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묵상:신명기] 기-들-새-택-하라

조회 수 660 추천 수 81 2011.06.24 17:13:08

붙잡은 말씀:
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이를 행할수 있느니라 (신30:14)

아침마다 하는 ‘생명의 삶’ 신명기 QT가 끝났다. 지난 3월부터 시작했으니까 3개월이 넘었다. 신명기를 처음 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금번에 이 말씀들이 내게는 새로운 시각으로 다가왔다. 출애굽을 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지도자 모세가 들려주는 이야기 형식인 신명기는 ‘구약의 복음’이라고들 한다.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구원의 경륜과 이에 대한 하나님의 명확한 약속이 기술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게 있어 출애굽은 ‘은혜’의 사건으로 생각되었고, 이후 모세의 이야기는 그 은혜를 어떻게 지속할 것인가, 라는 방법론에 대한 제시로 보여졌다. 즉, 나의 관심은 ‘어떻게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끊이지 않고 지속할 수 있을까?’ 라는 것이었다. 그 핵심은 역시 말씀이었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그 말씀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요1:1,4)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생겼다.(창1:3)

말씀에 대한 시각으로 신명기를 바라보면서, 그 화두가 시간이 감에 따라 조금씩 바뀌어 갔다. 은혜의 유지도 중요하다. 하지만 은혜는 말씀 안에 깊이 거함으로 자연스레 얻어지는 결과물이다. 그러니까 신명기는 단어의 뜻 그대로 하나님의 약속이 진정한 화두였던 것이다. 약속의 말씀, 이것이 내게 살아 움직일 때 나는 은혜 안에 지속적으로 거할 수 있지 않겠는가? 말씀은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아닌가? 그 말씀 안에 생명이 있었고, 이 생명이야말로 나를 비춰주는 빛이 아닌가? 우리가 늘상 접하는 물리적 빛 이전에 하나님은 따로이 첫째 날에 빛을 창조하셨지 않은가? 그러기에 시편 기자는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라고 고백하지 않았는가? 그렇다. 말씀은 빛이다. 말씀의 빛은 태양이나 다른 별들이 발하는 물리적 빛 이전에 선재하며, 오늘날 나에게도 똑같이 비추기를 원하신다. 말씀의 빛, 은혜의 빛을 찾아가는 것이 내게 주어진 신명기의 주제가 아닐까?

그렇다면, 은혜의 근원이 되는 말씀의 빛 안에 어떻게 하면 지속적으로 거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을 되새기면서 그동안 했던 QT를 정리하고 말씀을 다시 보는 과정에서 네가지 단계적 명령어가 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기억하라, 들으라, 새기라, 택하라는 네 단계였다. 줄여서 기-들-새-택-이다.
**

1단계: 기억하라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무엇일까? 초중학교 교과서에서 배운 교훈을 빌리자면, 그것은 망각이라고 한다. 잊어버리는 것이다. 철없는 아이들의 논쟁을 잠재운 어느 할머니가 한숨을 쉬며 냈던 결론이었다. 잊어버리는 것이 왜 가장 무섭다는 것일까? 치매에 걸린 노인들을 보면 금방 느낄 수 있다. 망각으로 인해 자신의 이름과 처지조차도 잊어버렸다면? 그야말로 왜 살아야 하는지 의미도 없지 않은가? 그러기에 첫번째 단계는 기억하는 것이다.

신명기에는 ‘기억’이라는 단어가 총 18회 나온다. 이 중 ‘기억하라’는 9회, 비슷한 톤의 명령어(기억할지니라 등)까지 모두 합치면 총 13회가 된다. 무엇을 기억하라 하시기에 이리도 많이 말씀하신 걸까? 하나님이 기억하라 하신 부분은 크게 네가지로 대별할 수 있겠다. 첫째,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시절을 기억해야 한다. 둘째, 하나님의 강한 팔로 구원해 내신 이적과 기사를 기억하라. 셋째,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반역한 일들을 기억하라. 마지막으로, 이 모든 언약의 말씀을 주신 하나님 당신을 기억해야 한다.

이사야서의 말씀이 새롭게 다가온다. “너희는 옛적 일을 기억하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같은 이가 없느니라”(사46:9) 결국 기억해야 할 것은 두가지다. 하나는 옛적 일 즉, 내게 은혜 주심이요, 또 다른 하나는 그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이시다. 아, 나를 향한 하나님의 안타까운 마음이 엿보인다. 반복해서 두번씩이나 토해내시는 말씀, 나는 하나님이라.. 나는 하나님이라.. 잊지말고 기억하자, 내게 은혜 주신 주님을.. 주님 외에 다른 이가 없음을, 주님 같은 이가 없음을.
*

2단계: 들으라

신명기에서 ‘들으라’는 명령어는 11회 나온다. ‘들을지니라’가 또한 2회, ‘듣고.. ~하라’는 명령이 4회임을 감안한다면, 들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총 17회인 셈이다. 1단계의 기억하라는 명령보다 많은 수준임을 알 수 있다. 그만큼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중요하다 할 수 있겠다. 듣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있을까? 그러기에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은 것이다.(롬10:17)

“이스라엘아 들으라”(신6:4)의 ‘들으라’를 히브리어로 쉐마(Shema)라고 한다. ‘쉐마’로 불리우는 신명기 6장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지금까지도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명령으로 여겨진다고 한다. 그들은 하나님이 명령한 대로 이 귀절들을 경문으로 붙이고 술을 달고 다닌다. 이 말씀을 늘 기억하고 잘 듣기 위해서이리라. 이것이 말씀을 듣는 나의 자세, 즉 경청하는 자세가 되어야 하겠다.

들음의 강조점 두가지가 신명기에 엿보인다. 첫째는 들음의 횟수이다. 아무리 많아도 지나침이 없이 수시로, 항상, 자나깨나, 앉으나 서나 들어야 한다. 이것이 쉐마의 정신이다. 두번째는, 들음의 목적이다. 신명기에 14번 나오는 ‘청종’이라는 단어를 통해 이를 알 수 있다. 청종은 말 그대로 듣고 순종한다는 뜻이다. 들음의 목적은 순종하기 위함이 아닌가? 순종을 전제로 하지 않는 들음은 의미가 없다. 들음의 최종적 열매는 순종이다.
*

3단계: 새기라

말씀을 기억하고 들은 이후에는 무엇을 해야 할까? 3단계는 새기는 것이다. 어디에 새길 것인가? 마음이다. 진정한 나의 것으로 내 마음판에 새기는 것이다. 신명기에는 ‘새기라’는 직접적 명령어가 그다지 나오지 않는다. 쉐마의 일부에 새기라는 명령어가 있다. “..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가르치며.. 강론할 것이며.. 기호를 삼으며.. 표를 삼고.. 기록할지니라”(신6:6-9) 이와 유사한 명령어에는 ‘마음’이라는 단어가 함께한다. 마음을 힘써 지키라, 마음에서 떠나지 않도록 조심하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마음을 품어 지켜서, 마음에 생각하고,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마음과 뜻에 두고.. 등을 모두 새기라는 명령어로 나는 보았다. 하나하나 음미하며 묵상할 만한 표현들이다. 이렇게 본다면 새기라는 명령어는 신명기에 총21회 나온다.

새김의 반대어는 무엇일까? 신명기의 표현에서 본다면, 그것은 ‘강퍅’이 아닐까?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완악한 마음을 표현할 때 강퍅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개역 개정에서는 완강, 완악함으로 번역) 새김이 들은 것을 마음에 심는 것라면, 강퍅은 들은 것을 마음에서 뽑아내는 것이리라. 새김이 순(順)이라면, 강퍅은 역(逆)이다. 새김은 순리(順理)를 따르고, 강퍅은 역리(逆理)를 택한다. 예수님은 씨뿌리는 비유에서 새기는 마음과 강퍅한 마음을 극명하게 보여 주셨다. 새김은 씨앗이 마음판에 뿌려지고 심겨져서 견고하게 자리잡는 전체적 과정이다. 밭에 뿌려진 씨앗은 잘 ‘새겨져야’ 자라서 열매를 맺는다. 이것이 좋은 마음밭이다. 반면, 강퍅한 마음은 길가에 뿌려진 씨앗과 같다. 마음밭에 말씀이 뿌려지자 새겨질 겨를이 없이 사단에 의해 뽑혀지고 먹혀 버린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새김의 교훈을 구체화하여 ‘마음을 강퍅케 하지말라’(히3:8,13,15; 4:7)고 명령하셨다. 새김이냐, 강퍅이냐는 결정의 메커니즘은 묘하게도 들음 직후에 바로 결정이 된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를 ‘오늘날’이라고 표현한다. 즉시적으로 내 마음이 말씀을 듣자마자, 이를 새길 것인가, 아니면 강퍅하게 내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오직 내가 할 일은 성경에서 권면한 바대로, ‘오늘날 그의 음성을 듣거든 내 마음을 강퍅케 하지 않도록’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새기는 것도 은혜로 주어짐을 알 수 있다.
*

4단계: 택하라

마지막 4단계는 택하는 것이다. 신명기에서 택함은 최종적, 유일적 선택의 명령이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일관되게 주장한 핵심 중의 핵심적 멧시지이다. 내 앞에는 복의 길과 화의 길, 두 갈레 길이 놓여져 있다. 나는 두 가지 길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다른 선택은 없다. 중간의 길은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복의 길을 택하면 하나님의 축복이 기다리고 있지만, 화의 길을 택하면 온갖 저주가 내게 이를 것이다. 신명기 11장과 30장에 걸쳐 대표적으로 표현되었지만, 이는 신명기 전체에 흘러 나오는 집요한 반복적 멧시지이다.

택함은 주님으로부터 비롯된  내 의지의 소산물이다. 말씀의 씨앗이 자라 최종적으로 열매를 맺는 단계이다. 주님께서 베푸신 창조의 질서 안에서, 역(逆)의 길이 아닌 순(順)의 길을 택하는 것이다. 이것이 순응(順應)이요, 순행(順行)이요, 순종(順從)이요, 순복(順服)이다. 이러한 순종의 택함이 어떻게 가능할까? 1단계부터 3단계까지의 기억하고, 듣고, 새겨진 말씀의 빛으로 인한 것이다. 주님께서 주신 말씀의 능력이 이를 가능하게 한다. 그래서 이 말씀을 붙잡았다. “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이를 행할수 있느니라” (신30:14)

이런 의미에서 택함은 디지털 신앙이다. 여호수아는, 여호와든지 이방사람들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고 도전한다. 엘리야는,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하지 말고 여호와든지 바알이든지 진정한 하나님 한 분만 좇으라고 호통친다. 주님께서는, 차지도 덥지도 않는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차든지 덥든지 하라고 경고하신다. 어찌보면, 내 하루 하루, 한순간 순간의 삶은 디지털적으로 0인지 1인지를 택해야만 하는 선택적 삶의 연속이 아닐까? 순간 순간의 택함이 날줄과 씨줄이 되어 내 인생의 궤적을 이룬다. 세상적으로 보면 중간의 길이 분명 있다. 적당히 타협하여 양다리 걸침이 세상을 살아가는 생존의 길로 가르침 받아왔다. 그러나, 영적인 길은 중간 길을 택할 방도가 없다. 다른 말로, 양다리 걸침은 주님이 제일 싫어하신다. 복의 길인가, 화의 길인가? 은혜의 길인가, 죄의 길인가? 생명인가, 죽음인가? 주님인가, 세상인가? 오늘, 바로 이 순간에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

기억하라, 들으라, 새기라, 택하라.
줄여서 기-들-새-택-이다.

기-들-새-택-은 주님이 먼저 시작하셨다.
주님이 먼저 나를 기억하셨다.
주님이 먼저 나를 들으셨다.
주님이 먼저 나를 새기셨다.
주님이 먼저 나를 택하셨다.

그러므로,
주님의 말씀을 기-들-새-택-하라.
말씀을 기억하라.
말씀을 들으라.
말씀을 새기라.
말씀을 택하라.

그러기에,
주님 자신을 기-들-새-택-하라.
주님을 기억하라.
주님을 들으라.
주님을 새기라.
주님을 택하라.

말씀을 기-들-새-택-하자.
주님을 기-들-새-택-하자.

상혁

2011.06.24 19:34:41
*.108.161.206

말씀의 능력을 체험할수 있는 노하우! 감솨~

정해린

2011.06.25 06:47:16
*.163.56.232

오늘 이 QT를 보고 깨달았어요.
저가 기억하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새기지 못하고, 정확히 택하지 못한거 같아요.
은혜 안에 거하고 주님의 자녀로써 확실히 주님의 길을 택해야 하는데, ..
주님이 원하시는 길을 택했다고
하지만 항상 세상속에서 빛이되지 못하고
오히려 세상안에서 인정받길 원하고 세상에서 사랑받길 원하는거 같아요.

주님이 날 사랑하시고 날 택하시고 날 위해 귀 기울려 들으시고
나를 많은 사람중에 택하신것을 생각하면 정말 감격스럽고 너무 감사한데...
주님은 정말 저에겐 산소같은 분이시고,
저의 피난처이시고, 저의 힘이시고, 저의 사랑이신데,,
주님께 저의 마음을 행실로 표현을 잘 못한거 같아요.
앞으론 주님의 말씀을, 은혜를, 사랑을 기억하고, 듣고, 새기길 노력할게요!
그리고 주님의 은혜안에서 주님의 길을 택하여
주님이 사용하시는 도구로 사용 되길 원해요!
깊은 깨달음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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