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1:15-18) 믿음으로 살아가는 신자인생의 최종목표

룻기 강해 (3)

 

“나오미가 또 이르되 보라 네 동서는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너의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하니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나오미가 룻이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룻1:15-18)

 

니오미보다 더 굳건한 룻의 결심

 

이스라엘의 대적 모압 땅에서 남편과 두 아들을 잃은 나오미가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것은 결코 쉽게 행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은 어떤 수모와 고통을 겪더라도 이제부터라도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벗어나지 않고 그분의 뜻대로만 살겠다는 결심과 헌신이었습니다. 그녀는 남편 하자는 대로 따랐던 평범한 아녀자였으나 완전한 절망에 빠져 여호와만 붙들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졸지에 같이 과부가 된 며느리 룻도 그녀와 동행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당시 상황에선 나오미보다 더 굳건한 믿음과 결단력이 필요했습니다. 고대의 관점으로는 둘 다 남편을 죽게 한 죄인이었지만 나오미는 그래도 아들 둘을 낳았습니다. 룻은 아들도 낳지 못하고 남편만 죽게 했습니다. 거기다 나오미는 이스라엘 사람이지만 룻은 모압 여인입니다.

 

이스라엘로 돌아갔을 때 누가 더 멸시 당할지는 분명하므로 나오미는 룻에게 고향 땅에 남은 동서 오르바를 따라가라고 다시 권면했습니다. 그에 대해 룻은 죽어도 어머니를 떠나지 않고 이스라엘 땅에서 죽겠으며 죽기 전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 어떤 벌이라도 받겠다고 아주 단호하게 대답했습니다.

 

나오미는 늙은 과부가 되도록 인생의 쓴 맛과 단 맛을 다 겪었기에 앞으로 어지간한 고통도 견뎌낼 수 있습니다. 유대인 가정에 태어나서 자라고 유대인과 결혼했습니다. 이스라엘의 문화 관습은 물론 종교가 몸에 배어있습니다. 비유를 하자면 어려서 교회주일학교에 다니다 커서 잠시 세상으로 돌아갔지만 큰 고난을 겪자 회개하고 다시 교회에 출석하려고 결심한 셈입니다.

 

룻은 성인이 되도록 우상숭배의 문화 관습 종교에 배여 있었습니다. 자기 땅에 이주해 온 유대인 청년과 결혼했는데 몇 년 밖에 같이 살지 못하고 남편은 죽었습니다. 그 짧은 기간 안에 조상 대대로 내려온 사고방식과 인생관과 종교관 등을 뒤집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나오미가 그래서 너희 신에게 돌아가라고 권한 것입니다. 나오미의 결단도 대단했지만 룻이 더 어려운 결정을 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과연 룻의 과감한 결단이 어떻게 가능했을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에서 최고로 아름다운 신앙고백

 

그 전에 집고 넘어갈 사항이 하나 있습니다. 신자들이 모든 문제를 믿음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만능주의 시각으로 성경을 해석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오미와 룻이 과감하게 이스라엘로 돌아가기로 결단한 것도 믿음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고 그치는 것입니다.

 

물론 정답입니다. 그러나 이는 몸이 허약하면 운동 열심히 하면 된다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이 또한 정답이긴 하지만 신체의 어떤 부분이 어떻게 허약한지 정확히 진단하여서 그에 합당한 운동법을 실현해야만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무턱대고 운동을 많이 했다간 오히려 부작용이 생길 수 있습니다. 믿음만능주의도 믿음만 강하게 하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믿음을 인간 의지력 차원으로만 키우려들고 또 그럼 필연적으로 맹신적인 문자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어떤 이들은 성령님이 역사해주면 믿음도 순간적으로 강해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인격적인 분이라 신자의 진실한 순종과 실천이 따르지 않으면, 최소한 순전하게 마음을 열지 않는 한 일방적 강제적으로 역사하지 않습니다. 처음에 성령의 간섭으로 거듭나 예수를 믿을 때도 순간적 일회적인 역사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탄에게 묶인 한 죄인의 견고한 심령을 오래 동안 주님이 두드리고 또 두드렸고 주변 모든 여건을 그 마음 문이 열리도록 섭리하신 결과입니다.

 

성경에서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바울입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서 단번에 극적으로 회심한 것 같이 보이지만 그전에 바울더러 오랜 기간 준비시킨 결과입니다. 유대교의 최고 전문가로 양육되었고 그래서 모세율법을 지키지 않고 십자가에 죽은 예수만 믿으면 구원 얻는다고 황당한 주장을 하는 스데반을 처형시키는 일을 주도했습니다.

 

그러나 스데반이 돌로 쳐 맞는 그 큰 고통 속에서도 평안을 잃지 않고 오히려 기쁨 가운데 죽어가는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자기는 죽음 앞에 도무지 그럴 만한 자신감이 없어서 더더욱 반감을 갖고 예수 믿는 신자들을 핍박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의 마음 한 구석에 스데반이 그럴 수 있었던 이유나 비결이 과연 무엇인지 계속 갈등하고 고민했을 것입니다. 그러다 정말로 스데반이 말한 대로 예수님이 부활했음을 체험적으로 알게 되고나서야 회심한 것입니다. 바울의 회심도 그의 평생에 걸친 주님의 간섭과 은혜의 결과였던 것입니다.

 

룻이 지금 이런 신앙고백을 하게 된 것도 분명히 성령이 간섭하신 결과입니다. 성령의 역사 없이는 하나님께 이런 진실한 순복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룻이 회심하게 되기까지는 오랜 영적 고뇌의 과정이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고는 성경에서 가장 섬세하고 아름답고도 정확하게 신앙 진리를 표현한 이런 고백을 할 수 없습니다.

 

성경기록을 살필 때는 반복되는 단어나 표현에 주목해야 합니다. 룻의 대답에서 가장 강조되는 말이 무엇입니까? 어머니라는 단어가 8번, 나라는 일인칭이 주격 소유격 합쳐서 8번, 하나님이 3번, 백성이 2번 반복되었습니다.

 

한마디로 룻이 이런 신앙을 갖게 된 계기는 전부 나오미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나오미의 삶의 모습을 통해 여호와 신앙을 배웠고 자신도 나오미와 똑같은 모습대로 살겠다는 것입니다. 죽어도 어머니를 따라가겠다고 했으니 그런 믿음으로 살아가는 일에 자기 생명까지 즉 자기 전부를 걸었다는 것입니다.

 

히브리 어법에 ‘이뎀 페르 이뎀’이라는 수사법이 있습니다.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입니다”처럼 동사나 명사를 어떤 사람에게 사용한 후에 다른 사람에게도 동일하게 사용하는 방식입니다. 그 사람에 대해 적극적인 행동으로 온전히 따르는 헌신을 뜻합니다. 룻은 이 기법을 네 번이나 사용했는데 한마디로 자신을 시어머니와 혼연일체 시킨 것입니다. 또 그렇게 된 것이 전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이 간섭 작동하셨던 결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혼연일체를 자기가 깨트리면 하나님의 벌을 받을 수밖에 없고 또 달게 받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천천히 룻의 고백을 그 뜻을 음미하면서 다시 읽어보십시오. 과연 우리가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습니까? 더 중요하게는 불신자로부터 이런 고백을 한 번이라도 받은 적이 있습니까? 평생에 단 한 명이라도 나의 이름을 8번이나 부르면서 당신이 가진 믿음을 나도 가지고서 당신이 살고 있는 삶을 따라가는 일에 내 목숨을 걸겠다는 고백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만약 그럴 수만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신앙으로 가장 성공한 인생이자 신앙으로 최종적으로 달성해야 할 목표가 아닙니까? 룻기 전체를 살펴보면 룻의 입에 발린 아부가 절대 아니었습니다. 나오미도 룻도 그 믿음이 참으로 대단하지 않습니까?

 

흔히들 자신에게 힘든 일만 생기면 작정 금식하고 뜨겁게 새벽기도를 해서 해결 받는 믿음을 아주 좋은 믿음이라고 칭합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런 자를 두고 목숨 걸고 따라하겠다는 고백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 응답을 받는 것은 선하지만 그것이 최고 좋은 믿음이라고 한다면 사실은 하나님보다 그분이 부어주시는 축복을 더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우상숭배와 다른 유대교

 

룻이 율법을 주일학교처럼 체계적 직접적으로 교육 받았을 리는 없고 주로 실제 생활에서 감동을 받으면서 조금씩 생각이 바뀌었을 것입니다. 우선 룻은 시집오자 엘리멜렉의 집안에 우상이 하나도 없다는 것에 크게 놀랐을 것입니다. 신상 조각은 물론 신상을 새긴 귀금속이나 장신구도 없었습니다. 여호와께 제사드릴 때에 기묘하고도 복잡한 신탁 절차를 행하지 않고 단순히 징으로 쪼거나 장식하지 않은 돌로 단을 쌓아놓고 기도만 했습니다.

 

거기다 시댁 남자들은 일부일처제를 유지하면서 흉년을 피해 이주했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쳐도 모든 면에서 비교적 선하고도 검소하게 살았습니다. 룻이 살아왔던 전통, 모압의 일반 가정, 동족 남자들과는 뭔가 분명히 다르다고 느꼈을 것입니다.

 

물론 짧은 기간 안에 시아버지와 아들 둘이 죽은 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그 첫째 원인은 약속의 땅을 벗어났고 기근이 끝나도 돌아가지 않고 이방여인과 결혼했기 때문입니다. 거기다 알게 모르게 남자들이 모압 우상 신들의 제사에 참석했거나 심정적으로 동조했을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남자 세 명에게 죽음의 심판을 내린 것은 그만큼 죄가 막중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룻처럼 우상숭배에 젖었던 사람들이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이단에 빠지면 헤어 나오지 못하는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고대의 우상종교는 오늘날의 이단처럼 정교한 논리로 옭아매지 않고 크게 두 가지 방안으로 사람을 사탄의 노예가 되게 만듭니다.

 

첫째는 아주 풍요하고 짜릿한 쾌락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제사에는 항상 호사스런 음식과 음주 가무는 물론 음란한 성적 유희가 따랐습니다. 고대 우상 신전에는 창녀와 남창이 대기하고 있었고 아예 사제들이 그런 역할을 맡기도 했습니다. 가뜩이나 질병을 치유하고 환난에서 위로 받으려고 제사에 참석했는데 고통스런 현실을 잠시나마 잊게 만들어줍니다. 그런 쾌락에 맛들이면 우상숭배의 늪에 빠지고 사탄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극도의 공포심을 조장하는 것입니다. 기괴한 모습의 주술사가 제물을 잔인하게 살해하고 심지어 인간도 제물로 바칩니다. 실제로 모압 왕이 자기 왕자를 죽여서 그모스 신에게 바쳤습니다.(왕하3:27) 제사장의 말에 거역하면 그 사회에서 추방되고 심하면 곧바로 사형시킵니다. 때로 사탄이 주술사를 통해 병을 고쳐주는 능력을 발휘하거나 주술사 스스로 마술이나 눈속임으로 신비감과 공포심을 불러일으킵니다. 도덕적 종교적 경전이 따로 없고 제사장이 자기 멋대로 내뱉는 말 한마디가 바로 법이 됩니다.

 

우상숭배 사회에서 그 신을 배역하는 것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차원을 넘어서 바로 죽음을 의미합니다. 사람들도 그런 사회에서 대대로 그렇게 살아왔고 그렇게 신을 섬겨왔기에 너무나 당연하고 또 선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다른 방식의 삶에 대해선 아예 생각도 해보지 않습니다.

 

북한도 일종의 김씨 왕조에 대한 우상숭배를 하는 셈인데 그들의 통치 수단도 똑같이 이 둘입니다. 외국 사치품으로 지도층을 회유하고 일반 백성도 명절에 평소 먹지 못하는 흰쌀과 고기와 과자 등을 선물하고 마약이 만연하고 있는데도 묵인해줍니다. 그러다 조금이라도 거역하는 기미만 보이면 곧바로 공개처형해버림으로써 지도층은 물론 국민들 사이에 극도의 공포심을 심어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북한 주민들도 쾌락과 공포의 통치방식에 익숙해져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항거할 엄두도 내지 못합니다.

 

전도를 하다보면 예수 믿으면 집안에 우환이 생긴다고 염려하는 사람을 많이 만납니다. 그 동안 조상신께 제사를 성실히 드렸기에 큰 문제없이 잘 살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교회 나가면 당장 제사를 드리지 못할 것이고 그럼 그 신들의 노여움을 사서 불행한 일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상이 제공하는 현실 축복을 중시하고 거역하면 벌을 받을 것이라는 공포심이 있습니다.

 

룻이 자라온 영적 배경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그런데 이 유대인 가정에선 신을 섬기는 데에 쾌락의 잔치나 성적 타락이 따르지 않았고 전혀 공포심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여호와를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 구체적인 계명들이 있었고 그에 따라 모든 삶이 질서가 있었고 무엇보다 부도덕한 면이 눈에 크게 뜨이지 않았습니다. 동서 오르바는 현실적이라 그런 측면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았으나 룻의 마음은 점점 여호와께로 향해 열려졌던 것입니다.

 

나오미에게서 배운 신앙

 

무엇보다 시댁의 남자들이 모압의 우상 숭배에 참여 내지 흔들렸을지라도 시어머니 나오미만은 달랐습니다. 평소에 아주 자상하고 이방인 며느리를 전혀 홀대하지 않고 같은 동족처럼 잘 대해주었습니다. 룻이 어머니의 백성이 내 백성이 될 것이라는 고백이 그냥 공치사로 한 것이 아닙니다. 유대인들의 삶의 방식과 인생의 목적이 자기 백성들과는 전혀 달라보였던 것입니다.

 

고대에는 여자를 아들 낳아주는 기계, 성적 유희의 대상, 평생 노동을 담당해야 하는 종, 사고 팔 수 있는 재산 정도로 취급했습니다. 이번에 아프가니스탄을 다시 점령한 탈레반이 여성들에게 행하는 만행을 보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전통의상을 입지 않았다고 총살하고 신부될 사람을 자기들 마음대로 골랐습니다. 지금도 이런 판국인데 최하 삼천 년 전의 우상숭배 국가에서 여성의 참상은 훨씬 더 끔찍했을 것입니다.

 

룻의 시댁도 여자는 인구조사에 들지 않고 증인으로 자격이 없는 남성우위 체계인 것은 분명했지만 여인을 무조건 괄시 천대하지 않았습니다. 이혼하려면 재혼을 보장하는 증서를 써주어야 했고 계대결혼에도 과부의 신분을 배려하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습니다.

 

거기다 시아버지와 두 아들에게 내린 여호와의 심판방식이 우상 신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모압은 제사장의 기분을 상하게 하거나 바치는 치성이 적어서 신의 노여움을 사면, 사실은 그 우상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제사장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제사장이 정하는 벌을 받았습니다. 반면에 이스라엘의 신 여호와는 미리 율법을 주어서 반드시 해야 할 일과 절대로 해선 안 되는 일들을 구분해 놓았습니다. 집안 남자들이 그 율법을 위반했고 여호와도 율법에 이미 규정한 대로 벌을 내렸습니다. 룻은 이런 공정하고 도덕적인 신은 생전 처음 봤습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근사한 이름도 없는 신이 눈에 보이지 않는 능력으로 불시에 그러나 십년이나 기다려준 후에 세 남자의 생명을 앗아갔습니다. 여호와는 그들의 삶은 물론 생명을 실제로 주관하는 신이었습니다. 룻은 생전 처음으로 무서운 신에게서 느끼는 공포심이 아니라 너무나 거룩하신 신에 대한 경이로운 두려움에 휩싸였던 것입니다.

 

나오미가 고향으로 돌아가 봐야 고난과 멸시뿐인데도 철저히 회개하고 그 신이 다스리는 곳으로 돌아가려고 결심한 이유가 충분히 이해가 되며 자기에게도 실감나게 다가왔습니다. 이런 신과 이런 믿음이 진짜 신이요 진짜 믿음임을 절감했던 것입니다.

 

룻의 결혼식 서약

 

룻이 ‘이뎀 페르 이뎀’ 방식으로 고백한 내용을 다시 잘 살펴봅시다. 가장 먼저 자기더러 고향에 남으라는 말씀을 더 이상 하지 말아달라고 했습니다. 말씀해봤자 아예 듣지 않을 것이니 헛수고라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가는 곳과 유숙하는 곳에 자기는 항상 함께 있을 거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어법상 같은 내용을 반복하는 강조법이지만 굳이 구분하자면 가는 곳은 낮에 활동하는 영역이고 유숙하는 곳은 밤에 쉬는 곳입니다. 하루 종일 함께 붙어 있어서 절대 떨어지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라는 것은 이미 자기는 법적 종교적 신분은 물론 정신적 영적으로도 완전히 유대인이 되었으므로 계대결혼 같은 유대의 율법도 그대로 따르겠다는 것입니다. 모압 이방 출신이라 유대인들이 자기를 아무리 멸시 구박하더라도 얼마든지 아무렇지 않게 여기며 감수하겠다는 각오도 비췬 것입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가까이 하는 이웃들 모두도 자기는 가까이 지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정적으로는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우선 나오미와 시모와 며느리의 관계로 맺어지고, 또 시아버지와 남편이 죽은 일련의 비극의 배경에는 물론 지금 함께 이스라엘로 돌아가게 된 모든 과정이 거룩하신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임을 절감한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일들이 우연히 일어나지도 않았고 자신이 계획한 일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꿔 말해 모압의 우상 신들과는 전혀 다른 신인 이스라엘의 여호와 하나님을 알게 된 것이 남편을 일찍 잃은 슬픔도 감내할 수 있을 정도로 자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자 가장 잘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어머니처럼 저도 오직 그분의 뜻대로만 살아갈 것이며 그럼 이전의 잘못을 다 용서해주시고 더 나은 미래가 반드시 기다릴 것이라고 믿는다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주위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의 땅에서 그분을 더 깊이 알고 교제 동행하고 싶다는 간절한 소원이었습니다.

 

룻은 마지막 결론으로 죽음이 우리 둘을 나눠놓기 전에는 절대 헤어지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만약 내가 그 서약을 어기면 여호와께서 벌을 내리고 더 내리시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에스더처럼 여호와가 죽으라고 하면 죽으리라는 고백입니다. 마찬가지로 반복강조어법인데 룻은 이미 여호와를 거역하여 집안의 남자 셋이 심판받는 모습을 보았기에 하나님이 자기를 죽이고 또 죽여도 마땅히 그 벌을 받겠다는 뜻입니다.

 

이는 룻이 나오미와 평생 함께 가겠다는 맹세인 동시에 사실상 여호와 하나님의 신부가 되겠다는 결혼서약인 셈입니다. 앞으로 걸어갈 인생길에 어떤 장애 멸시 박해 고난이 기다려도 여호와의 신부로서 고향 모압 땅에 대한 미련은 물론 우상 신들을 절대로 거들떠보지 않고 영적인 정절을 지키겠다는 것입니다. 나오미는 룻의 이런 순전한 믿음의 고백을 듣고는 더 이상 말리지 않고 귀향길을 서둘렀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룻은 나오미 집안에 시집와서 여호와에 대한 믿음이 체험적으로 서서히 쌓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녀의 심령의 문을 지속적으로 두드린 것인데 바울을 유대교의 최고 전문가로 준비 시킨 것에 해당됩니다. 그러다 결정적으로 여호와의 심판이 너무나 엄중하고 공평함을 깨닫고 여호와께 자신의 전부를 바치기로 결단했습니다.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서 결정적인 회심을 한 것에 해당됩니다. 룻과 바울은 하나님이 미리 택한 당신의 사랑하는 종이라 종교를 개종하는 과정전반에 성령님이 당신의 때와 방식으로 개입 간섭하셨던 것입니다.

 

종말을 맞는 신자의 자세

 

지난주는 나오미의 회개와 결단을 이번 주는 룻의 신앙고백을 살펴보았습니다. 인생의 종말 같은 절망에 빠진 이 불쌍한 두 여인으로부터 종말 같은 시대를 사는 우리가 배울 믿음의 본이 무엇입니까?

 

신자들이 종말을 맞는 자세는 주로 징조와 시기를 판단하려는 데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하든 적그리스도의 환난을 이겨내고 혹시라도 시험과 핍박에 넘어가 그를 경배함으로써 구원에서 제외되지 않으려는 데에만 모든 관심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한참 난리법석을 떨었던 베리칩이나 코로나 백신이 계시록이 말하는 666 짐승의 표가 아닌지 두려워합니다. 어떻게든 그 표식을 미리 알아채서 그것만 피하면 마지막 구원에서 빠지지 않는다는 아주 어리석고도 표피적인 신앙입니다.

 

짐승의 표란 적그리스도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상거래 매매를 할 수 있는 허가증입니다.(계13:17) 이미 적그리스도가 지배하는 세상으로 바뀌고 그에게 복종한 자들이 받는 증서입니다. 적그리스도가 나타난 후에 그 표를 받는 것이지 표가 적그리스도보다 먼저 나타나지 않습니다. 설령 눈에 보이지 않게 숨어서 그런 표를 은밀히 만들어서 사람들로 미혹케 했어도 하나님이 그 때문에 심판하지는 않습니다. 엘리멜렉과 두 아들이 이스라엘에 흉년이 끝난 줄 모르고 돌아가지 않았다면 심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당신의 공의를 왜곡되고 불완전한 방식으로는 준행하지 않습니다.

 

구원을 받고 안 받고는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구원의 은혜를 진심으로 믿었고 그분을 자신의 구주로 모셨느냐에 달린 것입니다. 십자가 외에 구원과 심판을 나누는 기준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예수 외에 구원 얻을 이름을 인류에게 주신 적이 없습니다. 따라서 예수를 진심으로 믿고 있는데 전혀 몰라서 그런 음모에 휘말렸다고 심판하실 리는 없습니다. 무엇보다 계시록은 마지막 때에 엄청난 재앙이 닥칠 것이라고 신자들에게 공포감을 주는 책이 절대 아닙니다. 로마의 극심한 박해에 시달리는 초대 교회 교인들에게 예수님만 믿으면 승리한다고 위로 격려하는 책입니다. 어린 양으로 인해 복을 받을 것이라는 약속과 소망의 말씀이 계속 반복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합니다.

 

종말의 적그리스도의 시험과 환난을 이겨내는 길은 바로 나오미와 룻과 같은 믿음의 헌신뿐입니다. 나오미는 모든 수치와 고난을 무릅쓰고 여호와의 품에서 죽겠다고 고향으로 돌아갔고, 룻도 죽음이 아니면 시어머니는 물론 여호와를 절대 떠나지 않겠다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전부, 생명과 맞바꾸어서도 최고로 좋고 유일한 삶의 기쁨이요 인생의 목적이 된 것입니다. 자신의 전부를 의탁하고 앞으로의 모든 인생을 주님의 손길에 완전히 맡기는 것입니다. 나오미와 룻에게는 일시적으로 성령이 역사했으나 신약신자에겐 성령이 내주해서 떠나지 않으므로 힘들 때마다 간절히 기도하면 그 일이 가능합니다. 마지막 때에는 더더욱 환난과 핍박이 심해지니까 더더욱 주님께만 의탁해야 하지 않습니까?

 

종말이 닥쳐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것은 그런 신자들이 거의 없어졌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마지막 때에 내가 믿음을 보겠느냐고 한탄한 것입니다.(눅18:8)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마지막 적그리스도도 사탄의 졸개인 우상 신들처럼 쾌락을 주거나 공포심을 조장하기 때문입니다.

 

짐승의 표는 다시 강조하지만 그 유혹에 넘어간 자의 표입니다. 자기 세대의 영적인 흐름을 잘 분별할 필요는 있으나 새롭고 신기한 물건이 나타나기만 하면 666인지 지레 겁부터 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적그리스도를 이기려면 그가 주는 최고의 세속적 쾌락에 넘어가지 않고 또 자꾸 겁주고 핍박해도 스데반이나 그의 순교를 보고 회심한 바울처럼 자기 목숨을 주님께 완전히 의탁해야 합니다.

 

너무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실체가 바로 성령의 도우심과 위로하심으로 말초적이고 음란한 세상 쾌락을 멀리하고 인생 고난에 대해 공포심을 극복하여 평안을 얻는 것이지 않습니까? 평소부터 그렇게 살면서 종말을 맞으면 됩니다.

 

우리 모두 마지막으로 다시 스스로에게 솔직히 물어봅시다. 나오미처럼 다른 이로부터 룻과 같은 고백을 받을 수 있습니까? 최소한 그런 믿음이 좋은 자에게 룻과 같은 고백이라도 할 수 있습니까? 이 둘 중에 하나가 아니면 아직도 우리는 종말을 맞을 준비가 제대로 안 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9/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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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3:6-13) 네가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

(룻3:6-13) 네가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 룻기 강해 (9) “그가 타작 마당으로 내려가서 시어머니의 명령대로 다 하니라 보아스가 먹고 마시고 마음이 즐거워 가서 곡식 단 더미의 끝에 눕는지라 룻이 가만히 가서 그의 발치 이불을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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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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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3:1-5) 여성인권을 무시하는 가부장적인 하나님 [1]

(룻3:1-5) 여성인권을 무시하는 가부장적인 하나님. 룻기 강해 (8)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를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네가 함께 하던 하녀들을 둔 보아스는 우리의 친족이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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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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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2:17-23) 하나님께 기적 같은 은혜를 받는 비결 [4]

(룻2:17-23) 하나님께 기적 같은 은혜를 받는 비결 룻기 강해 (7) “룻이 밭에서 저녁까지 줍고 그 주운 것을 떠니 보리가 한 에바쯤 되는지라 그것을 가지고 성읍에 들어가서 시어머니에게 그 주운 것을 보이고 그가 배불리 먹고 남긴 것을 내어 시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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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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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2:8-16) 어떤 신자가 하나님의 복을 받는가? [1]

(룻2:8-16) 어떤 신자가 하나님의 복을 받는가? 룻기 강해 (6)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들으라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며 여기서 떠나지 말고 나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 그들이 베는 밭을 보고 그들을 따르라 내가 그 소년들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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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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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2:1-7) 평생토록 알 수 없는 하나님의 뜻 [2]

(룻2:1-7) 평생토록 알 수 없는 하나님의 뜻 룻기 강해 (5)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으로 유력한 자가 있으니 그의 이름은 보아스더라 모압 여인 룻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내가 밭으로 가서 내가 누구에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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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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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1:19-22) 나오미도 예수를 믿어 구원 얻었다.

(룻1:19-22) 나오미도 예수를 믿어 구원 얻었다. 룻기 강해 (4) “이에 그 두 사람이 베들레헴까지 갔더라 베들레헴에 이를 때에 온 성읍이 그들로 말미암아 떠들며 이르기를 이이가 나오미냐 하는지라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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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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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1:15-18) 믿음으로 살아가는 신자인생의 최종목표

(룻1:15-18) 믿음으로 살아가는 신자인생의 최종목표 룻기 강해 (3) “나오미가 또 이르되 보라 네 동서는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너의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하니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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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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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1:6-14)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가장 확실한 증거

(룻1:6-14)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가장 확실한 증거 룻기 강해 (2) “그 여인이 모압 지방에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듣고 이에 두 며느리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 있던 곳에서 나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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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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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1:1-5) 최고의 절망에서 최고의 영광으로

(룻1:1-5) 최고의 절망에서 최고의 영광으로 룻기 강해 (1)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거류하였는데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요 그의 아내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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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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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6:66-71) 오병이어의 이만 배 축복이 이천 배로 축소되었다. [1]

(요6:66-71) 오병이어의 이만 배 축복이 이천 배로 축소되었다. 오병이어 기적시리즈 (15-완)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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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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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6:66-71) 너희 모두가 마귀니라. [1]

(요6:66-71) 너희 모두가 마귀니라. 오병이어 기적시리즈 (14)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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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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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6:60-65) 예정론이 오해 받는 진짜 이유는?

(요6:60-65) 예정론이 오해 받는 진짜 이유는? 오병이어 기적 시리즈 (13)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 대 예수께서 스스로 제자들이 이 말씀에 대하여 수군거리는 줄 아시고 이르시되 이 말이 너희에게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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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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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6:51-59) 완전한 의인으로 구원받았다. [1]

(요6:51-59) 완전한 의인으로 구원받았다. 오병이어 기적 시리즈 (12)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이르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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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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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6:41-50) 마지막 적그리스도를 이기는 간단한 방안

(요6:41-50) 마지막 적그리스도를 이기는 간단한 방안 오병이어 기적 시리즈 (11) “자기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라 하시므로 유대인들이 예수에 대하여 수군거려 이르되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자기가 지금 어찌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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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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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6:34-40) 기독교의 핵심교리는 예수님이 제정하셨다.

(요6:34-40) 기독교의 핵심교리는 예수님이 제정하셨다. 오병이어 기적 (10) “그들이 이르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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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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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6:30-33) 하나님은 인간을 저주할 수 없다.

(요6:30-33) 하나님은 인간을 저주할 수 없다. 오병이어 기적 (9) “그들이 묻되 그러면 우리가 보고 당신을 믿도록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기록된 바 하늘에서 그들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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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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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6:28,29) 구원을 얻는 믿음이 있는가?

(요6:28,29) 구원을 얻는 믿음이 있는가? 오병이어 기적 (8)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요6:28,29) 예수님이 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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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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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6:22-27) 물질이 썩는 진짜 이유 [2]

(요6;22-27) 물질이 썩는 진짜 이유? 오병이어의 기적 (7) “이튿날 바다 건너편에 서 있던 무리가 배 한 척 외에 다른 배가 거기 없는 것과 또 어제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 배에 오르지 아니하시고 제자들만 가는 것을 보았더니 (그러나 디베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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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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