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보고

조회 수 2119 추천 수 206 2006.07.21 02:48:19
7월 7일부터 12일까지 미주리주 세인트 루이스에 살고 있는 미국인 친구, 리와 키튼의 집에서 아내와 함께 휴가를 보내고 돌아 왔습니다. 친구라고 했지만 실은 그들에게 가기 전까진 여행길에 만나 잠시 즐거운 시간을 나누었던 길동무일 뿐인데다가 열렬한 여호와의 증인인 그들을 찾아 가게 된 사연인즉 이렇습니다.

재작년 10월에 아내와 함께 한국을 방문했고, 내친 김에 북경에 있는 친구를 만날겸 관광도 할겸 하여 3박4일의 관광팀에 합류했더랬지요. 그런데 그 팀에 한국말을 전혀 못하는 미국인 부부가 끼어 있었습니다. 영어로 그들과 인사를 주고 받는 것을 본 관광단 인솔자는 반색을 띄며 저희에게 그 부부를 맡겼고, 저희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기쁨에 기꺼이 그들을 맡았습니다.

알고 보니 리빙스톤 부부는 그들만이 아니라 동반자가 있었습니다. 대전에 살고 있는 조 모씨와 그의 부인 그리고 딸이 그들과 일행이었습니다. 그런데 조 씨 부부의 영어는 대충 웃음으로 얼버무리는 실력이었고 그나마 대학에서 디자인을 공부한다는 딸의 실력이 좀 나아서 간단한 말은 주고 받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니 조 씨 가족도 인솔자 못지 않게 저희들의 존재를 반겨 주더군요. 그래서 저희 부부는 그 두 가족과 함께 움직이게 되었습니다.

조 씨와 리는 월남에서 만났답니다. 태권도 교관이었던 조 씨가 리의 부대에 파견됨으로써 그들의 만남이 이루어졌는데, 리에 의하면 서로 첫 눈에 의기투합하여 전장에서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 우정은 편지로 전화로 시간과 공간을 옮겨 이어졌고, 오래동안 다니던 직장을 퇴직하여 돈과 시간의 여유가 생긴 조 씨의 초청으로 리는 약 40년만에 조 씨가 만난 적 없는 아내 키튼을 대동하고 조 씨와 그의 가족을 만나러 한국을 방문하게 되었던 겁니다. 당시 그 이야기는 신문과 방송을 통해 보도되었다 합니다.

“리에게서 오는 편지는 사전을 뒤적여 가며 어떻게든 대충 읽을 수 있었는데 제가 보내는 편지가 문제였지요. 짦은 실력으로 영어 편지를 보내려니 얼마나 힘이 들던지. . .번번이 뻔한 인사말 정도의 글만 보낼 수 밖에 없었어요.”

“한 번은 초에게서 편지가 왔는데 온통 한글로 적혀 있지 뭡니까! 그걸 읽고 번역해 줄 한국인을 찾느라 혼났지요.” 리는 조 씨가 자신을 골탕먹이려고 일부러 그랬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영어로 편지를 쓰니까 마음 속에 할 얘기를 다 쓸 수가 없어서 번번이 속이 답답했어요. 그래서 엣다 모르겠다 하고 한글로 속내 얘기를 맘껏 써 보냈던 거지요. 그곳에도 한국 사람들이 산다기에 누군가가 통역해 주겠지 하고요.”

나흘을 같이 다니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저희 부부는 리빙스톤 부부와 꽤 친해지게 되었습니다. 리는 이발사이며 키튼은 학교 선생이었는데 얼마 전에 은퇴했다더군요. 둘 사이에 아이는 없는데, 키튼은 리 하나로 족하다며 웃었습니다. 리는 에너지가 넘치고 요란스럽고 분주해 정말 개구쟁이 아이 같았습니다.

우리는 서로가 함께 골프를 즐긴다는 것을 알고는 더 친해졌습니다. 리는 신이 나서 저희더러 나중에 자기네 집에 놀러와 함께 골프를 하자고 초대했고, 저희는 그러겠다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미국에 돌아 온 후론. 한 두 번 이메일로 소식을 주고 받은 것을 끝으로 그들은 우리의 추억이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함께 휴가 계획을 세우자는 친구 부부가 여럿 있는지라, 여행 중에 잠깐 사귀었을 뿐인 한 미국인 부부를 다시 만나러 미주리주까지 갈 시간은 도무지 나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작년엔 아내가 휴가를 얻지 못했기에 금년엔 친구들이 미리부터 아내의 휴가를 챙기고 있었으니 리빙스톤 부부는 은퇴 후에나 찾아 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금년에 함께 멕시코 캉쿤으로 가기로 약속했던 친구들 중 두 가족이 우리를 배신하고 (^?^) 둘만 비행기표를 끊은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아내는 약속된 날에 휴가를 신청했는데 말입니다. 얘기를 들어 보니 나무랄 수도 없었습니다. 한 친구가 마침 그 기간에 타임쉐어 콘도를 싼 값에 얻었는데 방이 둘 뿐이어서 어쩔 수 없었답니다. 잠자리가 편치 않으면 잠을 못자는 그 친구는, 하루 이틀도 아니고 8박9일 동안 휴가를 불편하게 지낼 수는 없지 않느냐는 거지요. 거실에서 불편하게 지내고 싶지는 않고 그렇다고 방을 차지하더라도 맘이 편치 않다는 겁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는 아내의 물음에 문득 리빙스톤 부부가 떠올랐습니다. 아내도 찬성했습니다. 문제는 그들의 초대가 아직 유효한가였는데, 전화를 하니 반갑게 받아 주었고, 마침 게스트 룸 공사가 마무리되어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더군요.

막상 비행기를 타고 그들에게 가면서도 그들이 마지 못해 우리를 맞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걱정은 우리를 마중 나온 그들을 보자 곧 사라졌습니다. 그들은 진정으로 우리를 반겨 주었습니다. 마치 오랜 친구를 다시 보는 것처럼.

너무 길게 잡지 않았나 후회했던 5박 6일이 더 길게 잡지 않아 후회될 정도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토요일엔 근 150년 역사를 지닌 미주리 식물원 (Missouri Botanical Garden)에 가서 온갖 종류의 식물을 보며 또 한 번 하나님께 감탄했고 그리고 마침 그곳에서 전시중인 유리세공가  데일 치훌리 (Dale Chihuly)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그곳에 가기 전까진 그의 존재조차 몰랐으며 유리공예에 대해 아는 것도 거의 없었던 저희에게 치훌리의 작품은 눈이 휘둥그레지는 경험이었습니다.

오후에는 강변도로를 따라 리의 수집품 중 하나인 빨강색1948년형 윌리 집스터 (Willy Jeepster) 오픈카를 타고 드라이브를 하면서 일리노이강과 미주리강이 미시시피강으로 합류되는 지점도 보았습니다. 카 페리를 타고 그림처럼 아름다운 섬으로 가 1847년부터 그 자리에 있는 한 호텔의 식당에서 배불리 저녁을 먹었습니다. 그 식당의 특징은 메뉴를 손님이 아니라 주인이 결정하는 거더군요. 자리에 앉자 음식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전형적인 미국 음식이었습니다. 맛도 있었지만 양이 풍성했습니다. 원하는대로 얼마든지 더 준다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습니다. 음식값마저 비싸지 않았습니다.

주일에는 친구 부부를 따라 (아내는 자신이 없는지 집에서 성경을 읽고 혼자 예배를 드리겠다 하여 남겨 두었습니다.) 난생 처음으로 여호와 증인의 회당인 왕국회관 (Kingdom Hall)에 갔습니다. 오래전부터 여호와의 증인에 관심이 많았고 그들의 예배에 참석해 보고 싶었던 터였는데 마침 그 원이 이루어진 겁니다. 갖고 싶었던 그들의 성경도 얻었고, 이런 저런 책자도 얻었습니다.

그들은 교구별로 시간을 달리 하여 집회를 갖는데 (그들은 예배라 하지 않고 미팅이라 했습니다) 그들이 속한 교구는 12시에 집회를 갖는답니다. 그러나 그날은 하필 리빙스톤네 교구원들의 피크닉이 인근 공원에서 예정되어 있어서 자기들은 9시 집회에 참석하고 미리 가서 준비를 해야 한다 했습니다.

집회는 약 두 시간 정도 진행되었는데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우선 다 일어서서 찬송가를 한 곡 불렀습니다. 처음 대하는 곡이었습니다. 그리고 자리에 앉으니 우리의 장로쯤 되는 사람이 약 한 시간 동안 간간이 성경 여기 저기를 인용하면서 창조와 진화라는 주제의 설교를 (실은 강의에 더 가까웠습니다) 하였습니다. 요지는, 천지 만물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모든 것이 우연히 생겼다는 진화론자들의 주장은 말도 안되고, 여호와 하나님의 손길과 섭리가 분명히 담겨져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여호와의 증인에는 고정 설교자가 없고 몇 몇 장로격의 형제들이 순번을 정해 설교를 한다고 리가 설명해 주더군요.) 강의가 끝나자 일어나 다른 찬송을 한 곡 더 불렀는데 역시 처음 대하는 곡이었습니다. 찬송곡들은 모두 그들만의 것인 듯했습니다. 곡보다 가사에 더 치중된 느낌을 받았는데 별로 가슴에 와닿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찬송이 끝나자 이번에는 성경공부가 진행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예지와 예언은 의심할 바 없으므로 우리 모두 어떠한 어려움이나 시험에 봉착해도 믿음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인도자가 준비된 교재를 한 단락씩 읽게 한 뒤에 각 단락마다 마련되어 있는 질문을 던지고 손을 드는 사람을 호명하여 대답하게 하는 방식으로 약 한 시간 가량 진행되었습니다. 공부가 끝난 후엔 다 일어나서 서로 손을 잡고 기도로 집회를 마쳤습니다.

집회가 끝난 후 집으로 돌아가 준비를 갖추고 공원으로 갔습니다. 참 크고 조용한 공원이었습니다. 이 공원 또한 역사가 100년을 훨씬 넘기고 있더군요. 시간이 되자 하나 둘씩 먹을 것을 들고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까지 약 백 명이 되어 보였습니다. 리는 신나서 교구원들에게 우리를 소개했습니다. 흑인이 꽤 많았는데 연령층은 다양했습니다. 모두 친절하고 친근미가 넘쳤습니다. 그들과 같이 게임도 하고 얘기도 하면서 저녁늦게까지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월요일엔 그곳의 한 프라이빗 코스에서 다 함께 골프를 쳤습니다. 그곳의 잔디 관리인을 리가 알고 있는데, 마치 저희가 올 것을 알고 있기나 한 것처럼 그날 와서 골프를 치라고 얼마 전에 연락이 왔었다는 겁니다. 참 아름다운 코스였습니다. 골프 실력은 차분한 키튼이 나았습니다. 체격이 큰 키튼은 거리도 좋았고 방향도 좋았습니다. 단 한 번도 페어웨이를 벗어나는 일이 없었습니다.

화요일에는 오전에 인근 퍼블릭 코스에서 골프를 치고 오후엔 동동식품점에서 쌀과 차돌배기, 상추를 사서 오랫만에 한식으로 식사를 했습니다. 약 3천 명의 한국인이 그곳에 살고 있고 약 20여 개의 교회가 있노라고 식품점 주인여자가 알려 주었습니다. 밤에는 벌써 여덟 번을 보았을 정도로 좋은 영화라는 리빙스톤 부부의 말에 제인 오크의 소설을 영화화한 Love Comes Softly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참 좋은 영화였습니다. 두고 두고 보려고 하나 사 왔을 정도입니다.

수요일. 휴가 마지막 날입니다. 다운 타운으로 가서 서부개척의 시작을 기념하여 세워진 높이 630 피트의 게이트웨이 아치와 서부개척사 박물관을 구경하고 미시시피강 유람선을 탄 후 버드와이저 맥주를 만드는 앤하우저부시 양조장을 둘러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집으로 돌아와 다시 한식으로 저녁을 나누어 먹고 공항에서 아쉬운 이별을 하고 비행기를 탔습니다.

리는 벌써 두 번이나 제게 전화를 걸어 자기가 준 책들을 읽어 보았느냐며 채근입니다. 그때마다 곧 읽겠노라고 그리고 궁금한 점을 이메일로 보내겠노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들에게 가기 전에 기도를 했습니다. 그곳에서 좋은 시간을 지내게 해 주시며 그들에게 진리를 전할 기회를 주십사고. 그리고 그곳에 있으면서 계속 기도했습니다. 그들에게 무엇이 진리인지를 알려 주십사고.  하나님께선 저희가 그곳에서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게끔 최고의 계획을 마련해 두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진리를 전할 기회는 얻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막대기에 (Stake)에 못박혀 죽으셨다는 리의 말에, 그것이 뭐 그리 중요하냐고 대꾸했고, 자기들도 예수를 따르는 크리스챤이라는 그들의 대답에 그러나 당신들은 예수를 인간이라 믿고 우리는 신이라 믿는다고 반박한 것이 다 입니다.

그들을 중국에서 만나기 전부터 저는 기독교 변론에 관심이 많았던 터여서 여호와 증인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공부를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다시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면서 앞으로 얼마동안 계속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들과 변론을 시작할 작정입니다. 근 30여년을 여호와의 증인으로 살아온 그들이, 교구의 리더이고 성경공부를 인도하고 있는 그들이 쉽게 설득될리 만무하다 싶지만,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들에게 괜히 붙여 주시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제가 성경의 진리를 바로 깨우치도록, 그 깨우친 바를 조리있고 지혜롭게 그리고 사랑으로 전달할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7.20.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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