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갇힌자 신앙 2] 갇힌자 바울

조회 수 1069 추천 수 78 2011.07.29 13: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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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말씀하신 포도원 품꾼의 비유로 시작합니다. 포도원 주인이 일꾼을 고용하려고 하루에도 여러 차례 품꾼들을 뽑습니다. 이른 아침, 아침 9시, 정오 12시, 오후 3시, 그리곤 마지막으로 오후 5시에도 일꾼들을 뽑아가지요. 품삯은 이른 아침부터 가장 늦은 오후 5시 까지 한 데나리온으로 똑같습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마20:16)

저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된” 대표적인 사람이 바울 사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초기에 ‘예수의 도’를 박해하는 최선봉의 앞잡이로서, 스데반 순교의 원흉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다메섹 도상에서 강권적으로 그를 회심시키고 사도를 부르셨지요. 신약성경 27권 중 절반가량인 13권을 그가 집필하였고, 사도행전의 절반 이상이 그의 행적에 관한 기록입니다. 베드로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셨듯이, 주님께서는 그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고요.(갈2:8)

바울은 ‘갇힌자’로서 옥살이를 많이 했습니다. 제가 아는 한, 그는 최소한 다섯 번은 옥에 갇혔습니다. 빌립보, 예루살렘, 가이사랴에서 수감이 되었고, 로마에서는 1차 수감 후 다시 풀렸다가 2차 수감된 후 감옥에서 순교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섯 번이지요.

빌립보에서는 실라와 함께 전도하던 중, 유대인들의 모함을 받아 엄청나게 매를 맞고 발에 착고를 채운 채 깊은 감방에 갇혔었지요. 그러나 찬양을 드리던 중 지진이 나며 착고가 풀려 간수를 전도하게 됩니다(행16:16-40). 이후 바울은 3차 전도여행이 끝나는 시점에서, 결박과 고초가 기다리고 있음을 알면서도,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가 결국 체포되어 옥살이를 시작하지요. 그리고나서 가이사랴로 옮겨 재판을 받고, 최종적으로 로마에 이송되어 수감이 되었습니다.

그의 고생이 이것뿐인가요? 그에게 옥살이는 오히려 편할지도 모를 정도로 다른 고생과 수고가 많았지요. 유대인들에게 39대의 매를 5번 맞았고, 납이 달린 채찍으로 세 번 태장을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을 당했으며, 망망한 바다 위를 여러 날 동안 떠다녔지요. 전도여행 중에 수고와 고역에 시달리고, 여러 번 밤을 지새우고, 주리고,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추위에 떨고, 헐벗었습니다(고후11:25-27).

그러나, 그는 겸손하게 이 모든 고생을 감사와 찬양함으로 받아들이고, 오히려 기쁨과 확신으로 다른 이들을 격려하고 위로합니다. 저는 이러한 바울을 보면서 특히 고린도후서 1장으로 시작하여 11장에 이르면서, 바울의 ‘갇힌자 신앙’을 발견하고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갇힌자 바울은 제 신앙의 영원한 모델이 될 것입니다.

옥중서신은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쓴 편지들입니다.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의 4편입니다. 읽다보면 ‘갇힌 자’ 또는 ‘매인 자’ 라는 표현이 곳곳에 있어 금방 알 수 있지요. 또한, 목회서신 중 디모데후서는 바울이 순교 직전 로마 감옥에서 쓴 마지막 편지라고 하지요. 이 5편의 편지를 통해 바울의 갇힌자 신앙을 엿봅니다.

제가 느낀 옥중서신의 공통점이 여러 가지 있습니다. 내가 닮아야 할 갇힌자 신앙의 모형입니다.

첫째, 그는 갇힌자 또는 매인자 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에 대한 생각과 염려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의 머릿속은 온통 주님과 복음 전파, 그리고 밖에 있는 성도들을 격려하는 것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왜 그랬을까?’라는 해답을 저는 에베소서 4장 1절에서 찾았습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KJV 성경에는 Prisoner of the Lord로 되어 있군요. 바울은 자신이 단순히 감옥에 갇혔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갇혔으되, ‘주님 안에서’ 갇힌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를 사로잡으셨으므로..”(빌3:12, 새번역) 주님께서 그를 사로잡아 가두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하신 일이기 때문에 나를 위한 염려는 전혀 없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바울의 갇힌자 신앙이라고 믿습니다.

둘째, 그가 갇힌자 된 것은 주님을 위하여 갇힌 것이고(몬1:1, 9), 갇힌 목적은 주님의 복음을 더 전하기 위함이었습니다.(엡6:19-20, 빌1:12, 딤후2:9) 갇힘은 주님께서 하신 일이되, 또한 주님을 위하여 행해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복음에 매인 자가 되었습니다. 저는 이를 예수 중독, 복음 중독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가치, 그 가치에 그는 갇혔고, 매였고, 중독된 것입니다.

셋째, 자신은 갇혀 있으면서도 기쁨과 자족함이 언제나 넘쳤습니다.(빌4:10-13) 그래서, 그는 갇힌자였으나 누구보다도 ‘자유로운 자’였습니다. 갇힌자는 일정한 바운더리 안에만 있어야 합니다. 바운더리 자체가 구속을 의미하며, 이로 인해 자유를 제약 당합니다. 자유를 맘껏 누릴 수 있는 바운더리 바깥을 향해 내 마음은 늘 소망합니다. 그런데 거꾸로 한번 생각해 보십시요. 그 바운더리 안이 바깥보다 더 좋은 곳이라면? 바운더리 안에 있음으로 기쁨과 자족이 넘쳐 난다면? 이것이 갇힌자 바울이 누린 진정한 기쁨과 자유가 아닐까요?

이렇게 갇힌 자였으면서도 ‘자유로운 자’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는 하나님의 부요한 경륜과 교회의 비밀을, 빌립보 교인들에게는 갇힌 중에서도 기쁨과 위로를, 골로새 교인들에게는 만인의 구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된 비밀을, 빌레몬에게는 도망쳤던 종 오네시모의 자유함을, 디모데에게는 인내의 목회 활동을 요청하고 설파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바울은 종종 자신을 빗대어 노래합니다. 저는 이것을 ‘갇힌자의 노래’라고 부르렵니다. 제가 있었던 롬폭 훈련소에서 저는 갇힌자의 노래를 부르며, 바울과 같이 갇힌자 신앙을 넓혀 갔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갇힌자 된 우리는,
   속이는 사람 같으나 진실하고
   이름 없는 사람 같으나 유명하고
   죽은 사람 같으나
   보십시요, 살아 있습니다.

   우리 갇힌자는 또한,
   징벌을 받는 사람 같으나
   죽임을 당하는 데는 이르지 않고,
   근심하는 사람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 (고후 6:8-10)

   이제 갇힌자된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은,
   내가 아무 일에도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온전히 담대해져서,
   살든지 죽든지
   전과 같이 지금도,
   내 몸에서 그리스도께서
         존귀함을 받으시리라는 것입니다. (빌 1:20)

   즉, 내가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알고
   그 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그 분의 고난에 동참하여
   그 분의 죽으심을
   끝까지 본받는 것입니다. (빌 3:10)

   관제(술을 부어드리는 제사)와 같이
   내 몸이 이제 부음이 될 것입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달려갈 길을 다 마치고
   나의 믿음을 지켰습니다.

   주님께서 내게 주실 의의 면류관은
   주님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입니다.(딤후 4:6-8)

운영자

2011.07.29 13:39:42
*.104.237.156

운영자의 허락도 없이 칼럼을 쉬다니요.. 천만에 말씀입니다.
글을 카피해서 제가 대신 글을 올려 보니까 잘 되는데요.

이전에는 그런 일들이 많아서 비속어 제한조치를 해제해버렸는데
왜 다시 그런 일이 또 일어나는지 모르겠네요. 한번 더 확인해 보겠습니다. ^^

(상기 글은 게시판에서 봐서 아시겠지만 이 사이트의 주인 이선우 집사님의 글입니다.)

이선우

2011.07.29 21:46:41
*.222.242.101

휴우~ (긴 한숨^^)
목사님, 잘 알겠습니다. 목사님의 슈퍼 ID로 하니 뭐든 되는 것 같군요.
곰곰히 생각해 보니 이 칼럼만 비속어 제한이 해제되지 않는 이유가 예전에 여기서 벌어진 스팸 댓글 사건 때문이 아닌가 의심도 됩니다. 그 때 서버도 많이 놀라서 자체 방어시스템을 가동했었지요. 시솝님께서 한번 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암튼 목사님과 공문수 형제님의 따끔한 일침(?)을 달게 받고 계속 칼럼지기 하겠습니다. 충성!! 자유 게시판의 제 글은 중복이 되어 지웁니다.

정순태

2011.07.30 01:34:05
*.216.63.226

목사님 호통 한 마디에 꼼짝 못하는 형제님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
글 등록 거부 현상을 저도 몇 번 경험했더랬습니다...
갇힌자 신앙이기를 소망합니다!!

운영자

2011.07.30 11:35:08
*.104.237.156

이선우, 정순태 집사님
어제 Sys-op께서 모든 초청칼럼 사이트에서 비속어 제한조치를 해체했습니다.
칼럼니스트나 댓글 다시는 분들께서 비속어를 사용할까 염려한 것이 아니라
홈페이지 자체 프로그램에 아예 포함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앞으로는 글을 올리는데 별다른 지장이 없을 것입니다.
이제 마음놓고 운영자에게도 호통칠 일이 있으면 치시기 바랍니다. ^^

사라의 웃음

2011.07.31 11:53:33
*.161.89.37

이젠 '님아'는 적합한 단어가 아닙니다. 하는 말은 사라지겠군요.
저도 그런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노랫가사도 아니고, 나는 '님아' 한 적이 없는데...
하며 무척 당황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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