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진정으로 회심했는가?

조회 수 519 추천 수 16 2009.09.21 17: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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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진정으로 회심했는가?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여 주여 뉘시오니이까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네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섰더라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사흘 동안을 보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全廢)하니라.”(행9:3-9)


세계 최초로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알프레드 노벨은 당연히 거부(巨富)가 되었습니다. 하루는 어떤 신문사에서 동명이인(同名異人)의 죽음을 노벨로 착각하고 “죽음의 상인 사망하다”는 제목으로 크게 기사화했습니다. 폭탄을 제조해 돈을 벌었으니 죽음을 팔아서 부자가 되었다는 조롱의 뜻이었습니다. 그 기사를 읽어본 노벨은 크게 깨닫고 그 때부터 평화와 남을 위한 대의(大義)의 일생을 보냈고 또 노벨상도 제정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노벨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인생의 극적인 전환을 이룹니다. 노벨은 명목상으로만 죽었다 살아났지만 바울은 실제로 완전히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보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했다는 것은 무덤 속에서 시체로 지낸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래서인지 많은 신자들이 바울의 회심 사건에서 외적으로 일어난 신비한 현상에 너무 관심을 쏟습니다. 예수님이 당신을 핍박하는 그를 완전히 꼼짝 못하게 만들어 항복시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정도는 예수님으로선 언제든 더 극적인 모습으로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보다 그의 내면의 변화에 주목을 해야 합니다.  

만약 멀쩡하던 눈이 아무 이유 없이 갑자기 실명(失明)이 되어 다시 나아질 것이라는 가능성이 전혀 안 보인다면 어떤 심정이 들겠습니까? 그것도 하나님을 향한 열심에 가득 차서 그분의 일을 성실하게 수행하고 있을 때에 그랬다면 말입니다. 비유컨대 목사가 수천 명의 청중 앞에서 설교하고 있는데 갑자기 눈이 멀어 원고가 하나도 안 보인다면 어떻게 반응하겠습니까?

나아가 자기가 볼 때는 하나님을 반역하는 이단이었던 자들 중에 그것도 전혀 이름도 없는 한 평신도에 의해 보살핌을 받고서야 되살아났습니다. 말하자면 설교하다가 쓰러진 목사가 자기 교회 신자들은 손도 못 쓰고 있는데 우연히 참석한 이단 종교의 신자가 와서 하나님께 기도하여 고쳐 준 것입니다. 그야말로 그의 심경이 정말 복잡다단했지 않겠습니까?

삼 일간 예수님이  봉사로 만들고 식음을 전폐케 한 것이 단순히 그 능력에 놀라라고 한 것보다는, 그 시간 동안 다른 아무 것도 하지 말고 오직 진지하고도 심각하게 예수님 당신에 대해서 생각해 보라는 뜻 아닙니까? 사울이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다고 합니다. 참으로 오묘하지 않습니까? 그를 완전히 눈 뜬 봉사로 만들었습니다. 말 그대로 눈은 떴는데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자가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이 사건이 있기 전까지 그의 진짜 정체성이 무엇인지 예수님이 그대로 깨닫게 해 준 것입니다. 그는 영적으론 눈 뜬 봉사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열정은 당대에 최고라고 스스로 여겼는데, 즉 시력이 가장 좋다고 자부했지만 알고 보니 봉사였던 것입니다. 예수가 이단의 괴수가 아니라 자신이야말로 그런 자였다고 시인케 된 것입니다.

그가 회심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물론 그를 꼼짝 못하게 만든 예수님의 권능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도 예수님이 하나님과 방불(彷佛)한, 아니 하나님만이 보일 수 있는 능력을 시행했다는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고 어쩌면 직접 본 적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다 이제 실제 자기 체험으로 알게 됐습니다. 자기를 봉사로 만들었으니 예수님이 봉사도 낫게 했다는 소문이 실제로 일어난 일이었음을 쉽게 인정했을 것입니다. 불치병을 앓는 생판 불신자가 마지막 수단으로 기도원에 올라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받고 치유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 때 바로 예수님을, 특별히 그 권능은 쉽게 믿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그가 회심하는데 삼 일이 더 필요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크신 능력에 항복하는 것만으로는 진정한 회심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로선 예수가 지상에서 하신 사역과 십자가에 죽고 부활한 모든 것을 이제 그대로 완전히 인정하든지 아니면 끝가지 아니라고 버티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선 것입니다. 그러려면 사람은 오직 성령으로 거듭나야 구원 받는다는 가르침도 당연히 받아들이든 거부하든 해야 했습니다.

바꿔 말해 지금껏 철석같이 믿고 있었던 “아브라함의 육적 혈통을 이어받은 자들이 율법대로 제사와 계명을 준수해야만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이 된다”는 원리를 포기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앞에서 든 비유를 다시 인용하자면 수천수만 명의 추종자들이 있는 어떤 종교의 교주가 수십 년 동안 이뤄놓은 그 모든 기득권을 다 포기하고 완전히 맨 몸으로 다른 종교의 평신도부터 시작해야만 하는 단계에 이른 것입니다.    

그가 회심한 후에 결정적으로 변화된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몰랐다가 알게 된 것입니까? 하나님이 봉사도 눈 뜨게 하고 눈 뜬 자도 봉사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까? 본인이 죄를 짓지 않고 선하게 살겠다고 결심한 것입니까? 하나님의 계명대로 준수하며 신앙생활을 성실히 할 것이라고 헌신한 것입니까? 그 어느 것도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그런 부분에선 이미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최고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오직 하나 예수님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철저히 깨달은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그 사실도 그가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와서 인간의 죄를 사하려고 비천한 죄수의 모습으로 스스로 십자가에 돌아가셨다가 다시 부활하여 하늘에 올랐다는(예수님의 음성을 하늘에서부터 들었음) 진리를 온전한 개인적, 인격적, 체험으로 알게 된 것입니다.

아무 공로나 선행 없이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 도대체 말도 안 된다고 믿었던 그였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그런 이단을 없애야 한다고 설쳤습니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은 자신의 그런 열성과 진심을 전혀 받아들여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가 가장 사랑했던 대상으로부터 배신을 당한 셈입니다. 아니 사실은 그 혼자 짝사랑했던 것에 불과했습니다.

그가 가졌던 신관과 구원관은 어디까지나 인간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자기 혼자 일방적으로 생각했던 것에 불과했습니다. 지성과 도덕성과 종교성에서 최고 수준이었던 자가 최고로 심오하게 한 생각이니 맞는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개념이었지 하나님의 진짜 생각과는 아무 관계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제 그로선 세상에서 이루고 쌓았던 모든 인간적 지식을 송두리째 버려야 했습니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그 십자가에 자신이 대신 죽는 체험을 하지 않으면 구원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절감한 것입니다. 자신이 철두철미하게 깨어지는 과정을 거쳐 이제 하나님의 일방적인 용서를 겸손하게 그대로 받아들여야만 했던 것입니다.  

예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인정하면 그것을 이해조차 못하는 세상은 당연히 부인해야 합니다. 인간과 세상을 짝하면 예수님과 등을 져야 합니다. 사람의 살고 죽음의 분기점이 그분의 십자가임을 절감해야 합니다. 예수가 없으면 살아도 죽은 것이며 예수가 있으면 죽어도 산다는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한 인간의 전 존재와 일생이 예수 안에 붙잡혀 있느냐 마느냐로 그 인간의 진짜 정체성이 나눠져야 합니다.

이처럼 진정한 회심은 반드시 사울(큰 자)이 바울(작은 자)로 바뀌는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과 사람 앞에서 가장 큰 자였던 자가 가장 작은 자로, 하나님 앞에선 가장 작은 자였던 자가 가장 큰 자로 바뀌는 것입니다. 당신을 끝까지 훼방하던 그를 예수님은 벌주지 않고 오히려 끝까지 사랑하고 계심을 그는 절감했습니다. 그도 예수님처럼 사흘간 무덤에 있다가 부활한 것입니다.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난 것입니다.  

요컨대 하나님을 믿은 것만으로는 신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예수를 믿어야 만합니다. 그것도 교리를 믿고 계명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바울처럼 예수 때문에 옛 자아가 완전히 부서지는 실질적인 체험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오직 예수만을 위해 살도록 그 인생의 목적과 방향이 완전히 뒤바뀌는 새 자아가 분명히 형성되어야 합니다.

당신은 진정한 회심을 하셨습니까? 다른 말로 옛 사람이 죽어 없어진 체험이 있습니까? 그래서 오직 예수만이 삶과 인생의 목표가 되어 있습니까? 혹시 하나님은 잘 믿는데 아직도 예수에 대해서 미심쩍은 부분이 있습니까? 그럼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되어 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십자가를 통해서만 인간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가로막는 심연(深淵)은 십자가라는 다리를 통하지 않고는 건널 수 없기 때문입니다.

3/13/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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