 된다는 뜻입니다. 단순히 윤리로만 그것도 한가지 사안만으로도 그러한데, 자기 영적 실체를 하나님 앞에 있는 그대로 당당히 보일 수 있는 자가 한 명이라도 있겠습니까? 

 

오래전에 한국의 한 TV 방송국에서 정지선 멈춤이라는 아주 간단한 교통 법규를 지키는지 몰래 지켜봤더니 밤새 한 명도 없다가 새벽이 되어서야 한 장애인 부부가 처음으로 정지했던 일이 있었지 않습니까? 어쨌든 의인이 있었다고 반발할 수 있는 계제가 아닙니다. 정상인 중에 아무도 그러지 않았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됩니다. 이성적 존재인 인간은, 그렇게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인데, 자신의 진짜 모습을 자기는 알 수 있습니다. 자주 드는 비유이지만 우리의 행동을 평생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찍은 영상을 하나님과 함께 단 몇 분이라도 볼 수 있는 뻔뻔한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거기다 말로 내뱉은 것과 속으로 궁리한 것까지 보여주는 영상이라면 모두가 당장 하나님을 죽여 없애고 싶을 것입니다. 

 

이런 판국임에도 다들 예수님 당대의 유대인들처럼 하나님의 의에 합격할 자신이 있다고 큰소리칩니다. 그 진짜 속내는 아주 치사하고 비겁하며 완악합니다. 자기는 평균 이상으로 착하니까 천국에 가야하고 또 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참으로 어리석기 짝이 없습니다. 최소 51%의 다른 이들을 자기보다 더 악하다고 판단한 것 하나부터 하나님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합니다. 

 

다음에 부르신다. 

 

베드로는 도무지 앞이 안 보이는 영적 절망에 빠져서, 아니 당장 로마나 유대 당국에 나사렛 예수 운동의 회원으로 체포되어서 곤욕을 치르지 않을까 두려워서 동료 제자들과 함께 꼭꼭 숨어 있었습니다. 스승이 죽은 지 사흘 만에 무덤에서 부활할 것이라고 예언했으나 도무지 믿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말도 안 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무덤에 다녀온 막달라 마리아가 주님이 부활했다고 전해주었기에 단숨에 뛰어가 확인해봤으나 아쉽게도 무덤은 비어있었습니다. 

 

또다시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었는데 부활하신 스승이 홀연히 자기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주님은 허리의 창 자국과 손의 못 자국도 보여주었고 무엇보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신적인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이 미리부터 부활을 예언했고 그대로 정확히 실현되었습니다. 스승에 관해 가장 먼저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는데 그동안 머리로만 믿었으나 이제 온몸으로 체험한 절대적 진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에게 당신을 사랑하는지 세 번 물어봐 줌으로써 당신을 세 번 부인한 잘못을 당신께서 먼저 용서해주었습니다. 생전 처음으로 자신의 영혼이 죄로만 가득 찬 암흑이었음을 깨달았던 절망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자기 인생에 드디어 소망의 빛이 비췬 것입니다. 주님이 전혀 질책하지 않고 자기를 받아들여 주자 평생토록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참된 평안, 자유, 기쁨이 흘러넘쳤을 것입니다. 스승을 향한 사랑하는 마음이 이전과는 차원이 온전히 달라졌고 이제는 정말로 어떤 일이 있어도 주님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정확히 깨달은 정도를 넘어 그 사랑이 자기 영혼에 온전히 채워진 것입니다. 

 

주님은 베드로의 잘못을 용서해준 것으로 그치지 않고 내 양을 먹이고 치라고 명했습니다. 이는 도무지 감당하지 못할 최고의 은혜이자 권세였습니다. 잘못을 범하기 전의 수제자의 위치로 회복해준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당신을 대신해서 당신이 생전에 행했던 사역을 맡아서 행하라는 뜻입니다. 베드로가 주님의 양이었는데 이제 주님처럼 다른 양을 참 생명의 양식으로 먹여야 합니다. 베드로로선 속수무책으로 영적 죽음에 빠져 있었는데 예수님의 역할을 대신 맡아야 하는 너무나 고귀한 신분으로 바뀌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온전한 속죄 제물로 바쳐지자 성전의 성소와 지성소를 막는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습니다. 율법이 은혜로 대체되어서 대제사장의 중보 없이도 예수님과 일대일 개인적인 교제가 가능해졌다는 뜻입니다. 말하자면 대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는 지성소에 예수님을 믿는 신자라면 누구나 언제나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신약 신자는 구약 대제사장의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는 의미였는데, 제자들을 대표해 베드로가 처음으로 예수님에 의해서 그 역할을 위임받은 것입니다. 

 

주님께서 승천하셔서 성자 하나님의 영광된 위치로 돌아갈 것이지만 당신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인 죄인을 구원하는 사역은 절대로 중단되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를 필두로 당신께서 직접 임명한 사도들과 그들이 복음을 가르쳐 지키게 한 후대의 모든 제자는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길을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그대로 따라가야 합니다. 

 

베드로로선 자신이 그런 엄청난 위치에까지 이르게 된 것도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님이 주관하셨다는 사실도 새삼 깨달았을 것입니다. 갈릴리 바닷가에 고기를 잡고 있을 때 주님이 먼저 오셔서 제자로 삼아주셨습니다. 그때 앞으로 사람을 낚는 어부로 세워주겠다고 말씀하셨는데 이제 그대로 이뤄졌으니까 주님이 자기를 그전부터 훤히 꿰뚫고 알고 있었다고 인정했을 것입니다. 

 

닭이 울기 전에 당신을 세 번 부인한다고 예언했을 때는 스승이 지금 너무 예민해져서 말도 안 되는 이야기한다고 듣고 흘려버렸는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정확히 세 번 부인했고 그러자 곧바로 새벽닭이 울었습니다. 그 너무나 부끄러운 사건마저도 주님이 당신의 신적 권능으로 처음부터 주관 섭리하셨음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나아가 그런 잘못을 범하지 않았으면 끝까지 자기가 아주 의로운 줄 착각할 것이므로 인생 전체가 끔찍한 실패로 끝날 뻔했다고 인식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오직 예수님의 주도적 선도적 인도에 따라 십자가 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가장 첫째가는 변화는 자기는 전혀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자신의 끔찍한 영적인 실상을 대면했던 것입니다. 그로부터 주님의 역할을 대신 맡게 되는 데까지도 자기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으며 오직 주님의 은혜였을 뿐입니다. 

 

바로 30절이 말하는 바인데, 사실은 저자인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남으로써 베드로보다 더 극적인 인생 전환을 이룬 개인적 체험으로 확신하게 된 내용입니다. 그 말씀을 바울 대신에 베드로에게 적용한 것은 구원의 여정이 사탄에 미혹되어 죄의 노예가 되어 있는 모든 인간에게 똑같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말하자면 지금껏 베드로가 아닌 바로 우리의 구원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성화와 영화

 

그런데 아무리 베드로나 바울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해도 주님의 역할을 대신 맡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연약한 인간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만찬 때에 제자들을 위해 기도해주면서 당신이 떠나는 것이 그들에게 더 유익하다고 하면서 진리의 영이자 또 다른 보혜사, 즉 당신과 똑같으신 삼위 하나님인 성령을 보내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더 유익한 까닭은 아주 간단한데 주님이 계속 인간의 몸으로 계시면 당신께서 직접 만나는 사람들만 가르침과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반면에 영으로 오신 성령님은 시공간을 넘어서 구원의 역사를 베풀 수 있습니다. 또 구원해주신 신자에게 평생 내주해서 범사에 하나님의 뜻을 계시 교육해주고 실제 삶에서 그렇게 살도록 보호 인도 양육해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약속대로 오순절에 성령이 강력하게 강림해서 마가의 다락방에 기도하고 있던 백 이십 명의 제자들이 성령의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실제로 제자들을 대표해 베드로가 성전에서 예수 십자가 복음을 전하자 성령이 청중들의 심령에도 강력히 역사하여 그날 하루에 삼천 명이 주님을 영접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성령님이 주님의 역할을 대신하여서 본문 30절 대로 하나님이 정하신 자를 불러서 거듭나는 역사를 일으키고 의롭다고 칭해준 것입니다. 성령님의 주도로 베드로의 전도사역을 통해서 주님의 역할을 너끈히 대신 수행한 첫 사례입니다. 

 

베드로가 오순절 성전에서 느꼈을 감격은 도무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것입니다. 십자가 복음에 대해 입에서 전할 말이 술술 나와서 자신도 매우 놀랐을 것입니다. 기계적인 앵무새가 된 것이 아니라 이전에 주님께 배운 내용이 정확히 또 깊이 깨달아져서 담대히 증거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의 설교 한마디 한마디에 청중들이 심령에 찔림을 받고서 눈물 흘리며 회개하는 모습이 단상에서 다 보였을 것입니다. 오늘날 저 같은 목회자가 얼마 안 되는 교인들을 두고 설교해도 그런 감격을 느끼는데 베드로는 얼마나 큰 감격을 느꼈겠습니까? 

 

그는 완전히 성령의 권능에 사로잡혀 있었고 성전 광장은 역사상 최고로 큰 부흥의 현장이 되었습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스승보다 더 큰 일을 행했습니다. 이 또한 꿈에도 상상조차 못 했던 일로서 그는 성령의 강력한 인도대로 따랐을 뿐입니다. 하나님이 그를 예수님의 역할을 대신 감당케 함으로써 당신의 영광에 동참시켜 주신 것입니다. 

 

성령은 그리스도를 대신할 신자에게 삶에서 이웃들에게 참 생명의 향기를 뿜어내라고 그리스도를 닮아 자라게 인도해주십니다. 신자가 죽을 때까지 함께 하셔서 주님이 먼저 가서 마련해 놓은 천국의 더 좋은 장막까지 인도해주십니다. 신자들은 천국의 본향을 향해 걸어가야 하므로 이 땅에선 나그네요 이방인으로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아무래도 현실의 삶은 곤고하고 궁핍해지게 마련이지만 기꺼이 주님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면 오히려 영광스럽게 여겨질 것입니다. 로마의 그 극심한 핍박도 사도가 아닌 일반 신자들의 천국을 향한 여정을 결코 멈추게 할 수 없었지 않습니까? 

 

구원으로 작정한 뜻

 

이제 자신의 구원 여부에 대해 온전히 확신하지 못하거나 수시로 흔들리는 까닭이 밝혀졌습니다. 현재의 삶에서 천국으로 걸어가지 않기 때문인데, 그렇게 된 첫째가는 이유는 자신이 하나님의 택함을 받았다는 사실을 확신하지 못한 것입니다. 구체적으로는 하나님이 구원으로 정하신 이유와 목적을 정확히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이유는 신자 쪽의 조건과 자격을, 목적은 하나님 쪽에서 구원해주시려고 작정하신 의도와 계획을 뜻합니다. 

 

먼저 어떤 신자도 자기가 택함을 받은 이유는 전혀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선택해줄 만큼 좋은 점이 신자 쪽에는 전혀 없습니다. 혹시 조금이라도 자기 쪽에 원인이 있다고 여기면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아직 사탄의 종이라는 증거입니다. 한 가지 확실한 이유는 그분이 사랑했기 때문이라는 것뿐입니다. 그렇다고 다른 이를 사랑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2:4) 

 

대신에 어떤 이들을 택한 데는 하나님만의 목적이 있습니다. 인류의 구속 역사를 주관하심에 당신만의 절대적인 계획과 방식에 따른 것입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지혜를 모르고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영으로만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먼저 택한 자에게 십자가 진리를 가르쳐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나머지 믿는 자들을 구원하기를 기뻐하려는 뜻입니다.(고전1:21) 그러나 그 전해진 복음이 미련해 보이거나 거치는 것이라서 받아들이지 않으면 자신의 부끄러움에 버려둘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래서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신”(고전1:27,28)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요컨대 택하신 목적은 여전히 자격과 실력이 너무 변변치 못해도 성령의 인도를 따라서 다른 이에게 십자가 복음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베드로도 사랑한다는 한 가지 이유로 구원해주었고, 내 양을 먹이고 치라는 것이 그 목적이었듯이 말입니다. 많은 신자가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해서 구원해준 것까지는 그런대로 믿으나 안타깝게도 구원해주신 목적대로 살고 있지 않습니다. 그전에 그런 목적이 있다는 것마저 잘 모릅니다. 

 

뒤집어서 말하면 자기 쪽의 이유와 목적에 따라서 스스로 예수님을 믿으려 했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현실적으로 궁핍하고 곤고하기 때문이며, 목적은 문제가 해결되어 이 땅에서 안락해지는 것입니다. 천국에 마련된 영광스러운 처소는 그리 실감하지 못하고, 정확히 말해 그것이 구원의 궁극적 목적인 줄 모릅니다. 영생은 교회에 출석했더니 예상치 않게 공짜로 얻어걸린 보너스 정도로 여깁니다. 그러니까 현실에 문제가 생기거나 죄를 지을 때마다, 즉 자기가 예수를 믿은 이유와 목적이 흔들리니까 구원에 대해 의심이 생기는 것입니다. 

 

입이 마르도록 강조하지만, 구원의 첫걸음은 성령이 간섭하여 주셔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과 십자가에 죽으신 이유에 비추어서 자신의 비참한 영적 실체를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대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절망적 상태를 오직 하나님의 처분에만 완전히 맡기고 십자가 앞에 자신을 완전히 죽이고 항복하는 것입니다. 당연한 결과로 예수님의 조건 없는 용서와 무한한 사랑을 받아서 생전 처음으로 영적인 평강을 얻는 것입니다. 그럼 또 자기 형통만 추구했던 이전과 정반대로 예수님의 이름이 높아지는 방향과 목적으로만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가려고 결단 헌신하게 됩니다. 

 

그것이 진짜 구원받은 신자의 진짜 믿음이며 이런 인식 결단 헌신이 없으면 아직 구원받지 못한 가짜 믿음입니다. 최대한 잘 봐주어야 하나님이 그를 택하였다면 구원으로 이끌어가는 과정 중에 있는 것이고 그분이 택하지 않았다면 혼자서 종교 놀음을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나 바울만이 아니라, 우리와 성정이 똑같은 초대 교회의 신자들이 주님을 따르다 기꺼이 순교까지 감당했던 그 믿음과 똑같아야 합니다. 

 

더 중요한 믿음

 

주님을 대신할 역할을 맡은 신자로선 구원 이후에는 반드시 주님을 따라가는 모습이어야만 합니다. 한마디로 세상 끝까지 세상 끝 날까지 십자가 복음을 전파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그 실천적인 방안을 전도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어도 본문 31~38절에서 가르쳐 줍니다. 

 

지금껏 많은 신자가 전도는 사역자나 그런 은사를 받은 자가 하면 된다고 여기고 자신은 예배하고 기도하고 말씀 배우는 일에만 충실했습니다. 전도란 한마디로 다른 이로 내가 가진 믿음을 갖게 해주고 그 믿음으로 살게끔 도와주는 일입니다. 그런데 신자들이 교회 생활에 열중하는 모습만 보이고 삶에선 특별한 변화가 없으니까 불신자들로선 종교는 다 같은데 굳이 교회에 출석할 필요성을 실감하지 못합니다. 그들에게 신자가 가진 믿음이, 정확하게는 믿음에 따라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 아주 좋아 보여야만 그 믿음이 궁금해서 알아보려 할 것입니다. 

 

단순히 착하게 사는 모습으로는 크게 부족합니다. 도덕과 종교를 떠나서 육체적 본능에만 따르는 짐승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래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신자들이 온갖 말썽을 피워서 세상 사람들로 오히려 교회에서 멀어지게 하고 있지 않습니까? 거기다 살펴본 대로 윤리적으로 온전히 착하게 살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으니까 딱히 신자들의 잘못도 아닙니다. 나아가 다들 착하게 살 자신이 있다고 믿으니 큰 의미가 없습니다. 

 

그보다는 인생과 가치관 세계관이 그들과 전혀 달라진 모습으로 살고 있어야 합니다. 이 땅만 붙들고 사는 세상 사람들과 정반대로 하늘의 본향을 향해 걸어가야 합니다. 예수님과 그분을 따르는 삶을 아주 기뻐하고 자랑스럽게 드러내어야 합니다. 바울이 확신에 차서 선포한 대로 당신의 아들까지 나를 위해서 내어주신 하나님이 끝까지 내 편이 되어서 실제로 범사에 나를 넘치도록 사랑하고 있는 모습을 이웃이 확인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바울은 믿은 후에 현실적으로 고난 없이 풍요롭고 안락하게 살 수 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그런 진술은 없습니다. 무조건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이 신자를 사랑해준다는 뜻도 아닙니다. 대신에 한가지 절대적 진리만 선포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베풀어지는 일이 중지되거나 후퇴되는 시간과 장소는 단 하나도 없다고 말입니다.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고 의도적으로 신자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정반대의 두 사안을 대조하고 있습니다. 사망과 생명부터 그러한데 신자가 태어나 죽을 때까지 전 생애를 말합니다.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은, 영계의 하나님의 종과 현실 세계의 권력자입니다. 현재 일과 장래 일은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일입니다. 높음과 깊음은 최고 좋은 일과 최고 나쁜 일을 뜻합니다. 능력만 단독으로 사용했는데 성경에는 앞의 ‘권세자들’도 그러하지만, 악한 천사의 별칭이 되므로 사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탄과 대조시킬 수 없기에 능력만 말한 셈인데, 문맥상 사탄도 신자에게 전혀 힘을 쓰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요컨대 하나님의 통치를 훼방하거나 영향을 미치는 존재, 사건, 환경, 사안이 전혀 없으며 사탄도 그 안에 속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에게 미치는 그분의 사랑에는 그분 본인 외에는 어떤 제약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비유이긴 해도 신자는 매번 도살당할 양 같은 신세지만 하나님의 사랑으로 넉넉히 이길 수 있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구원의 확신

 

하나님이 한 개인을 작정해 구원하셨고, 그것도 당신의 독생자와 맞바꿨는데 그 사랑이 취소 변경 가감 수정 포기될 리는 절대 없습니다. 베드로가 세 번 부인한 사건도, 바울이 자신이 예수 믿는 신자를 핍박한 일도 하나님의 사랑을 정확히 또 깊이 알게 해주려는 그분의 주권적 간섭이었습니다. 우리도 때로 도덕적 종교적 죄를 짓고, 현실 고난에 고통스러워하고, 세상으로부터 억울한 손해와 음해를 당하고 너무 지쳐서 기도조차 못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때까지의 신앙 여정을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에 비추어 곰곰이 잘 따져보면 하나님은 여전히 나를 사랑하고 계신다는 사실 하나는 확신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구원의 확신입니다. 

 

제 경우를 말씀드리자면 33살까지 바울처럼 극렬한 안티크리스천이었습니다. 예수 믿을 생각은 꿈에도 없었고 입에 거품을 물고 예수, 교회, 기독교, 신자, 목사들을 비난했습니다. 그런 저가 이런 자리에 이른 것은 하나님이 작정하여서 부르시고 성령님이 십자가 구원의 은혜를 받아들이게 해서 의롭게 칭해주고 주님을 대신할 자로 영화롭게 해주었다고 체험적으로 확신합니다. 믿은 후에도 온갖 실패들을 겪었고, 심지어 목회하면서도 죽을 고비를 넘겼고, 지금도 현실적으로 크게 나아진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 어려움과 실패마저도 주님의 완전한 사랑에 따른 완벽한 계획이었고 나아가 각 사건에 대한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까지도 구체적으로 알게 해주었습니다. 앞으로도 저를 어떻게 인도하실지 몰라도 예수 십자가만이 절대적 진리임을 확신하기에 날이 갈수록 주님을 더 사랑할 수 있습니다. 목사로서 말씀과 기도에 능해서가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그 정반대로 이 나이가 되도록 수시로 무력하게 넘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의 영적인 수준이 아직도 너무 초라한 데에 비해서 하나님의 사랑은 갈수록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크다고 실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거의 모든 서신에서 너희에게 그리스도를 쫓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한다고 인사했습니다. 뜨겁게 기도해 병이 낫고 사업 잘되고 자식도 일류 대학 가고 형통하라고는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평강이 믿음으로 얻을 궁극적인 보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절대 끊어지지 않는다고 확신한다면 평강은 따라온다는 것입니다. 

 

펜데믹 사태로 세상 사람 모두가 어려워지고 불안해합니다. 그러나 조사에 의하면 사람들의 영적 갈증은 더 늘어났다고 합니다. 삶이 너무 흔들리고 앞으로 또 어떤 재앙이 생길지 모르니까 절대적 믿음을 통해 평안을 얻고 싶어진 것입니다. 오히려 지금이 복음을 전해야 할 적기이므로 신자들은 반드시 본문 같은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 자리에까지 이르도록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였고 지금도 그분이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확신합니까? 그래서 천국 보좌를 향해서 한 걸음씩 걸어가고 있고 주위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있다고 인정해주고 있습니까? 그러면 구원받은 진짜 믿음이고, 그렇지 못하면 종교로 치장한 가짜 믿음입니다. 

 

(6/18/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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