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길러 주십니다

조회 수 691 추천 수 47 2010.05.21 02:13:45
즐겨 보는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 속에서 큰 딸이 원치 않았던 임신을 한 것을 알고선 중절수술을 받겠다고 고집을 피웁니다. 집안의 새 생명 잉태 소식에 다 함께 기뻐하던 할머니 부모님 숙부들 동생들 그리고 누구보다 남편은 당연히 말리게 되고, 큰 딸은 무척 속이 상합니다. 뱃속의 태아를 낳지 않겠노라는 그녀의 태도는 상당히 강경합니다. 내 몸에 일어난 순전히 나의 문제이니까 아무도 왈가왈부 말라고 쏘아 부칩니다.

그녀는 열 달을 태아로 인해 괴로움 받는 것도 싫고--입덧이 벌써 온 몸을 피곤하게 하며, 부른 배를 안고 직장을 다니기가 힘들고 배불뚝이 모습 남들에게 보이기도 싫고 이것 저것 가리고 피하고 조심해야 하는 모든 것들이 귀찮고 짜증나고 싫은 거지요. 또 그 아이 낳아 잘 키울 생각을 하니 그 밑으로 들어갈 시간과 돈과 정열, 무엇보다도 자신의 귀중한 젊음을 바쳐야 한다니 한심하고 막막하고 아득한 겁니다. 그냥 지금 있는 딸 지나 하나만 잘 키워 낼 작정이었는데 말입니다.

결국 보다 못한 엄마가, 나도 너 가졌을 때 지울까 고민했었어 내가 널 낳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너도 없어 이것아! 하고 꾸짖습니다. 이 말에 딸은 너무나 심한 충격과 분노에 쌓이게 되는데, 어찌 되었거나 그 충격 요법이 효과가 있었던지 딸은 마음을 돌이키기에 이르렀습니다.

물론--제 글을 충실히 읽으신 분들은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전 엄마와 같은 편에 있습니다. 낳아야 합니다. 다른 선택은 없습니다. 지금 이 딸은 굽이도는 외길의 굽이에서 갈림길이 있다 착각하고 있지도 않은 길로 가겠노라 고집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 길을 벗어나면 낭떠러지인 것을 모릅니다.

그러면서도 전 그 딸의 심경을 잘 알 수 있을 것 같았고, 그 문제가 내 문제라면 나도 저 딸처럼 길도 아닌 곳을 길이라 우겨대고 싶을 것 같았습니다. 물론 이 딸의 경우엔 사실 비난을 면키 어렵습니다. 자신의 안위를 생명보다 우위에 두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세상엔 굳이 자신의 안락한 삶을 지키고 싶은 욕망에서가 아니라, 이미 낳은 생명을 잘 거두고 또 새 생명의 안위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 때문에, 가지 않아야 할 길임을 알면서도 그 길을 가려는 사람들 도 있습니다. 예컨대, 빈궁한 형편때문에 있는 아이들조차 제대로 먹이지도 입히지도 못 하는데, 그렇다고 형편이 필 것이란 아무런 조짐도 소망도 없는 처지에 아이가 들어 섰다고, 그래 낳자, 할 사람은 대단한 믿음의 소유자이거나 아무 대책없는 사람이거나, 둘 중 하나이지 싶습니다. 더구나 이미 있는 아이 중 하나가 "죠이풀 라이프"의 필자인 원 자매의 둘째 딸 조이처럼 선천적 질병이 있어 항시 돌보아야 하고 병원비며 약값이 끝없이 필요하다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이런 형편에 있다면, 뱃속의 아이가 차라리 세상에 나오지 않는 것이 모두를 위해--뱃속의 아이를 위해서도 더 나으리란 생각이 들지 않겠습니까? 그게 제대로 된 심장 가진 어미의 마음 아니겠습니까?

다시 한 번 제 얘기를 하겠습니다. 이제는 곧 스무 살이 되는 제 유일무이한 친 아들 로빈은 다운증후군을 지니고 태어 났습니다. 아이가 태어난 날 밤 그 사실을 알고는 의사에게 따졌더랬습니다. 양수 검사를 했으면 미리 알 수 있었지 않았느냐면서, 마치 병원에서 우리를 골탕먹이려 고의적으로 장애아를 낳게 하기라도 한듯이 도끼눈을 하고 추궁을 했습니다. 내가 장애아의 아비가 된다는 사실이 억울해서, 평생을 그로 인해 가슴 저밀 생각하니 끔찍해서, 남들에게 이용당하고 조롱받고 멸시받으며 살아 가야 하는 내 아들이 너무나 가여워서, 미리 알았더라면 낳지 않았을 것 아니냐며 애꿎은 소아과 의사를 닥달했습니다. 제가 사전에 그 사실을 알았더라면 정말 그 아이를 죽여 달라 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제대로 모르고 있던 당시의 저는, 낙태를 순전히 개인의 선택사항이라 인정하는 사람이었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아마도 적어도 한 달동안 매일 밤마다 아이를 들여다 보며, 억울함에 서러움에 가여움에 오래 오래 흐느껴 울었습니다. 드라마에서 간혹 일어나듯 다른 아이의 검사 결과와 바뀐 것일뿐 실은 이 아이는 정상일 거라고 부인도 해보고, 이러다 어느날 정상아로 바뀌게 되는 기적을 기대해 보기도 하고 그래서 타임지에인터뷰 기사가 게재되는 꿈도 꾸고, 그러다 하나님께 내가 잘못했으니 그만 용서하시거나 나를 벌하시고 아이는 정상으로 만들어 주십사 빌기도 하고, 내 모친이 나를 신부로 못 만들어 그렇게 아쉬워하셨는데, 이 아이는 당신이 목사로 만들든 신부로 만들든 맘대로 하셔도 좋으니 제발 정상아로 바꿔 달라 흥정도 해 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아마도 이젠 더 흘릴 눈물도 없고 더 상할 가슴도 없게 되었을 즈음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이 아이를 꼭 세상에 내보내셔야 하는데 내가 가장 이 아이를 잘 키워 줄 것 같아서 내게 부모 노릇을 맡긴 거라는. 그래, 그렇다면 내가 이 아이의 아비노릇을 제대로 해 보이리라 각오를 단단히 하고는 다음날로 아이 출생 전에 사두었던 육아서적들을 도서관에 기증하고 다운증후군에 관한 서적과 자료들을 찾아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아이의 장애에 맞게 제 욕심을 줄이고 기대를 하향조정했습니다.

훗날 세월이 지나 로빈이 여섯 살이 될 무렵에 그토록 믿어 왔던 나 자신의 무능과 무력을 깨닫게 되는 사건을 당하게 되었고 (언젠가는 털어 놓을 때가 오겠지요), 그 이듬해에 정말이지 하나님의 전적 은혜로 하나님을 알게 되었을 때, 전 로빈 덕분에, 더 정확히는 로빈의 장애 덕분에 하나님의 심정을 십분 깨닫게 되었습니다. 로빈이 정상아였더라면 하나님의 사랑을 제대로 이해하고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겠기에--제 부친으로부터 정당한 인정을 받지 못 하고 자란 탓에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사랑받으려면 완벽에 가까워야 하리란 강박관념을 지니고 있던 때였거든요--로빈의 장애를 미리 알지 않았던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요.

아내와 둘째를 갖지 않기로 합의했는데, 아마도 아내는 둘째도 첫째처럼 장애를 지니고 나올까 걱정스러워서였던 것 같고, 전 둘째가 정상아가 틀림없다 하더라도 가지지 않을 작정이었습니다. 정상아인 둘째를 조금이라도 더 편애하지 않으리란 자신이 없어서였습니다. 하나님이 나말고는 달리 맡길 데가 없어 내게 맡겼다는 자각으로 받아 들인 아들이니만큼, 로빈을 키우는 데에 충실하고 싶었던 겁니다. 하지만 요즈음 로빈에게 착하고 똑똑한 동생이 하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는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다른 자식을 주시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제 염려대로 제 인물됨이 정상아인 동생을 편애하여 첫 아이를 서럽게 할 수준이었던 듯합니다.

다시 드라마 속 큰딸에게로 돌아 갑니다. 명확히 아니라고 밝히지는 않았지만 큰딸이 기독교신자인 것은 아닌 듯합니다. (할머니는 절에서 불공을 드리는 것으로 미루어 불교신자인 듯한데 나머지 가족은 딱히 믿는 신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딸은 아이를 낳기로 작정합니다. 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쉽니다. 둘째 아이가 이뻐 어쩔줄 몰라 하는 그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물론 살면서 후회스러울 때도 더러 있을 겁니다. 하지만 아이로 인해 누리는 기쁨의 시간이 훨씬 많을 것입니다. 첫아이로는 아직 깨닫지 못한 부모의 사랑과 더 나아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는 놀라운 기쁨도, 원치 않는 둘째를 낳아 기르는 선물로 받게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어려운 형편이라면 또 한 아이를 낳아 키운다는 것이 쉽지 않을 것입니다.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일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고달플 것입니다. 만 가지 걱정과 염려가 앞을 가릴 겁니다. 그러나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하나님께로 우리의 초점을 돌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잘잘못을 가리시고 상벌을 주시는 분이셔서가 아니라, 못 이룰 것이 없는 전능자시고 모르는 것이 없는 전지자시고 부족한 것이 없는 공급자이신 하나님이 우리를 그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하는 우리의 아버지시기 때문입니다.  그런 하나님께서--우리의 지금과 나중의 모든 형편 나보다 더 잘 아시고,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데다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 우리가 깨닫기도 전에 미리 다 풍성히 채워 주실 능력과 자원과 의지가 있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소중한 새 생명을 우리에게 맡기셨을 때엔, 첫째, 하나님의 눈에 우리는 그 책임을 충분히 감당할 만하며, 둘째, 그 책임은 우리에게 유익이 되고 은혜를 끼치는 복이며, 셋째, 그 아이를 낳아 기르는 데에 필요한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실 거라고 믿어야 합니다. 불신자들과 우리는 그 점에서--그들에게는 없는 그 믿음이 우리에겐 있다는 점에서 일단 다릅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 믿음대로 우리들의 삶에는 하나님의 세세한 간섭과 인도와 보호가 있다는 점에서 다릅니다.

원치 않는 임신에 따른 염려 불안 걱정 모두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출산 이외에 다른 선택은 주어져 있지 않습니다. 태아의 생명을 쥐고 계신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십니다. 낳기를 원해도 그 분께서 거두실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거두지 않는 생명을 인간이 거둘 수는 없습니다. 정녕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시고 내 아버지란 믿음이 있다면,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낳아야 할 것입니다. 그 아이는 내 자식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자식이기에 하나님께서 책임지고 길러 주실 겁니다.

다시 이야기를 제게로 돌립니다. 로빈이 일곱 살 되던 그 해에 전 혼자가 되었습니다. 그 시점에 저는 직장 생활을 접고 프리랜서로 번역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로빈을 돌보자면 둘 중 하나는 직장을 그만 두어야 하는데, 아내와 나 둘 중 제가 그 일에 더 적합하다고 합의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아내와 헤어지게 되면서 생활이 어려워졌습니다. 로빈을 돌보면서 제대로 된 직장을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였고, 그동안 끊이지 않고 들어오던 번역일은 어찌된 영문인지 더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 무렵엔 제가 로빈 덕에 하나님과도 깊은 교제를 나누기 시작했는데, 아니 하나님을 대적하던 시절엔 날 먼저 찾아 오던 일거리들이, 하나님을 잘 믿고 나서부터는 (되돌아 보면 아직은 초보적 믿음에 불과했습니다만) 내가 찾아 다녀도 보이질 않으니 답답하고 막막했습니다. 언젠가 그때의 일을 말씀 드릴 터인데, 당장 아파트 월세 천 불을 낼 돈도 수중에 없었습니다. 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로빈만 없다면 한국으로든 타주로든 떠나 새 생활을 시작하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로빈을 제 엄마에게로 보낼까는 생각을 숱하게 했지만, 하나님께서 그 아이를 제게 맡겼다는 사명감 때문에 애써 그 생각을 물리치곤 했습니다.

하나님께 따지듯 여쭈었습니다. 로빈을 제게 맡기지 않으셨습니까? 제 자식이기 전에 하나님 자식입니다. 전 하나님 자식 맡아 키우고 있을 뿐이라구요. 그런데 왜 이러십니까? 우리를 굶겨 죽이시렵니까? 길거리로 내쫓으실 겁니까? 도대체 제가 뭘 잘 못하고 있는지 알려 주세요.

꽤나 오랜 시간을 그렇게 보냈는데, 신기하게도 하나님께선 어떻게 해서든 제 손에 아파트 월세와 로빈을 먹이고 입힐 음식과 돈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제 믿음의 성장과 함께 조금씩 제 경제 형편을 풀어 주셨습니다. 지나고 나서 보니 제겐 그것이 저를 낮추시고 제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알게 하신 광야 생활이었습니다. 그 길을 걸으면서 저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확신을 얻게 되었고, 그 분의 사랑을 뼈 속 깊이 깨닫게 되었고, 하나님에 대한 충성심을 길렀습니다. 돌이켜 보면 그 때가 제 인생에 있어 가장 값지고 보람된 시기였고 후회없이 만족스러운 시기였습니다. 그 날들이 있었기에 오늘 저는 어떤 상황에서도 요동치 않고 평안히 하나님을 바라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칠 년을 거의 혼자서 (주말엔 제 엄마에게 보냈습니다.) 아이를 길렀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아침지어 먹이고 도시락 싸서 학교 데려다 주고 일 갔다 오는 길에 (나중에 제 형편에 꼭 맞는 좋은 직장을 주셨습니다.) 방과후 교실에서 아이 데려와 저녁 먹이고 씻기고 공부 시키고 재우고 그러면서 하루 하루를 보냈는데, 이번 칠 월이면 로빈이 스무 살이 됩니다. (로빈이 열 네살 되던 해에 로빈을 제 엄마에게 보냈습니다. 자세한 사정은 다음에 기회가 생기면 말씀드리겠습니다. 로빈은 한 달에 한 번 저희 집에 와서 주말을 지내다 갑니다.) 건강하며 지능도 많이 자랐습니다. 외형만으론 다운증후군을 짐작키 어렵습니다. 키는 5피트 4인치 정도이고 체중은 145파운드 정도 될 겁니다. 내가 혼자서 어떻게 키웠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키우신 게 틀림없습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무엇 하나 내세울 것 없는 편부 밑에서 저렇게 반듯이 잘 자랐을 수가 없습니다. 성품이 바르고 온화하며 친절하며 배려심이 많습니다 기도하기를 즐기고 찬송을 즐기고 성경 읽기를 게을리 않으며 때론 혼자서 설교를 하기도 합니다.

아무렴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식을 우리에게만 맡겨 두고 나 몰라라 하시겠습니까.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은 결코 그런 무책임한 아버지가 아닙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약속과 의무를 이행하시는 의로우시고 신실하신 거룩한 하나님 아버지십니다. 혹시라도 드라마의 큰딸처럼 태아를 두고 고민 중에 있습니까? 아이를 죽이느냐 살리느냐는 도덕적 윤리적 법적 문제이기 이전에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문제입니다. 성경 속 하나님을 내 하나님으로 믿고 계시다면 이미 해결된 문제입니다. 그 믿음따라 가시기만 하면 됩니다.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알아서 처리해 주실 겁니다.

2010년 5월 20일

김유상

2010.05.21 02:39:14
*.170.40.25

이 글은 제 지난 글들 중, 로빈 (#68 2006/08/09), 하루 (#39 2005/11/18), 도무지 납득이 안됩니다 (#38 2005/11/10), 지우는 게 아니라 죽이는 겁니다 (#37 2005/11/10), 말아톤 (#21 2005/7/12) 등과 함께 읽기를 권합니다.

정순태

2010.05.21 08:52:08
*.75.152.157

읽으면서 마음이 잔잔히 가라앉고 눈이 촉촉해집니다.
형제님 부부가 로빈과 함께 했던 힘들었던 이야기들,
평범한 일상이었으나 결코 평범할 수 없었던 주님이 함께 하셨던 이야기들,
이런 이야기들을 듣고 싶었습니다.
예, 앞의 글들도 읽었습니다.
그리고 이후로 로빈을 통해 우리게게 나누어 주실
귀한 간증의 글들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좋은 글 즐겁게 읽고 감사하며 나갑니다. 감사합니다!!!

김순희

2010.05.21 12:18:24
*.161.88.93

세상에...
그런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체험하시며 사셨군요.

로빈을 그토록 오랜시간 동안 아빠가 키우셨다 생각하니....
맘이 너무 많이 아파요.

이선우

2010.05.22 13:52:31
*.222.242.101

ㅠㅠ 감동이라는 말로는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로빈을 만나고 싶군요.
요즘도 성가대에서 찬양을 드리고 있는지?
로빈과 유상 형제님,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mskong

2010.05.24 01:30:30
*.226.142.23

항상 유상 형제님의 글에는 댓글을 달기가 힘드네요...
오늘은 조금 용기를 내어서 흔적을 남기고 갑니다. 저도 축복드립니다.

김유상

2010.05.24 21:04:43
*.170.40.25

공형제님 오랫만입니다. 혹시 제 글이 너무 엄한가요? 용기내어 축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순태 형제님, 선우 형제님, 순희 자매님으로 대표된 여러분들의 동감과 축복에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이번 글의 초점은 저와 로빈이 아니라, 크리스찬으로서 낙태란 결코 선택사항이 아님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어쩌지 못 하고 선택의 갈등을 겪고 있을 분들입니다.

2005년 11월 10일에 올렸던 제 이전 글들에서 저는 상당히 강한 어조로 낙태를 꾸짖었습니다. 그에 대한 견해는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제 글의 대상은 태아의 목숨보다 자신의 안일을 더 귀히 여기며 그것이 죄란 사실을 절감하지 못하거나 아예 죄로 여기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을 향한 것이었지, 그것이 하나님 앞에 큰 죄인줄 알면서도--아니 그렇기에 갈등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 이번 글은 바로 그분들에게 드리는 제 진심어린 위로와 격려입니다. 로빈 얘기는 제게--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 드리려는 제 개인적인 예에 불과합니다.

다시 한 번 간곡히 말씀드립니다. 태아는 뱃속에 있다는 점과 아직 채 자라지 않았다는 점을 제외하곤 우리와 다를 것이 전혀 없는 엄연한 인간입니다. 태아를 만든 것은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따라서 태아의 생사는 오직 하나님께서 주관할 사항입니다. 우리에겐 다른 선택은 없습니다. 낳아야 합니다. 기르는 것은 내가 정 못 하겠으면 다른 사람에게 부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 경험과 다른 숱한 이의 경험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길러 주십니다. 우리 자식이기 이전에 그 분의 자식이기에 그렇습니다. 믿음으로 낳아 육아 과정 세세한 곳에까지 미치는 하나님의 따스한 손길을 보는 기쁨 누리시기를 바라고 기도합니다.

mskong

2010.05.26 01:20:36
*.226.142.23

혹시 오해를 드렸다면 이해해 주세요... 유상 형제님의 글이 엄하다기 보다는...저의 댓글이 낙서등으로 비쳐 질까봐 함부로 댓글을 달기가 어렵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저의 성격 탓입니다... 저의 성격이란 부끄럽습니다만 저는 사람을 만나거나 교재하는데에 낯가림을 많이 하는편 입니다. 초청의 동산 글에 자주 댓글을 달기가 힘이드는 이유입니다. 오늘도 평안하십시오.

김유상

2010.05.26 19:13:48
*.170.40.25

그러시군요, 형제님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타인의 감정까지 세심히 헤아리는 데다가 자신의 감정 표현에 익숙치 않은 사람들에겐 짧은 댓글 남기기도 쉽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어떤 글들은 댓글을 달 여지가 없기도 하고요. 아뭏든 이렇게라도 마음을 주고 받을 수 있어서 기쁘고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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