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를 다녀왔습니다.

조회 수 1408 추천 수 115 2006.09.29 18:45:29
멕시코를 다녀왔습니다.


미국에 산지 16년, 멕시코와 가까운 LA에 산지 6년 만에 처음으로 멕시코를 이틀간  다녀왔습니다. 전에 말씀드린 대로 저희 집에 와 있는 유학생들이 3일간 학교 캠프에 가는 바람에 황금 같은 휴가를 받았던 것입니다. 또 어떤 분이 그런대로 싸면서도 아주 조용한 바닷가 호텔이 있다고 소개해줘 안전(?)하게 쉬고 올 수 있었습니다.

선교지 방문은 아니었지만 참으로 느낀 바가 많았습니다. 몇 년 전 단기 선교를 다녀온 둘째 아들이 미국 사는 사람은 누구라도 꼭 한번 가볼 필요가 있다고 했는데 그 말의 진의를 알 수 있었습니다. 미국과는 전혀 다른 세계였습니다. 국경을 넘어서는 순간 미국 바로 곁에 이런 세계가 있었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도로나 표지판이 제대로 정비가 안 되어 있는데다 행선지에 대한 설명을 대충 듣고 가는 바람에 국경 지나자마자 있는 고속도로를 놓치고 티화나 시내를 가로지르게 되었습니다.  아주 중요한 간선도로를 따라 가는데도 도로변 풍경은 지저분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멀리 언덕에는 한국동란 직후의 달동네에나 있었을법한 판자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습니다.

가뜩이나 멕시코는 위험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고 또 최근 티화나에 살인사건이 빈번하다는 뉴스를 본지라 조마조마하면서 운전했습니다. 조수석에 앉아 표지판을 같이 찾아 주어야 할  아내도 잔뜩 긴장해 제대로 찾아가고 있는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거의 미국으로 되돌아갈까 하는 마음이 들려는 무렵에 찾던 고속도로에 오르게 되었고 얼마 안가 목적한 호텔에 도착했습니다. 고급은 아니지만 모든 방이 바다로 향해 있고 발코니가 따로 붙어 있어 정말 조용히 쉴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커피포트와 커피를 아무리 찾아도 없었습니다. 그 정도 호텔이면 당연히 있을 줄 믿었던 우리가 잘못이었던 것입니다. 돌아와서 그 얘기를 했더니 아들이 하는 말인즉, 미국이니까 그런 것이 방마다 있고 공짜로 주지 다른 나라에는 어림도 없다는 것입니다. 한국과 캐나다를 몇 번 방문한 것 빼고는 정말 미국 아닌 곳에 나와 보기는 십수 년도 넘어 그동안 미국생활에 타성이 너무 박혀 있었던 것입니다. 다른 말로 방마다 커피를 공짜로 마음 놓고 타먹게 하는 미국이 특별한 것이지 멕시코가 비정상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유료 고속도로는 그런대로 정비가 잘되어 있었지만 유료 구간이 지나자마자 신호등이 없어 일종의 프리웨이인데도 동네 골목길에서 바로 탈 수 있게 되어 차들이 불쑥 튀어나오곤 했습니다. 고속도로에 사람이 지나다니는 것은 예사이고 심지어 중간 분리대에 술병을 들고 앉아 있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차들도 워낙 낡아 한 삼십분 가는 거리에 저희 앞에서 연기를 내며 길에 서는 차를 두 대나 봤습니다.

무엇보다 나무가 거의 없고 비가 오지 않는 모래땅이라 먼지가 너무 많아 차 문을 열 수가 없었습니다. 폐차장 옆을 지났는데 정말 차 위에 흙먼지가 최하 10센티 두께로 완전히 덮여 있을 정도였습니다. 말하자면 길에서 내려 시내를 걸어 관광하고픈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물론 잘 정비된 관광코스가 따로 있겠지만 저희가 지나온 구간만을 봤을 때 그랬습니다.)

어쨌든 다시 국경을 거쳐 미국으로 들어오는 순간 긴장이 일시에 풀렸습니다. 무엇보다도 도저히 비교조차 할 수 없이 깨끗하고 잘 정비된 왕복 십차선 고속도로에 들어오니 눈까지 다 시원해졌습니다. 집사람과 저의 공통적인 감상을 딱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국경 남쪽은 지옥이었고 북쪽은 천국이었습니다.

외형적인 환경과 생활수준만을 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멕시코 사람들의 표정이 우선 어둡고 뭔가에 눌려 있는 듯했습니다. 고달픈 삶에 찌들려 있다는 의미만 아닙니다. 곳곳에 우상과 그 장식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심지어 풍경이 아주 좋은 바닷가 언덕에 붉은 옷을 입고  염주(?) 같은 것을 목에 걸고 두 팔을 벌린 거대한 예수님 동상을 세워 놓은 것이 아주 눈에 거슬렸습니다. 천주교와 그 장식에 익숙한 그들로선 관광객들에게 감동을 주려 세웠을 것이지만 저희에게는 도리어 역겹기만 했습니다. 도대체 예수님이 그런 형상으로 숭배되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바닷가 호텔에서 쉬는 동안을 제외하고 가고 오는 동안은 저희들의 가슴이 답답하고 안타깝기만 했던 여행이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미국 같이 좋은 환경으로 인도하여 살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이 가장 먼저 들었습니다. 또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 선교사로 활동하고 계시는 몇 분이 생각나 저절로 머리가 숙여졌습니다. 정말 그리스도를 위해 목숨을 걸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사역임을 저희들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하는 이 문서 사역도 그들과 같이 정말 모든 것을 걸면서 해야겠다고 새삼 다짐했습니다.

이틀밖에 안 되는 짧은 여행이었지만 제 둘째 아들 말마따나 멕시코는 모든 미국 사람이 꼭 한 번은 가봐야 하는 곳이었습니다. 고난이 있어야 참 감사가 있고, 옛사람이 먼저 죽어야 새 사람으로 태어나고, 지옥을 보지 않고는 천국의 진정한 존재가치를 깨달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9/29/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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