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옴) 아내와 나 사이

조회 수 16 추천 수 1 2024.12.19 15:47:01

아내와 나 사이

詩 人 / 李  生 珍 (1929~  )  

 

     아내는 76이고 나는 80입니다.

     지금은 아침저녁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가지만

     속으로 다투기도 많이 다툰 사이입니다. 

 

     요즘은 망각을 경쟁하듯 합니다. 

     나는 창문을 열러 갔다가

     창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고 

     아내는 냉장고 문을 열고서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누구 기억이 일찍 들어오나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은 서서히

     우리 둘을 떠나고

     마지막에는

     내가 그의 남편인 줄 모르고

     그가 내 아내인 줄 모르는 날도

     올 것입니다. 

 

     서로 모르는 사이가

     서로 알아가며 살다가

     다시 모르는 사이로 돌아가는

    세월 

 

    그것을 무어라고 하겠습니까. 

     인생?

     철학?

     종교? 

 

    우린 너무 먼 데서 살았습니다. 

 

*********************************************

 

•지난 2019년 봄 평사리 최참판 댁 행랑채 마당에서 박경리 문학관 주최로 제1회 "섬진강에 벚꽃 피면 전국詩낭송대회"가 열렸습니다.  60여 명이 참가한 이 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했던 낭송시가 바로 李生珍 詩人의 이 작품입니다. 

 

 7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남성 낭송가의 떨리고 갈라지는 목소리에 실려 낭송된 이 시는 청중들로 하여금 눈시울을 젖게 하였습니다.  좋은 낭송은 시 속의  ‘나’ 와 낭송하는  ‘나’ 와 그것을 듣고있는 ‘나’ 를 온전한 하나로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내 몸의 주인인 기억이 하나둘 나를 빠져나가서 마침내 내가 누군지도 모르게 되는 나이. 

나는 창문을 열려고 갔다가 그새 거기 간 목적을 잊어버리고 창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고, 

아내는 무엇을 꺼내려고 냉장고에 갔다가 냉장고 문을 열어놓은 채 그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장면은 상상만 해도 앞이 막막하고 울컥하지 않습니까?

 

시인은 차분하게 이 참담한 상황을 정리합니다.  

우리의 삶이란  “서로 모르는 사이가 /  서로 알아가며 살다가 /  다시 모르는 사이로 / 돌아가는 세월” 일 뿐이라고.  

그리고 자책하는 목소리에 담아 우리를 나무라지요.  

 "진리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는데" “우린 너무 먼 데서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아내와 나 사이’ 의 거리는 우리의 어리석음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바로미터인 셈이지요. 

 

오늘도 당신은 좋은일만 있을겁니다.(너무너무나 마음이 아프네요)오늘도 행복한 하루가 

되도록 화이팅! 아자아자! 힘내세요! 

 

* 김남호/문학평론가 ※오늘따라 몇 번이나 보았던 이 글을 또 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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