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42;1-3 Why? 대신에 Who?

조회 수 341 추천 수 5 2009.09.18 00:2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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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대신에 Who?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을 뵈올꼬 사람들이 종일 나더러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시42:1-3)


며칠 전에 예수를 갓 믿기 시작한 초신자 한 분이 자꾸 어려운 일들이 생긴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사단의 방해로 그럴 수밖에 없기에 예수를 믿기 시작하면 형통할 것이라는 기대부터 먼저 버려야 한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사단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사람이 예수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수를 써서라도 못 믿게 만들려 하기 때문에  오히려 어려운 일이 생깁니다. 사단이 자기 수하에 있던 종이 하나 탈출해서 하나님 나라로 가버렸는데 가만둘 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럼 언뜻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 쪽에선 그런 사단의 방해를 막아주고 오히려 상급을 주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래야 새로이 당신의 자녀가 된 자가 더 힘을 내어 열심히  믿을 텐데 오히려 그 반대 현상이 일어나니 이상하지 않습니까? 실제로 예수를 믿으려 들면 가족 친척들이 이제 흉사가 겹칠 것이니 예수쟁이 하나 때문에 집안이 망하게 생겼다고 기를 쓰고 반대합니다. 예수님이 싫어서이기도 하지만 주위에서 그런 일들이 발생하는 것을 많이 보았다는 뜻이지 않습니까?

본 시편 기자도 자기가 환난을 당하고 있으니 사람들이 자꾸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라고 빈정댄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을 잘 믿으면 만사가 형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모든 불신자 심지어 일부 신자들마저 갖고 있는 가장 큰 종교적 착각입니다. 하나님은 신자가 그 착각을 깨기를 원해서라도 사단의 방해를 묵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부 신자에겐 여전히 불만일 수밖에 없습니다. 한몫 단단히 잡아보겠다고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라 단지 하나님 뜻대로 거룩하게 살려고 믿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어 형통할 생각이 없기에 하나님이 따로 보상은 안 주어도 되지만 환난을 막아주실 책임은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예수를 믿었는데도 형통할 일이 안 생기면 신자로선 “아! 예수 믿는다고 대박이 생기는 것은 아니구나”라고 깨달을 수 있지 꼭 환난이 생겨야만 알게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현실은 욥의 경우처럼 신자가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환난을 많이 겪습니다. 심지어 아무 죄를 짓지 않고 탐욕을 품지도 않으며 성실하게 하나님을 믿어 영적으로 충만해 있는데도 그럴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솔직히 주위 사람의 빈정거림에 자기도 모르게 심정적으로 동조가 되어 뭔가 잘못 믿고 있나싶어 당혹됩니다.  

신자가 갖는 고난에 대한 착각 중에 가장 먼저 깨트려야 할 것이 있습니다. 만약 이유를 아는 고난이라면 대책을 세울 수 있거나 혹은 결과가 어떻게 될지 미리 알 수라도 있기에  사실상 고난이 아닙니다. 나아가 이유를 안다는 것은 물리적인 인과응보의 법칙 안에서 고난을 다룰 수 있게 된다는 뜻이므로 하나님과도 아무 연관이 없어져 버립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난이야 말로 진정한(?) 의미의 고난이라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이유 없는 고난마저 하나님에게 없애 달라고 요구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요구는 아예 세상을 오직 물리적 체계 안에서만 움직이게 해 달라는, 다른 말로 하나님은 아무 필요 없으니 이 세상에서 손을 떼어 달라는 의미가 되기 때문입니다.

갓 난 딸을 뇌막염으로 잃게 된 한 젊은 엄마가 도대체 하나님이 이해가 되지 않아 아버지와 상의했습니다. 아버지가 딸에게 “Why?에 대한 해답을 구하려 하지 말고 Who?에 대한 해답을 구하라”고 충고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이 왜 이런 일이 일어나게 했는지 그 이유를 따지려 하기보다는 하나님이 과연 어떤 분인지 묵상해 보라는 뜻이었습니다.  

당연히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신자에게 가장 유익하고 좋은 것으로 주시기를 정말로 원하십니다. 심판을 내리기보다는 구원을 베푸시기를 너무나 기뻐하십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렘29:11)

그러나 하나님은 단순히 신자에게 축복을 베푸시기보다는 신자더러 당신과 진정한 사랑과 신뢰의 관계를 맺기를 가장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일방적 요구가 결코 아닙니다. 신자가 하나님과 그런 관계를 맺는 것이 바로 신자의 가장 큰 축복이 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환난 없이 형통하면 축복이라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당신이 없는 형통은 인간에게 오히려 큰 불행이며 당신 안에서 겪는 환난이라면 도리어 큰 행복이 될 수 있다고 여기십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은 결코 신자의 코앞에 당근을 달아 유혹하지도 않으시고 등 뒤에 총부리를 갖다 대고 억지로 떠밀지도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는 하나님과 인간 뿐 아니라 세상의 어떤 관계에서도 진정한 사랑의 관계가 절대 생기지 않습니다. 신자 측에선 전자는 아부요 후자는 굴종이며 하나님 쪽에선 전자는 자선사업가요 후자는 독재자일 뿐입니다.  

역으로 말해 하나님의 생각이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기에 오히려 이유 없는 환난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유가 빤히 보이는 환난뿐이라면 누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찾겠습니까? 또 하나님을 외면하고 도대체 인간이 진정한 평안을 어디서 구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혹시 그럴 수 있다고 자신하는 자라면 얼마든지 하나님께 불만을 터뜨릴 수 있으며 아니 아예 믿지 않고 심지어 욕을 해도 됩니다.

나아가 이유를 알 수 없는 환난의 거의 대부분이 사실은 인간의 잘못에 기인합니다. 뇌막염으로 갓 난 아기가 죽은 것은 어떤 경로로든 바이러스가 아기에게 들어간 것입니다. 그런데  바이러스가 생긴 근본 원인은 인간이 타락하여 이 땅을 거룩하게 다스리는 대신에 제 멋대로 황폐하게 다루었기 때문이지 않습니까? 죄의 결과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불만을 갖기보다는 더더욱 그분 앞으로 겸비하게 돌아와야 하지 않습니까?

프란시스 쉐퍼는 이유 없는 고통을 받는 욥에 대해 명료하고도 은혜로운 해석을 내렸습니다. “우리의 제한된 지혜로는 고통이 주님으로부터 온 것인지 아니면 사탄으로부터 온 것인지 확실하게 알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그렇기에 고통이 어디에서 오는지 완벽하게 구분해 낼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 곧 위로가 됩니다. 그저 사랑과 믿음과 신뢰 안에서 주님을 바라보면서, 욥의 경우처럼 보이거나 혹은 보이지 않는 전쟁 속에서 주님이 우리를 사용하시는 것이라면 주님의 은혜로 기꺼이 받아들이면 됩니다.”(‘쉐퍼의 편지’/홍성사간)

세상만사를 하나님이 주관하니까 일개 신자로선 이유 없는 고난을 아무 군소리 없이 무조건 받아들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런 고난들이 있기에, 아니 그런 고난 가운데서 신자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 소망, 사랑이 더욱 힘을 발휘할 수 있고 또 신자에게 큰 은혜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신자가 그 이유를 알거나 모르거나 간에 반드시 우리를 당신의 크신 영광 가운데로 이끌고 계시기에 신자는 오직 믿음으로 살면 된다는 것입니다. 쉐퍼는 그래서 “주님이 다 아시기에 우리는 (고난의 이유에 대해) 절대적 지식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혹시 아직도 뭔가 미진하고 불만이 완전히 해소가 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은 바로 이런 경우를 대비해서 당신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죽이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죄에서 구원이지, 환난 그것도 이유 없는 고난과는 별다른 연관이 없지 않느냐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역사상 가장 억울한 죽음을 그것도 고통이 가장 극심한 모습으로 당했습니다. 이 땅에 오셔서 오직 인간에게 가장 유익하고 복된 일만 해주셨는데도 인간은 오히려 아무 이유 없이 그분을 죽였습니다. 사실은 예수님이 앞에서 당근을 주거나 뒤에서 총부리를 갖다 대어 주지 않는다고 죽인 것입니다. 인간은 처음부터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할 마음은 전혀 없고 독재자나 자선사업가로 모시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런 인간은 하나님에게 이유 없는 고난에 대해 감히 불평할 자격조차 없습니다.

십자가는 사람들이 이유 없는 고난을 겪을 때에 바로 당신을 쳐다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도 그런 고난을 당했으니 인간이 당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너희가 죄를 범해 나를 배반하고 사단의 종이 되었으므로 이 땅에 이유를 모르는 환난이 횡행하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으라는 뜻입니다. 그 죄를 진정 회개하고 하나님 품 안으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또 잘 믿고 있는 신자에게는 아무 이유 없어 보이는 환난일수록 더욱 당신의 십자가 외에는 진정한 위로와 해결책이 없음을 알라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이루신 영원한 구원이 있기에 이 땅에선 사단의 방해든, 인간의 죄악이든, 때로는 당신이 직접 주관하든 인간에게는 이유 없어 보이는 환난을 하나님은 허락하신다는 것입니다. 대신에 신자에게는 새 하늘과 새 땅이 또 죽은 후에 가는 천국을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뇌막염으로 죽은 아이도 천국에선 영원하고도 거룩한 생명으로 변모시켜 주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이유 없는 환난 가운데 당신의 은혜는 오히려 더 크고 영원하다는 것을 보여준 너무나 생생한 증표입니다. 인간은 이유 없는 고난은 죽어도 받기 싫다고 우겼지만 하나님은 바로 그런 말도 안 되는 고집마저 아무 말 없이 아무 이유 없이 받아주셨습니다. 세상에 이유 없는 환난이 아무리 많아도 하나님의 거룩과 의와 생명은 절대로 가감이 없음을 보여주기 위해서 당신께서 가장 말도 안 되는 환난을 손수 당하신 것입니다. 본 시편 기자가 그토록 갈망하여 찾았던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뵈올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장소입니다.

신자더러 십자가를 바라보라는 뜻은 형통은 없고 환난만 있어도 기꺼이 주님만을 정말로 사랑하고 신뢰하겠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당신을 따르는 신자가 이유 없는 환난 가운데도 소망을 잃지 않고 인내하며 더 거룩하고 신령하게 자라나갈 용의가 있고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는지 가만히 지켜보고 계십니다.  

이유 없어 보이는 환난이야말로 하나님의 신령한 지혜이자 완전한 섭리입니다. 신자가 이유 없는 고난을 당할수록 왜를 따지기 보다는 이런 고난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이 과연 어떤 분인지 묵상하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신자마저 언제 어디서든 나에게 등에 총부리를 대거나 앞에 당근을 갖다 주지 않으면 하나님을 믿지 않겠다고 버티는 꼴입니다.

다른 말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눈에 보이는 물리법칙 안으로 끌어넣고야 말겠다는 완악한 고집이 됩니다. 절대자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인간이 원하는 대로 그분을 부려먹겠다는 심보로 너무나 큰 신성모독입니다. 유대 종교 당국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면서 갖다 붙인 죄목과 동일합니다.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죽이는 셈입니다. 신자마저 말로는 그분을 따르겠다고 하면서도 그분이 지신 십자가는 지기 싫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인지, 어떤 분인지, 그분이 십자가에 이루신 일이 무엇인지, 그 일 가운데 드러난 뜻이 무엇인지 묵상하지 않고는 아무리 믿음이 있는 신자라도 어떤 경미한 고난도 끝까지 고난으로만 남을 것이며, 또 아무리 큰 은혜를 받아도 여전히 불만은 생길 뿐입니다. 예수님 오늘도 저를 포함한 모든 완악한 당신의 종들을 거룩한 십자가 앞으로만 인도하여 주셔서 날이 갈수록 더욱 겸비하게 만들어 주시옵소서. 아멘!

1/4/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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