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흥정하는 신앙

조회 수 1606 추천 수 127 2005.05.18 23:55:05
창세기 28장 10절-20절을 보면 꿈에서 하나님을 본 야곱이 하나님께 서원하고 다음과 같이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20-22)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이 기도를 들어 주시고 야곱은 그 약속을 지킵니다. (실은 하나님께서 야곱이 그 약속을 지킬 수 있게 해 주십니다.) 그때문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많은 사람들이 이처럼 하나님께 조건부적인 기도를 올립니다. 이런 저런 요구를 들어 주시면 감사 헌금은 물론이고, 열심히 교회도 다니고 봉사도 하고 성경공부도 하고 십일조도 빠뜨리거나 떼먹지 않고 꼬박꼬박 하겠노라고 맹세를 하고 심지어 때론 안 들어 주시면 교회 안 다닌다거나 더 이상 십일조 바치지 않겠다는 협박도 불사합니다. 얼마나 진정으로 그런 기도가 드려지며 얼마나 많이 응답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의 그런 기도가 야곱의 그 기도와는 동등한 수준이 아니라는 겁니다.

잠이 깬 야곱의 행동을 봅시다. "야곱이 잠이 깨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에 두려워 하여 가로되 두렵도다 이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야곱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베개하였던 돌을 가져 기둥으로 새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16-19) 그리고는 위의 서원을 합니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문득 이 대목을 떠올리고 당시의 야곱 신앙 수준과 오늘의 제 신앙 수준을 비교해 보았습니다. 5년전 쯤 제가 처음 이 대목을 읽었을 때 전 야곱의 신앙 수준을 비웃었습니다. 하나님은 어디에도 계시거늘 꼭 그곳에만 계신 것마냥 그렇게 야단을 떨다니. 그리고 하나님과 거래를 하려 드는 꼴하곤. 그런데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오늘 제 신앙의 수준이 당시의 야곱의 신앙보다 한참 아래란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꿈에 예수님을 뵌 적이 있지만 잠에서 깨어 야곱처럼 두려워 하며 그 자리에서 예배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저 꿈에 예수님을 봤다는 감격 때문에 잠깐 상기되어 있었고 예수님을 꿈에 볼 정도로 신앙이 자랐나 하고 스스로 대견한 생각(아니면 교만한 생각)에 잠겼으며 도대체 그 꿈이 어떤 의미일까 헤아리느라 바빴던 기억 뿐입니다. 아마도 오늘 이 깨달음이 없었다면 앞으로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이것이 말하는 바는, 저는 야곱만큼 하나님을 실제적으로 느끼지 않으며 그렇기에 야곱이 느끼는 실제적인 두려움이 없고 그렇기에 야곱처럼 그 자리에서 예배를 드리지 않은 겁니다. 즉 야곱의 믿음은 구체적이고 실제적인데 나의 믿음은 피상적이고 개념적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을 잘 모르는 야곱은 하나님을 실제로 믿고 있었고 하나님을 잘 안다고 믿고 있는 나는 머리로만 또는 감정적으로만 믿고 있었던 겁니다.

야곱의 기도 내용을 비웃었다 했는데, 그러나 그가 조건으로 내세운 부분,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은 실은 꿈 속에서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일방적으로 주신 약속입니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꿈 속에서 주신 약속의 말씀을 곧이 곧대로 받아 들여 정말로 그렇게 해주신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라고 감사의 반응을 했던 것이지 결코 그것을 거래 물목으로 내세운 것은 아닙니다.

그때까지 여호와는 자기의 아버지 이삭과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었을 뿐 결코 야곱 자신의 하나님은 아니었습니다. 자기는 그 하나님에 대해 말만 들었지 실제 만난 적도 없고 만나리라고 생각지도 못했을 겁니다. 그런데 그 여호와 하나님이 꿈에 나타난 겁니다. 그리곤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엄청난 약속을 주신 겁니다.

누군가가 내게 야곱과 같은 꿈을 꾸었다면서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받아 들인다면, 아마도 저는 그 사람을 살짝 갔다고 여기지 싶습니다. 제가 그 꿈을 꾸었다면, 은근히 기대는 하겠지만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지는 않을 겁니다. 그건 꿈이니까요.

그러나 야곱에게는 꿈만으로도 족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꿈에 나타난 하나님의 약속을 아주 진지하게 받아 들였습니다. 한낱 꿈으로 치부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꿈이라 하더라도 그가 상대한 이는 하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설령 그 꿈이 개꿈으로 판명된다 하더라도 일단은 하나님에 대한 예는 갖추는 것이 바른 태도이다 싶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경외하는 자)의 자세일 겁니다.

야곱은 결코 하나님에게 거래를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아무런 대가를 요구하시지 않은 하나님에게 자진하여 대가를 드리겠노라 약속합니다. 하나님의 일방적 약속을 쌍방적 약속으로 바꿉니다. 이것이 진정한 관계입니다. 이것은 성숙한 믿음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가 원하는 것을 들어 주시면 하나님이 좋아하실 만하다고 여기는 아런 저런 신앙의 증표들을 만들어 보이겠노라고 거래를 제시하고, 안들어 주시면 그런 증표들 안 만들겠노라고 떼쓰고 협박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이며 그것을 이루어 주시는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내 하나님으로 모시며 내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 그리하여 내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들은 아예 생각 밖에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기도 열심히 한다고--날마다 새벽기도 나가고 가끔 철야기도 산기도 하고 몇 시간씩 기도한다고, 몇 번이나 성경 통독상 받고, 교회에서 살다시피 한다고, 창세기 28장의 야곱보다 믿음이 좋다 여깁니다. 심히 부끄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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