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예배를 드리고 있는가?

조회 수 439 추천 수 15 2009.11.08 00: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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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예배를 드리고 있는가?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시103:13,14)


타락한 본성을 타고난 인간은 신자, 불신자를 막론하고 평생을 죄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성자라고 칭송 받아도 그렇습니다. 죄에 찌든 일반인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일지 몰라도 정작 본인은 죄를 온전히 다스려 정말 거룩하게 되었다고는 절대 생각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런 사람일수록 더욱 자신이 죄인임을 뼈저리게 더 느낍니다.

그래서 불신자는 평생을 두고 죄를 용서 받았다는, 아니 용서 받을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모릅니다. 물론 손해와 상처를 입힌 피해자를 찾아가 충분히 배상하고 사죄하여 당사자끼리는 용서를 주고받을 수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죄가 자신의 영혼에 아로새긴 흔적 즉 근본적인 죄책감은 결코 지울 수 없습니다. 인간끼리 용서의 여부와는 별도로 죄를 범한 자신이 자꾸 싫고 추하게 여겨지는 느낌을 씻어낼 방도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반면에 신자는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어 인간의 모든 죄책을 해결했음을 믿습니다. 단순히 믿어보려 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성령 세례를 받을 때에 영혼이 깨끗이 씻어짐을 실제로 체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모든 죄와 허물을 아심에도 자기를 사랑하여 먼저 찾아오셨기에 세상과 사람 앞에는 몰라도 그분 앞에서 만은 의인이 되었음도 깨닫게 해줍니다.  

또 그런 중생이 있고난 후에도 죄를 지을 때마다 구체적으로 자백하고 용서를 구하면 성령 안에서 미쁘신 하나님이 동일한 용서의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따라서 신자는 항상 용서 받고 있는 죄인이며, 불신자는 평생을 두고 참 용서를 구하지 않거나 스스로 반성하는 것으로 그쳐 용서를 못 받고 있는 죄인이라는 차이만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신자의 어떤 죄도 용서해줄 수 있는 이유는 인간의 체질이 얼마나 진토인 줄 아시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인간이 혼자서 또는 인간들끼리는 절대 죄를 사해주거나 깨끗케 해줄 수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아신다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의 용서가 신자를 깨끗케 하여 다시 죄를 짓지 않고 선하게 살도록 하는 목적만 있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페르시아의 카펫을 짜는 장인(匠人)은 베틀 한쪽에 서고 다른 쪽에 도제(徒弟)들이 서게 해서 같이 짜면서 가르친다고 합니다. 한 도제가 실수를 하면 노련한 장인이 다른 도제들이 알지 못하게 감쪽같이 처리해주기 위해서입니다. 다른 도제로선 어디에서 누가 잘못을 범했는지 발견할 수 없기에 서로 비난하며 다투는 분쟁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배려입니다.  

지금은 집집마다 자식이 한 둘이지만 이전에 열 명 가까이 있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 때에 정말 현명한 부모는 연대책임을 물을 수 없는 개인적인 허물, 약점, 잘못을 다른 형제들이 보는 데서 야단치거나 고치려 하지 않았습니다. 형제간의 경쟁이나 비방은 서로 사랑하는데 오히려 방해가 되며 해서도 안 되는 일인 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죄의 본성이 남아 있는 인간이 타락한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는 경쟁은 평생에 걸쳐 결코 피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은 신자들끼리, 심지어 부부 사이, 부모 자식 간에도 그 종류와 질은 달라도 경쟁은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경쟁은 긍정적인 결과 보다는 부정적인 열매를 맺는 것이 보편적입니다. 아무리 선의로 한 경쟁이 그 결과 또한 선하게 끝났어도 알게 모르게 부작용과 여진은  남습니다. 경쟁이란 한 사람이 승하면 다른 사람은 패하게 되는 것이 그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는 가만히 있고 남의 허물과 약점을 들추기만 해도 자기는 반사적으로 올라간다는 것을 완악한 인간 본성이 잘 알고 있습니다. 신자 또한 천국 갈 때까지도 자기 눈의 들보보다 남의 눈의 티끌을 더 크게 보려는 습성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신자의 바로 이런 체질까지도 잘 아십니다. 그래서 현명한 부모처럼, 페르시아의 장인처럼 하나님도 반드시 죄를 개별적으로 은밀히 용서해서 다른 사람이 절대 모르게 해주십니다. 신자들 사이에 전혀 불필요한 도덕적, 영적으로 우월을 다투는 상황과 기회 자체를 원천 봉쇄하여 서로 온전한 사랑을 하도록 하려는 뜻입니다.

신자는 정말 은밀히 보시는 하나님에게 은밀하게 모든 죄를 자백하고 용서받아야 합니다. 각자가 일대일로 하나님과 진정한 사랑의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 사랑을 받은 자끼리 온전한 사랑을 해야 합니다. 나아가 아직 그런 용서를 받지 못한 자에게 그분의 사랑을 전해야 합니다. 요컨대 하나님의 용서를 이웃 사랑에 적용시키지 않고 자기 혼자 깨끗해지는 것으로 제한시켜버리면 아직도 그분의 온전한 용서를 받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는데 그 이유는 그 체질이 진토임을 알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신자의 체질이 진토 같으니까 하나님이 불쌍히 여길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대신에 신자부터 자신이 진토임을 잘 알아서 허물과 상처와 죄악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그분께 나아가는 것이 참 경외라는 뜻이 됩니다. 그 의식이 거창하고 화려하다고 해서 특별히 신자들이 스스로 깨끗하다고 자신하기에 그분의 일을 해드리겠다고 나선다고 그 예배가 온전한 예배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과 삶에 개입하여서 고쳐주어 다시 가치 있는 새 일을 시작시키지 못할 정도로 심각하고 큰 실수, 약점, 허물, 죄악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런 참 용서를 받아 본 자만이 참 경외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참 용서를 갈망하는 자만이, 그래서 그 용서를 다른 사람에게까지 흘러가게 하려는 진정한 소원이 있는 자만이 하나님을 온전하게 경외할 수 있습니다. 지금 당신은 참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다른 말로 참 용서를 받고 있습니까? 최소한 참 용서를 소원이라도 하고 있습니까?  

3/21/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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