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조회 수 2007 추천 수 161 2008.03.24 23:41:39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마 6:11)

주기도문을 다시 묵상하던 중 이 구절에서 멈췄습니다.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왜 주님께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 하시는가? 분명 예수님께선, ‘일용할 양식’으로 대표되는 먹고 마시고 입을 것 즉 우리의 필요를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가 구하기도 전에 이미 다 알고 계시다고 덧붙이지 않으셨는가. (마 6:31-32) 들꽃도 입히시고 공중 새도 먹이시는 하나님께서 하물며 우리의 필요를 나 몰라라 하시겠는가 나무라시지 않았던가.

이 의문을 풀기 위해 다시 곰곰 생각하고 앞뒤 구절들과 관련 구절들을 찾던 중, 어떤 사본엔 ‘일용할 양식’ 대신에 ‘내일의 양식’으로 적혀 있다는 정보를 얻었습니다. 내일 즉 다음 날의 양식 하면 떠오르는 것이 만나 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모세에게 배고파 죽겠다고 원망을 하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출 16:4) 이 만나는 다음날 아침에 내린 이슬이 마른 후에 나타납니다. 그날 이후 만나는 40년 광야 생활 내내 그들에게 식량으로 주어졌습니다.

긂주린 광야 백성들이 모세에게 먹을 것을 내놓으라고 항의를 하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겠노라 약속하시고 그 약속을 이행하시는데, 그 기간이 장장 40년 입니다. 광야 백성들은 한 번도 하나님께 일용할 양식을 직접 구한 적이 없습니다. 백성과 모세와의 대화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알아서 주셨습니다. 그것도 일만 사천육백 일 내내 말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께선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기도하라 하시는지요? 어쩌면 이 양식은 제가 생각해 온 양식이 아닌 것인지요? 제가 여태껏 엉뚱한 것을 구했던 것은 아닌지요?
        
주기도문의 이 구절에 선행하는 구절은 하나님의 뜻에 관한 기도입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는 이 가르침은 어쩌면 하늘에서는 이미 이루어졌고 이 땅에서도 이루어져야 할 하나님의 뜻과 관련된 것은 아닐까요?

신명기 8장 3절에 사십 년 광야 생활 끝에 마침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의 진격을 앞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에게 만나를 주신 하나님의 참뜻이 무엇이었는지를 모세가 밝히고 있습니다.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과 출애굽기 16장 4절 후반부에 기록된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나의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는 말씀을 함께 검토하여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까닭은 율법 준수를 위해서입니다. 달리 말하면 하나님께서 목적하시는 바는 우리의 순종입니다. (불순종의 결과는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말씀에 순종하여 영생케 하시고자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우리가 구하기도 전에 알아서 그날그날 주시는 겁니다.

따라서 순종에 이르게 하지 못하면 우리가 날마다 떡을 먹고 살아 있어도 소용 없습니다. 잠시 죽음이 유보된 것일 뿐 결코 산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일차 관심사는 말씀에의 순종이어야지 양식이어서는 안됩니다. 배부르다고 순종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선 지금 그 말씀을 하고 계신 겁니다. 영생으로 이어지는 순종은 떡만으로는 안 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는 줄을 알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잘 알고 계신 예수님께선 혹독한 굶주림 중에도 떡 대신 말씀을 택해 순종에 이르십니다. 그러나 광야 백성들은 일용할 떡을 주셨음에도 순종에 실패해 이십 세 이상의 장년들은 모두 약속의 땅 가나안을 밟지 못하고 죽게 됩니다.

만나는 그것을—우리의 순종은 결코 우리의 배부름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며, 배불리 먹어도 우리는 하나님을 순종치 못하는 존재라는 사실을—일깨워 주어 오직 하나님 말씀에 의지하는 삶을 훈련시키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만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으로 들어간 그날부터 더 이상 주어지지 않습니다.  

이제 요한 복음서로 가보겠습니다. 6장입니다. 예수님께서 앞서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에” 자신을 찾아온 무리들에게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6:27)고 말씀하신 후 그 두 양식이 무엇인지 길게 설명해 주고 계십니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 /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 이것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6:48-51, 54-55, 58)

만나는 다음 날 아침이면 썩어 벌레 생기고 냄새 나는 양식입니다. (출 16:20-21) 매일 같이 만나를 먹고도 광야 백성들은 죽었습니다. 우리의 배를 불릴 뿐인 양식은 우리를 영생에 이르게 못하므로 결코 우리가 목숨 걸고 일할 (구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해야 할 참된 양식은 먹는 자에게 영생을 주는 영적 만나인 예수님 당신의 살이라고 예수님께서 직접 일러 주고 계십니다. 만나는 우리를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인 예수님께로 이끄는 표지일 뿐이었습니다.

이제 한 군데만 더 찾아 보고 결론을 맺겠습니다. 역시 요한 복음서입니다.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 (4:34) 제자들이 양식을 구해 예수님께 드리자 자신에겐 제자들이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다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 즉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다른 말로 율법을 준행하며) 하나님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행해야 할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우리 이웃—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면 심지어 원수마저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온전히 이루어야 할 하나님의 일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보내신 자 곧 예수를 온전히 믿는 것입니다. (요 6:29)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나님께 간구하라 하신 일용할 양식은 예수님 자신을 가리킨 것이었습니다. 우리 힘으론 도저히 율법을 준행하여 영생에 이를 수 없기에 매일매일 우리는 예수님의 도움을 힘입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로 속을 채워 우리의 살과 피가 예수의 살과 피로 바뀌고 우리의 심장이 예수의 심장으로 바뀌어야 비로소 우리는 예수의 양식을 우리의 양식으로 삼아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하나님의 일을 온전히 이룰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진정 예수로 나를 채우기 원하는가? 다시 말해 나는 나의 삶이 아닌 예수의 삶을 살기 원하는가? 이 땅에서의 불이익과 조롱과 멸시와 천대와 구박과 핍박과 배신과 외로운 죽음을 감내할 자신이 있는가? 과연 사도 바울과 같은 삶을 (고후 11:23-27) 견딜 수 있을 것인가?

솔직히 자신 없습니다. 그저 예전처럼 ‘일용할 양식’을 문자적으로만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욕심내지 말고 그날그날 하나님 의지하며 살라는 말씀 정도로만 말입니다. 여태 그리 살아 왔으니 그것은 별로 힘들 것 없습니다.

하지만 비켜갈 수가 없는 것이, 제게 예수의 삶을 요구하는 곳이 비단 이 말씀뿐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께선 그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그러니 어쩝니까? 기도할 수밖에요. 여러분의 응원 기도 부탁드립니다.

2008.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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