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신자들은 믿음의 정확한 본질과 내용은 알지 못한 채 믿음으로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다는 믿음 만능 주의 신앙에 너무 젖어 있는 것 같습니다. 성경도 신자 쪽에서 어떻게 잘 믿으면 하나님의 은혜를 더 받아 낼 수 있을 것인가에만 초점을 두고 읽습니다. 하나님 당신을 탐구해 보려는 노력은 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오직 하나님의 하나님 다우심을 계시해 놓은 책입니다. 또 그 계시는 골고다 언덕에서 궁극적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성경 말씀을 전통적인 시각과는 다르게 접근하되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님의 십자가만을 통해 증거 하고자 합니다.

주일날 짜장면 사 먹어도 되나요? (마12:1-8)

조회 수 6503 추천 수 114 2005.01.25 15:49:36

마태복음 강해(134) 1/23/2005

“그때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실쌔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먹으니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고하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자기나 그 함께한 자들이 먹지 못하는 진설병을 먹지 아니하였느냐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면 무죄한 자를 죄로 정치 아니하였으리라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주일날 짜장면 사먹어도 되나요?

어떤 사람이 목사에게 주일 예배 후에 “목사님 오늘 짜장면 사먹어도 되나요?”라고 물었습니다. 목사님이 점잖게 “그러시면 안 되지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럼 짬뽕은요?”라고 또 물었습니다. 아마 우스개 소리로 지어낸 이야기이겠지만 얼마든지 있음직한 일입니다. 목사는 주일을 거룩하게 지켜라는 계명을 너무 문자적 형식적으로 해석한 것입니다. 반면에 신자는 혹시라도 잘못을 범해 하나님께 벌을 받을까 염려했고 나아가 명시적 규정에 위반만 되지 않는다면 자기 마음대로 하고싶다는 뜻을 드러낸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잘못된 율법체계를 수고와 무거운 짐이라고 지적하시고 당신을 따르는 자에게는 쉽고 가볍게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본문이 ‘그때에’라고 시작하듯이 그 말씀을 하신 직후에 실제로 그 약속을 실현해 보인 것이 본문의 내용입니다.

당시 유대의 밭 고랑은 넓어서 사람이 다니는 통로의 역할을 했습니다. 바리새 율법에 따르면 안식일에 고랑 사이를 지나다 우연히 발에 밟힌 이삭은 먹어도 되지만 이삭을 일부러 따서 손으로 비벼 먹는 것은 금지했습니다. 추수, 탈곡, 정미의 노동을 했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시장하여’ 의도적으로 이삭을 따서 ‘잘라 먹은’ 것입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이 손으로 비볐기에 노동한 것으로 걸고 넘어진 것입니다.

그에 대해 예수님은 구약 성경에 기록된 두 가지 예를 들어 제자들의 행위를 옹호했습니다. 먼저 다윗이 사울의 추격을 피해 부하 몇 명만 데리고 피신 중에 있었던 사건(삼상21:1-6)을 예로 들었습니다.  도망 다니다 보니 아마 며칠 굶었던 것 같습니다. 아직 솔로몬의 성전이 건축되기 전이라 성막이 놉 지방에 있을 때 그곳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굶주림에 견디다 못해 성막 안으로 들어가 진설병을 제사장에게 사정해 얻어 먹게 됩니다. 진설병은 12지파를 상징하여 누룩이 안 들어간 무교병으로 만들어 성막 안 상 위에 매 안식일마다 제사장이 새로운 것을 진열하고 묵은 떡을 교체해 냅니다. 그 묵은 떡은 율법에 따르면 제사장만이 먹을 수 있는 거룩한 떡인데 다윗 일행은 그것도 안식일에 제사장이 아닌 신분으로 그 떡을 먹은 것입니다. 분명히 그들은 명시적 규정을 어겼지만 제사장은 벌을 받지 않았고 다윗은 오히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종으로 하나님의 일에 크게 쓰임 받았습니다.

두 번째 예로는 레위기(24:8)나 민수기(28:9-10)의 율법에 따르면 안식일에 제사장이 바로 그 거룩한 떡을 교체하거나 동물 희생 제물을 잡아 바치는 행위를 해도 노동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안식일에도 맡은 직분에 따라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일날 경찰이 근무를 쉴 수는 없지 않습니까? 요즈음으로 치면 성도 교제를 위해 주일날 교회에서 식사 준비를 하거나 피자를 시켜 올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뜻은 한 마디로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막2:27)라는 것입니다. 안식일에 정 배가 고프면 짜장면 아니라 짬뽕을 사 먹어도 됩니다.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붙잡아”(마12:11) 내듯이 주일날 맹장염이나 심장병 같은 응급환자가 있으면 의사는 수술해야 합니다. 오늘날에 와서는 사실 이런 부분은 성경 규정을 몰라도 (실제로 성경에 구체적인 규정도 없지만) 상식으로 판단하여 큰 문제가 없으면 주일이라도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정말 주일 날 모든 것을 다 해도 되는가?

미국 생활은 시간이 너무 빠듯합니다. 개인적인 시간이라곤 겨우 주일 하루뿐인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예배 마치고  쇼핑이나 밀린 여러 집안일들을 하고 간혹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영화나 운동 경기 구경을 갑니다. 그런데 아무리 주일이 신자를 위해 있다고 하더라도 정말 모든 것을 다 해도 되는지 항상 신경이 쓰입니다. 물론 도박장이나 나이트 크럽에는 당연히 안 가지만 배 고프면 집에서 라면정도로만 끓여 먹는 것이 옳지 않은가 하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정말 집에 먹을 것이 없으면 햄버거 하나로 간단하게 때워야지 생선초밥 뷔폐에 가서 양껏 먹어도 되는지 구분이 잘 안 됩니다.

한국 신자들은 뭐든지 지나친 것은 무조건 나쁘고 중용(中庸)이 미덕이라는 유교 사상에 너무 젖어 있는 것 같습니다. 주일날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는 잣대도 질적 양적인 수준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일인당 몇 불짜리 식사까지는 외식해도 되고 그것을 넘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금액으로 따질 수는 없지만 다윗이 성전에서 제사장만이 먹을 수 있는 거룩한 떡을 먹은 것만큼 그 정도가 지나친 것이 따로 있겠습니까?

자꾸 목사에게 이것을 해도 되는지 저것은 하면 안 되는지 묻는 까닭은 솔직히 목사가 오케이 하면 신나게 사먹고 혹시라도 나중에 문제가 되면 하나님에게 목사 핑계를 대겠다는 심보입니다. 하나님은 신자의 핑계와 변명에는 절대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신자를 무시하고 상대를 안 하시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전에 이미 신자의 심중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신자에게 주시는 상벌에 중보자가 더 이상 필요 없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이후로는 대속제물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신자가 신앙이 바로 서지 못해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는 것은 오직 신자 자신의 책임입니다. 나아가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로는 당신의 뜻을 선지자를 통하지 않고도 신자에게 내주해 있는 성령을 통해 말씀하시고 알게 하십니다. 따라서 신자가 주일날 해서는 될 일과 안 될 일도 신자 스스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성경 말씀을 읽고 기도하면 됩니다.

베드로 사도가 “경의 예언을 사사로이 풀지 말라”고 하면서 그 이유는 성경이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어”(벧1:20,21) 지어졌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을 보되 성령님께 지혜를 구하며 읽어야 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성경을 푼다는 것이 무조건 도덕적으로 고상하며 종교적으로 거룩하게 해석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저자가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지은 책이므로 독자도 성령의 감동을 구해 저자가 당시에 어떤 감동을 받아서 적었는지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저자가 지은 동기와 목적을 찾아 읽는 것입니다. 안식일 규정을 어떻게 지켜야 할 것인가도 본문에서 저자 마태의 의도, 정확하게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초점을 계속 묵상하며 살펴 보아야 합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므로 배가 고프면 사 먹으면 된다고 해석하는 것으로 그치면 자동적으로 인간의 유익을 위해선 무엇이든 해도 된다는 데 까지 확대 해석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자꾸 과연 이런 것까지 해도 되는지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없습니다. 왜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지 예수님의 말씀의 배경에 있는 숨은 뜻은 모르고 단지 표면적으로 해석하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숨은 의도

예수님이 제자들의 행위를 정당하다고 옹호한 더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성경을 다시 세밀하게 읽으면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의도를 알려면 어떤 주제를 가지고 어디에 포커스를 맞추어 말하고 있는지 살펴야 하고 또 그것을 알기 위해선 자꾸 반복해서 강조한 부분을 찾으면 됩니다.

4절에서 다윗 일행이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진설병을 먹었다고 했습니다. 또 5절에 따르면 율법에서 제사장들이 안식일 날 노동하는 것을 예외로 해 준 이유는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6절에서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 당신이 성전보다 크다는 뜻입니다.

성전에서 동물로 희생제사를 드리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사함 받고자 하는 것이 근본 목적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그 목적을 이루셨습니다. 성전의 휘장 가운데로 새롭고 산 길을 열어 그 피의 공로를 믿는 자는 언제 어떤 모습이든 성소로 들어갈 담력을 얻게 되었습니다.(히10:19,20) 성전 제도로 예표된 하나님의 구원의 뜻을 완성시켰습니다. 당연히 예수님이 성전보다 크실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7절에서 ‘나-하나님과 그분의 본체이신 예수님-는 제사 대신에 자비를 원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과 성전 제도를 주신 것은 당신 앞에 스스로 겸비하게 나와 죄를 회개하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것이 근본 목적이지 제사 자체를 받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8절에서 ‘인자 되시는 메시야 예수님 본인이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셨습니다. 안식일제도를 제정한 하나님 당신일 뿐 아니라 죄사함이 완성된 당신의 십자가 복음 안에 들어와야만 참 안식을 누릴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설명의 초점이 어디로 모이고 있습니까? 자꾸 반복해서 강조하는 단어는 무엇입니까? 성전입니다. 예수님 당신이 성전이자 안식일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숨은 뜻은 다윗과 제사장이 안식일 규정에서 예외로 인정 받을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성전 안에서 그 행위를 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제자들도 성전보다 크신 이이자 안식일의 주인 되시는 예수님과 함께 있을 때에 이삭을 따 먹었기 때문에 죄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제자들 또한 성전 안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다윗의 경우만 예로 드셨다면 안식일이 인간을 위해 있는 것이니까 신자가 배 고프면 사 먹어도 된다는 해석으로 그쳐야 합니다. 그러나 제사장이 안식일 성전 안에서 노동 행위를 하는 것은 배 고픈 것 즉 인간의 필요와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단지 맡은 직분 때문에 예외가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다윗도 피난 중에 있었지만 하나님의 종으로 사실은 하나님과 항상 동행하고 있었고 주의 종으로서 직분을 행하고 있었던 것과 다름 없다는 것입니다.           

안식일에 신자가 배 고프면 밥을 사먹어도 되는 것이 바리새인들의 율법 체계가 형식적 가식적으로 잘못되었으므로 안 지켜도 된다는 의미는 단지 부차적인 이유일 뿐입니다. 근본적으로 안식일에 제자들이 이삭을 먹은 것이 죄가 아닌 이유는 예수님과 함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안식일이 인간을 위해 있지만 안식일의 주인 되는 예수님과 함께 있지 않으면 사실은 어떤 안식도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불신자가 아무리 주일날 휴식하고 신나고 재미 있게 놀아도 그 속에 참 안식이 없지 않습니까? 본문의 뜻은 한 마디로 “예수님과 함께 하면 무슨 일을 해도 잘못이 아니고 함께 하지 않으면 어떤 일을 해도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부분에 정말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까?

도박장도 성전이다.

주일날이 마침 엄마 아빠의 결혼 25주년 기념일이라고 합시다. 자녀들이 돈을 모아서 최고급 호텔에서 일인당 수십 불 짜리 풀코스 디너로 대접하고 백화점에 가서 한 벌에 수백 불하는 정장을 사드린다고 합시다. 아무리 주일이라도 진심으로 기쁘게 식사하고 감사함으로 쇼핑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단 자녀들이 어려서부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정말 깨끗하고 순수하게 자랐고, 현재도 각자 맡은 일에서 예수 믿는 자답게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으며, 평소 때는 아주 검소하게 살고 있다면 말입니다.

그러나 부모가 평생 당신들을 위해선 먹을 것 제대로 안 먹고 입을 것 하나 사지 않으며 희생하며 사셨던 모습이 너무 안타까워 다른 날도 아닌 은혼식에 부모를 단 한 번이라도 진심으로 최고급으로 대접하고 싶었다면 그 마음에 예수님이 함께 하십니다. 아무리 화려하고 비싼 최고급 호텔과 일류 백화점이지만 그곳이 성전인 것입니다. 물론 서로 간에 뜻을 확인하고 그 마음만 받기로 하고 모든 비용을 헌금이나 구제에 돌린다면 신자로서 더 바랄 것은 없겠지만 항상 그래야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전도를 해야 할 가까운 불신자 친구가 있는데 그저 세상 재미만 쫓아 일요일이면 도박장과 술집에 가서 하루 종일 살고 있습니다. 일주일 내내 각자의 직장 일로 바빠 도저히 만날 시간이라고는 주일 밖에 없다고 합시다. 그래서 교회에서 장로 직분을 맡았지만 예배 후에 모든 교회 행사는 뒤로 하고 그 친구를 위해 간절히 기도한 후 도박장을 찾아가면 죄가 되겠습니까? 가서 도박이나 술을 함께 하지는 않고 밤 늦도록 진심으로  복음을 전하고 섬긴다면 안식일을 위반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 도박장 안에도 주님은 함께 하셨고 나이트 크럽도 성전으로 바뀝니다.    

무엇을 먹든지 마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그러나 과연 주일 날 짜장면 사먹으면 안 되고 종교적 행사를 거룩하고 거창하게 해야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무엇을 먹든지 마시든지 반드시 예수님과 함께 하라는 것입니다. 일차적으로는 먹고 마시는 것 전부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받게 된 것임에 감사해야 합니다. 삶에 필요한 모든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요소와 자원 전부가 신자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님을 겸손히 인정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먹고 마시는 것 같은 아주 일상적인 일에도 반드시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이뤄지며 그 일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이름이 증거 되며 복음의 열매가 맺힐 수가 있음을 확신하며 행해야 합니다. 바울 사도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자신은) 주의 것”(롬14:8)이라고 고백한 그런 각오와 헌신으로 매사에 임해야 합니다.  신자가 하는 일이 전부 예수님이 하는 일이요 신자 또한 그 분이 시키는 일만 해야 합니다.

기독교를 가난하게 만들지 말라

신자가 주일날 기껏 짜장면을 사 먹을 수 있을까 없을까를 따지는 것은 기독교 신앙을 얼마나 가난하고 초라하게 만드는 것인지 모릅니다. 신자들 스스로 예수를 믿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 줄 모르고 주님을 깎아 내리거나 부인하는 행위를 자초한 것입니다.

예수를 믿느냐 안 믿느냐는 인간이 살아 있는가 아니면 죽어 있는가 둘 중 하나로 결정되는 문제입니다. 인간이 정말 참 인간답게 사느냐 아니면 짐승처럼 사느냐는 전적으로 예수와 함께 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좌우됩니다. 예수가 함께 하지 않으면 생물학적으로는 살아 숨쉴지 몰라도 산 송장이나 다름 없습니다.

세상에 어떤 인간도 아무리 도덕적으로 착하고 인격적으로 고상하고 배운 것 많아 교양과 기품이 흘러 넘쳐도 예수가 함께 하지 않으면 그 속의 영은 죽어 썩어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인격체 전부가 정말 더럽고 추한 죄 덩어리 뿐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뜻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자존심과 체면과 위신으로 똘똘 뭉쳐있습니다. 무엇을 먹든 마시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는 지각이 전혀 없고 단지 자기 자신의 만족과 쾌락만을 위해서 합니다. 기껏 의롭다는 사람이라야 세상 사람의 칭찬을 바라는 정도이지 하나님이 자신이 하는 일을 통해 무엇을 바라는지 아예 관심이 없습니다.  

반면에 신자는 예수님이 함께 하기에 전혀 다릅니다. 간혹 옛 본성이 남아 실패할 때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그 영혼이 바뀐 것입니다. 무엇을 하든 예수님과 함께 하기 때문에 잘못할 수 가  없고 예수님이 함께 하므로 신자가 하는 모든 것은 거룩한 하나님의 일을 하게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란 종교를 택해 예수를 잘 믿었기 때문에 예쁘게 봐서 상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을 통해 예수님의 신령하고도 거룩한 참 생명의 힘이 신자의 모든 인생을 주관하고 있기 때문에 신자가 더럽고 추한 일을 할래야 할 수조차 없습니다. 나아가 전 우주만물을 지으시고 세상만사를 섭리하시는 그 분의 권능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 죄악된 땅을 뒤엎고 하나님이 처음 창조하신 그 뜻대로 거룩하고 아름답게 회복시킬 수 있는 자는 오직 신자뿐입니다.  

불신자들이 신자를 볼 때에 그 심령에 찔림을 느끼게 됩니다. 세상의 의인들이 한두 가지 선행으로 저들을 감동시키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차원이 다릅니다. 신자를 보는 불신자의 전 인격 전 인생 자체를 완전히 바꿀 수 있습니다. 우리의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로 세상 끝날 까지 땅 끝까지 신자와 함께 하는 예수님의 권능 때문입니다.

간단하게 말해 신자는 하나님의 일을 대신하는 자입니다. 신자는 예수를 믿었고 그 분이 함께 하므로 예수님 당신이 말씀하신 그대로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요14:12) 할 수 있습니다. 예수를 믿었기에 이미 의인이요 성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함께 하므로 신자가 하는 모든 일이 거룩합니다. 하나님이 결국은 합력해서 선으로 만들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주일 날 예배를 드리는 참 목적

솔직히 주일날 어떤 심정으로 교회에 오십니까? 지난 주 큰 탈 없었고 잘 먹고 잘 살은 것에 대해 감사하며 예배 드리면 새로운 주도 그렇게 될 것을 기대하고 또 소원하는 것들을 기도하면 이뤄질 것을 믿기 때문입니까? 물론 다 좋습니다. 그런데 신자가 주일을 보내는 의미가 그 정도라면 안식일이 인간을 위해 있는 것이니까 배 고프면 짜장면을 사먹어도 된다는 정도에서 크게 나아진 것이 없지 않겠습니까?

신자가 주일을 지켜야 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주일을 지키지 않는 자와는 자신이 이제 완전히 달라진 것에 감사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 예배 드려야 한다는 것을 꿈도 꾸지 못하고 오히려 완악하게 거부하는 자와는 달리 예배 드리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확연하게 드러내 보여야 하고 그 차이를 더 크게 벌려야 합니다.

예수를 믿어 더 착해지고 거룩해졌다는 우월의 표시가 절대 아닙니다. 신자가 구원 받은 은혜가 얼마나 큰지, 예수를 믿어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부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예수님께 소속된 그 위치와 특권들이 엄청나게 고귀한지 알기에 너무나 복된 인생으로 바뀐 것에 대한 확신과 감사가 누가 봐도 분명하게 드러나야 합니다. 특별히 불신자가 봐서 알아채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예수 믿기 전에는 100% 실패의 삶을 살았고, 본질상 진노의 자녀로 세상의 공중 권세 잡은 사단의 종이었으며, 하나님과 담을 쌓고 원수로 지냈으며, 이웃과 사회와 이 세대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식은 전혀 없었고, 하나님이 자신을 이땅에 보내어 이루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에 대해선 아예 감각조차 없었던 자였음을 철저하게 자각해야 합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예수님이 먼저 신자를 찾아 온 이후의 인생은 100% 성공으로 바뀌었고, 신자의 조건과 자격과는 한치의 상관도 없이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에 흘리신 피로 인해 그 분께 속하게 된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그래서 흑암에서 빛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그 신분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오직 하나님께만 경배와 찬양을 돌려야 합니다.

나아가 본인이 달라진 것에 대한 감사로 끝나선 안 됩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통해서 얼마나 엄청나고도 신비한 일을 이루고 계시는지 확인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세상을 뒤엎을 수 있는 그 분의 능력을 재충전 받아 가야 합니다. 재충전 받는다고 해서 자신에게 함께 하고 있는 하나님의 능력이 줄어들거나 없어진 것이 아닙니다. 신자와 항상 함께 하시는 예수님의 권능은 하늘과 땅 위의 모든 권세 그대로 단 한치의 가감이나 변경이 없습니다.

신자는 주일날  단지 자신을 향한 주님의 뜻과 섭리하시는 원칙을 재확인하기만 하면 됩니다. 하나님은 세상 만사를 오직 신자를 중심으로 해서 진행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시각에는 신자가 속해 있는 어떤 집단이든 오직 신자만이 그 한 복판에 위치할 뿐입니다. 신자가 하는 대로 마음 먹은 대로 기도하는 대로 심지어 표현이 좀 이상하지만 하나님께 미주알고주알 고자질 하는 대로 하나님은 그 조직을 이끌어 주십니다. 단 신자가 모든 생각과 간구의 근본 목적을 오직 그 조직의 모든 구성원의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게 하고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일을 하겠다는 데에 두며 그래서 그 일에 자기의 전존재와 전삶과 전인생을 완전히 걸었다면 말입니다.

살아도 주를 위해서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산다면 오직 신자에만 하나님이 포커스를 두고 신자가 현실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있던지 그가 속한 가정, 직장, 학교, 사회, 민족과 국가를 거룩하게 변화시켜 주십니다. 이제부터 제발 신앙의 수준을 한 단계 높여야 합니다. 특별히 신령하고 거룩해지라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것은 무엇이든 옳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대신에 예수님과 함께 하지 않으면 더러운 죄밖에 행할 것이 없음을 믿는 것입니다.

모세를 하나님이 떨기 나무 불꽃으로 부르셨을 때에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하셨습니다.(출3:5) 광야 한 복판에 있는 호렙산 기슭의 땅이 아름답고 좋을 리 만무했습니다. 그 황량한 땅도 하나님이 임재해 있기 때문에 거룩해진 것입니다. 모세가 신발을 벗었더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이 모세의 지팡이가 되어주셔서 80넘은 노인이 세계 최강국을 단독으로 상대해 승리케 하지 않았습니까?


날마다순종

2020.10.17 16:08:19
*.14.99.253

'이제부터 제발 신앙의 수준을 한 단계 높여야 합니다. 특별히 신령하고 거룩해지라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것은 무엇이든 옳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대신에 예수님과 함께 하지 않으면 더러운 죄밖에 행할 것이 없음을 믿는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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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3 주일을 꼭 지켜야 하는가?(마4:8-11) [4] 운영자 2006-08-06 3450
232 인생에서 꼭 이루어야 할 두 가지(엡2:4-7) [4] 운영자 2007-03-01 3281
231 회개가 아니라 회심이다. (행3:19‐26) [3] 운영자 2008-12-31 3219
230 기도로 염려가 없어지지 않는다 (마6:25) [2] 운영자 2004-01-02 3167
229 주께 모든 것을 내려 놓는다는 의미는? (마7:24-27) 운영자 2004-04-28 3076
228 당신은 지금 행복합니까?(마4:23-5:3) [4] 운영자 2007-03-15 3069
227 종신 운전수와 평생 식모 (마 5:16) [5] 운영자 2003-06-16 3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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