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빈

조회 수 2153 추천 수 230 2006.08.09 03:51:33
제 아들 로빈은 열 여섯 살을 갓 넘겼습니다. 덩치는 나이에 비해 작은 편은 아닌데 지능은 많이 낮습니다. 그것은 로빈이 다운증후군을 지니고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다운증후군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원인으로 인해 염색체 배열에 이상이 생겨 지능과 지체가 정상적인 발달을 하지 못하는 장애로서, 인종이나 민족에 관계없이 약 신생아 7백-1천 명당 1명 꼴로 비교적 흔히 나타납니다. 신체적 특징은, 눈이 가늘고 눈꼬리가 위로 올라갔고, 코가 낮으며, 비강이 작아 아기 때에 혀가 밖으로 나옵니다. 손과 발이 작은 편이며 목이 굵고 키가 작고 몸통은 큰 편입니다. 움직임이 둔한 편이어서 과체중인 사람들이 많습니다. 성격은 대개 고집스럽고 착한 편입니다. 개인마다 장애의 경중의 차가 심한데 장애가 심한 사람들은 지능도 아주 낮고 심장질환을 비롯한 각종 신체적 결함도 함께 지니고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로빈의 장애 정도는 상당히 가볍습니다. 그를 잠깐 대할 뿐인 경험이 없는 사람에겐 정상아로 여겨질 정도입니다. 지능도 90대는 되었습니다. (지금은 어떤지 잘 모르겠습니다. 오래 전에 잰 거라서.) 심장도 괜찮고 목뼈도 튼튼하고 다른 신체 기관과 부위도 다 건강합니다. 키도 현재 5피트 3인치나 됩니다. 자주 저와 어깨 높이를 견주는데 아마도 더 클 듯합니다. 몸무게는 130파운드로 양호합니다.

로빈은 사내아이임에도 애교가 넘칩니다. 그에겐 sweet이란 영어 표현이 참 어울립니다. 매너도 좋고 다른 사람에 대한 고려심도 많습니다. 제 아들인데도 놀랄 정도입니다. 동정심도 많고 사랑도 많습니다. 어려서부터 사람들을 잘 따랐습니다. 낯을 가린 적이 제 기억으론 없습니다. 어릴 때엔 자길 이뻐하면 첨보는 사람도 그냥 따라 가곤 해 유괴납치당할까 걱정될 정도였습니다.

그는 한 번도 떼를 써본 적이 없습니다. 아플 때를 제외하곤 밤에 잠 안자고 보챈 적도 없고 사람들 많은 곳에서 칭얼대며 보챈 적도 없습니다. 그래서 부모 버릇 망치는 아이라고 행복한 농담을 하곤 했습니다.

그는 용서가 빠릅니다. 아무런 벌도 주지 않고 쉽게 절 용서해 줍니다. 그는 또 참을성이 많습니다. 화내지 않고 잘 기다려 줍니다.

로빈은 지리에 무척 밝습니다. 퍼즐도 잘 맞추는데 아마도 패턴 인식이 뛰어난 듯합니다. 제가 운전할 때 도움이 많이 됩니다. 이리 가라, 저리 가라, 길을 잘못 들었다, 일일이 지적해 줍니다.

지리에 밝아서인지 미국 오십개 주의 수도를 다 외우고 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것은 몇 개 되지 않기에 필요하면 그에게 물어 봅니다. 프로 농구팀과 야구팀 그리고 유명 선수들 이름도 다 꿰고 있습니다. 이것들 또한 전 통 문외한입니다. 그는 또 구름의 이름도 다 알고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책읽기를 좋아했습니다. 심지어 전화번호부를 처음부터 끝까지 넘기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읽은 것을 어느 정도 이해하는지 모르겠으나 읽기는 잘 합니다. 문제는 그의 장애로 인해 발음이 정확치 않아 16년을 함께 살아온 저도 여전히 제대로 잘 알아 듣지 못해 서로가 답답해 한다는 점입니다. 그는 제 말을 다 알아 듣는데 저는 그의 말을 알아 듣지 못하니 제가 장애인이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는 고집이 셉니다. 하지만 오래 가지는 않습니다. 내버려 두면 자기가 풀고 웃으며 다가 옵니다. 로빈은 I am sorry란 말을 하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Excuse me, Thank you란 말도 잘 합니다.

로빈은 무엇이든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순서대로 하지 않으면 화를 냅니다. 그래서 이따금 학교 선생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습니다. 시간표가 갑자기 바꼈는데 로빈이 지시를 따르지 않는다는 겁니다. 식사도 정해진 시각에 해야 하고 매뉴도 새 것보다 늘 먹는 것을 먹는 편입니다.

그렇기에 그를 행복하게 하기란 참 쉽습니다. 정말이지 쉽게 그를 키웠습니다. 그는 늘 행복합니다. 대개 밤 아홉 시면 잠자리에 들어 아침 여섯 시 전에 일어 납니다. 그리곤 우리가 깨기까지 혼자 노래를 부르거나, 혼자서 몇 명의 역할을 하면서 영화 한 편을 되뇌이거나 (아마도 수 십개의 영화를 외우고 있는 듯합니다), 밖에 나가 농구를 하거나 (운동을 좋아하는데 특히 농구를 즐깁니다) 하면서 시간을 보냅니다. 그래도 깬 기색이 없으면 살며시 와서 배고프다고 얘기합니다. 알았노라고 몇 분만 시간을 더 달라고 하면 한 두 번은 흔쾌히 봐줍니다. 사실 더 자려 해도 잘 수가 없는 것이 그가 흥얼대는 노래와 혼자 주고받는 대사가 소음의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아직 로빈에게 익숙치 않은 아내는 귀가 멍멍하고 골이 울릴 정도랍니다.

로빈은 무엇보다 찬양을 좋아합니다. 춤추며 찬양하기를 흥겨워 합니다. 그런데 그는 음치입니다. 음정도 박자도 맞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노래하기를 즐깁니다. 듣는 우리가 괴로우리란 생각은 그에겐 털끝만큼도 없습니다. 그는 한글을 모름에도 기가 막히게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를 찾아 냅니다.

로빈이가 이처럼 노래를 좋아하기에 그가 우리에게 올 때마다 (그는 첫째 세째 주에 옵니다) 저는 그를 데리고 저희 교회 성가대 연습에 임하고 성가대석에 앉습니다. 그는 열심히 연습을 따라 합니다. 음정과 박자는 못맞추어도 악보 어느 부분에 있는지는 압니다. 마치 악보를 읽을 줄 아는 듯합니다.

사실 저는 한 번도 표현을 않았었지만 성가대원들, 특히 지휘자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로빈이가 음악적으로 거슬릴 터인데도 내색없이 그를 포함시켜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긴 워낙 말하기 힘든 일이라 내색을 못하고 제 처분만 바라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참 좋은, 잘 만들어진 노래를 부르고 싶은 욕심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노래를 망치는 로빈을 곁에 두고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마음을 받으신다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찬양이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라면, 그 찬양을 받으시는 이는 회중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란다면, 그리고 그 하나님은 찬양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받으시는 거란다면, 내가 무슨 자격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껏--그 재능이 내게 주어진 재능에 비해 아주 열등하다 하더라도--진정으로 찬양하는 로빈을 막겠습니까? 하나님 귀에는 로빈의 찬양이 아주 훌륭하게 감동스럽게 들릴 수 있을지도 모를 일 아닙니까?

작년엔가 남가주 사랑의 교회에서 한국에서 온 정신지체발육 장애인들로 구성된 합창단의 공연에 가서 큰 감동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홀트 아동 복지 재단에서 육성하는 합창단으로 기억합니다. 보니 뇌성마비로 사지가 비틀린 단원들도 있고 로빈처럼 다운증후군 단원들도 있더군요. 한 곡 연습하는 데에 몇 개월이 걸렸답니다. 이들이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는데, 온 몸으로 소리를 쥐어짜며 괴성을 내는데, 신기하게도 각각의 그 괴성들이 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화음을 이루어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감동적인 노래가 그 큰 예배실을 채우는 겁니다. 제 눈에선, 저들의 장애조차 합력시켜 선으로 바꾸시는 기막힌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사랑에 대한 감동의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 내려 제 두 볼을 타고 주룩 주룩 떨어졌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도 다시금 그때의 감동이 되살아나 눈물이 흐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외면받는 저들을, 차라리 태어나지 말지 쯧쯧 하는 저들을, 하나님은 어쩌자고 저런 사람들을 만드셨을까 깜박 조셨나 아니면 그 부모가 벌을 받은 것인가 생각케 되는 저들을, 하나님께선 버리지 않으시고 잊지 않으시고 돌봐 주실 뿐만 아니라 저들의 찬양도 저토록 기뻐 받으시는구나 생각되니 하나님께 더 깊은 감사와 사랑이  생기더군요.

그런데, 지난 주에 어떤 교인께서 로빈에 대해 한 말씀 하셨단 얘길 건네어 들었습니다. 가끔 이상한 소리가 튀어 나오고 아이가 많이 움직여 어수선한데 굳이 데리고 올라 가야 하느냐고 물으시더랍니다. 지휘자가 말도 못하고 얼마나 힘들겠냐는 말씀과 함께.

지휘자에겐 참 미안합니다. 또 대원들에게도 그렇습니다. 로빈 때문에 은혜받는 데에 지장을 받으시는 분들에게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예배를 받으시는 이는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니, 하나님 입장에서 한 번 헤아려 주십사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우리들도 이따금 이상한 소리내고, 음정 제대로 못내고 박자 놓쳐 지휘자 심기 거스리며, 우리도 이런 저런 몸짓과 동작으로 부산떨고 졸기도 하는데, 그렇다고 우리 다 성가대석에서 내려와야 하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8. 8. 2006.

정순태

2006.08.09 07:07:56
*.95.73.2


어떤 목사님은 아이들이 조그마한 소리만 내도 설교 못하겠다고 화를 내곤 했었습니다.

지적하신 분께 말씀드리고 싶네요. 우리의 예배와 찬양은 예술발표회도 아니요 콘서트도 아니라고 말이지요.

로빈의 박자와 음정이 틀려서 찬양이 엉망진창으로 망쳐진다해도,
하나님께 조금도 불충이 되지 않으며 손해가 되지 않으며
오히려 미소를 머금으시고 반갑게 받으신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분도 언젠가는 깨닫게 되겠지요.

비록 형제님의 능통하지 못한 통역(?)에 의지해야겠지만, 로빈이의 찬양모습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샬롬!

김문수

2006.08.09 15:24:40
*.91.209.225

유상님의 심정 조금은 이해할수있을것같습니다.
교회들이 하나님께서 완벽함을 갖추어야만 칭찬하시고 기뻐하시리라
생각함이 이런상황을 연출하게만드는 원인인것같습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부족해서 그런거니 이런아픔이 있으신분들은
참 대처하기가 어려운문제인것같습니다. 힘내세요!! 샬롬

김유상

2006.08.09 20:20:42
*.170.40.27

감사합니다, 두 분 형제님. 두 분 모두 우리들이 저지르기 쉬운 실수들을 지적해 주셨군요. 우리의 찬양이 하나님을 향한 진심이 담겨 있을 때에 그것이 듣는 이의 속에 있는 그 진심을 증폭시켜 감동을 확장시키는 것일 텐데, 우리는 진심보다 기교와 계산된 몸짓이나 표정에 더 의존하고 있지는 않는지. 즉, 듣는 이나 부르는 이나 모두 퍼포먼스를 요구하고 추구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하나님께서 완벽함을 갖춰야만 칭찬하시고 기뻐하시리라 생각함이 원인일 거란 문수 님의 지적, 제가 믿음 초기에 지녔던 오류였습니다. 언젠가 제 코너에서 쓸 생각입니다만, 로빈 덕분에 그 오류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김형주

2006.08.10 03:24:32
*.173.42.18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은 마음의 찬양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어려운 가운데 참여하는 로빈의 찬양을 더 기뻐 받으시겠지요.
실력으로 보자면 어느 누군들 하나님께 칭찬 받을수 있겠습니까?
유상형제님의 글을 읽으며 다시 한 번 회개했습니다. 지적하신 그 분이 바로 내가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많은 은혜 받고 갑니다. 샬롬!!!

이선우

2011.01.09 23:40:37
*.71.138.187

로빈을 이틀 동안 만나보고 참 많은 도전을 받았습니다. 두 아이를 가진 부모로서 내가 아이들에게 해 준 것이 뭔가 반성도 했습니다. 로빈이 사랑스러워 'Super Robin!'이라고 몇번 불러 주었습니다. 찬양을 어쩌면 그리도 잘 하는지요? 로빈의 씩씩한 모습 속에 유상 형님의 아들 사랑을 진하게 느꼈습니다. 로빈을 정말 사랑했기에, 더 이상 동생을 두지 않기로 하셨다지요?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로빈에게 꼭 전해 주세요.

Super Robin! I dearly love you!
from your uncle in Germ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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