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에서 당한 봉변

조회 수 1315 추천 수 91 2006.03.16 05:52:13
일전에 한 친구가 내게 아주 기막힌 일을 당했다며 동정을 구했다. 사연인즉, 마켓에 갔는데 그곳의 한 여종업원이 자기더러 "아버님"이라고 부르더란다. 아무리 자기 머리가 벗겨져 나이 들어 보이기로서니 이제 겨우 쉰을 조금 넘겼을 뿐인데 아버님이라니! 너무나 원통하고 기막히고 분해서 살려던 것 그냥 놓고 나와 버렸단다. 곁에 있던 부인은, 글쎄 그 꽤씸한 여자가 말예요 라면서도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난 제법 진지한 표정으로, 그러게 말야 한국에선 요즘 아저씨나 선생님 대신 아버님이라 그러더라구 라면서 그리 대수로운 일이 아니니 크게 신경쓸 것 없다는 투로 위로를 했다.

그저께 마켓에 들렸다. 라면을 하나 사들고 계산대로 가는 길목에 새로 나온 라면을 싸게 판다고 맛배기까지 주며 홍보를 하는 여종업원에게 붙들렸다. 관심을 표명하는 내 귓등을 때리는 "아버님 한 번 맛보세요"라는 소리에 얼마나 놀랐는지! 난 아직 머리도 벗겨지지 않았는데, 아직도 젊어 보인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데, 아버님이라니? 멋적고 속상해서 못들은 것으로 간주하고 있는 내게 그녀는 다시 한 번 "아버님 지금 세일 중이니 그것 내려 놓고 이걸로 가져 가세요 저도 이 라면을 참 좋아해요" 라며 확인 사살을 한다.

끙! 오냐 내 너가 얼마나 어리기에 날더러 아버님이라 하나 한 번 자세히 보아 주리라. 그런데 그녀의 얼굴은 삼십하고도 중반은 되었음직해 보인다. 내 기분은 더 엉망이다. 차라리 끝까지 그녀의 얼굴을 보지 말고 그녀가 아주 어리겠거니 생각할 걸 그랬다 싶다.

아줌마가 그 라면을 좋아하는 것과 나완 아무 상관이 없지요, 심통이 난 나는 그렇게 면박을 주었다. 머쓱해진 그녀는, 그건 그렇지만요 그러니까 하나 사 가시라구요 라며 계속 공세를 유지하려 든다. 그 공세에 밀린 것은 아니고 순전히 경제적 실익 때문에 친구와는 달리 난 그 라면을 사들고 집으로 돌아 왔다. 그리곤 아내에게 이 기막힌 봉변을 하소연했다.

그럼, 당신이 오빤줄 알았어요? 어이없어 하는 아내의 태도에 아, 세상에 믿을 이는 오직 예수님 당신 한 분 뿐이심을 다시 한 번 절감했다.

3.15.2006

운영자

2006.03.16 19:26:00
*.104.236.203

사람이 늙어 가는 태도에 두 가지가 있습니다. 나이 대접 안 해준다고 호통을 치는 자와 가능한 젊게 보이려 하는 자입니다. 그래서 실제 나이를 늘이거나 줄여 가면서 또 그렇게 보이도록 치장과 변장술을 동원해 가면서 그 태도를 유지하려 듭니다. 어차피 같은 거짓말이라도 저는 그나마 후자가 마음에 들며 또 실제로 저도 그렇게 하고삽니다.

그러나 마지막 커멘트 "세상에 믿을 이는 오직 예수님뿐"이라는 것 참 절묘합니다. 예수님 안에서는 우리의 나이, 외모, 학식, 대머리든 아니든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분 안에서는 나이 50 중반에 저 같이 속알머리 빠진 정도로는 항상 젊은 오빠 아니겠습니까? 참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정순태

2006.03.17 01:26:40
*.95.73.2

아니, 목사님
속알머리 없으십니까?
이런 영적인 특급비밀은 함부로 누설하시면 안 되는데...........!!!


늙는다는 것 - 겪어봐야 알고, 아직 더 겪어야 할 인생의 한 부분이겠지요.
그럴지라도,
자신의 사진(디지탈 사진이 아닌)을 보며 놀랄 때의 허탈함이란...............

잠언20:29(늙은 자의 아름다운 것은 백발이니라) 말씀을 온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한,
아직은 나이를 먹었다 하기 어렵겠지요?


좋은 글을 올려주신 김유상 형제님께 감사드립니다.
잘 읽었습니다......
특히 한 자매님에 관한 글도.............. 샬롬.

김유상

2006.03.17 02:25:09
*.170.40.27

거울을 들여다 볼 때와 사진을 들여다 볼 때의 차이가 어찌 그리 큰지요? 지난 연말 아내와 사진관에 가서 찍은 사진을 보고 얼마나 놀라고 허탈해 했는지 모릅니다. 아내 곁에 날 꼭 닮은 중늙은이가 포즈를 취하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사실 나이드는 것, 늙는다는 것에는 크게 괘념치 않습니다. 지난 시절에 대한 향수와, 젊은 시절에 누릴 수 있었음에도 이런 저런 한심한 이유로 누리지 못했던 것들의 유효기간이 소멸됨에 따른 아쉬움 때문에 이따끔 짠한 마음이 드는 것은 사실이나, 젊은이들은 누리지 못하는 여러 혜택도 있고 또 나이든 사람들만의 멋과 여유도 있지 않습니까? 걱정은, 나이는 드는데 나이값을 못하면 어쩌나, 멋있게 늙지 못하고 추하게 늙으면 어쩌나는 거지요. 그래서 생일 때마다 기도합니다. 한 살 더 먹은만큼 더 지혜롭고 더 여유롭고 더 풍성한 성품으로 빚어 주실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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