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1:3-7) 성화는 하나님이 책임져 주신다. 

거룩하게 살 수 있는 비결 (11)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빌1:3-7)

 

성도의 견인

 

예수님은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 신자가 행할 일의 전부라고 가르쳤습니다. 성화란 그래서 신자 혼자서 도덕적 종교적으로 성숙해지는 작업으로 그쳐선 안 됩니다. 그보다 주님을 닮아가면서 주님이 이 땅에서 살았던 삶을 기꺼이 따라가는 인생 전반의 여정이어야 합니다. 주님은 이 땅에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아가페 사랑만 실현했기에 신자도 평생토록 이웃에게 그런 사랑을 실현하는 씨름을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가장 먼저 예수님에 대해서 더 깊이 알아나가야 합니다. 삶의 모든 차원에서 그분이 생각했던 대로 생각하고, 말했던 대로 말하고, 행동했던 대로 행동해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살다 보면 사악한 세상으로부터 온갖 고난과 멸시와 박해를 받기 마련이지만 주님처럼 끝까지 참아야 하고 때로는 초대 교회 때처럼 순교까지 각오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신자 혼자서 그 어려운 평생의 과업을 행하도록 버려두지 않고 예수님을 믿을 때 성령님이 내주하는 전으로 바꿔주십니다. 본인이 의식하지 못해도 사탄이 자리 잡고 있던 신자의 영혼에 예수님의 심정이 채워진 것입니다. 생전 처음으로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게 되면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모르는 이웃이 너무 불쌍해져서 사랑을 베풀고 싶어집니다.

 

성령은 신자가 품게 된 그런 예수님의 마음을 실행에 옮길 수 있도록 각자에게 합당한 은사를 나눠주십니다.(고전12:4-11) 신자가 구체적으로 인식하지 못해도 삶의 모든 차원에서 그 은사를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인도해서 그리스도를 닮아가게끔 역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 왔기에 성화의 최종 목적도 주님을 머리로 모시는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자기보다 남을 위해서 거룩하게 살아야 하고 또 남도 거룩해지도록 이끌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아무리 신령한 은사를 사용해도 사랑이 없으면 심지어 불에 타죽는 순교를 해도 아무 의미가 없다고 가르친 것입니다.(고전13:3) 

 

성령의 내주하심은 신자의 성품을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한다면, 성령의 은사는 신자의 실제 삶을 그리스도와 닮아가도록 간섭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보낸 서신의 안부 인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성화의 마지막 결말도 성령이 책임지고 열매 맺게 해준다고 선포합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6절) ‘착한 일’은 일차적으로 앞에서 언급한 빌립보 교인들이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는 것”을 뜻합니다.(5절) ‘그리스도 예수의 날’은 주님이 재림하여 이 땅과 인간의 역사를 거룩하게 마무리하는 때입니다. 

 

성도들이 복음 안에서 서로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는 일을 교인들끼리 뜻을 정하고 계획을 세워서 행한 것이 아니라, 시작할 수 있게 해주신 이가 따로 있다고 합니다. 그분이 그리스도 예수의 날, 즉 주님이 재림하여서 신자와 피조 세계의 구원을 완성할 때까지 그 일을 가능하게 해주신다고 합니다. 십자가 구원의 은혜 안에 들어와야만 복음으로 하나님의 일에 참여할 수 있고 그것이 바로 성화이기에, 그 착한 일은 바로 구원을 뜻합니다. 요컨대 구원을 시작하여서 완성시켜 주시는 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삼위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본문 6절은 성령의 간섭으로 진정으로 새사람으로 거듭나서 구원받았다면 그 구원은 취소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또 그러려면 세상과 사탄의 어떤 시험과 유혹에도 완전히 패배하지 않도록 신자의 믿음을 성령 하나님이 끝까지 보존 유지케 해준다는 뜻입니다. 그런 보호와 인도를 신학적으로 성도의 견인(堅忍. Final Perseverance)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바울의 개인적인 의견이 아니라 예수님이 먼저 여러 번 보증하신 절대적 진리입니다. 대표적으로 하나만 들자면,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요10:27-29)라고 너무나 당연한 진리를 선포하셨습니다. 

 

은사가 행하는 성화  

 

성화는 삼위 하나님이 주관하시며 특별히 예수님 대신에 성도와 함께 지상에 남아계신 성령님이 끝까지 보장해주십니다. 이런 견인이야말로 신자가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충분하고 완전한 근거가 되므로, 신자는 감사와 함께 두렵고 떨림으로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이웃에게 아가페 사랑을 실현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나가야 합니다. 

 

빌립보 교회가 회람할 편지이고 일차적으로 성도 간의 동역과 교제를 의미하므로 ‘너희 속에’라고 복수로 표현했지만, 성경 독자는 ‘내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라고 일인칭으로 자기에게 적용해야 합니다. 신자는 성화가 예수 믿은 후에 반드시 행해야 할 평생의 과업이라고 인식해야 할 뿐 아니라 그 일을 절대로 혼자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과 함께 행한다는 확신도 가져야 합니다. 

 

그러니까 다시 강조하지만,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랄 수 있게끔, 은사의 헬라 원어 ‘카리스마’ 즉 선물(gift)이라는 의미대로, 성령이 각 성도에게 가장 합당한 은사(恩賜)를 나눠주시는 것입니다. 신자가 성도와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품고서 기도로 성령의 인도를 구하면서 자기가 받은 은사를 사용하면 성령은 반드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거룩한 참 생명의 열매가 열리도록 해주십니다. 성화란 결국 자기가 받은 성령의 은사를 이웃 사랑을 위해서 얼마나 자주 많이 활용하느냐는 평생의 싸움입니다. 

 

신자마다 각기 다른 은사를 주신 것은 하나님이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의 모든 것을 꿰뚫어 아신다는 뜻입니다. 정확히 말해서 각자를 이미 그렇게 만드셨기에 그에 합당한 은사를 주시는 것입니다. 신자들이 은사라고 하면 예수 믿은 후에야 받게 되는 방언, 방언의 통역, 신령한 치유, 영의 분별, 예언, 능력 같은 초자연적인 파워(power)를 떠올립니다. 그래서 전임 사역자들이나 믿음이 성숙한 신자들만 받는 것이지 아직 여러모로 미숙한 자기와는 관계없다고 여깁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초자연적인 성격 외에도 은사의 종류는 다양합니다. 고린도전서 12장에만 해도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 등이 있습니다. 로마서 12장에선 섬기는 일, 가르치는 일, 위로하는 일, 구제하는 일, 다스리는 일, 긍휼을 베푸는 일, 등을 열거한 후에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고 했습니다. 신자들이 일상적으로 주변의 어려운 성도나 이웃을 위해서 기도해주고 구제하며 도와주고 위로하며 성경 말씀을 가르치는 일 등이 다 은사입니다. 신자라면 누구나 행할 수 있고 또 실제로 행하고 있는 일들입니다. 

 

흔히 하나님께 받은 자기 은사가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말하지만, 그 판별하는 기준은 간단합니다. 스스로 잘할 수 있고 남들보다 더 잘하며 아무리 열심히 오래 해도 지치지 않고 신나게 할 수 있는 자신만의 재능이 바로 하나님이 주신 은사입니다. 하나님은 현재 지구에 살고 있는 70억 명의 사람을 단 한 명도 똑같이 만들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자기만의 장점은 한두 가지 갖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자기에게 이미 심어주신 재능을 성령이 더 잘 활용하도록 인도해줌으로써 그것이 은사가 되는 것입니다. 불신자 시절에는 자기 재능을 자신의 출세와 형통만을 위해서 사용했으나,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알고서는 하나님과 특별히 이웃을 위해서 자기 재능을 사용하고 싶다는 소망이 생전 처음으로 생깁니다. 그 후로 주님을 깊이 알아갈수록 그런 소망이 열정으로 바뀌고 또 실행할 용기와 의지까지 성령이 심어주심으로써 실제로 이웃을 주님의 사랑으로 섬길 수 있게 됩니다. 

 

제가 잘 아는 한 여자 전도사님은 자기가 가진 모든 물건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나눠주십니다. 다른 성도들이 가난한 전도사님께 물질과 금전으로 도와주면 받는 대로 주변의 어려운 사람에 주저 없이 아끼지 않고 주어버립니다. 본인 고백에 따르면 원래부터 불쌍한 자를 향한 긍휼한 마음이 조금 많은 편이었는데 예수님을 알고 나선 자기 형통과 안락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지고 이웃에게 무엇이든지 나눠주고 싶어졌다는 것입니다. 

 

신기하게도 전도사님이 남에게 주고 나면 주변에서 다시 더 많이 갖다준다고 합니다. 그럼 또 받는 족족 주변에 나눠주십니다. 예수님이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눅6:38)고 가르치신 그대로입니다. 전도사님의 아무 차별 없이 베푸는 아가페적인 사랑을 기쁘게 받으신 하나님이 주변에 자꾸 더 나눠주라고 더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만약 이웃의 형편이 어려운데도 자기 것이 아까워서 주저하거나 모자라게 주었다면 선행도 아니고 적선이자 자기 체면치레로 그칩니다. 신자가 자기 몫부터 헤아리는 그 욕심을 하나님이 먼저 헤아리시고 다음부터 전혀 채워주지 않으며 벌까지 주실 수 있습니다. 사울 왕이 아각 족속과 그 모든 소유와 가축을 진멸해 당신께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욕심이 나서 가장 좋은 물건을 따로 챙겼습니다. 제일 좋은 것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려 했다는 핑계를 나중에 대었으나 하나님의 진노를 사지 않았습니까? 사무엘 선지자에게서 하나님은 당신께 제사 지내는 것보다 당신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더 좋아하신다는 꾸중만 들었습니다.(삼상15장)  

 

복의 통로가 되는 은사

 

하나님은 우리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어서 복의 근원으로 세우는 언약을 맺었습니다.(창12:1-3) 복의 근원이란 다른 족속에게 하나님을 알고 따르는 복을 전달하는 통로가 되라는 뜻이었습니다. 신자가 하나님께 복을 받는 입구만 활짝 열어놓고 출구를 막아 놓거나, 혹은 입구보다 출구를 적게 하면 반드시 받은 복이 고여서 썩어버립니다. 이웃에 전해지는 복의 출구를 입구보다 더 크게 해놓거나 최소한 같게 해놓아야만 들어오는 대로 나가므로 하나님은 계속해서 더 많이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산상수훈에서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6:3,4)고 가르쳤습니다. 하나님께 복을 받자마자 곧바로 남에게 나눠주면 자기 손에 쥐어져 있을 새가 없습니다. 본인은 그 복이 언제 들어왔다 언제 나가는지 알지 못합니다. 예를 든 그 여자 전도사님처럼 구제를 일상생활처럼 행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남에게 주었더니 금방 다른 것으로 채워지고 그것을 주었더니 또 다른 것으로 채워집니다. 구제하는 사람은 얼마나 신나고 기쁘겠습니까? 하나님은 더더욱 신이 나서 계속 더 채워줄 것입니다. 신자로선 정말로 하늘에서 주는 참 기쁨을 만끽하고 나아가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은밀하게 구제하라는 것은 남에게 자랑하지 말고 익명으로 비밀리에 하라는 정도가 아닙니다. 겸손한 일반인도 얼마든지 그럴 수 있습니다. 신자 자신과 구제받은 그 사람만 알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요컨대 구제 자체가 목적이 아니고 그 사람과 일대일로 친밀하게 사랑하는 관계를 맺고서 끝까지 이어가라는 뜻입니다. 구제받은 사람으로선 그 신자가 자기보다 형편이 더 낫지 않거나 심지어 더 열악한데도 그런 도움을 기꺼이 주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그 배후에 분명히 하나님의 권능과 은혜가 역사했다고 깨달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신자에게 은밀하게 갚으시는데, 복을 대박처럼 준다는 것이 아니라,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그 신자만이 아는 방식으로 다시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또 그래서 신자와 하나님과의 일대일 개인적인 교제와 사랑의 관계도 더욱 깊어진다는 것입니다.

 

흔히들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창고는 재고가 절대 마르지 않고 영원토록 풍성히 넘친다고 합니다. 신자가 소원하며 기도하는 대로 얼마든지 계속해서 채워줄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만약 그대로 된다면 교회 안에 병자, 가난한 자, 상처받은 자들이 한 명도 없어야 하고 세상은 벌써 기독교 왕국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신자가 이웃을 향한 복의 통로가 될 때만 그렇지 자기 혼자만의 형통과 안식을 위하면 절대로 그렇게 해주지 않습니다. 복의 통로가 되어 있어야 하는데 출구가 막혀 있다면 어폐가 있지만 하나님으로서도 채워줄 수 없습니다. 신자가 하나님의 일을 성실히 수행하고 있을 때, 그 일을 하는데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을 만큼의 모든 필요한 자원과 신자 자신의 일용할 양식은 보장해주시는 것입니다. 아프리카 최초의 선교사 리빙스턴이 사자에게 물려 한쪽 팔이 불구가 되었음에도 자신이 하나님의 일에 충성하는 한에는 자기는 죽지 않는 불사(不死, immortal)의 몸이라고 선언했듯이 말입니다. 

 

하나님이 은밀히 갚으시는 복

 

복의 통로가 되어 있는 신자에게 하나님이 은밀히 갚으시는 내용도 사실은 이웃 사랑을 더 잘할 수 있도록 은사를 더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은사란 성도더러 이 땅에서부터 천국의 모형인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해서 서로 사랑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천국에선 신자의 믿음과 소망은 이미 그 용도가 완수되었고, 하나님의 참사랑만으로 충만한 곳입니다. 천국 성도끼리는 세세토록 서로 사랑만 해도 전혀 지루하거나 아쉽게 여겨지지 않고 날이 갈수록 더 새롭고 더 풍성해집니다. 

 

잘 아시는 성령의 열매인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갈5:22,23)는 전부 예수님의 심정을 표현한 셈입니다. 신자더러 그런 마음을 품고서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어떤 종류의 은사를 어떤 때 누구에게 활용해야 하는지 신자 본인보다 하나님이 더 잘 알고 계십니다. 신자가 은사를 성령의 인도대로 이웃을 살리기 위해서 사용하면 계속해서 더 활용할 수 있도록 은사를 더 넘치도록 채워주시고, 또 그럼으로써 지치지 않고 주님을 따라가도록 해주십니다. 

 

예컨대, 전도의 은사를 가진 신자는 자꾸만 불신자를 만나게 해주고, 복음을 담대하게 전할 수 있는 여건이나 계기를 마련해주십니다. 그 불신자가 처한 현재의 형편에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영적인 감동과 찔림을 받을 수 있도록 복음을 전하게 해줍니다. 성령이 그 입술에 구체적으로 전할 말까지 심어주시기에 전도자로선 내가 어떻게 이렇게 복음을 알기 쉽게 잘 전하였는지 깜짝 놀랄 정도입니다. 

 

감히 저의 예를 들자면 저는 어려서부터 책 읽고 글 쓰는 일을 너무 좋아했고 그것을 행하는 동안에는 너무 기뻤으며 시간 가는 줄도 몰랐습니다. 그리고 책에 진술된 내용을 저자가 강조하려는 주제와 저작 의도에 맞추어서 논리적 합리적으로 접근하며 제 사고의 폭을 넓혀가기를 아주 즐겼습니다. 

 

그래서 나름 지성적이라고 뽐내며 내가 쌓은 지식을 출세하고 돈 버는 일에 활용하여 크게 형통할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절대 그리 만만하지 않았고 하는 일마다 번번이 실패만 거듭했습니다. 하나님은 저에게 모든 것을 주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고난과 수치와 당당히 맞설 수 있는 남들보다 뛰어난 끈기 담력 용기 등은 함께 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결과 온갖 술수와 모략이 판치는 악한 세태를 이겨서 앞장서기는커녕 제대로 맞서지도 못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저를 위해 계획해 놓은 인생은 전혀 다른 쪽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대면하여서 신자가 된 후로 생전 처음 제가 하나님께 받은 은사와 재능을 그분의 목적에 따라 성도와 이웃을 위해 사용하고 싶어져서 그렇게 하려고 결단하고 노력했습니다. 그 결과 지금 너무나도 부족한 제가 너무나 영광스러운 주의 종이 되어서 제가 받은 은사대로 문서를 통해서 복음을 변증하는 사역에 헌신하게 된 것입니다. 

 

당연히 그 모든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는 따로 계셨는데, 그 성령님이 계속해서 의심이 많은 신자와 기독교를 오해하는 불신자들을 붙여주었습니다. 무엇보다 우연하지 않게 펜데믹 사태 이후로 인터넷 사역이 더욱 활성화되고 있습니다. 지금은 복음을 전하는 일로 세상에서 당할 고난과 수치를 너끈히 감당해낼 끈기 담력 용기도 어느 정도 생겼고 성령님이 끝까지 책임져 주실 줄 확신합니다. 갈수록 성경을 더 깊이 폭넓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는데 하나님이 은밀히 저의 은사로 갚아 주신 것입니다.

 

인간이 스스로 훈련 개발한 장점과 기능이라면 한계가 있고 또 자기도 모르게 지치고 싫증 날 때도 있습니다. 반면에 은사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고 또 그분의 일을 하면 그분이 함께하시기에 그 일을 더 하고 싶은 열정과 힘이 생깁니다. 은사를 사용하면 할수록 더 확장되고 사용할 기회도 당연히 더 많이 생깁니다. 

 

각기 다른 신자 인생

 

그러나 아무리 믿음이 좋은 신자라도 영적인 천재나 슈퍼맨은 없으며 조금씩, 조금씩 그리스도를 닮아서 자라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특별히 지혜와 지식의 말씀과 믿음의 은사를 받았다면 디모데처럼 젊은 나이에도 예수님을 더 빨리 많이 닮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신자는, 특별히 한국 신자들은 베드로처럼 성급하며 어리석어서 매일 성경을 읽고서 간절히 기도하며 주님과 꾸준히 교제하지 않으면, 우리 모두 경험하듯이 신앙 연륜이 오래되었어도 잘 자라지도 않고 때로는 퇴보합니다. 

 

거기다 매일 단조롭게 일상이 반복되는 것 같아도 인생이 절대로 간단 단순하지 않고 쉽지도 않습니다. 각 사람이 각기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각기 다른 고난을 각기 다른 세기로 겪게 마련입니다. 어느 한 사람도 같은 시공간에서 같은 고난을 같은 세기로 겪지 않습니다. 세상은 죄로 찌든 인간들이 서로 앞서려고 심하게 말해서 아귀다툼하고 있고, 사탄도 갈수록 흑암의 권세를 더 교묘하고 끈질기며 음흉하게 휘두르고 있습니다. 한 사람도 동일한 인생을 살아갈 수 없으며 모두가 다 나름의 사정과 형편이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하나님 쪽에서 보면 모든 신자의 인생마다 특유의 거룩한 계획을 갖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신자가 느끼기엔 자기 인생 여정이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아도 하나님이 마련해 놓은 영광스러운 계획을 달성하기 위한 필연의 코스를 지나는 것입니다. 신자는 언제 어디서나 성령의 인도를 구하여 하나님이 마련해 놓은 아름답고 복된 인생을 살아내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 계획이 완벽하게 이뤄지게끔 신자 인생의 단계별로 당신의 은혜와 권능을 절대로 부족하지 않게 부어주십니다. 신자가 어떤 시간과 장소에서 어떤 처지, 신분, 직업을 갖고서 어떤 사건에서 누구와 함께 무슨 일을 하든 그 일에 필요하고 충분한 은혜입니다. 한마디로 신자의 인생을 당신만의 주권과 섭리에 따라서 시계의 톱니가 서로 물려서 쉴 새 없이 돌아가듯이 단 한치의 차질 없이 운영 주관해주십니다. 

 

어리석은 신자로선 일일이 그때마다 그 은혜를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심지어 제대로 인식도 하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힘든 일을 겪을 때마다 그분을 의심, 원망, 분노하면서 떼를 쓰게 됩니다. 나중에 다 끝나고 나서 보면 하나님만의 신묘한 방식으로 모든 것을 주관 합력하여 선으로 이끌었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확인합니다. 그래서 지난날의 자신에게 믿음이 없었거나 너무 적었음을 진심으로 회개하고 다시 그분 앞에 완전히 항복합니다. 그런데 그다음에 또 다른 고난이 닥치면 이전에 받았던 은혜는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다시 하나님께 떼를 쓰는 그런 연약한 존재입니다. 

 

성화의 비결

 

바꿔 말해 신자 인생의 20대, 30대, 40대, 50대, 60대 등등 시기별로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각기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분 사랑의 길이 넓이 높이 깊이가 조금씩 더 늘어납니다. 신자가 매사를 하나님 중심으로 분별 판단 순응하면서 말씀과 기도로 꾸준히 그분과 영적으로 씨름하면 새롭고 다른 차원에서 더 풍성해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계속해서 하나님이 나를 그리스도를 닮아가도록 신실하게 이끌고 계신다는 사실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바뀔 그리스도의 날에 부활의 영광으로 완성시켜 주실 것이며 그때까지 그분이 내 인생은 물론 믿음도 끝까지 책임져 주시리라 의심하지 않게 됩니다. 

 

믿음을 현재 일어난 사건과 처한 여건에서 내가 도덕적으로 의롭고 종교적으로 경건한 업적을 고취하는 노력이라고 단순하게 간주해선 안 됩니다. 광대하신 하나님을 자기 속에 최대한 광대하게 수용하여서 최대한 광대하게 자기 삶과 인생에 반영하는 것이 참믿음입니다. 자기 인생을 종합적 전체적으로 바라볼 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의 전부를 죽어서 가는 천국과 마지막 날의 새 하늘과 새 땅에까지 연결해서 이해 반응 적용 실천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현실적 고난이든 행복이든 일시적이고 그런 영원한 복락에 비하면 정말로 먼지에 불과하므로 그것으로 자기 믿음이 일희일비하지 않아야 합니다. 매일매일 조금씩 거룩하신 삼위 하나님과의 거리를 좁혀 나가다 보면 어느새 천국 문 앞에 이르게 됩니다. 또 그런 성화의 과정이 현실적으로 고달프긴 했지만, 이 땅에서부터 천국을 미리 연습하고 누려본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께 감사와 경배와 찬양과 영광을 돌릴 수 있게 됩니다. 

 

빌립보 교인에게 착한 일을 시작한 이가 마지막까지 완성해주신다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천국에서 우리를 맞으려고 큰 영광중에 준비하고 계시고, 이 땅에선 성령님이 우리를 그 만남에 적합하도록 바꿔주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신자가 예수님과 얼굴과 얼굴로 맞대면하게 되는 그때에 주님과 얼마나 친밀한 사랑으로 교제할 수 있는지는 이 땅에서 얼마나 많이 천국의 모형을 쌓아보았는지에 달렸다는 것입니다. 

 

혹시라도 지금껏 성화에 실패만 했고 현재도 해결되지 않는 여러 삶의 고통 가운데 있기에, 하나님이 우리의 믿음조차 견인해 주신다는 말씀이 선뜻 믿어지지 않습니까? 신자는 이미 도래한 천국과 앞으로 맞을 천국의 긴장 가운데 성화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은 후로도 우리 본성과 세상 죄악이 아가페적인 사랑을 실천하고 싶어서 열심히 노력하는 일을 끈질기고도 교묘하게 방해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초림 이후로는 장차 완성될 천국을 미리 침노할 수 있음을 확신한다면 자기 혼자 수양하지 않고 성령님의 인도에 의지하여 그런 사랑을 조금씩 실천하여서 그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랄 수 있게 됩니다. 아니 정말로 성령으로 거듭났다면 성령님이 당신의 권능으로 그렇게 인도해주십니다.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에게 복음으로 행하는 그들의 구원의 완성을 확신한다고 말한 까닭이 무엇입니까? 교회에서 성경을 배우며 함께 기도하는 정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초대 교회 시절에는 신약성경이 제대로 완비되지 못했습니다. 이 서신은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혀서 언젠가 순교 당할 것을 각오하는 심정으로 쓴 것입니다. 

 

그가 빌립보 교인들을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에게 감사하는 이유를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예한 자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7절) 쉽게 말해서 그들도 바울과 똑같은 매임과 복음을 변명하는 체험을 통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바울과 동일한 은혜를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세기는 다르겠지만 그들도 그리스도를 알고 따름으로서 바울처럼 세상에서 수치 고통 핍박을 받고 있으나 복음으로 담담히 이겨내고 있기에 하나님이 그들을 마지막까지 책임져 주신다고 확신하고 감사한 것입니다. 

 

신자마다 또 각 신자 개인이 인생의 단계별로 성화의 모습은 달라질 수밖에 없으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반드시 조금씩 자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권능도 다 다르나 그것도 조금씩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아니 항상 동일한데 신자가 주님을 더 많이 알아나가면서 그 사랑과 권능도 더 많이 찾아서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심으로 내 속에 착한 일을 이루고 계신 성령님만 의지하면 반드시 한 가지 공통된 열매가 맺힙니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성도와 이웃을 자기 몸처럼 섬겨서 그리스도가 머리가 되는 그분의 몸을 세워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신자가 거룩하게 살 수 있는 비결은 자신은 이미 성령의 전이 되었기에 성도의 견인을 그리스도의 날까지 보장해주실 성령님에게 자기 존재, 삶, 인생 전체를 완전히 내어 맡기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자기 은사를 활용해서 이웃을 주님처럼 일상적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9/10/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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