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를 옮겨야 하나?

조회 수 1956 추천 수 171 2008.11.12 00:02:45
하나

한동안 글쓰기를 쉬었습니다. 이젠 버릇처럼 되어 민망합니다. 글을 쓰려다가도 번번이, 설익은 또는 하나마나한 또는 차라리 쓰지나 말았더면 싶은 그런 글이 되지 않을까는 염려에 귀기울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정순태 형제님의 글을 읽고 댓글을 달려다, 차라리 제 글방에 올리는 것이 낫겠다 싶어 모든 염려 떨치고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저 역시 목사님 공개 초청에 댓글을 달까 하다, 도움보다 답답함만 보탤 듯싶어 기도만 드렸습니다. 그런데 정순태 형제께서 내리신 결론과 처방을 읽고 저도 감히 한 말씀 보태고자 합니다. 지난 글에서 밝혔듯이, 저와 제 아내는 금년 초에 지금의 교회로 옮겨 행복한 신앙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잠시 제 신앙의 편력을 돌아 보자면, 천주교에서 출발했습니다. 한때는 모친의 바람대로 신부가 될까도 심각히 고려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다, 기독교를 버리고 뉴에이지 사상에 동조해 스스로를 신으로 여기는 데까지 갔습니다. 당연히 내가 판단의 주체였고 나는 스스로를 바로 잡으며 올바르게 살 수 있다 믿었습니다. 따라서 절대 진리란 없고 각자가 믿는 바가 진리라 여겼지요. 그러다 성경의 하나님께 되돌아 왔습니다.

그런데 돌아온 곳은 성당이 아니라 교회였고, 이제는 천주교인이 아니라 개신교인이 되었습니다. 개신교인이 된 이래 네 차례의 교회 옮김이 있었습니다. 네 번 모두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열정에 기반된 것이었기에 그때마다 하나님께선 제가 새로 몸담게 된 곳에서 절 잘 양육해 주셨습니다. 여지껏 제가 다른 곳에 먼저 눈을 두고 떠나야겠다 한 것이 아니라, 떠나야겠기에 다른 곳을 찾게 되었으므로, 지금의 교회를 어떤 사정으로든 떠나 다른 교회로 옮기게 될지, 아니면 이젠 이 교회에서 제 생을 마감하게 될지 전 모릅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든 저든 하나님께선 제가 그 시점에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자라기에 최적의 곳에 저를 두실 거라는 믿음입니다.




교회를 떠나야겠다 맘먹기에 이른 것은 각 경우마다 그 계기가 조금씩은 달랐습니다. 첫번 째 교회는 제게 믿음을 되찾게 해준, 아니 참 믿음이 무엇인지 알게 해주고 그 믿음을 자라게 해준 참 고마운 교회입니다. 그런데 그 교회의 리더들이 제 신앙의 성숙을 억제하는 듯해 무척 답답했습니다. 자신들의 신앙의 틀에 저를 가두려 한다고 생각되어졌던 것이지요. 아마 그분들은 신앙의 선배로서, 바가지물에 나뭇잎 띄워 주는 배려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때 저는 마음이 급했습니다. 그동안 허비한 시간이 억울하고--그때 제 나이 마흔하고도 넷이었습니다-- 성경의 진리 다 배우지도 못하고 죽으면 어떡하나 초조했습니다. 그래서 누가 성경 말씀 가르쳐 준다 하면 원근불문하고 찾아 다녔고, 여러 형태의 교회도 참석해 무엇이 바르게 믿는 것인지 비교해 보고자 했습니다. 교회 리더들은 그런 제가 불안했을 겁니다. 이제 겨우 걸음마 떼기 시작한 초신자가 천방지축 이곳 저곳 심지어 자신들이 이단시하는 교회에까지 기웃대고 있었으니.

그러나 저는 주일 설교 한 편과 점심 식사 후의 성경공부와 주중의 구역 모임에서의 나눔만으론 갈증이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공부를 하면 할수록 갈증은 더 심해졌지요. 그들은 자신들은 전혀 궁금해 본 적도 없고 여전히 별로 궁금하지도 않은 질문들로 시간을 끌고 그들을 괴롭히는 제가 짜증나기 시작했고, 저는 저대로 아직도 가갸거겨만 하고 있는 듯한 그들이 답답해 견딜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옮긴 곳이, 척 스윈돌 목사가 오랫동안 담임했던 미국교회입니다. 그곳에서 여러 소그룹 모임을 통해, 또 소개받은 여러 신앙 서적들을 통해 제 믿음은 자라 갔습니다. 그러던 중 그 교회와 가까운 곳에 있는 한인 교회에서 수요일 저녁에 누가 복음 강해를 시작한다는 말을 듣고 수요일마다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교인들과 친해지고 목사님의 설교도 좋아 자연스럽게 그 교회로 옮겼습니다.

그 곳에서도 아주 행복했습니다. 더 많이 공부하게 되었고, 배운 것 실천해 보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더 깊이 체험하고 하나님을 더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성숙한 교인들이 많아 그들로부터도 많이 배웠고 교인들간의 교제도 돈독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교회 운영방침을 두고 원로목사와 불편한 관계가 심화된 담임목사가 새 교회를 만들고 나가는 사건이 일어 났습니다. 저와 일부 교인들은 화해를 시도하려다 실패한 후 이도 저도 아닌 다른 교회를 찾게 되었습니다.

한동안의 방황 끝에 지인의 소개로 정착한 곳이 네번째 교회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담임목사의 열정이 설교를 통해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하나님에 대한 그 열정이 점차 자신에 대한 열정으로 바뀜을 느꼈습니다. 말씀 준비가 소홀해지고, 그 점에 대해 미안해 하지도 부끄러워 하지도 않기에 이르렀습니다. 담임목사가 편가름을 통하여 성도간의 분열을 조장하고, 재정보고를 요청하는 신자에게 헌금을 얼마나 하느냐고 되묻는 일이 있었습니다. 교회 벽에 붙어 밤을 지낸 노숙자가 안스러워 성가대원들이 아침을 나누어 준 다음 주에, 지저분하고 냄새나는 그 노숙자로 인해 교인들이 불쾌할 것을 배려하여 그 노숙자에게 다시는 이곳에 오지 말라고 몇 푼 쥐어 보냈다는 말이 담임목사의 입에서 대수롭지 않게 나왔습니다. 처지가 딱한 교인이 부담되어 다른 교회로 보냈으며 선교지에서 돌아온 선교사가 부담되어 그 역시 다른 교회로 떠밀었습니다. 그렇게 구제와 선교에 인색하며 남긴 돈 모두를 교회 건축때 빌린 은행 빚 갚아 나가는 데에 쓰면서 스스로 현명하게 살림한다 자부하고 있습니다. 이자내는 것이 아까워서 빨리 원금을 다 갚은 후 그때부터 홀가분한 마음으로 구제도 하고 선교도 하겠답니다. 하나님을 의지한다 하면서도 재물과 지위와 명예에 의지하며, 그가 구하는 복이 결국 이 세상의 부귀영화임이 여러 모양으로 증거되었습니다. 그와 함께 그의 교만이--교인들의 대다수는 자신의 명설교와 자신의 인품과 능력에 반했으며 자신은 성공적인 목회자라는--십자가 뒤에 자신을 숨겨 달라는 그의 기도에도 불구하고 갈수록 십자가 앞으로 튀어 나와 오히려 그 십자가를 가리게 되더군요. 나중엔 그 기도조차 교만스럽게 들릴 정도였습니다.

어떻게든 참고 다녀 보려 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보고 다니자 했습니다. 할 일이 있고 그 할 일만 열심히 하자 했습니다. 그러면서 제 영혼은 조금씩 핍폐해져 갔습니다. 설교에서 하나님 말씀은 거의 들을 수 없고 목사 개인의 말만 가득했습니다. 마치 모래밥을 먹는 듯했습니다. 그리고 제 자신이 교만해짐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담임목사보다 내가 더 낫다는 교만이 제 속에서 자라는 것을 알게 되자, 저는 더 이상 그 교회에 다닐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러다 정말 큰일 나겠다 겁이 났습니다. 그러던 중에 지금의 교회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설교를 통해, 교인들의 기도를 통해, 교인들과의 대화를 통해 저는 그곳에서 제 꼴이 마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제가 그 네 교회를 떠났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고 그들 중, 지금까지 남아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만족한--적어도 교회를 옮길 만큼의 불편과 불만이 없는 교회 생활 또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 생각엔, 교회를 옮기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입니다. 교회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저라는 개인과 그 교회가 더 이상 맞지 않게 된 것이지요. 그걸 누가 아느냐? 당연히 하나님이 가장 잘 아십니다. '이젠 옮겨 심을 때가 되었구나. 저 놈은 저기 두면 터져 죽겠구나. 옆에 잘 자라고 있는 다른 사람들마저 다치겠구나.'

그렇다면, 교회를 옮겨야 할지 아닐지는 우리의 고민거리가 아닙니다. 그 결정은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결정 사항이니까요. 우리의 고민은 지금의 상황에서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목사를 포함하여) 나와 내 이웃과의 관계가 도움되는지 아니면 방해되는지를 헤아리는 고민이어야 합니다. 교회를 옮기고 말고는 그 답에 달려 있습니다. 후자의 답만 아니라면, 가령 이도 저도 아닌 중립적 답인 경우에, 그냥 머무는 편이 낫겠지요.

물론 하나님은 편재하시는 분이심으로 우리가 전심으로 찾는 바로 그 곳에서 우리를 만나 주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또 특정한 곳에서 우리를 부르십니다.굳이 아브라함은 모리아 산으로 오라 하셨고 모세는 시내 산으로 부르셨습니다. 야곱에겐 벧엘에서 보이셨고 바울은 아라비아 사막으로 부르셨습니다. 왜 그러셨습니까? 하나님이 주인임을 알리시고자 함이 아닐런지요. 하나님은 내가 오라 가라 할 수 있는 분이 아니라, 나를 오라 가라 하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이지요. 나는 그저 그분께서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야 하는 존재일 뿐입니다.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멀어진 듯합니까? 혹시 다른 곳에서 부르고 계신 듯합니까? 그러면 그 음성 찾아 나서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 느낌은 모두가 갖지 않습니다. 그 부르심은 모두가 듣는 것은 아닙니다. 그 부르심은 개별적입니다. 우리의 목자이신 예수님께선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낸다 하셨습니다 (요10:3).

그렇다고, 불러내지 않은 다수는 예수님의 양이 아니란 말이 아닙니다. 그들 중에도 예수님의 양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 양들은 그곳에서 그들의 상태에 맞는 꼴을 먹고 있기에 굳이 불러낼 필요가 없다고 이해하면 됩니다. 나는 예수님이 특별히 불러낸 특별한 사람이란 자만심은 가당치 않습니다. 어쩌면 나는 이곳이 내게 너무나 좁고 얕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나 넒고 깊어서 내 수준에 맞는 곳으로 하향조정하시려 나만 불러 내시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다 이만하면 됐다 싶으면 다시 그 교회로 데려 오실 수도 있습니다.

역시 제 얘깁니다만, 하나님께선 저를 참으로 선하게 인도해 오셨습니다. 저는 압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얼마나 사랑하시며, 제가 하나님을 찾는 것을 얼마나 즐겨하시는지를. 그러하기에 저는 교회를 옮기는 문제에 있어서도 더 이상 큰 고민 않기로 했습니다.

그렇듯이, 하나님께선 저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당신의 백성들 또한 선하게 인도해 주실 것임을 믿습니다. 또한 제가 떠나온 교회에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도 동일한 은총으로 그들을 지키시고 이끄심을 믿습니다. 제 이 믿음이 여러분들의 믿음도 되기를 희망합니다.

2008. 11. 11



정순태

2008.11.12 01:00:01
*.95.73.2

과연 김유상 형제님이십니다!

귀한 체험담이었고, 명답 중의 명답인 듯합니다. 역시 하나님께서는 동일한 사안(여기서는 질문)에 대해서도 다양한 이해와 깨우침 주심을 다시한번 배우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각 성도들에게 주신 은혜도 다르고, 사명도 다르고, 깨우침도 다르고, 문제해결 방식도 다릅니다.(물론 이 모든 것이 합력하면 결국은 선으로 귀결됩니다만, 순간순간의 단면만 보면 이렇다는 의미입니다. ^^)

교회 적응 문제 또한 다양한 대처 방법과 해법이 존재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방식을 택하든, 모두가 뼈를 깎는 고통을 수반한다는 사실이지요. 유상 형제님의 귀한 체험 속에서도 언듯언듯 아픔의 흔적이 내 비칩니다.

결국, 유상 형제님의 이해와 저의 이해는 맥이 통하는 것 같습니다. 비록 강조점은 약간 다르더라도......<가장 중요한 핵심은 비록 현실교회에 무수한 잘못들이 있을지라도, 그래서 참기 어려운 반발심이 생길지라도, 그래도 주님을 떠날 수는 없다는, 이 마지막 고백은 형제님과 제가 함께 공유한다는 데 있다고 믿습니다.)

아무튼, 신앙생활은 "끙끙대며 홀로 감당해야 할 숙제들이 비일비재한 과정"임을 다시 고백하게 됩니다.

귀한 나눔 주신 유상 형제님께 감사드리며, 이런 시원한 생수를 자주 마시게 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려봅니다. 들어 주실거지요? ^0^

김유상

2008.11.12 06:01:18
*.170.40.25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신앙생활은 궁극적으론 혼자 감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형제님 같은 믿음의 든든한 동지가 있기에 감당케 됩니다. 그래서 모이기를 힘쓰라 했고 모여 서로 주안에서 교제하라 하셨을 겁니다.

이영임

2009.05.22 07:41:52
*.44.251.89

참으로 공감되는 말씀입니다 저도 3개월전에 교회를 옮겼지만 괴로움이 큼니다 떠나온 교회목사님과 교인들은 저를 피하고..저보다도 1달먼저 교회를 옮긴세가정이 있었는데..제가 그들의 꾐에빠져 교회를 옮겼다네요..그들을 만나지 말라는 목사님의 말씀을 어겼으니 제가하나님 말씀을 어겼다고 정죄하네요(목사님께 직접들은말) 모르겠습니다.예산1억700만원중에 50만원이 구제비...제정담당들은 집계만하고 집행과 통장은 목사님1인이 다하시고,,교인들이 저를 만나는걸 못하시게 막아서 이웃사는교인조차 저를 외면하고...물론 저도..흉악한 사람이지만...그래도 너무 괴롭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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