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도널드에서 당한 일

조회 수 2312 추천 수 251 2007.02.02 03:20:56
약 한 달쯤 전이었나, 아침 출근길에 맥도날드에 커피 한 잔 사러 들렸었습니다. 커피를 주문하곤 지갑을 꺼내며 얼마냐고 물으니 "포티 투 센츠"라지 않겠습니까? 제가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한 번 물었는데도 대답은 마찬가지였습니다. 42전이라니?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저렴한 가격에 속으로 혹시 이곳에서 커피 세일을 하나는 쪽으로 이해하려 하면서도 미심쩍은 나머지 왜 그렇게 싼가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엔 되려 그 여종업원이 당황한 표정으로 마침 곁에 있던 매니저를 쳐다 보았고 매너저는 그녀와 내게 1불 55전이라고 고쳐 주더군요. 그때서야 제 머리 속에서 전구가 켜졌습니다.

그렇습니다. 42전은 노인우대 가격이었습니다. 어이가 없어진 전, 아니 내가 그렇게 늙어 보이냐고 호통아닌 호통을 쳤습니다. 어린 여종업원은 당황한 웃음을 띄면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더군요. 그러면서, 싸게 마실 수 있으니 좋지 않냐고 덧붙이기에, 차라리 제 값 내고 마시겠노라 대꾸했습니다.

운전을 하고 가며 커피를 마시는데 옅은 비애가 느껴졌습니다. 여지껏 제 나이보다 많이 어려 (젊어) 보인다는 말은 많이 들었어도 더 들어 보인다는 말을 듣기는 처음이었습니다. 마켓에서 아버님이란 소릴 들었다고 기막혀 했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이젠 할아버님 소리 듣는 것은 시간 문제일 것같습니다.

그로부터 한 주 후엔가 친구 한 명과 골프를 하러 갔다가 다른 두 명의 한국인 남자들과 한 조가 되었는데 그 중 한 명은 제보다 한참 나이들어 보였고 또 한 명은 조금 아래인 듯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저보다 많이 연상이라 여겼던 그 분이 실상은 동년배더군요. 그러나 정작 놀라운 아니 기막힌 사실은 그 분께서 절 연상으로 여겼다는 겁니다. 얼굴에 주름이 많은 것도 아니고 그 분처럼 백발도 아닌데 도대체 나의 무엇이 그의 눈에 나이들어 보이게 했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습니다.

맘이 편치 않은 까닭은 내가 늙어 보였다는 것보다, 실은, 제가 그들 눈에 비추이는 나이에 걸맞는 업적이 전혀 없다는 데에 있습니다. 지혜롭다던지, 후덕하다던지, 학식이 많다던지, 경지에 달한 기술이 있다던지, 영성이 깊다던지, 하다 못해 손자 손녀라도 있다던지 등등, 아무리 뒤져 보아도 뭔가 내보일 게 없는 겁니다. 그렇기에 억울한 느낌보다 창피한 느낌이 더 강합니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또다시 그 맥도널드에 들려 커피를 주문했습니다. 확인해 보고 싶어서요. 지난 번보다 조금은 더 나이 들어 보이는 여종업원은 아주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forty-two cents, please!”라더군요. 쓴 미소를 삼키며 말없이 1달러 지폐를 내밀고 잔돈을 거슬러 받았습니다. 1달러에 대한 미련때문도 또는 쪼잔한 보복심에서도 아니었고 단지 체념과 순응이 그 동기였습니다. 상대의 눈에 내가 나이 들어 보인다는데 굳이 아니라고 악악대는 모습이 우습고 초라해 보였습니다. 그래, 받아 들이자. 내 얼굴에 대한 책임 내가 져야지. 상대를 나무랄 일은 아니지. 뭐, 그런 마음으로 커피를 들고 담담하게 뒤돌아 나왔습니다.

그러면서도 운전 도중에, 혹시 저 지점에서만 그런 것은 아닐까, 일일이 노인확인증 보여 달라기 뭣 하니까 대충 나이 들어 보인다 싶으면 누구에게나 다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닐까, 다른 지점에 한 번 가볼까, 그런 생각들이 들더군요. 그와 함께 도대체 노인할인 연령이 도대체 몇 세인지 궁금해져서 영수증에 찍혀 있는 번호로 전화를 해서 물어 보았습니다. 62세라더군요. 아직도 한참을 더 살아야 그 나이가 되지만, 그 정도 오차는 허용해 줄 수도 있겠습니다.

다음 번에는 제가 먼저 2불을 내밀어야겠습니다. 그러면 알아서 제대로 거슬러 주겠지요. 혹시라도 더 많이 거슬러 주면 아직 몇 년 더 남았노라고 아무렇지 않게 알려 주렵니다.

2. 1. 2007

운영자

2007.02.02 17:55:33
*.104.224.164

역시 한 6개월 쉬어도 칼날이 전혀 무뎌지지 않았습니다. 집사님 글의 특징은 읽고 난 후에 독자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자기도 모르게 베어나오게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외모에 대해선 벌써 포기했습니다. 실제로 손녀도 생겼지만 말입니다. 이런 비애가 든다는 것 자체가 아직은 젊다는 증거 아니겠습니까? 솔직히 집사님이 작년 수술한 이후로 갑자기 팍싹(?) 늙었다는 데는 저와 제 집사람이 동의하고 있었습니다. 감히 겉으로 말은 못 드렸지만 말입니다.

저나 집사님이나 이제는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는 바울사도의 반에 반이라도 따라가려고 노력해야 할 처지인 것 같습니다. 칼럼을 쓰시는 정순태, 허경조님뿐 아니라 많은 방문자들도 안심할 처지가 아니잖아요? 다 같이 다시 힘을 내어 회춘(?)합시다. ^0^

정순태

2007.02.03 07:54:30
*.75.152.145

목사님의 말씀과 똑같은 말을 하고 싶습니다.

먼저, 김 형제님! 같은 사람 여기 한 명 더 있습니다!

다음, 목사님! 같이 끌고 들어가지 마시지요! 아마 저는 어느 분에게 비하면 청년일텐데요......ㅋㅋㅋ ^^

김형주

2007.02.05 16:14:45
*.173.42.18

유상형제님! 반갑습니다! 직접 뵙고 상황을 파악해 보고 싶습니다. 제 전공이 정밀측정인지라 정확하게 판정해 드릴 수 있지 않을 까 해서요.

저는 지금 중국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이곳 사람들로부터 집사님과는 반대의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딸아이가 고3이라고 하면 다들 뒤로 넘어갑니다. 한 30대 중반도 안되 보인다고 하면서...(사실은 황당합니다. 10년 이상을 젊게 본다는 것은 아무래도 좀 비정상...)
중국 분들은 실제 나이보다 훨씬 더 들어 보이는 특징이 있다보니 한국 사람을 보고 착각을 했으려니 생각하지만, 젊어 보인다는것이 마냥 유쾌하지많은 않은것 같습니다. 그냥 제 나이에 맞게 봐 줬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이런 생각이 드는건 아직 젊다는 증거겠죠?

샬롬!

허경조

2007.02.07 23:52:19
*.80.180.124

제가 섬기는 교회는 80% 정도가 한국에서온 유학생내지는 이곳에서 공부끝내고 가정을 이룬 젊은 부부가
주류인 젊은 교회입니다. 하여 저는 50대 초반에도 불구하고 연장자에 끼이는 셈이죠.
같이 어울려 젊어지려고 애쓰는 중인데 그런대로 받아주니 고마울 따름이죠.

이유성

2007.07.21 17:00:31
*.60.188.64

성령 안에서 젊음을 몰라주는 세상
저도 요즘 흰머리가 많이 생겨서 신경이 마니 쓰입니다. 나이들어보인다고 말하면 기분이 상하고 젊어보인다고 하면 기분 좋고 요즘 머리를 기르고 있는 중인데 몇 사람이 영화배우 누구 닮았다고 하는 말에 괜시리 어께가 올라갔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머리를 자르지 싶지 않은거 있죠.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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