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브6기 간증] 2부: 롬폭의 눈물

조회 수 1131 추천 수 99 2010.07.08 21:27:22
2006년 4월 23일, 저는 그렇게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소재한 롬폭 훈련소에 입소를 했습니다. 이때부터 12월 22일까지 8개월간의 제 삶은 자유가 박탈된 갇힌자로서의 신분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1부에서 밝혀드린 대로, 저는 이곳 훈련소에서 주님의 웃음으로 이겨 나가고자 했습니다. 롬폭의 교도소 안으로 가지고 들어간 것은 개역성경 한 권과 수첩 한 개였습니다. 처음부터 저는 주님께서 마련해 주신 훈련장으로 간다고 생각했습니다. 고되고 힘든 것이 훈련의 속성이니까요.

도착해서 첫 한달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모든 것을 제 스스로 적응하고 살아 남아야 했습니다. 롬폭 훈련소의 환경을 개략적으로 소개합니다. 제가 있었던 곳은 ‘Lompoc Prison Camp’라고 하는 곳으로, 롬폭에 있는 감옥 중에는 제일 자유스러운 곳으로 줄여서 캠프라고 불리웁니다. 캠프는 철창이 없는 것이 특징입니다. 캠프 수용인원은 350명 정도로 두 동의 숙소동에 반씩 들어갑니다. 그러니까 한 건물 당 175명이 오픈된 공간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아래 윗층 철제침대에서 집단 생활을 한다고 보면 됩니다. 바글거리며 비좁고 옹색한 대규모 임시 사병 막사로 생각해도 되겠습니다. 저는 상대적으로 안좋은 문간의 윗층 침대에 자리를 배정 받았습니다.

350명 재소자 중 3분의 2가 마약 관련 범죄자들이었습니다. 온 몸에 문신이 있는 것은 물론이고 머리에다 문신을 한 사람도 보였습니다. 대부분 험상궂고 근육질인 멕시칸과 흑인들이 주류였습니다. Street English 아시지요? 한 문장에 F-word 또는 M.F-word가 두세번 들어가는 말을 처음 접했을 때의 충격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 친구들한테 언제 어디서 두들겨 맞을지 처음엔 걱정도 되었지만, 제가 있는 동안 큰 싸움은 없었습니다. 식사는 아침 6시, 점심 10시반, 저녁식사는 오후 4시반에 합니다. 주로 멕시코 식의 맛없는 음식이 주식입니다. 70년대 우리나라 군대 짠밥보다 조금 못하다고 보면 딱 맞습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하루 7시간 노동을 합니다. 저는 잔디깎는 일을 했습니다.

처음엔 좌절감도 있었습니다. 이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 적응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까마득하기만 했습니다. 특히 잠자리와 식사 적응이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간수들의 차가운 눈초리와 수감자들간의 보이지 않는 알력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마침 한국사람과 아시아계 사람들이 있어서, 서로간에 의지하고 도움도 받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가면서 여기있는 친구들도 다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하나 얘기해 보면 기구한 사연이 없는 친구가 하나도 없고, 겉은 그래도 속은 따뜻한 면이 있었습니다. 주일날 오후에는 조그마한 채플이지만 예배를 드리고 크리스챤 동료들과도 교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때의 제 심정을 잘 나타낸 글이 있어서 여기에 소개합니다. 그해 4월 25일 서울의 제 모교회 성도들께 쓴 편지입니다.

{롬폭에서의 3일째 날... 이 곳에 오기까지 많은 분들의 도움과 위로와 격려를 받았습니다. 담임목사님의 격려기도, 온 일가친척의 위로와 격려, 보이지 않는 기도와 위로의 손길, 2남선교회와 찬양대원들의 격려와 기도, 직장의 상사 동료 후배들의 도움이 없었으면 이곳에 오는 길이 눈물밭이 되었을 겁니다. 오는동안 4가지 단어를 묵상하며 8개월간의 영적 양식으로 삼고자 했습니다. 그것은 웃음, 기쁨, 감사, 비젼이었습니다.

주님, 주님의 웃음이 제 웃음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의 웃음을 배움으로 기쁨이 충만하게 하옵소서,
주님을 바라봄으로 감사가 넘치옵니다.
감사와 사랑의 웃음이 활짝 피어나게 하옵소서.
주님을 바라봄으로 주님의 비젼을 갖고자 합니다.
주님을 더 알아감으로 주님을 조금이라도 더 닮아가기 원합니다.
주님의 함박웃음을 제게 주시사
이곳 롬폭에서 기쁨과 감사와 비젼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대충 이런 기도내용이었습니다. 오늘 주일날, 이곳에서도 하나님은 예배를 받으셨습니다. 오후 1시에 찬양과 경배로 시작된 예배는 간증과 기도, 애찬식(성찬식은 아닌 듯)으로 이어졌고, 넬슨 목사님의 설교도 감명이 깊었습니다. 전혀 모르는 얼굴들이지만, 사랑의 웃음들이 가득한 가운데 드리는 영어 예배는 우리식의 경건스럽고 정형화된 예배는 아니었지요. 서로 간에 농담도 던지고, 사회자도 없는 가운데 자유스러움이 넘쳤고, 목사님의 설교도 유머스럽고 격식 없는 태도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속에서 잔잔히 운행하시는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느꼈습니다.

넬슨 목사님의 설교는 출17:8-16에 나오는 이스라엘과 아말렉간의 전쟁이었습니다. 광야생활 중 이스라엘이 아말렉 족속과 싸우게 되었는데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군대를 이끌고 골짜기에서 싸웁니다. 한편, 산꼭대기에서는 모세가 두 손을 높이 듭니다.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지게 되지만, 아론과 훌의 도움을 받아 모세의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가지 않습니다. 여호와 닛시로 이름한 이스라엘의 큰 승리였지요. 원수 아말렉을 멸하고 승리하게 됩니다. 저는 본문을 들으며 이것이 마치 이곳 롬폭과 한국에서의 상황과 똑같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힘겨운 싸움과 전투가 롬폭에서 벌어지는 것 같지만, 영적 실체를 보면 한국에서 벌어집니다. 하나님의 눈은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을 향한 여러분들의 손을 보십니다. 그리곤 전투에서 승리를 주십니다. 기도의 손이 승리한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외면적으로 벌어지는 상황을 보게 됩니다. 골짜기에서 벌어지는 전투에서 여호수아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산꼭대기에 모세의 들려진 손이 없었다면 여호수아는 전투에 패했을 것입니다. 여호수아인가, 모세인가? 누군가 이렇게 물어보았다면 저는 단연코 승리의 주역은 실제 열심히 싸운 여호수아가 아니라, 뒤에 숨어서 기도의 손을 하나님께 들어준 모세라고 얘기하겠습니다. 어느 선교사의 간증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선교현장에서 전도도 잘 되고 새신자가 늘어나고 부흥을 크게 했던 일이 있어서 자기의 능력이 커진 것으로 자만했는데, 서울의 본교회에 연락한 결과 그 선교사를 위한 40일 특별기도를 막 끝냈다고 했답니다. 누구의 힘일까요? 앞에 있던 여호수아가 아닌 뒤에서 조용히 기도한 모세의 힘이었습니다.

저도 뒤에 있는 모세의 손이 필요합니다. 이 곳은 지내기도 괜찮고, 큰 문제도 없습니다. 하지만 생각나실 때마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요. 영육간의 강건함이 최우선이고 주님께서 주신 부르심의 소명을 깨달음, 또한 이곳 롬폭에서도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갇힌자, 이집사 드림.}

시간적 정신적으로 적응이 되어가면서 성경읽기를 시작했습니다. 갖고 들어온 개역성경을 가지고 평일날 저녁과 주말 시간을 이용해 통독을 하였습니다. 신약 2번, 구약 1번 읽는 것을 보통 1독으로 계산하였고, 3개월이 조금 지나자 3독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어 새번역 성경을 받아서 3독을 추가한 시점은 5개월째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8개월 있는 동안에 개역성경으로 6번, 새번역 성경으로 5번, NIV 영어성경으로 1번을 마쳐 총 12독을 하게 되었습니다. 일체의 주석이나 해설서가 없이 오직 성경 말씀만 붙들고 읽었습니다. 말씀에 깨달음이나 은혜가 올 때는 조그만 수첩에다 그때그때 기록하곤 했습니다.

3개월째 시점에서부터 말씀의 은혜가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은혜는 거의 예외없이 회개와 눈물이 함께 왔습니다. 롬폭 오기전 웃음을 달라고 기도했는데, 주님께서는 웃음은 주지 않으시고 오히려 회개의 눈물로 은혜를 내려 주셨습니다. 이전엔 말씀을 읽으면서 눈물을 보인 적이 없었습니다. 아무리 말씀이 달다해도 꿀과 같이 달다고 한 시편 기자의 고백은 머나먼 얘기였습니다. 이 모든 것이 롬폭에 와서 바뀌었습니다. 말씀이 너무 좋아 잠자는 시간도 아까왔습니다. 통독 횟수가 더해 감에 따라 말씀이 입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신구약의 시간적 관통과 구속사적 흐름이 눈에 잡혔습니다. 크고 작은 여러 신앙의 화두들이 제게 물결처럼 임했습니다. 이 중 주요한 것들은 갇힌자 신앙, 분깃 신앙, 다윗, 베드로, 사귐 신앙, 비젼, 주님의 눈물 등 일곱가지 였습니다. 각 내용을 간단히 제가 깨달은 순서대로 요약합니다.

첫번째, 갇힌자 신앙은 제가 갇힌 자이기 때문에 느낀 동병상련의 은혜였습니다. 저는 성경 속에서 세분의 갇힌자를 발견하였습니다. 8번이나 울음을 터뜨렸던 울보 요셉이 갇힌 자였습니다. 갇힌자의 서러움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위해서는 한번도 울지 않았고 형제들과 아버지만을 위해서 울었던 요셉을 보면서 저도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성경 속의 제 영적 스승이라 할 수 있는 바울사도가 역시 갇힌자였습니다. 고린도후서와 옥중서신을 읽으면서 복음과 그리스도를 향한 일편단심 애끓는 바울의 심정이 제 안으로 동화되었을 때 저는 또한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세번째 갇힌자는 누구일까요? 그 분은 세상을 구하기 위해 세상 속에 스스로 갇힌자 되신 예수님이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 5절부터에 낱낱이 표현된 예수님의 성육신은 제게는 33년간의 갇힌자의 삶으로 보여졌습니다. 주님께서 스스로 갇히셨기에 롬폭에 갇힌 제 심령을 터치하시고 회개와 위로를 주시니 어찌 눈물의 은혜가 아니겠습니까?

두번째, 분깃 신앙은 시편을 통해서 처음 발견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분깃이시니, 하나님은 영원한 분깃이시라, 주는 생존세계에서 나의 분깃이시라, 여호와는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라는 말씀을 통해서였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분깃이라면 당연한 것이었으나, 하나님이 나의 분깃이라는 말은 제겐 생소함을 넘어 충격적이었습니다. 이후 성경을 보니 아브라함, 다윗, 예레미야, 에스겔, 하박국 등 곳곳에서 분깃신앙이 엿보였습니다. 신약에서 예수님의 탕자 비유를 이해하는 핵심도 분깃신앙이었습니다. 분깃은 또한 나눔신앙으로 연결됩니다. ‘주님은 나의 분깃’에서 ‘주님만이 나의 분깃’으로 제 관점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이 분깃신앙을 눈물로 깨닫게 해 주심으로 제 신앙은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었습니다.

세번째는 다윗을 통한 믿음의 도전이었습니다. 처음 다윗 신앙을 접한 것은 시편27편 4절에서였습니다. 다윗의 유일한 소원은 일평생 성전에서 하나님의 자비로운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시편 말씀을 대하면서 그의 아름다운 마음을 깨닫는 순간, 제 마음도 눈물의 은혜로 무너졌습니다. 이후 다윗의 하나님을 향한 마음의 중심을 성경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다윗의 아름다운 시편은 제게 크나큰 위로의 말씀으로 밀려 왔습니다. 그 다윗을 주님께서 택하셨듯이, 저도 택해 주시고 은혜 주심을 또한 깨달았습니다. 지금도 시간이 나면 더 쓰고 싶은 글이 다윗에 대한 내용이 일순위가 될 정도로 제 묵상의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네번째는 베드로의 눈물입니다. 베드로는 굳센 사나이처럼 보였지만 예수님 앞에서는 실제 눈물의 사람이었습니다. 갈릴리에서 제자로 부르심을 받았을 때, 주님을 바라보지 못해 바닷속으로 빠져 갔을 때, 변화산에서 예수님의 변모한 모습을 뵈었을 때, 계집종 앞에서 예수님을 세번 부인했을 때, 부활하신 예수님을 갈릴리 호숫가에서 만났을 때,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을 받았을 때 등 그는 도처에서 눈물을 뿌렸습니다. 그의 눈물은 주님을 하나씩 하나씩 배워가는 과정의 눈물이었습니다. 그 베드로의 눈물은 또한 제 눈물이기도 했습니다. 그의 눈물을 깨달을 때마다 저도 그를 따라 눈물을 흘리며 주님을 체험해 갔습니다. 그 눈물의 완성은 베드로후서 1장에 나오는 ‘믿덕지절인경우사’ 즉, 믿음 덕 지식 절제 인내 경건 형제우애 사랑으로 표현되는 신의 성품으로 저는 보았습니다.

다섯번째는 사귐 신앙입니다. 성도의 교제라는 의미의 사귐이라기 보다는 주님과 나와의 사귐이라는 차원입니다. 말씀을 읽으면서 주님께서 정말 나와 일대일로 사귀고 싶어 하신다는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과 사귄 위대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죽음을 보지않고 하늘로 올라간 에녹과 엘리야가 제 모본이었습니다. 아브라함과 모세도 제게 사귐신앙을 가르쳐 준 분들이었습니다. 그 사귐은 예수님을 통해서 완성되었고 성령께서 내 안에 내주하심으로 저는 사귐신앙으로 도약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특별히 요한일서를 통해서 나를 향하여 사귐을 갖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간절한 마음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사귐의 지존이시며, 나의 최종 목표는 그분과의 일치됨입니다.

여섯번 째, 비젼은 믿음의 다른 말로 보셔도 되겠습니다. 믿음장이라고 부르는 히브리서 11장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믿음의 세계가 보이는 이 세상을 이끌어감을 깨달았습니다. 나타나 있는 덧그림의 세상은 잘 드러나지 않는 밑그림에 의해 시작됩니다. 그리고 보이는 세상은 보이지 않는 세상과 바라봄의 법칙에 의거한 믿음의 세계에 의해 창출된 것입니다. 비젼의 사람 아브라함과 다니엘, 밑그림과 덧그림, 바라봄의 법칙, 비젼의 3단계 등 이같이 비젼의 말씀들이 제게로 다가왔습니다. 특히 매일의 삶 속에서 주님만 바라고 소망하는 바라봄의 법칙은 제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롬폭의 후반기인 11월 중순에 극심한 몸살과 편도선염이 저를 찾아 왔습니다. 그곳에서 약과 의사에 의한 정상적 치료는 엄두도 낼 수 없는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이때 바라봄의 법칙을 통해 그렇게 아팠던 편도선염이 하룻밤 사이에 치유되는 은혜도 맛보았습니다.

마지막 일곱번째로 주님의 눈물을 체험했습니다. 요한복음 11장 35절의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는 말씀을 대하며 저는 세번의 감격스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주님의 눈물이 내 가슴에 꽂힐 때마다 저는 눈물을 쉴 새가 없었습니다. 나흘 전에 죽은 나사로를 무덤에서 살려 내시기 직전, 주님은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나사로를 향한 그지없는 사랑하심과 주위 사람들의 믿음 없음에 대한 심령의 통분, 그리고 마르다 마리아 자매에 대한 연민 등이 종합된 주님의 눈물은 제게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과 감격으로 밀려왔습니다. 그리고 그 주님은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지금도 너를 위하여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울고 있노라.” 그렇습니다. 주님의 눈물은 제게 롬폭훈련소의 마지막 졸업 선물로 주어졌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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