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90:9-12 날을 계수하며 살고 있는가?

조회 수 839 추천 수 13 2009.09.18 02:0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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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을 계수하며 살고 있는가?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일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심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 가나이다. 누가 주의 노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를 두려워하여야 할 대로 주의 진노를 알리이까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90:8-12)


흔히 이십대는 세월이 기어가고, 삼십대는 걸어가고, 사십대는 뛰어가고, 오십대는 날아간다고 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하고 있는 일은 주는데도 시간은 더 빨리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빨라졌다 늦어졌다 하는 법은 절대 없습니다.

그럼에도 단 한 번뿐인 인생인지라 실패가 겹치면 그 실패 때문에 시간을 허비한 것처럼 여겨집니다. 지나간 세월이 다가올 세월보다 더 많아지는 노년이 될수록 당연히 시간이 더 빨리 지나간 것처럼 생각되는 법입니다. 나아가 하고 싶은 일들이 아직도 많이 남았는데 쓸 수 있는 시간이 얼마 없으니까 초조해져 더 그렇습니다.  

최근에는 모든 사조와 유행이 눈이 팽팽 돌 정도로 빨리 바뀔 뿐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 세계 어떤 오지의 동향도 순식간에 알 수 있으니 더 정신이 없습니다. 모세가 살던 시절에는 TV, 비행기, 휴대폰, 인터넷 하나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풀밭에서 양을 치고 산비탈에 포도나 올리브를 재배하며 한적하게 살았습니다.

그래도 인생이 일식(一息) 간에 다함을 느끼기는 마찬가지였나 봅니다. 과학자들이 21세기 말에는 인간 평균수명이 백 살로 늘어날 것이라 예측하지만 아마 인생이 신속히 날아간다는 아쉬움은 여전히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120년이나 산 모세가 한 고백인데 기껏 백년을 살아야 뭐가 크게 달라지겠습니까?

인생살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요소를 들자면 아마도 시간과 돈일 것입니다. 시간이 충분히 있으면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며, 또 돈이 충분이 있으면 시간을 잘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둘은 한 몸에 머리가 둘 붙은 ㅆㅑㅁ 쌍둥이처럼 항상 한 짝이 되어 함께 다니는 데 이상하게도 서로 반대쪽으로만 가려 합니다. 돈이 있으면 시간이 없고 시간은 있는데 돈이 없습니다. 시간과 돈 둘 다 여유가 있다면 성공한 인생일 것입니다.

둘이 함께 있되 서로 반대로 간다면 반드시 한 쪽 방향은 포기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돈을 벌기 위해 시간을 포기하든지 시간의 여유를 갖기 위해 돈을 적게 벌든지 해야 합니다. 따라서 인생을 살아가는 두 가지 방식이 나타납니다. 먼저 충분한 만큼의 돈을 번 후에 시간을 즐기자는 주의와 아예 처음부터 돈보다는 시간을 더 중요시하는 주의입니다.

그런데 돈이란 아무리 먹어도 포만감을 느끼지 못하는 불가사리 같은 본성이 있습니다. 또 돈이 주는 마력이 너무 세어 돈 버는 일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나아가 돈이란 자기 의도한 대로 잘 벌리지도 않아 마치 무지개를 잡아보려는 것처럼 계속 돈만 보고 따라 다닙니다.  자기가 정한 만큼의 돈도 못 벌었는데 어느 샌가 시간을 즐길 힘은 이미 사라졌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죽기직전까지도 돈, 돈, 돈 노래를 부릅니다.      

어차피 돈과 시간이 불균형을 이룰 수밖에 없다면 돈보다는 시간을 중시하는 인생이 훨씬 더 보람찹니다. 돈이 시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시간이 돈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자족할 수 있는 정도, 즉 일용할 양식과 비를 피하는 공간과 감기에 걸리지 않을 만큼의 의복만 있으면 나머지 시간에는 어떻게 인생을 의미 있게 보내느냐에 모든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입니다. 시간을 잘 관리하는 자가 돈을 잘 관리하는 자보다 훨씬 더 성공한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본문 표현대로 우리 날을 계수(計數)하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D. J. DePree 라는 사람이 “우리 날 계수한다.”는 말을 실제 문자적으로 적용하며 살았습니다. 즉 70년의 날수를 계산(70년 X 365일=25,550일)해서 하루씩 감해가면서 살았습니다. 매일 아침 자기가 생존 가능한 날 수가 점차 줄어감을 볼 때마다 더욱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다졌습니다. 흔히 말하듯 그 하루가 생의 마지막 날인 양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본시편의 저자 모세가 말하는 날 계수함은 단지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잘 활용하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 앞 절에서 “누가 주의 노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를 두려워하여야 할 대로 주의 진노를 알리이까?”라고 의문문 형식을 빌려 강한 부정의 뜻을 나타냈습니다. 모든 자가 주의 노의 능력과 원인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또 그 앞에 선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지나갔다고, 즉 주의 뜻도 모르고 인생을 허비했다고 합니다. 그리고서 가르쳐 달라고 했으니 바로 그 몰랐던 것을 아는 것이 찾고 있는 지혜가 됩니다.  

그럼 연결해서 해석하면 어떻게 됩니까? 인생들이 주의 분노 가운데 일생을 순식간에 마치는데 주의 노의 능력과 이유를 잘 몰라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약 그것을 잘 안다면, 즉 우리 날 계수하는 지혜가 있다면, 우리 인생이 주의 분노 중에 일순간에 지나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뜻이 됩니다.

쉽게 풀어서 설명하면 현실의 문제와 고통을 해결하는 데만 정신을 쏟다보니 순식간에 일생이 끝나더라는 것입니다. 그 힘든 일 가운데는 주의 분노로 인한 징계도 많이 포함되어 있었음에도 원인을 알지 못한 채, 즉 주의 뜻대로 회개하고 고치치도 못한 채 그저 환난만 없애달라고 매달렸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하나님으로부터 특정한 징계를 받지 않았어도 모든 인간은 아담이 범죄한 이후로 “이마에 땀을 흘리고 종신토록 수고해야 소산을 먹을”(창3:17)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주의 분노 가운데 일생을 보낸 것이 평생 죄만 짓다가 벌을 받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자기가 어떤 존재이며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몰라서 진정한 구원의 길에 들어서지 못한 채 살았다는 것입니다. 죄악과 사단과 사망의 권세에 묶인 노예이다 보니 돈만 쫓느라 도무지 앞뒤  분간도 못하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신자라고 해서 크게 다를 것 없이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고 고통을 없애려는 데에만 하나님을 찾고 산 것입니다.

인생을 허비하지 않는 비결은 가장 먼저 주의 노의 능력과 그 진노하심을 제대로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세상만사를 주관하고 특별히 불쌍하고도 완악한 처지에 빠진 인간을 대우하는 공의와 사랑을 제대로 알아서 주님과 함께 매일 동행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인생은 정말 숨 한 번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끝나버립니다. 많은 신자의 인생도 포함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생 문제만 해결하느라 제대로 허리를 펴 본적이 없지 않습니까?

특별히 모세의 경우 인간적 관점에선 그 인생의 전반부 2/3를 허비한 셈입니다. 도대체 하나님이 자기를 왜 그런 이상한 처지에 집어넣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적국의 왕궁에서 왕자로 또 이방인의 땅에서 양치는 목자로만 보냈습니다. 하루하루가 헛되고 헛된 날 뿐이었습니다. 그로선 그 좋은 세월을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다 보낸 것입니다.  그것이 동족의 구원자로 자기를 세울 하나님의 뜻과 계획일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시간이 빨리 간다고 느끼는 이유가 무병장수를 하며 재미있고 즐겁게 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고 싶었던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이미 지나가버린 그 세월이 아쉽기 때문입니다. 모세로선 그 80년이 자기에게 아무 의미가 없었기에 수고와 슬픔으로만 지새면서 날아간 것처럼 여겨진 것입니다.  

만약 그가 아주 젊었을 때부터 하나님으로부터 분명한 소명을 받아 그분과 매일 함께 그 일을 동역하며 살았다면 어떠했겠습니까? 모든 것을 주님께 내어드리며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를 살았지 않겠습니까? 그 일을 자기 인생의 진정한 보람과 가치로 확신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이뤄주고 있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으니 그 삶이 얼마나 즐겁고 의미 있었겠습니까? 그는 늦게나마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는 영원한 진리를 깨달은 것입니다.  

바울이 어떻게 고백했습니까?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 하라.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訃音)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4:5-8)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자는 자기 날을 계수하는 지혜를 가진 것이라고 합니다. 부음이 되도록 선한 싸움을 싸우며 믿음을 지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의의 면류관이 준비된 인생이야말로 유일하게 살 가치가 있는 인생입니다. 절대 헛된 인생이 될 수 없습니다. 지난 세월이 헛되지 않다고 여긴다면 인생이 날아갔다고는 결코 생각될 수 없지 않겠습니까? 비록 전도인의 직무를 다하느라 고난은 받게 되더라도 말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여러분의 날을 계수하며 살고 있습니까? 날려 보내는 것 같이 살고 있습니까?

2/16/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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