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복 묵상] 가난한 영이여..

조회 수 787 추천 수 77 2010.08.15 18:12:49
붙잡은 말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이요 (마5:3)


사랑하는 아들아,
오늘 예배 때의 경험을 네게 들려주고 싶어.
영(靈)에 대한 것이야.
예배 시작할 때의 기도 중에 문득 떠오른 깨달음이었어.

너도 잘 알지?
영은 육(肉)과 반대되는 개념이야.
헬라어로는 프뉴마라고 하고, 히브리어로는 루아흐이지.
그래서 영은 하나님의 숨결(루아흐)이요,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네게 주어진 하나님의 생명이라 할 수 있단다.
그러니까 이렇게 표현해도 되지 않을까?
영은 주님께서 네게 주신 가장 고귀한 선물이라고.

그런데 예수님은 영이 가난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
영이 가난함으로 복을 누리고, 천국을 소유한다는 말씀이셔.
가난해야 하는 것은 알겠는데, 왜 가난해야 할 대상이 영일까?
원문에서 보면 그것은 다른 단어가 아닌 프뉴마로 표현되었지.
왜 그러셨을까?
이것이 요즘 내 가슴 속에 품고 있었던 의문이었어.

예수님을 믿음으로 네가 거듭난 경험을 생각해 봐.
그것은 너의 가난함으로 출발했던 것이 사실이었어.
네 죄를 인정하고 너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손벌림의 가난함이었지.
그래서 어찌 되었니? 네 영이 살아나지 않았니?
그 이후에 영은 어떻게 되었을까?
영은 네 마음 뿐만 아니라 내면세계의 모든 활동을 주관해야 할 주체가 되었지.
영이야말로 네 내적 영역의 중심이 되어야 하는 거야.
최초의 질문으로 돌아가 볼까?
마음이 가난해야 한다고 하지, 왜 영이 가난해야 한다고 하셨을까?
그것도 팔복의 시작인 가장 첫번째 복에서 말이야.
Super in Spirit이라고 해야지, Poor in Spirit이라는 것은 뭔가 이상하지 않니?

이 의문이 오늘 아침에 조금은 풀렸단다.
아주 조금..
내 경우, 그것은 고린도전서 13장을 통해서였어.
그래, 네가 잘 아는 사랑장이지.
기도 중에 사랑장에 있는 내용이 내 심령에 펼쳐 졌단다.
사랑장의 내용을 성령님께 대입시켜 보라는 속삭임이 들렸어.
4절부터 8절의 말씀을 이렇게 말이야.

성령님은 오래 참고
성령님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성령님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가슴의 응어리진 무엇이 터지며 내 눈물샘도 같이 터졌지 뭐니?
그래, 성령님이 인격이심을 잠시 잊었던 거야.
그래, 내 영도 인격인 것이고.
내 영은 달리말해 성령님이셔.
내가 거듭날 때 일어났던 기적 중의 기적..
그것은 내 존재 안에 성령님께서 친히 들어오신 것이지.
더럽고 썩어 문드러진 나의 내면 안으로 몸소 오신 성령님..
그리고 이제껏 묵묵히 일하시는 성령님..
이것이 내 영이 살아났다는 진정한 의미 아니겠니?

삼위 중의 한 분이신 성령님의 인격이 내게 밀려 왔단다.
모든 근원의 시초시며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신 영존하시는 아버지,
인간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 사역을 마치시고 영광 받으신 아들,
그러면 성령님은?
아, 한시도 쉴 틈이 없으신 성령님..
하늘의 일곱 영으로 계시지 않고 지금도 이 땅에서 일하고 계시지 않니?
너와 나의 추한 마음 속에서 탄식함으로 기도하고 계시지 않니?
그 성령님이 바로 주님이신데..
바로 주님의 영이신데..
그래서 보혜사라고 불리시는 그 분이신데..

그 분은 진리의 영이시자 겸손의 영이시며 사랑의 영이시란다.
성자 하나님이 성부 하나님께 당신의 영광을 모두 돌렸듯이,
성령님이 취하실 영광은 모두 성부와 성자 하나님께 돌려진단다.
왜냐하면, 그 분은 성부의 영이시자 성자의 영이시기 때문이야.
왜냐하면, 그 분 자신이 사랑이신 하나님이기 때문이야.
바로 그 분이 너와 내 속에 있는 영이란다.
그러니까 위의 노래를 이렇게 바꿔 불러도 되지 않겠니?

영은 오래 참고
영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영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이제 의문이 조금 풀렸지?
가난은 영의 자발적 인자란다.
가난은 영의 속성이란다.
가난은 겸손이란다.
가난은 사랑이란다.
영이 가난할 때만이
즉, 영이 자신의 역할을 자유롭게 수행할 때에야
애통과 온유와 갈망이 비로소 따라 온단다.
그래서 팔복은 가난한 영으로부터 시작하는 거란다.

아, 가난한 영이여..
아, 가난한 성령님이시여..
스스로 가난하시어
모든 것을 내어 주시되
아무 영광도 취하지 않으신
나의 영이시여..
비천한 나를 위한
제 2의 성육신이시여..

mskong

2010.08.18 12:52:15
*.226.142.23

정말...대단하십니다. 이렇게 말씀이 풀어지는것은 성령님의 역사입니까?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묵상하겠습니다.

정순태

2010.08.18 13:11:49
*.75.152.231

팔복 강해의 첫 단추!
기다리겠습니다!

그런데 생각이 많이 같습니다.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사실 '거지 같은 마음'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손에서 떨어지는 동전을 고대하듯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긍휼을 기다리는 마음이 아니고는
천국을 바라볼 수 없다는 것이 팔복 첫번째 선포일 것입니다.

그런데 우린 너무 부자같은 마음으로 충만된 것 같아 좀 그렇습니다.
많이 자숙하겠습니다. ㅠㅠㅠ

이선우

2010.08.20 22:35:37
*.222.242.101

휴가 후 제 일성(一聲)...은?
“팔복강해는 한 분 만으로 족합니다.”

저는 강해를 쓸 자격도 능력도 안되는 거 잘 아시쟎습니까?ㅎㅎ 단지 최근에 내면세계에 대한 묵상을 하던 중, 의문점 하나를 깨달은 것 때문에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지난 주 8/15일 주일 예배 때였지요. 다른 분들이 보기엔 별 것 아니지만, 제겐 영과 가난에 대한 연결 고리를 발견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와 감동이 있었습니다. 제가 찾은 결론은, 영의 세계에서는 “Poor = Super”라는 등식이었습니다. 이 등식을 제정하신 분은 다름아닌 우리 주님이심을 믿습니다. 그 발견과정을 제 아들에게 들려주는 형식으로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실제 제 아들에게 이 이야기를 제일 먼저 해 주었습니다.

하람맘

2010.08.25 09:03:30
*.163.11.132

이선우님의 글을 읽다보면 제가 어린아이 시절로 돌아가서 유치원 선생님께서 저를 무릎에 안고 조근조근 이야기 해주시는 것 같아 아주 포근해 집니다. 자꾸 전에 뵈었던 실제 모습이 사라지고요 ^^ 겉으로 뵙기에는 아주 날카롭고 냉정하게 생기셨는데 이런 글들을 써내려 가시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 입니다. 제가 무례를 한건가요? 자꾸 글을 읽다보면 친근하게 느껴져서요 ^^

김순희

2010.08.25 12:00:32
*.161.88.93

하람맘님,
이선우님이 겉으로 보기에는 그리도 날카로와 보이시던가요?
저는 사진으로 뵈서 그런지 오히려 글의 느낌과 참 닮았다라고 느꼈거든요.
이선우님의 글에선 순수를 느꼈는데 그 순수가 보이는 것 같아서 사진 본 소감도 그리 적었었거든요.
궁~~금^^

이선우

2010.08.25 22:17:08
*.222.242.101

험험~ 저는 순수함과 부드러움을 추구하는 남자입니다.ㅎㅎ
음~ 붉어진 내 얼굴.. 역시 거짓말은 힘들군요.ㅋㅋ

27년간의 직장 생활 속에서 악착같이 살아남은 모질고 냉철한 모습이 사실은 저의 본모습입니다.
트리나 포올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에 나오는 줄무늬 애벌레가 구름속에 가리운 기둥의 정상을 밟기위해
동료 벌레들을 무시하며 짖밟고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올라가는 투쟁적 모습이 제 원모습이었습니다.
그 원모습 속에 주님께서는 시시때때로 은혜의 웨이브로 저를 간섭하시고 일깨우시며
일그러진 제 모습을 어루만지시고 다듬어 가심을 느낍니다.

냉정한 비즈니스맨이 주님을 만나 부서져 가는 모습이 제 외모에도 언뜻 나타나는가 봅니다. ^ㅗ^
제게는 정말이지 감사할 따름입니다. >_<

하람맘

2010.08.26 02:42:12
*.163.11.132

마르시고 샤프하셔서 그렇지 사실 얼굴엔 다듬어지고 은혜받은 모습이 보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다시 한번 후회하지만 이곳에서 먼저 알고 뵈었다면 더 자세히, 더 크게 은혜가 되는 시간이었을텐데 싶습니다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9 [다윗 묵상] 광야의 영성 [3] 이선우 2010-10-30 2959
38 [생활단상] JFO 이야기 [4] 이선우 2010-10-22 768
37 [묵상] 베드로 묵상 [4] 이선우 2010-10-16 784
36 [단상] 디지털 신앙 [2] 이선우 2010-10-09 719
35 [간증] 어느 자매님들의 간증 [1] 이선우 2010-10-02 699
34 [QT창28장, 32장] 야곱 묵상 [2] 이선우 2010-09-26 2634
33 [생활단상] 절을 하는 심정으로 [6] 이선우 2010-09-16 801
32 [나눔의 법칙] 4부: 내 몸과 같이 file [2] 이선우 2010-09-12 1238
31 [나눔의 법칙] 3부: 그들로 너를 축복케 하라 file [5] 이선우 2010-09-08 1634
30 [내면 묵상] 혼이여, 낮아져라 [7] 이선우 2010-08-29 1009
29 [내 신앙의 3법칙③] 나눔의 법칙 [2] 이선우 2010-08-22 754
» [팔복 묵상] 가난한 영이여.. [7] 이선우 2010-08-15 787
27 [내 신앙의 3법칙②] 일치의 법칙 [5] 이선우 2010-08-11 769
26 [십자가 묵상] 십자가의 무게 [7] 이선우 2010-08-07 3304
25 [팔복 묵상] 아버지여... [7] 이선우 2010-08-02 935
24 [생활단상] 써버 다운의 쓰릴을 맛보며.. [5] 이선우 2010-07-31 684
23 [QT간증: 삼하11장] 방심에서 중심으로 [4] 이선우 2010-07-29 1184
22 [웨이브7기 간증] 2부: 아, 한마음.. [3] 이선우 2010-07-25 963
21 [QT요11장] 마르다의 머리, 마리아의 가슴 [2] 이선우 2010-07-22 1021
20 [다윗 묵상] 다윗의 한가지 소원 [5] 이선우 2010-07-20 1506

로그인

로그인폼

로그인 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