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하면 통한다.(窮則通)

조회 수 1709 추천 수 221 2007.07.09 14:46:50
궁하면 통한다.(窮則通)


아침 산보 길에 우산을 하나씩 들고 다니는 중국인 세 모녀를 가끔 만납니다. 간혹 야생 동물이나 고삐 풀린 개를 만날 수 있어 건장한 남자도 작대기를 들고 다니는 경우는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적당한 나무 막대가 없어서 우산을 대신 들고 다니나보다 생각했습니다.

그럼에도 아무래도 촌스럽게 보였습니다. 이곳 LA는 일 년 내내 비라고는 거의 오지 않으므로 우산 자체가 생경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문득 작대기가 있어도 일부러 우산을 들고 나오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름에는 아침에도 강하게 쬐는 햇볕을 가리고 방어용 무기로도 쓰는 일석이조를 노렸을 것 같아 이상하게 보았던 제가 도리어 어리석게 여겨졌습니다.  

세계 최고 스포츠 용품 회사인 미국의 NIKE가 한국에 처음 진출할 때에 아주 고심했던 부분이 있습니다. 미국인은 선수가 아니라도 운동 종목에 따라 신발과 유니폼을 각기 다르게 갖춥니다. 그래서 다양하게 만들어 팔려고 계획했지만 한국인들은 만능 운동화와 추리닝 한 벌로 모든 운동을 다 소화해버립니다. 지금은 한국도 사정이 많이 달라졌겠지만 이전에는 미국식 마케팅 전략이 먹힐 리가 없었습니다.  

운동뿐 아니라 매사에 그렇습니다. 미국은 어떤 일이든 그에 꼭 적합한 도구가 있고 또  그대로 사용하면 일의 효용성을 아주 높일 수 있습니다. 각 가정의 차고에는 한국의 어지간한 전문가보다 장비가 더 많습니다. 반면에 한국인은 망치, 드라이버, 톱 같은 기본 장비로 어지간한 일은 다 해치웁니다.

오래 전에 ‘맥가이버’라는 TV 시리즈가 크게 히트 쳤습니다. 기본 도구 몇 가지가 함께 붙어있는 스위스 육군용 작은 칼 하나로 어떤 위기라도 다 해결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적절한 도구와 방법을 택해야만 일을 처리할 수 있다고 믿는 서양인들의 직선적 사고를 뒤집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산 세 모녀처럼 동양인은 일상에서부터 원형적인 사고방식으로 융통성 있게 처리하기 때문에 일찍이 맥가이버로 활동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렇게 된 것이 사고방식의 차이도 있지만 경제 사정이 서양보다 못했기 때문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이 빈약하니까 무엇이든 활용해야 할 필요가 있어서 자연히 융통성이 많아진 것입니다. 궁하면 통한다(窮則通)는 말 그대로입니다. 또 역으로 그래서 사고방식이 원형적으로 되었는지 모릅니다.  

종교적인 면에서도 이런 특징은 그대로 드러납니다. 범신론이나 자연신론 같은 사상이 동양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현대의 다원화된 종교를 있는 그대로 포용해 줍니다. 인간이 자연과 합체가 될 수 있으며 신의 경지에까지 오를 수 있다는 New Age 사상도 원조는 동양입니다. 종교적으로도 동양인은 멕가이버입니다. 절에 가면 부처님에게 빌고 교회 오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서 또 점쟁이는 열심히 찾아가지 않습니까?

산책길의 세 모녀의 우산이 일석이조라고 여겨졌을 때에 우연찮게 그런 동양적 포용성이 기독교 신앙에 결코 방해만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습니다. 나아가 신앙을 더 성숙시킬 수 있는 아주 좋은 방도라고 깨달았습니다. 즉 포용성을 인간인 자신보다는 하나님에게만 적용하는 것입니다. 그분에게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하나님이야말로 맥가이버 중에 최고의 맥가이버 아닙니까? 그분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전혀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분은 궁하니까 통하는 인간적 전략은 절대 쓰지 않습니다. 아니 쓸 필요가 없습니다. 그분에게 궁한 것은 영원토록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대신에 인간이 궁할 때에 가장, 아니 절대적으로 통할 수 있는 유일한 분입니다. 궁할 때에 자꾸 인간적 해결책을 다각도로 모색하기 보다는 그분에게 모든 것을 의뢰하되 때와 방법을 완전히 오픈해 둔다면 신자에게는 어떤 위기도 결코 위기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7/10/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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