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조회 수 1501 추천 수 87 2005.11.18 03:10:49
몇 년 전에 나온 "하루"라는 한국 영화가 있다. 이성재와 고소영이 나오는데 참 감동스럽게 보았었다. 며칠 전 나는 이 영화를 다시 빌려 보았다.

석윤과 진원은 결혼 5년이 지났건만 아이가 생기지 않는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형제도 없이 혼자 이모 손에서 길러진 진원은 가족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이 있고, 필사적으로 임신을 위한 노력을 기울인다. 착한 남편 석윤은 그녀의 노력에 맞장구쳐 주면서도 입양을 하자고 권하나 진원은 자기의 아이를 원한다.

그러던 어느날 진원은 오랜 소원대로 임신을 하게 되고 둘은 아이를 낳아 키울 생각에 벌써부터 즐겁고 부산하다. 그러던 어느 날 정기 검진 후, 의사가 석윤을 불러 태아에게 "무뇌증"이라는 선청성 결함이 있음을 통보한다. 신체의 다른 부분은 모두 정상적으로 발육하나 오직 뇌만 발달되지 않기에 보지도 듣지도 느끼지도 못하고 만삭이 되어 나더라도 고작 몇 시간 길어야 며칠을 살지 못하니까 미리 중절시킬 것을 권한다. 석윤은 도대체 이 소식을 어떻게 진원에게 전해야 할지 막막하다. 의사는 석윤의 마음을 달래느라 같이 술을 먹다가, 장기이식으로 다른 아이라도 살리게 장기 기증을 하는 것도 한 방편이라는 말을 했다가 혼이 난다.

석윤은 진원에게 출산을 포기하고 입양을 하자고 한다. 그러나 진원은 자기에게 중요한 것은 이 아이라면서 아이를 낳겠다고 고집한다.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일 수 없다면서. 이렇게 보낼 수는 없다면서. 석윤이 어차피 하루도 못살고 죽을 건데, 죽은 거나 다름 없는데 왜 정을 주냐고 맞서자, 진원은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아느냐며 기형아를 낳는 것이 창피해서 그러냐고 소리를 지른다. 그리고는 이렇게 석윤을 달랜다.

"우리, 아이를 원했던 거지 그 아이가 어떤 아이이기를 바랬던 건 아니잖아. 도망치지 말자. 희망이 있을 수도 있잖아. 난 우리 아기가 단 하루를 산다더라도 감사할래.”

진원은 출산일까지 계속 태아와 얘기를 주고 받으며 태아일지를 쓰고 석윤은 아기방을 꾸민다. 아기 이름은 두 사람의 이름을 따 사내 아이면 석원, 계집 아이면 윤진으로 부르기로 한다.

출산의 진통이 진원에게 찾아 오고 진원은 예쁜 딸을 순산한다. 석윤과 진원은 그러나 윤진이를 안아 볼 수 없다. 윤진이의 상태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둘은 창 안의 병실에 누워 있는 아이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본다. 진원은 그렇게 갖고 싶었던 자기 아이에게 처음이자 마지막 인사를 한다. 그리곤 이젠 맘 편히 보낼 수 있다면서 장기 이식에 동의를 한다. “어쩌면 우리 윤진이가 바라는 것이 바로 이건지도 몰라.” 얼마 후 아이의 호흡이 멎는다.

처음 이 영화를 보았을 때 나는 이 대목에서 예수님을 떠올렸다. 마치 장기를 필요로 하는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태어난 듯한 윤진은 내게, 우리 모두를 살리기 위해 예수님으로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생생하게 전달해 주었다. 나는 그 사랑에 겨워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었다.

다시 이 영화를 보며 나는 우리에게 잉태된 생명 하나 하나에는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음을 생각했다. 태아를 포함한 모든 인간은 그 모습과 상태가 어떻든 간에 각자의 존재 이유가 있으며, 그 사람의 존재 가치와 생사여부를 결코 우리가 결정지어선 안된다. 그렇게 하는 것은 모든 생명의 주관자되시는 하나님을 무시하는 처사이다. 그럼에도 태아를 살리고 죽일 권이 부모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우리 중에, 심지어 예수를 믿는다는 사람들 중에도, 얼마나 많은가.

부끄럽게도 이 글을 쓰고 있는 내가 바로 그 한 사람이었다. 나는 개인적으론 낙태를 반대하지만 낙태는 어디까지나 산모의 결정사항이라 동조했었고, 그러면서도 약혼녀가 임신한 듯하다고 말했을 때 떼어 버리라는 소리가 목구멍까지 치밀었었다. 다행히 임신이 아니어서 스스로의 얼굴에 침뱉는 일은 면했는데, 그때 난 기독교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 자처하고 있었다.

내 첫 아이가 다운증후군을 가진 아이라는 것이 판명되었을 때, 나는 의사에게 대들었다. 양수 검사를 하면 그 사실을 미리 알 수 있었는데 왜 하지 않았느냐고. 미리 알았더라면 낳지 않았을 거라는 투였는데, 실제로 태아를 없애라 그랬을지는 모르겠으나, 만에 하나의 경우를 생각하면, 미리 모르기 천만 다행이었다. 하나님께서 어련히 알아서 내게 그 사실을 미리 감추셨겠는가.

태아에게 신체적 결함이 있을 경우, 그럼에도 그 아이를 낳아 기르겠다고 결단하기란 특히 불신자들에게는 참으로 쉽지 않다. 특히나 요즘처럼 얼짱 몸짱에 집착하는 사회 속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영화 “하루”에서 보여준 것처럼 뇌가 없는 아이도 살 가치가 있고 목적이 있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설령, 왜 그래야 하는지 납득되지 않고 인정할 수 없다 하더라도 태아를 죽여서는 안된다. 태아에게 주어져 있는 생명의 고귀함 때문이다. 그 생명은 우리가 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셨기 때문이다. 그 생명의 고귀함과 우리 생명의 고귀함이 하나님 앞에서는 똑같기 때문이다.

11.17.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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