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승자박(自繩自縛)하는 신자

조회 수 709 추천 수 76 2010.04.02 16:52:31
자승자박(自繩自縛)하는 신자


제 방에 전기 불이 아무 이유 없이 들어왔다 나갔다 해서 애를 먹었습니다. 전기 같은 과학적 시스템에 아무 이유가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아무리 원인을 찾으려 해도 못 찾았다는 의미입니다. 전기회선이 여러 부분으로 나눠져 각기 차단장치(circuit breaker)가 따로 있는 미국 집의 특성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부엌 스위치 접촉이 제대로 안 되어 불이 안 들어오면 제 방 불도 같이 나가곤 했습니다. 몇 달 전에 스위치를 교체하니까 괜찮아져 문제가 다 해결된 줄 알았는데 또 그런 일이 생겼던 것입니다. 스위치가 벌써 낡아졌는지 점검해봤지만 아무 이상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두 주 쯤 지난 후에 전기와는 전혀 문외한인 집사람이 드디어 그리고 정말 우연히 그 원인을 찾아내었습니다. 스위치와 조금 떨어져 있는 콘센트에 꽂힌 전기청소기 선을 빼는 순간 부엌 형광등에 잠시 번쩍하고 불이 들어왔다 나간 것입니다. 부엌 형광등 스위치가 주범이 아니라 그것과 선이 연결된 다른 콘센트가 낡았던 것입니다. 그동안 아무 죄 없는 부엌 스위치만 여러 번 해부를 당한 셈입니다.

말하자면 부엌 형광등을 켜려고 스위치를 올렸는데도 불이 안 들어오니까 무조건 그 스위치에 잘못이 있다고만 판단했던 것입니다. 그것과 연결된 다른 스위치나 콘센트에 접촉 불량이 생겨도 부엌과 제 방에 불이 안 들어올 수 있음을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입니다. 일종의 선입관이자 너무나 제한된 사고의 틀 때문에 계속 어둠에서 헤맨 것입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이 하나 틀린 것 없는 것 같습니다. 등잔이 빛을 발하므로 그 근처는 당연히 밝다고만 여깁니다. 빛을 받는 물체가 있으면 곧바로 그림자가 생긴다는 사실은 간과해버립니다. 등잔 자체도 빛을 받기에 바로 그 자리에 그림자를 만들어 냅니다. 또 가장 밝은 곳의 바로 곁이라 가장 어두운 그림자가 될 수 있습니다. 가장 어두운 그림자라면 쉽게 발견할 수 있어야 함에도 우리는 아예 등잔 근처는 어두우면 안 된다고 단정지어버리는 것입니다.

인생사에서 쉽게 해결이 안 되는 문제의 원인도 전혀 엉뚱한 곳에 있을 때가 많습니다. 진짜로 난해한 문제는 그 나타나는 증상부터 복잡하게 꼬여 있기에 처음부터 순응 내지 포기하거나, 전문가가 아닌 이상 풀어보려 노력하지 않습니다. 반면에 일상적인 것이 원인이라면 아무라도 일찍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도 저도 아니면서 잘 풀리지 않는 문제의, 우리 고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경우 그 원인이 엉뚱하다는 것입니다.  

엉뚱하다는 것은 처음에는 도무지 원인일 것 같지 않아 아예 고려 대상에도 두지 않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진짜 원인이더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오히려 좋은 일이 원인이 될 가능성이 다분히 있습니다. 우리는 환난은 나쁜 일이니까 그 원인도 반드시 나쁜 일이어야만 한다고 간주해버리기 때문입니다.        

많은 신자들이 이런 종류의 선입관과 좁은 사고를 영적인 문제에도 적용하고 있습니다. 내가 지금 열심히 말씀보고 기도하고 봉사했으니 나에게 나쁜 문제가 생겨선 안 된다고 종종 굳게 믿어버립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 가운데 있는지라 당연히 그분의 축복을 풍성히 받을 자격이 있다고 고집합니다.  

그러나 바로 이런 생각이 등잔 밑의 가장 어두운 그림자일 수 있습니다. 그런 뜨겁고도 열심인 종교행위를 가지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 앞에 자신의 공적과 자랑으로 들이밀고 있음에도 전혀 그 점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좋은 일을 했으니 당연히 좋은 결과가 나와야만 하고, 벌 받을 일이라곤 하지 않았으니 나쁜 일이 생겨선 안 된다는 뜻입니다.

기도하고 말씀 보며 봉사하는 것은 신자라면 당연히 성실히 행해야 하며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귀한 일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에게 그것마저도, 정확히는 그렇게 하면 보상이 따르리라 믿거나 기대하는 것조차 완전히 내려놓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그러할진대 신자가 그 선입관을 버리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은 완전히 그마저 내려놓을 때까지 계속 연단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아주 경건한 신앙행위가 오히려 신자를 꼼짝 못하게 묶는 결과가 되지 않습니까?

또 문제의 원인이 엉뚱한데 있다는 것은 따지고 보면 범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엉뚱하다는 뜻도 됩니다. 그분이 심술쟁이, 개구쟁이, 기분파, 막가파 같은 분이라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선입관에 묶인 인간의 좁은 사고의 폭으로는 도무지 어떤 분인지 헤아리지, 아니 어림잡지도 못한다는 뜻입니다. 말하자면 인간으로선 나빠 보이는 겉으로 드러난 증상 때문에 도무지 그 뒤에 하나님이 있으리라고는 짐작도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영적으로 더 성숙하려면 이런 영적인 선입관을 버리고 사고의 폭도 크게 늘려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의 도덕적 종교적 영적인 공적을 자꾸만 내세우려는 뿌리 깊은 습성을 끝까지 하나도 남지 않을 정도로 뽑아내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복음이 정말로 복음이 되는 원리와 내용을 견고하게 붙들어야 합니다.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결코 자랑하지 못합니다. 그분 앞에 자랑은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뿐입니다.  

또 우리의 사고의 폭을 하나님의 폭에 엇비슷하게나마 넓혀야만 합니다. 선택 가능한 옵션을 우리가 정할 것이 아니라 몽땅 오직 그분께 맡겨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 인생의 주인이 절대 아닙니다. 정말 그리스도만을 주로 모셔야 합니다. 우리 뜻과 계획을 우리 옵션으로 고집할 수는, 소망하여 기도는 하되 최종 옵션으로는, 갖고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너무나 엉뚱하십니다. 우리 선입관과 좁은 사고로는 도무지 감당 못할, 아니 아예 그 앞에 서지도 못할 만큼 엉뚱하십니다. 목사이면서도 부엌 스위치를 올렸는데도 불이 안 들어오니 부엌 스위치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정도의 영적 수준으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놀라운 은혜와 권능을 온전히 받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더더욱 아무리 신앙연륜이 늘어나도 날마다 순간마다 주님 십자가 앞에 겸비하게 엎드리는 것 외에 우리가 할 수 있고 또 해야 할 일이라곤 하나도 없습니다. 나아가 그래도 그분 앞에서만은 부끄럽지 않을 것은 당신께서 모든 수치, 고통, 죄책을 다 감당하셨기에 언제 어디서나 어떤 모습으로도 그분께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4/2/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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