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anksgiving Day와 Left-Over

조회 수 1451 추천 수 97 2005.11.27 18:09:44
Thanksgiving Day와 Left-Over



미국의 추석인 Thanksgiving Day에는 반드시 Left-Over(칠면조 구이를 비롯한 성찬을 하고 남은 음식을 말함, 또 그 뒷이야기와 부작용도 의미함)가 따릅니다. 그래서 메스컴에선 Left-over를 남기지 않는 법, 남았을 때 처리하는 법, 심지어 너무 과식해 탈이 났을 때 대처하는 법 등을 미리부터 안내해 줍니다.

또 추수감사절 다음 날 새벽부터(오전 5시나 6시) 하는 몽땅 떨이 세일도 화제입니다. 보통 50%에서 70-80%까지 할인하기 때문에 연말연시 선물을 미리부터 염가에 준비하려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룹니다. 백화점 업계에선 일년 중 최고 대목인 셈이지요. 작년에는 Super Target이 효과적인 마켓팅으로 Wal-Mart을 케이오 시켰지만 올해는 미리부터 TV광고를 잘 활용한 Wal-Mart이 역시 세계최대 소매업체로서의 자존심을 완전히 회복했습니다.

그 중에는 400불도 안 되는 노트북 컴퓨터의 인기가 톡톡히 한 몫 했는데 밀려든 사람들이 넘어지고 짓밟히며 손님들끼리 서로 물건을 먼저 차지하려고 치고 받고 싸우는 사태까지 벌어졌습니다. 그야말로 이날을 별칭(別稱) 하는 Black Friday(Thanksgiving이 11월 마지막 목요일이니까, 백화점 바겐 세일은 항상 금요일에 이뤄짐)다운 현상이 곳곳에서 벌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제 개인적으로도 이번 추수 감사절에는 여러 가지 Left-Over가 생겼습니다. 우선 일주일 내내 그 동안 잘 절제해왔던 Diet(음식습관)에 변화가 생겨 벌써 허리에 군살이 좀 생겼습니다. 저녁 7시 이후에는 일절 음식을 먹지 않다가 이번에는 아이들을 따라서 파이, 케익, 스낵 등을  양껏 먹다 보니 그렇게 된 것입니다. 원래 허리 군살은 생기기는 쉬어도 빼기는 정말 힘든 것인데 걱정입니다.

밤늦게까지 함께 카드 게임을 하거나 영화를 보고 또 하루 종일 쏘다니기도 하다 보니 당연한 결과로 아침 운동까지 걸렀습니다. 운동뿐 아니라 새벽 큐티도 하는 둥 마는 둥 했습니다. 말하자면 생활의 리듬이 완전히 깨어진 것입니다. 추수감사절은 하루 뿐이지만 뉴욕에 있는 첫아들 부부가 올해는 크리스마스 대신에 이번에 휴가를 일주일 내어 왔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단조롭고도 바쁜 미국 생활에 일년에 한번 있는 Family Reunion이었던 것입니다.

특별히 그들이 올해 휴가를 앞 당긴 이유는 자부(子婦)가 내년 2월이면 첫 아이를 낳을 예정이라 연말에는 아무래도 장시간 비행기 타기가 힘들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또 다른 Left-over가 생겼습니다. 어제 공항에서 바래다 준 이후로 여느 해와는 달리 더 쓸쓸한 기분이 든 것입니다.

출산 할 때 옆에서 도와 주어야 할 텐데, 아이가 생기면 자주 못 올 텐데, 만약 다음에 손녀랑 같이 왔다 가면 얼마나 더 쓸쓸해질까 등등 온갖 상념이 떠 올랐습니다. 자부가 배가 부르고 잘 준비하고 있는 모습이 기특했었는데 아직 낳지도 않았지만 마치 손녀와 함께 떠난 것 같았습니다. 심지어 다음에는 진짜 예쁜 공주를 데리고 올 모습부터 시작해, 함께 재롱부리며 놀 것과, 그 아이를 데리고 떠나버릴 후의 모습까지, 일년 뒤의 일을 미리 상상했던 것입니다.

유학생 목회를 했을 때에 젊은 학생 부부들이 아이를 출산하면 바로 병원으로 달려가 손을 얹고 축복 기도를 해 주었는데, 막상 자기 손녀가 태어날 때는 그럴 수 없다고 생각되니 안타까운 마음이 앞섰습니다. 인생이란 좋은 일이 생기면 그에 반비례해 힘든 일도 반드시 감내해야 하는 법인 것 같습니다. 제가 기도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은혜는 언제 어디서나 동일할 텐데도 괜히 인간적인 욕심이 앞서기만 합니다. 추수 감사절의 또 다른 Left-over는 그 동안 남의 이야기로만 들리던 나이가 들수록 정에 굶주려 어린애처럼 투정만 늘어간다는 너무나 일반적인 진리가 저 자신의 일로 피부에 와 닿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겪은 그런 여파로 인해 저로선 아주 심각한 결과를 낳았습니다. 저는 항상 나이 들면 아는 사람이 하나 없는 시골로 들어가 조용히 글을 쓰며 보낼 마음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10년 이상 타향살이(?) 하고 있는 첫 아들이 아기를 낳고 형편이 허락하는 대로 최대한 빨리 부모와 동생이 있는 California로 와서 살아야겠다고 하는 바람에 그 계획을 수정하기로 했습니다. 태어날 손녀가 재롱을 부릴 것을 생각해 보니 또 둘째 아들도 곧 독립해 가정을 가지고 마찬가지로 아이들을 낳을 텐데, 만약 부부 둘만 시골에 들어가 버리면 이번 추수감사절에 생겼던 Left-over가 앞으로는 더 많이 생겨 큰 홍역을 치룰 것 같아 도저히 그럴 자신이 없어져버린 것입니다.

목사이면서도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잠16:9)는 말씀조차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도 평생의 꿈으로 간직할 만큼 아주 오랫동안 말입니다. 바로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인간이 얼마나 어리석은 존재인지 모릅니다. 연약하고 유한한 인간이 자꾸 스스로 계획을 세우니까 하나님으로선 그대로 버려두지  못하고 당신의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실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신자가 고된 세상살이에 얼마든지 배짱을 갖고 담대하게 살 수 있는 능력의 원천이 됩니다. 잘못 계획했을지라도 합력해서 선으로 이끄시는 분이 항상 함께 하는데 무엇이 걱정이겠습니까?

추수감사절의 Left-over는 며칠 동안 요리를 하지 않아도 되거나 가난한 이웃과 나눠먹는 좋은 점도 있듯이, 저에게도 너무나 귀한 Left-over가 있었습니다. 제가 마음껏 게을러져서 홈 페이지에 새 글도 못 올리는 사이에 방문자 두 분께서 귀한 격려의 말씀을 남겨 주신 것입니다. 제가 그 답글에서도 밝혔듯이 올 추수감사절에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너무나 큰 열매였습니다. 화목의 말씀을 맡은 저에겐 이제 2년 반정도 된 홈피가 많이 활성화 된 것 이상 소중한 감사거리는  없습니다. 내년에도 다른 어떤 추수보다 이 수확을 더 많이 거둬야 할 텐데 새삼 다짐하고 더욱 겸비해졌습니다. 이런 Left-over는 많으면 많을수록 더 좋은 것인데…

사람이란 매번 반복되는 동일한 일정에서 한 번씩 일탈(逸脫)의 즐거움도 누려야 합니다. 단  반드시 Left-over가 생기리라 각오하고 그 대처법이 확실히 세워져 있다면 이전보다 더 큰 활력을 삶에 보탤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흔히 하는 말로 이 보 전진을 위한 일 보 후퇴인 셈이겠지요? 그런 줄 잘 알면서도 올해 추수감사절의 Left-over의 뒷처리는 조금 힘에 부대낍니다. 아마 어느 누구도 살같이 흐르는 세월만큼은 붙잡을 수 없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누가 허리 군살 빼는 법을 안 가르쳐 주시렵니까? 생활의 리듬을 빨리 되찾는 좋은 길은 없습니까? 시골로 가려던 평생의 꿈을 포기했을 때의 허전함을 어떻게 매워야 하나요? 내일부터 그 동안 밀렸던 글들을 빨리 올려야 할 텐데 컴퓨터 모니터에 자꾸 떠오르는 태어날 손녀의 상상을 지울 수 있는 좋은 약은 없나요?

11/27/2005    

김유상

2005.11.29 02:35:55
*.170.40.27

저는 다행히(?) 그 주말에 하필이면 소장염에 (실은 방광염이었음) 걸려 죽만 먹었기에 목사님과 같은 고민은 면했습니다. 그나 저나 시골가시겠단 계획 포기하셨다니 제 집사람이 좋아하겠군요. 제가 함께 간다며 떼쓸까봐 걱정하던 눈치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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