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자존심마저 존중한 십자가

조회 수 492 추천 수 33 2009.11.09 22:3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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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자존심마저 존중한 십자가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사55:1,2)


죠지 버나드 쇼의 희곡 “성인 바바라”에 워커라는 자존심 강한 주인공이 나옵니다. 젊은 크리스천이 그의 애인을 전도해서 예수를 믿게 하고 또 구세군 캠프에 합류시켰습니다. 이전처럼 함께 술 먹고 놀면서 데이트하지 못하게 되자 화가 나서 술을 마신 후 그 캠프를 찾아갔습니다. 애인을 찾아내어 설득시키다 안 되자 그 젊은이 앞에서 손찌검을 했습니다.

지켜보던 사람들이 비겁한 자라고 조롱했습니다. 양심의 가책을 받은 워커는 자기가 벌을 받아 공평하게 하려고 곁에 있던 레슬링선수의 얼굴에 침을 뱉었습니다. 그가 화가 나서 자기를 때리게 되면 여자를 때린 잘못을 플러스마이너스 상쇄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선수도 크리스천인지라 워커를 용서해주면서 전혀 화를 내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 것 같습니까? 당연히 자기 잘못을 사과하고 그도 크리스천이 되었을 것 같습니까? 인간의 본성이 얼마나 추하고 더러운지 모르는 너무나 순진한 생각입니다. 오히려 더 격분해서 욕을 퍼붓고는 떠나 가버렸습니다. 그는 자존심에 크게 손상을 입었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자존심은 다른 사람의 진정한 사랑조차 잘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참으로 이상하게도 아무 조건 없이 베푸는 용서는 더욱 싫어합니다. 자기에게는 피해를 배상하고 더 좋은 것을 베풀 수 있는 능력과 호의가 얼마든지 있는데 그것을 무시했다는 뜻입니다. 자기 선함과 의로움을 보일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은 것이 못내 섭섭하다는 것입니다.

인간 사회에선 그런 노력들이 어느 정도 통용됩니다. 상대에게 끼친 손해가 충분히 보상이  될 만큼 그 잘못을 상쇄시킬 수 있습니다. 각자 내면의 자존심까지 완전히 회복되었는지는  몰라도 최소한 겉으로는 서로 화해하고 사이좋게 지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사이에 인간이 저지른 잘못과 죄를 상쇄시킬 조치는 전혀 없습니다. 우선 간단히 말해 한 사람이 평생에 지은 범죄와 베푼 선행을 비교하면 어느 쪽이 더 많겠습니까? 범죄가 도저히 비교 안될 만큼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단순 수치로 그것도 겉으로 드러난 행동의 죄만도 그러한데 말로 상처 준 것과 마음속으로 저지른 죄까지 보태면 아예 계산이 안 됩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뱉어 놓은 말을 다시 주워 담을 수 있거나, 생각으로 지은 죄를 생각해내어 생각으로 다시 깨끗케 씻을 수 있습니까? 아예 불가능한 일 아닙니까?

인간끼리 배상하고 서로 용서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전체 저지른 잘못에 비하면 극소수일 뿐입니다. 서로 알게 모르게 저지르는 잘못까지 감안하면 인간끼리 죄를 깨끗이 처리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그 일부분의 용서마저 서로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든지, 도저히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앞으로 사회생활을 영위해 나갈 수 없기에 용서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꼭 용서하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골라서 어쩔 수 없이 용서하지 진정으로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상대를 진심으로 사랑해서 하는 용서는 극히 드뭅니다. 모든 자연인은 자기가 먼저 찾아가 용서를 빈다는 것은 죽었으면 죽었지 못한다고 버티는 참으로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자존심 하나만 붙들고 사는 존재입니다.    

평생 동안 지은 죄 전부를 하나님과 공평하게 대차대조표를 작성하겠다고 덤비는 것 자체가
너무나 말도 안 되는 것 아닙니까?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이 무료로 모든 인간에 구원을 선물해주지 않고는 과연 그 죄를 해결할 수 있는 방도가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인간은 그것조차 싫은 것입니다. 예의 워커처럼 자기를 너무 무시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에게 시간과 여건을 좀 더 주면 얼마든지 선해질 수 있다고 고집합니다. 바로 그것이 가장 바보 같은 자존심인 줄 모릅니다.  

우리 모두 이런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어렸을 때 누워 자고 있는데 식구들끼리 뭔가 맛있는 것을 먹고 있는 것을 잠결에 눈치 채고도 이상하게 바로 일어나지 못했지 않습니까? 그냥 일어나기만 하면 아무도 먹을 것이 탐나 일어났다고 조롱하거나 야단치지 않습니다. 바로 나눠먹거나 아니면 자기 몫을 따로 남겨두었을 텐데도 그랬습니다. 아무리 어리지만 자기는 먹는 것을 밝히는 자가 아니라는 것을 과시하고 싶은 것입니다. 또 자기만 빼고 식구들끼리만 즐긴다고 시기한 것입니다. 커서는 너무 바보 같았다고 다들 후회했지 않습니까?

어려서부터 갖고 있는 바로 이 어리석은 자존심이 인간의 죄의 진짜 실체입니다. 그런데 인간끼리는 자존심으로 서로 한두 번 버틴다고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지만 영원한 운명을 결정짓는 구원의 문제라면 어떻게 됩니까? 레슬링 선수가 그를 용서하는 순간에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의 선물이 배달되었는데도 화를 내면서 차버리는 워커 같은 모습이 바로 불신자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인간 스스로 공평해질 수 있다는 바로 그 생각 때문에라도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셔야만 했습니다. 만약 그 헛된 자존심마저 바로 잡아주려면, 즉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부채를 완전히 플러스마이너스 상쇄시키려면 인간이 죄를 지을 때마다 일일이 벌을 주어야 하는데 그렇게 해서 살아남을 자는 단 한 명도 없습니다.

반드시 자기 죄를 탕감하는 손해 보상이 있어야만 그 용서를 받아들이려는 인간에게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아니고는 그 회계를 제로로 돌릴 수 있는 방도는 결코 없습니다. 역설적으로 말해 하나님은 인간의 그 알량한 자존심을 그대로 살려두고, 말하자면 그것마저 없어지면 완전히 산송장이 되니까 마지막 마지노선은 건드리지 않은 채 구원을 베푼 것입니다.  

따라서 십자가는 단순히 인간이 죄를 씻을 방도가 없으니 하나님이 구원을 공짜로 주었다는 차원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인간의 죄를 인간의 생각대로 가장 정확하게 회계한 것입니다. 그 죄를 합치면 몽땅 다 죽어야 마땅한데 하나님은 당신께서 창조한 인간을 당신이 죽일 수는 없었을 뿐 아니라 그 죽음의 배상책임마저도 본인이 담당하신 것입니다. 이 만큼 공평한 계산은 따로 없습니다.

인간이 정말로 진지하게 자기 죄를 공정하게 회계하겠다고 시도해 보았다면 자기 죄가 얼마나 많고 중한지 반드시 깨닫게 됩니다. 나아가 그 죄를 인간 세상에선 그것도 자기의 그 알량한 자존심이 살아 있는 상태에선 도무지 해결할 길이 없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십자가는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죄는 스스로 해결 할 수 없다 쳐도 십자가 구원을 공짜로 받아들이는 것만은 자존심이 도무지 허락하지 않는 것입니다.  십자가 구원은 분명히 하나님의 무료 선물입니다. 그러나 죄에 대한 계산은 분명히 해야 합니다. 정말로 자기 죄에 대한 계산이 정확하다면 단순히 그대로 받는 것이 더 정확한 처리입니다. 그 죄에 대한 계산이 확실하지 않은 자들이 오히려 받기를 거부하면서 자기들이 더 공평하다고 우깁니다. 아직도 자기가 그 계산을 스스로 잘 해낼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그러다 죽을 때 가서야만 겨우 그 고집을 내려놓습니다. 사실은 어쩔 수 없어서 그렇게 합니다. 이제는 계산할 시간이 전혀 없으니 단순히 계산을 다 못했다는 뜻인지 진짜로 계산을 할 수 없다고 인정한 것인지는 본인과 하나님만 알 것입니다. 하나님이 더 오래 살도록 해주면 어쩌면 또 다시 십자가를 인정하지 않으려 들지 모릅니다.

인간의 잘못을 어떻게 인간의 선으로 갚을 수 있겠습니까? 회개로 갚을 수 있겠습니까? 회개는 도저히 갚을 수 없다고 이미 인정한다는 뜻 아닙니까? 그런데도 예수님만은 끝까지 거부합니다. 다른 모든 종교는 그런대로 타당하다고 인정하면서 말입니다.

그렇다면 인간 외에 다른 힘이, 그것도 인간이 도저히 이겨낼 수 없는 큰 힘이 그 사람을 그렇게 묶어 놓고 있다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지 않습니까? 아니면  예수님의 십자가가 엉터리이든지 말입니다. 도저히 자기 죄를 어쩔 수 없다고 인정하는 누구라도 하나님 앞에 엎드리면 구원을 선물로 주시겠다는 그 십자가가 말입니다.

5/22/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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