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1:1-9) 여호수아의 기도로 여리고가 무너졌다.

성경 바로 알기 시리즈 (4) / 여리고성 함락의 비밀 (1)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수종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강 곧 유브라데 강까지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쪽 대해까지 너희의 영토가 되리라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수1:1-9)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 전쟁은 여리고성 전투로 시작되었습니다. 잘 알다시피 그 전투는 칼과 창을 사용하는 일상적 방식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성 주위를 줄을 지어서 돌기만 했고 하나님이 초자연적으로 간섭해줌으로써 아무런 희생 없이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 6일 동안은 한 번씩만 돌다가 마지막 7일 째에는 일곱 바퀴를 돌고 마지막 일곱 번째 백성들이 한 목소리로 함성을 지르자 성이 일시에 완전히 무너져 내렸습니다.(수6:20)

 

그래서 많은 신자들이 기도에 이런 방식을 적용하면 큰 응답을 받을 수 있다고 믿고 실제로 많이 시행합니다. 전도나 선교하러 간 지역의 땅을 밟고 걸으면서 사탄에게 대적하는 기도를 합니다. 교회가 신축할 때에 필요한 땅이나 건물 주위를 돌면서 기도합니다. 심지어 개인이 자기 집을 사고 팔 때도 그렇게 합니다.

 

그렇게 하는 간절한 동기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믿음을 순전한 형식에 담아서 반드시 겉으로 표출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선례를 따라서 행하면 큰 은혜를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리고 성 전투에 내포된 너무나 풍성한 의미는 잘 따져보지 않습니다. 대신에 단순히 땅을 밟는 기도가 응답을 잘 받는 방식이라는 측면만 강조해서 가르쳐지고 시행되고 있습니다. 과연 그러는 것이 성경적으로 옳은지 또 여리고 성 전투가 오늘날의 신자에게 주는 영적 진리가 무엇인지 여호수아서 전반부를 공부하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세운 나의 종 여호수아.

 

오늘의 본문은 모세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을 지도할 후계자로 세워진 여호수아 개인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 안에 여리고성 전투를 비롯한 가나안 정복 전쟁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에 대한 힌트가 숨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계시하신 성경 말씀에는 하나님만의 특유한 어법(語法)이 있습니다. 본문에도 그런 어법이 사용되었는데 그것만 잘 살펴봐도 여리고성 땅 밟기에 대한 수수께끼를 풀어낼 수 있습니다.

 

가장 기본적이자 너무나 당연한 특징은 모든 말씀의 주어가 ‘내’라는 일인칭이라는 것입니다. 이 짧은 본문 안에 주격으로 일곱 번이나 등장합니다. 여호수아가 나의 종이라는 소유격 표현까지 합치면 훨씬 더 많아집니다. 한마디로 내가 너를 세웠으니 내가 네 평생에 너와 함께 하여서 너를 보호 인도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여호수아는 출애굽 직후의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산 위에서 모세가 하늘을 향해 기도하는 동안 산 아래에서 직접 전투를 지휘하여 큰 승리로 이끌었습니다.(출17장) 가데스바네야에서 가나안 땅을 정탐할 때에 하나님을 믿고 담대하게 진군하자고 주장했고 그런 믿음의 순종으로 갈렙과 함께 가나안에 입경할 수 있었습니다.(민14장) 총회로 모이라는 모세의 명을 어기고 장막에서 예언하는 자들을 중지시키자고 간언했을 정도로 이스라엘 공동체를 위하는 열정이 있었습니다.(민11장) 무엇보다 출애굽 이후부터 모세의 시종으로써 모세가 행하는 모든 사역과 기적의 현장에서 직간접으로 지도자 수업을 받았습니다.

 

모세를 이어서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기엔 여호수아가 가장 적격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럼에도 모세만큼 백성들에게 권위를 행사하기에는 아무래도 역부족입니다. 모세는 애굽에서 노예 생활하는 이스라엘에게 나타날 때부터 상당한 카리스마를 지녔습니다. 나이가 팔십이요, 바로의 왕자로 있었고, 동족을 위해 애굽 관원을 죽인 공로가 훈장이 되었습니다. 미디안 제사장의 사위로 지내면서 애굽 밖의 세상과 특별히 광야생활에 대한 노하우도 상당히 지녔습니다. 동족들 사이에 장로의 위치에서 신망을 얻고 있었던 형 아론이 옆에서 도와주었습니다.

 

말하자면 모세는 인생의 쓴맛 단맛을 다 체험했기에 그가 하는 말에 진정성과 신뢰성이 묻어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거기다 하나님과 회막에서 직접 교통하는 모습을 백성들이 매일 직접 눈으로 목격했습니다. 모세가 그렇게 계시 받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자 이뤄지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었고 큰 이적들이 따랐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 진멸당할 큰 죄악에서 모세의 간절한 기도로 생명을 건지는 은공을 두 번 받았습니다. 성경이 모세 같은 선지자가 메시아로 오실 것이라고 예언할 정도입니다.

 

반면에 여호수아는 지금껏 모세가 시키는 일만 행했지 직접 자신이 자기 책임 하에 지시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나이가 팔십 줄에 들어서 신체적으로도 노쇠해졌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에게 불순종할 리는 없지만 완악한 백성들은 수시로 하나님을 의심 원망 불평할 것입니다. 그 때마다 하나님에게 일대일로 나아가 중보해야 하고 하나님에게 직접 받은 말씀으로 그들을 지도해야 합니다.

 

이 단계에서 여호수아가 가장 염려했던 사항은 하나님의 크신 능력이 자기와 함께 해줄 것인지 여부가 아니었습니다. 자기를 모세처럼 친밀히 대하면서 직접 교통해줄지 여부였습니다. 백성들이 자기를 모세 같은 하나님의 충성된 종으로 온전히 인정해줄지가 가장 큰 걱정거리였을 것입니다. 기록에는 없지만 틀림없이 여호수아는 이 문제를 두고 간절히 오랫동안 기도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라는 주어를 사용한 것은 여호수아와도 모세처럼 개인적으로 친밀하게 만나서 직접 말해주는 관계를 이어가겠다는 뜻입니다. 모세와 동일한 자격과 신분에서 당신의 권능을 동일한 방식으로 행사하겠다고 당신께서 일곱 번도 넘게 계속 강조해준 것입니다.

 

모세는 나이 팔심에 스승이나 선배 한 명 없이 갑자기 당신의 종으로 세워졌어도 하나님의 은혜로 출애굽의 소명을 차질 없이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청년의 때부터 모세 곁에서 보고 배우며 하나님의 일에 헌신했으니 담대한 믿음으로 순종만 하면 나머지는 하나님이 알아서 책임져주겠다는 뜻입니다. 당신께 전적으로 의지하면 얼마든지 모세 이상으로 잘 할 수 있으니 아무 염려 말라는 것입니다

 

앞으로 혹시라도 가나안 대적이 아낙 자손처럼 커보여서 두려워지거나, 백성들이 자꾸 원망 불평해서 낙심되거나, 그들이 혹시라도 불순종하여 승리가 더디거나 패배해 화가 나더라도 절대 절망 내지 포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위대했던 전임자와 비교해서 자신의 모습이 초라하게 보일지라도 결코 실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확정된 미래

 

하나님은 또 그들이 차지할 땅의 사방 경계선을 구체적으로 계시해 주었습니다.(4절) 그 땅을 다 차지할 때까지는 어떤 위험과 문제에서도 구출해주신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특정한 당신의 일을 수행할 당신의 종에게 주는 하나님의 계시는 구체적이고 명료합니다. 오직 당신의 백성과 그 공동체의 유익을 위합니다. 지금 내라는 주어를 그렇게 많이 사용했어도 당신의 아집과 욕심을 채우려는 뜻은 전혀 없습니다.

 

바로 그런 차원에서 하나님은 너의 평생에 너를 대적할 자가 없을 것이라고 선포하셨습니다.(5절) 그 후에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하나님은 먼저 진리를 선포한 후에 그 진리가 실현될 수 있는 근거를 설명해주었습니다. 양 치던 지팡이만 든 팔십 노인 모세에게 세계 최강국 애굽이 열 한 번이나 대적하려 들었지만 무참히 패배했습니다. 가나안 족속들의 군대는 애굽에 비하면 시쳇말로 새 발의 피밖에 안 되니까 아예 신경 쓸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가데스바네야에서 가나안 지경을 정탐한 결과를 보고할 때부터 하나님을 온전히 믿었던지라 사실은 가나안 족속에 대해 두려움을 느낄 여호수아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가 이왕에 가진 굳건한 믿음 위에 더욱 믿음을 온전하게 하려고 “네 평생에 너를 대적할 자가 아무도 없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성경 중에 아마도 이만큼 위로가 되는 약속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진짜 주목해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3절)라고 합니다. 이 진술에 문법적으로 불합리한 점이 있는데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이스라엘이 발로 밟아야 할 일은 미래에 행할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땅을 이미 주셨다고 과거 시제로 표현합니다.

 

한마디로 이스라엘이 그 땅을 차지할 것은 하나님에겐 완전히 확정되어 있는 미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확정했으니까 어느 누구도 그 사실을 바꿀 수 없고 단 한 치라도 영향을 끼칠 수 없습니다. 이처럼 미래에 이뤄질 약속을 과거로 표현하는 것이 하나님의 고유어법에서 가장 큰 특징이자 신자가 정말로 믿음으로 반응해야 할 영적 진리입니다.

 

이에 대해 출애굽기 강해할 때에도 한 번 설명 드린 적이 있습니다. 출애굽기 3:11,12에서 모세가 출애굽의 구원자로 서야할 일이 두려워서 망설이자 하나님은 그 확정적인 증거로 너희들이 시내산에서 예배드리게 된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시내산 예배는 출애굽을 해야만 가능한 일이니까 출애굽 자체는 아예 신경도 쓰지 말라는 뜻이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확정된 미래를 보고 행동으로 실현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또 그런 믿음을 소지한 하나님의 종은 어느 누구도 대적할 수 없습니다. 애굽의 바로든, 이방주술사 발람이든, 지금 가나안의 기골이 장대한 아낙 자손의 후손이든 이스라엘이 가는 길을 절대로 막을 수 없습니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우러 나갈 때에 할례 없는 족속을 두려워 말라 전쟁은 칼과 창에 달렸지 않고 오직 여호와께 속했다고 선포했습니다.(삼상17:47) 군대 갈 나이도 안 된 열서너 살의 소년 다윗은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의 확정된 미래를 보았습니다. 여리고 성 전투처럼 믿음의 백성들이 치룰 전쟁은 칼과 창에 달렸지 않고 하나님이 확보해 놓은 승리의 열매를 따는 것일 뿐이라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이스라엘 온 어른들 앞에서 선포했습니다.

 

본문의 2절에서 하나님은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고 말합니다. 지금 목숨이 오가는 전쟁을 앞둔 심각한 시점입니다. 마치 이웃 동네에 놀러가듯이 내가 주는 땅으로 건너가라고 말합니다. 오래 전부터 당신께서 당신의 백성을 위해 마련해 놓은 땅이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3절)라고 말합니다. 너희가 그 땅을 밟기만 하면 가나안의 소유에서 너희의 소유로 바뀐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할 일이라곤 그냥 건너가서 밟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참으로 성경이 의미심장하지 않습니까? 가나안 첫 전투인 여리고 성 주변을 이스라엘이 발로 밟기만 하면 차지하게 해주겠다는 뜻을 본문이 암시하고 있지 않습니까?

 

가나안은 사백 년 전에 선조 아브라함과 죽음의 언약을 맺으며 하나님이 주시기로 맹세한 땅입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이삭의 하나님이 되고 이삭의 하나님이 야곱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후손들은 그 언약 하나만 소망하며 우상을 숭배하는 이방 나라의 노예가 되어서 사백 년을 고생했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그 약속을 당신께서 이루실 것입니다.

 

바꿔 말해 여리고성 함락이 우리가 생각하듯이 이스라엘이 간절한 소원을 갖고 믿음으로 순종하며 그 성 주변의 땅을 밟으며 칠일 간이나 끈질기게 기도해서 응답 받은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땅을 밟은 것 하나 빼고는 성경이 말하는 바와 일치하는 점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당신의 때가 되자 당신의 방식으로 그냥 이스라엘에 쥘 선물이 실현된 것이며 이스라엘을 그 선물을 받았을 뿐입니다.

 

근본적으로 기도에서 인간 쪽에서 특정한 방법을 시도해 응답을 잘 받는 비결이 따로 없습니다. 제가 입이 아프도록 강조했듯이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당신의 뜻과 계획에 따라서 신자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기도의 응답까지 포함해서 당신의 때와 방식으로 역사하실 뿐입니다. 본문이 여호수아가 간절히 기도한 것에 대한 응답이라면 여리고 성 승리의 공은 백성들보다 오히려 여호수아에게 돌려야 할 것입니다.

 

여리고성 함락에서 배울 기도는?

 

물론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성 주변을 돌면서 전혀 기도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닙니다. 또 그들이 그 전투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는 뜻도 아닙니다. 틀림없이 많은 이들이 불안해했고 또 그래서 기도했을 것입니다. 인간은 아무리 믿음이 강해도 처음 당하는 일에는 항상 두려움이 있게 마련이고 심지어 이미 경험한 같은 일을 다시 시작할 때도 두렵습니다. 백성들의 믿음이 여호수아와 비교하지 못할 정도로 약하니까 더더욱 그랬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리고성의 통쾌한 승리에서 백성들의 간절한 기도보다 하나님이 확정된 미래로 계획해 놓았다는 사실에 더 주목해야 합니다.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강 곧 유브라데 강까지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쪽 대해까지 너희의 영토”(4절)로 구획정리 해놓으셨습니다. 여리고는 그 지경 안의 작은 한 성일 뿐입니다. 그 성 하나가 하나님이 다 그려놓은 지도에서 사탄을 숭배하는 가나안 족속들이 대적한다고 제외될 리는 절대 없습니다.

 

신자들이 기존에 갖고 있던 기도의 의미와 자세를 바꿔야 합니다. 끈질기게 땅을 밟으며 자기 소원을 아뢰기 이전에 하나님이 확정하신 미래, 그것도 하나님께 직접 개인적으로 계시 받은 뜻이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해야 합니다. 모세와 여호수아처럼 평생을 두고 순종 성취해야 할 그분의 과업이어야 합니다. 자신에게 맡긴 그분의 소명이 언제 어디서 누구와 무슨 일을 하던 자기를 통해 실현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신약의 서신서들을 잘 살펴보십시오. 바울을 비롯해 사도들이 어떤 기도를 했습니까? 이 땅에서의 천국의 모형인 교회와 그 나라 백성인 성도들이 순전한 믿음 위에 굳건하게 세워지길 바라는 기도만 했습니다. 자신의 유익은 물론 고난에 대해 먼저 중점적으로 기도하지는 않았습니다. 성도들의 믿음이 성장하는 것이 그들의 가장 큰 기쁨이었습니다. 모든 서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평강과 은혜가 임하길 비는 말로 시작했고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은혜가 충만하길 비는 기도로 마쳤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님의 이름이 높아지는 일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실제로 자신의 평생 소명이 확정된 선교사나 목회자들이 어떤 기도를 하겠습니까? 현실적으로 열악한 오지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만나에 의지해야 할 선교사들이 자신들의 형통과 풍요를 빌 이유가 없습니다. 선교사로 헌신할 때에 풍토병이나 종교적 핍박으로 언제든 목숨이 날아갈 수 있음도 각오했습니다. 목회자들도 평생을 개인적인 욕심과 안일은 뒷전이고 오직 교회와 교인들을 위한 기도만 할 것입니다.

 

물론 대부분의 일반 신자들에게 그런 구체적인 소명이 세워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 안에서의 확정된 미래는 한 명도 빠짐없이 이미 계시 받아 소유하고 있습니다. 바로 천국에서의 부활 승리입니다. 주님과 함께 세세토록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왕 노릇할 것이라는 비전을 다 주셨습니다. 그 확정된 미래를 붙들고 기도해야 합니다. 신자의 모든 기도 제목들이 궁극적으로 천국을 지향하며 그곳으로 걸어가는 일들에 관한 것이어야 합니다.

 

이 고달픈 인생살이와 죄악으로 타락한 인산세상을 이별하고 어서 빨리 천국에 가고 싶다는 소원을 가지라는 것이 아닙니다. 선교사나 목사로 헌신하라는 뜻도 전혀 아닙니다. 기도하는 내용이 천국으로 인도하려는 하나님의 계획에 속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일반 성도들이, 아니 사역자들부터 연약한 본성을 지닌지라 매번 순전한 천국지향의 기도를 하지 못합니다. 영적 분별력이 미성숙하므로 자기가 소원 계획하는 일은 무엇이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기도만 하고 치울 것이 아니라 기도 전후에 혹은 기도하는 중에라도 자기가 소원하는 일을 통해 정말로 내가 그리스도를 닮아 자라갈 수 있는지, 이웃과 성도와 그분의 공동체의 영적 유익과 성장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지는 세밀히 점검해봐야 합니다.

 

기도한대로 행하라.

 

지난주에 이어서 기생충 영화 이야기를 또 하겠습니다. 저는 보지는 않았지만 마지막 결말이 완전히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먼저 영화를 본 자들은 절대로 그 결말을 다른 이에게 누설해 영화 보는 재미를 스포일(spoil) 시키지 말라고 했습니다.

 

영화의 결말을 모르고 보는 자와 알고 보는 자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특별히 추리나 공포 영화는 처음 볼 때는 매 장면마다 스릴이 넘치고 다음에 어떻게 전개될지 몰라서 가슴 졸이며 두려울 것입니다. 감독과 원작자가 곳곳에 숨겨 놓은 복선이나 힌트를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그것들이 전하려는 메시지와 더 깊은 재미를 온전히 깨닫지 못할 것입니다. 반면에 결말을 알고 보는 자는 전혀 두렵지 않고 느긋하게 즐길 수 있습니다. 모든 숨겨진 복선과 힌트들이 훤히 보일 것이며 감독과 원작자의 의도를 세밀히 깨닫고 영화를 정확히 평가할 것입니다. 어쩌면 감독이 의도한 것 이상으로 관객이 오히려 더 큰 재미를 느낄 수도 있습니다.

 

신자의 일생이 그러합니다. 이미 천국이라는 확보된 미래가 있습니다. 단 한 명의 예외 없이 다 소지하고 있는 정답입니다. 현실에선 고달픔과 환난으로 점철되는, 그것도 다음에 어떻게 전개될지 전혀 모르는 광야 같은 인생길이지만 그 최후의 도착지는 알고 있습니다. 영화의 결말을 알고 보는 것처럼, 다시 봐도 장면에 따라 여전히 무서워지듯이 고난이 닥치면 힘들어도 자신의 삶 전체로는 두렵지 않아야, 최소한 평강은 유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숨겨 놓은 복선을 발견하고 그분의 오묘하고 은혜로운 의도를 깨달아 더 풍성하고도 재미있게 인생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빌립보 감옥에서 육신의 죽음을 눈 앞에 둔 바울이 어떤 고백을 했습니까?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4:10-14)

 

바울은 평생의 목표와 비전은 천국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에 이르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땅에선 아직 이룬 것이 아니며 그곳을 향해 달려가되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린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어떤 실패를 겪었어도 심지어 죄에 넘어져 쓰러졌어도 천국을 향해 가는 걸음에 방해가 될 수 없다고 합니다.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16절)고 즉 궁극적인 푯대를 향해 걸어갈 뿐인데 현재의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그 길을 갈 뿐이라고 합니다.

 

바울은 천국이라는 정답을 받아 쥐고 있기에 그 엄청난 고난 중에도 연약한 교회와 성도들이 가장 안타까웠기에 자기 고난보다 그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고후11:28,29) 이방의 왕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소명대로 아그립바 왕에게 재판장에서 다메섹에서 회심한 체험을 간증하면서 복음을 전한 후에 이렇게 권했습니다.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행26:29)

 

한마디로 왕도 자기처럼 예수를 믿기를 간절히 원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사슬에 결박된 것 하나 빼고는 자기처럼 되라고 합니다. 내가 왕보다 못한 것은 사슬에 묶인 것 하나 뿐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따져 봐도 모든 면에서 내가 당신보다 하나님 안에서 훨씬 더 복을 받았으니 내처럼 복 받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정확히 말해 하나님의 정답을 나는 받았고 당신은 못 받았으니 반드시 그 정답을 받아서 허망하게 심판 받는 형벌이라도 제발 모면하라고 간절히 당부한 것입니다.

 

아그립바는 헤롯 가문의 왕인데 헤롯 안티파스가 세례 요한을 참수하듯이 자기를 모욕했다고 그 자리에서 죽일 수 있는데도 바울은 자기 목숨을 걸고 권면합니다. 그는 천국 승리를 보장받았기에 아무 두려울 것이 없었습니다. 더 중요하게는 아그립바 왕의 사탄에게 미혹되어 있는 영혼이 너무 불쌍하고 안타까웠기 때문입니다. 그 진심어린 사랑이 통했는지 아그립바는 너에게서 사형당할 죄목은 하나도 없고 오히려 로마 황제에게 직소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너를 바로 놓아주었을 것이라고 실토했습니다.

 

새 시대의 새 세대가 되어라.

 

여호수아서는 모세가 죽고 그 후계자로 세워진 여호수아에게 주신 하나님의 위로와 권면의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타 민족의 오랜 노예 살이에서 해방되어 자기들만의 나라를 세우는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 것입니다. 여리고를 무너뜨린 것도 그 새 세대입니다. 여호수아가 받은 정답도 이스라엘의 새 세대의 손에 지워졌습니다.

 

모세는 구세대와 함께 광야에서 죽었으나 여호수아의 인도 아래 새 세대들이 가나안을 정복할 것입니다. 천국으로 상징되는 약속의 땅을 모세로 대변되는 율법의 세대는 차지하지 못했고 하나님의 확정된 미래 즉 그분의 무조건적인 은혜 안에 들은 여호수아와 새 세대가 차지한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죽음으로 은혜의 새 시대가 시작됨을 예표합니다. 마침 여호수아라는 이름도 여호와가 구원이라는 즉, 예수의 유대 식 이름입니다.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관영한 흑암의 땅을 이제부터 여호와 참 하나님을 아는 당신의 백성들이 하나씩 정복하여 그분의 나라를 세워나갈 것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승리였고 그 가장 손쉬운 시작이 여리고였습니다. 그 후 아이성의 패배를 제외하고는 일방적인 승리를 통해 하나님이 약속한 땅을 당신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당신께서 약속하신 성령이 오신 후에 제자들은 권능을 입고 땅끝까지 복음을 전했습니다. 신약의 사도행전은 성령의 역사를 아무도 대적하지 못하고 사탄의 도성들이 예수 십자가 복음에 의해 점령당하는 천국 확장의 역사입니다. 순전한 복음이 영혼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과 함께 전해지면 반드시 염병처럼 퍼져나갑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참 생명 앞에 죽어가던 영혼이 살아납니다.

 

성령으로 마음에 할례를 받은 자들에겐 확보된 미래가 있기에 시대와 장소의 구분 없이 하나님이 역사하는 모습도 동일합니다. 지금 여호수아 앞에 대적할 가나안 족속은 아무도 없습니다. 여호수아서는 구약의 사도행전이요, 사도행전은 신약의 여호수아서인 셈입니다.

 

예수 믿는 신자는 들어와도 나가도 복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바울처럼 그 평생이 천국으로 걸어가는 여정이기 때문입니다. 그 방향이 틀어질 리도 없습니다. 물론 본성이 연약하고 체질이 진토 같아서 때로는 그 속도가 늦어지고 잠시 주저 않을 수는 있습니다. 본문은 당신의 말씀을 좌로나 우로자 치우치지 말고 지키면 그 땅에 거하게 된다고 약속합니다. 신학적으로 진보나 보수 양극단에 빠지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천국이라는 정답을 소지한 자답게 살라는 것입니다. 정답을 아직 받지 못한 것처럼 두려워서 좌우로 요동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천국을 확보된 미래로 이미 갖고 있는데 어떻게 천국과 방향이 다른 길로 갈 수 있겠습니까?

 

예수를 믿어 신자가 되었다는 뜻이 얼마나 엄청난지 아셔야 합니다. 우리를 대적할 자 아무도 없습니다.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함께 하기 때문이라는 너무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세와 함께 했던 것처럼 우리와도 함께 한다는 말입니다. 언제 어디에서든 이미 받은 소명에, 최소한 천국에 대한 비전에 평생을 걸고 있기에 매일 하나님과 대면하여 말씀과 기도로 교제할 수 있습니다. 모세 여호수아 바울처럼 믿지 않는 이웃이나 시험에 빠진 성도들을 위해 생명을 걸고 기도하면 공중 권세 잡고 이 세상을 농간 조종하는 사탄도 한 걸음으로 왔다가 일곱 걸음으로 도망가기 바쁩니다.

 

신자라면 아그립바 왕 같은 세상의 최고 권력자 앞에서도 주눅하나 들지 않아야 합니다. 현실적으로 따져서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궁핍해도 그것만 빼고 나같이 되라고 담대하게 선포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승천하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면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할 수 있는 권능을 입는다고 약속하셨지 않습니까? 현실이 아무리 고달프고 힘들어도 본문에서 성령이 여호수아에게 말씀으로 위로했듯이 내주하신 성령님이 말씀과 기도를 통해 샘솟듯이 주시는 자유와 평강과 기쁨을 빼앗을 자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확보된 미래가 여리고 성이 함락된 첫째가는 이유와 근거와 방식입니다. 여리고는 반드시 무너지게 되어 있었습니다. 여러분 앞에 있는 모든 현실적 정신적 영적인 장애물도 반드시 무너지게 마련입니다. 하나님의 확보된 미래를 정확히 알고 그 안에 거한다면 말입니다.

 

2/9/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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