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5년 6월 영국과 프랑스 해군이 워털루에서 양국의 운명을 가름하는 최후의 일전을 벌였다. 당시는 통신수단이 발달하지 못해 범선에 달린 깃발에 커다란 글씨를 써서 육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소식을 전했다. 초조하게 바다를 바라보는 영국 국민들에게 전해진 소식은 “웰링턴 장군이 패배했다(Wellington defeated)”는 비보였다. 전국민이 순식간에 애통과 절망에 잠겨버렸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다시 들려 온 소식은 패배가 아니라 대승리를 거두었다는 것이었다. 절망의 한숨이 순식간에 승리의 환호로 바뀌어졌다. 이런 소동이 일어난 경위는 당시 바다에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범선 깃발의 세 단어로 된 통지문 “웰링턴이 적을 무찔렀다 (Wellington defeated enemy.)” 중에 마지막 한 글자 ‘enemy’가 가려져 있다가 안개가 걷히자 제대로 볼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
2000년 전 오늘 예루살렘의 골고다 언덕에선 인류 역사상 최고의 역전 드라마가 펼쳐졌다. 처음에는 예수님의 패배였고 도저히 가망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끝이 아니었고 하나님의 승리는 세상과 사단이 도저히 상상치도 못할 모습으로 따로 준비되어 있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 사흘 만에 무덤에서 부활하신 것이다. 사단의 권세 아래에서 죄와 사망의 굴레를 벗지 못해 절망의 한 숨을 쉬고 있는 인간을 구원해 주셨다. 스스로 겸비하여져 믿음으로 주님 앞에 나오는 모두에게 재 대신 화관을, 슬픔 대신 희락을, 근심 대신 찬송을 주셨다.
부활절을 맞는 많은 교회들이 성찬식을 거행한다. 성경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것에 관해 경고하고 있는데 무슨 뜻일까? 세례 교인 이상 만 먹고 마실 자격이 있다는 뜻일까? 아니다. 우리 마음 속에 안개가 끼어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다. 온갖 세상의 염려와 내 정욕에 가득 차 ‘주님이 사탄을 이기셨다 (Jesus defeated Satan.)’는 세 글자가 ‘예수님이 진 것 (Jesus defeated)’으로 잘못 읽혀져 아무 기쁨 없이 참여하는 것이다. 성찬은 십자가의 고난만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부활의 승리에 동참하는 것이다. 우리의 인간적 능력과 종교적 실력만으로는 내 주위를 뱀 같이 휘감아 들어 오는 사탄의 안개를 걷어내지 못한다. 예수님의 십자가 외에 그것을 걷어낼 길은 전혀 없다. 과연 당신은 부활의 아침에 성찬에 참여하기에 합당한 자인가 아닌가?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으나셨느니라” (눅24:5,6)
4/20/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