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복 묵상] 아버지여...

조회 수 986 추천 수 88 2010.08.02 21:13:15

누가복음 15장.
탕자의 비유는 여느 스테레오타입한 이야기처럼 그날도 내게 다가왔다.
참 답답한 아버지야..

첫번째,
둘째 아들이 다 재산 탕진할 걸 알았으면 처음부터 재산분할을 해 주지 말지,
어차피 돌아가시면 자동으로 나눠질 껄
뭘 그리 빨리 나눠줘 가지고 생고생하게 만들었나?

두번째,
객지에서 그렇게 고생할 때 왜 직접 달려가서 데려오지 않았나?
처음에 호위호식할 때야 그렇겠지만, 흉년들고 먹을 것 없을 땐 미리 눈치챘어야지.
쥐엄열매 뜯어먹고 있을 때, "아들아 이 아비가 왔노라" 행차하시면
아들도 감격해, 무릎꿇고 싹싹 빌고 집으로 끌고 올 수 있었던 게 아닌감?

세번째,
뭘 좋다고 버선발로 쫓아가서 뽀뽀하고 난리람?
뭐 잘한게 있다고?
있는 돈 다 까먹고, 거지 행세 하고 와서는.
종들에게도 부끄럽구만,
첫째 아들은 벌써 팍 삐져버렸잖아.

참 무능하고, 답답한 아버지야..
사랑의 아버지라면 좀 더 세련된 사랑을 할 수 있진 않을까?
정말 이런 아버지가 우리 하나님의 모습일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의 일부를 저는 조금 깨달았습니다.
아주 조금..
아래는 제 마음 깊은 곳에서 느껴진 아버지의 음성이랍니다.

---

그래, 네가 얘기한 그 아버지가 바로 나의 모습이란다.
네가 생각한대로 나는 답답하지.
네가 제기한대로 나는 무능하단다.
내가 언제까지 답답하고 무능한지 아니?
바로 내 아들이 나의 집으로 다시 돌아올 때까지란다.
그 전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단지 기다리고 있을 뿐이야.
안타까움과 연민으로..
나는 그저 저쪽 어둔 동구 밖에서 내 아들이 이제나, 저제나
언제 올까 목 빼고 기다릴 수 밖엔 없단다.

내 아들이 돌아오기 위해서는 오랜 세월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
그리고 그 시점이 자기 재산을 다 탕진한 때라는 것도.
허랑방탕하는 동안은 아무것도 눈에 보이는 게 없겠지.
가진것 아무것도 없을 때 그애는 그제서야 깨달을 거야.
자신이 얼마나 무능력한 장애자라는 것을,
자신이 얼마나 이기적이었으며, 죄인 중의 괴수였던가를.

그러나 그 깨달음의 세월이 내겐 얼마나 긴지 몰라.
나는 내 아들에게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할 수 있는 자율권을 주었어.
내 아들의 모든 행동은 그애 스스로의 자유의지를 가지고 결정한 거야.
나는 그애의 자유의지를 존중해.
내 생명을 내어주기까지 그애를 정말 사랑하지만,
그애가 스스로 결정하여 진실한 마음으로 나에게 돌아오기 전까지
나는 그애한테 해 줄 것이 없단다.

그런 식으로 나를 연민의 눈으로 보지 말아라.
이게 나의 사랑하는 방식이야.
그래, 나는 기다리는 하나님이야.
네가 내게 먼저 오지 않으면 나는 네게도 해줄 것이 없단다.
이것이 인간을 만든 나의 딜레마야..
*

처음 아담을 창조할 때부터 내 고민이 그거였어.
천사들처럼 영으로만 만들까?
천사들처럼 내 말만 잘 듣게 만들까?
아니야, 그건 내 본래 모습이 아니야.
내 모습대로, 내 형상대로 만들려면 나는 모험을 해야했어.
그 첫째가 바로 나처럼 철저하게 자유로와야 한다는 생각이었어.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할 수 있는 존재로,
하나님인 나조차도 이에 대해선 관여할 수 없도록,
하나님인 나조차도 통제하지 않는 스스로의 자유로움,
100% 완전한 자유의지야..
그것을 아담에게 주지 않으면 나는 제2의 천사를 만들 수 밖에 없는 거야.
그러나 나는 또 다른 천사를 만들기 원치 않았어.
스스로의 자유의지로 하나님인 나와 사귈 수 있는 존재가 필요했던 거야.

그동안 나는 너무 외로왔어, 나는 고독해.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존경하는, 나를 닮은 누군가가 필요해.
사단이든지, 어느 것이든지 유혹에도 굴하지 않고 스스로의 의지를 가지고
오직 나만을 바라보며, 나를 따르고, 나를 사랑하는 누군가가.
로보트와 같이 내 말만 듣고 "Yes, my Lord!"하는 천사들로는 뭔가 부족해.
누군가가 나와 인격적으로 친구가 돼 주어야해.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 스스로 여러 과정을 거쳐가야 해.
그리고, 이 모든 것에는 긴 시간이 필요하단다.

하와가 뱀의 유혹을 받아 내가 금한 실과를 따먹으려고 할 때,
너는 내가 아무것도 안 한 줄 아느냐?
가인이 들에서 아벨을 쳐 죽이고 있을 때,
너는 내가 그저 가만히 있었는 줄 아느냐?
바로 그들 곁에서 안타까운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단다.
내가 준 자유의지를 가지고 그들이 스스로 결정하여 죄를 짓고 있을 때,
내 마음은 안타까움의 연민으로 찢어지고 있었단다.
그래, 그들이 돌이키기 전까지 나는 무능하기로 결심했어.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 부여한 지유의지를 후회하지 않았어.
처음부터 나는 스스로 이들 세상으로 내려가 내 사랑을 보여주기로 결심했지.
내 생명까지 버려가면서..
그래야만 이들이 나의 자녀로 거듭나고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된단다.
또한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나는 이들이 이 모든 과정을 잘 통과하도록
일일히 뒤에서 도와주고 있단다.
이것이 내가 사랑하는 방식이야.
*

아버지의 얘기로 다시 돌아가 보기로 할까?
둘째 아들은 스스로 나를 떠나기로 결정했어.
내가 비록 그애를 정말 사랑하지만 그애의 의지대로 내 재산을 나눠주었지.
그애가 어떻게 될지 나는 미리 알고 있었지만,
그애 스스로 쾌락과 고통과 깨달음과 돌이킴의
이 모든 과정을 거쳐 다시 집으로 돌아와야 해.

그애는 스스로 판단할 자유와 이에 수반되는 책임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거야.
그 과정을 통해서 그애는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단다.
집으로 돌아오는 것은 애굽에서 광야를 거쳐 가나안으로 오는 먼 여정과 같아.
쥐엄열매를 눈물로 몰래 먹으며,
그애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스스로 깨달은 거야.
우선은 자신이 철저하게 무능력한 장애자임을 뼈저리게 알게 된단다.
아버지 없이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깨달음이지.  
이러한 죄에 대한 뉘우침과 나에 대한 그리움이 자신의 진정한 욕구로 승화될 때,
비로소 그애는 마음을 돌이켜 나를 찾게 된단다.

집으로 돌아오는 동네 어귀에서 나는 줄곧 그애를 기다려 왔단다.
집나간 아들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것은 모든 부모의 소원이겠지만,
내 기다림은 남다르게 더 컸단다.
내가 스스로 그애한테 준,
나로서도 어찌할 수 없는,
바로 그 자유의지 때문이야.

겉으로 보기에 수동적 기다림 같지만,
영적으로 보기엔 적극적인 기다림이야.
아직도 애끓는 내 마음을 이해하기 어려울 거야.
스스로의 의지와 결정으로 돌아오는 내 아들이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아니?
버선발이 아닌 맨발로 뛰어나갔지.
그리곤 내 아들에게 입맞추었어.
아들은 한참 뭔가 내게 말하려고 했지만, 나는 그애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었어.
그애의 발걸음과 모습에서 모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지.
*

너는 아느냐?
너는 나의 둘째 아들이란다.

너는 아느냐?
둘째 아들을 기다렸던 아버지처럼,
내가 너를 얼마나 기다려 왔는지를.

너는 아느냐?
둘째 아들에 내가 매여 있었던 것 같이,
내가 네게 얼마나 매여 있는지를.

너는 아느냐?
둘째 아들이 나의 기쁨이었듯이,
네가 얼마나 나의 기쁨인지를.
너를 정말 사랑한단다.
내 모든 것을 걸 만큼..
내 생명을 줄 만큼..

---

그래서 나는 심령 깊숙히 울었습니다.

아버지여...
나를 그토록 기다려왔던 아버지께,
내게 그토록 매여있는 아버지께,
나를 그토록 기쁨으로 여기시는 아버지께,
너무 죄송하고, 너무 황송해서
그냥 내 가슴을 드렸습니다.
내 온 몸을 드렸습니다.
그날 나는 두손 들고 아버지께 나아갔습니다.
그냥 펑펑 쏟아져 나오는 눈물과 함께
아버지의 외로움과 고독,
그리고 그토록 아름답고 애절한 사랑이 내게 밀려 왔습니다.
아버지여...
아버지여...



(후기 2009-05-03 23:15)
이전에 써 놓은 이 글을 이제 다시 올린 이유는, 오늘 목사님의 설교 말씀 (애통하는 자의 축복)을 들으면서 나를 바라보시는 아버지의 애통하시는 마음을 제 심령 깊숙이 다시 한번 느꼈기 때문입니다. 평생 불구이자 장애자인 나를 바라보시면서 측은해 하시고 끝까지 기다려 주시며 보듬어 안으시는 아버지의 아름다운 마음은, 세월이 퇴색해 가도 제 마음 깊은 속에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그 숭고한 아버지의 마음이 있기에, 오늘날의 나도 애통의 축복을 받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 마음을 일깨워 주신 목사님께 감사의 말씀을 올려 드립니다. 오랜만에 설교시간에 눈물 콧물 좀 흘렸습니다.^^



(또 후기 2009-05-06 22:14)
오늘 아침에 보니 지난 주일 저녁에 올린 위 글이 지워져 있더군요.ㅠㅠㅠ 그래서 사실 반나절 동안 고민을 좀 했습니다. 누가 지웠을까? 드디어 내 글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생겼구나. 엉터리 글이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심혈을 기울여서 쓴 것인데.. 그러나 내 글로 상처받는 사람이 있다면 당장 중단해야지, 하는 작은 결심(!)도 했었습니다. 고민하다 목사님께도 쪽지를 남겼습니다. 그런데 지우셨던 분이 멜로 연락이 왔습니다. 실수로 지우셨다고.. 다시 올려달라는 부탁 말씀도 있었습니다. 아, 감사가 저절로 나왔습니다. 작은 사건이지만, 제겐 큰 교훈이었습니다. 집사님, 감사합니다!
(원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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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또 후기 2010-08-02 22:15 독일시간)
써버다운을 기념(?)하여, 제가 작년에 겪은 또 하나의 댓글 삭제 사건을 올립니다.ㅎㅎ 이 글에는 얽힌 사연이 많습니다. 최초 작성은 1998년 경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서울의 제 모교회에서의 어느 주일 청년부 예배 설교 주제가 탕자의 비유였습니다. 그 때 주신 감동의 눈물을 처음 글로 표현했었습니다. 그후, 2009년 5월 3일 독일 한마음교회에서의 주일설교는 “애통하는 자의 축복”이었는데, 제게는 그 말씀에서 동일한 아버지의 마음이 충격의 감동으로 왔습니다. 그래서 이전 글을 그날 밤에 열심히 다듬고 재정리하여 한마음교회 게시판에 올렸습니다.

그런데 올렸던 글이 며칠후 삭제되었음을 발견했고, 무슨 영문인가 하여 이찬규 목사님과 쪽지 교신도 했었구요. 글을 삭제한 범인(?)은 어느 여집사님이셨습니다. 댓글을 달려다 댓글도 지우고 거기에다 실수로 제 원래의 글까지 지워진 것입니다. 그 집사님도 저와 똑같이 ‘슈퍼 ID’를 가지고 있었지요.ㅋㅋ 그 때의 생생한 스토리(메일과 댓글)를 여과없이 날짜별로 이곳에 옮겨 놓습니다.(저를 향한 칭찬은 잊어 주시고요.^^) 제겐 재미와 감동이 얽혀진, 소중하고 의미있는 추억거리였습니다. 그 강집사님은 현재 모스코바에 살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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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집사님이 제게 보낸 메일)
보낸날짜 : 2009-05-06 15:20
제목: 집사님..(맞나요?^^)

집사님..우선 용건 먼저 말씀드릴께요..
저는 한마음교회 문서사역팀의 강○○ 집사입니다.
집사님의 묵상을 읽다가 너무 좋아서..뎃글을 달았는데 좀 이상한듯 하여..삭제하려던것이
그만 본문을 삭제했지 뭐예욤....
너무 당황스럽고 죄송한 마음...가눌길이 없습니다.
좋은 묵상 한사람이라도 더 읽을수 있게
빨리 다시 올려 주시기를 간청드립니다..ㅠㅠ:: 죄송해요..

서○○ 집사님께 말씀 들었어요..(제자반 5기 였거든요)
그찮아도 교회 홈페이지를 통해 집사님의 글을 간간히 접하면서..
누구신지..처음에는 선교사님인줄 알고 읽었는데
그게 아닌것 같아 조회를 해 보니..우리교회 합류(?)하신 집사님이더군요.^^
너무 반갑고 감사한 일이네요..

이번 묵상을 읽으면 아버지의 비유는 참 여러가지 각도로 여러 사람의 입장에서
아버지를 알게 하는 만능 말씀이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집사님의 예전 묵상을 통해 저도 궁금했던 것들을 아주 쉽게 풀수 있었고.
마음이..멍멍하여 눈물을 찔찔 했습니다..^^

아무튼 조회수도 다 날라가고..너무 죄송하구요...
얼른 부탁드릴께요...
우리 목사님께서 오해 하셨을라...^^
그럼...담에 기회되면 뵙겠습니다...

강○○ 올림
**


(여기부터 그때의 댓글들..)

이찬규(목사님)  2009-05-06 23:48
ㅎㅎ 집사님, 당황하셨지요. 사실 공적인 공간에서 마음의 깊은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은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은혜로 말미암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런 나눔을 할 수 있겠습니까. 사실 집사님의 깊은 영성의 글들은 복음 설교자로 서 있는 저에게도 큰 도전과 깨달음이 됩니다.
그런데 갑자기 글이 지워져 있어서 저는 집사님께서 지우신 줄 알았습니다. 내용이 은혜롭고 너무 좋았는데 왜 지우셨을까..
그런데 의외의 답은 아무개 예쁜 집사님께서 은혜 받으셔서 댓글을 달다가 그만 글을 날려 버리셨답니다(관리자 권한이 있는 덕분이었겠지요). 조회수 날라간 것까지 속상해 하더군요. 그 댓글도 보고 싶은데.. 아뭏든 새로운 기운을 불러 일으켜 주셔서 감사드리고요. 천국은 (침노하는) 용기있는 자의 것이라고 여깁니다. 집사님을 축복합니다.


이선우  2009-05-08 07:27

목사님의 축복하심과 격려해 주심에 감사, 감격합니다. 특히 영성과는 거리가 먼 제게 과분한 칭찬을 해 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저도 조금 침을 발라 볼까요?^^

주님께서 저를 독일로 보내신 이유를 이제 조금씩 알것 같습니다. 목사님을 만나뵙기 위한 것도 그 중 큰 이유인 것으로 생각합니다. 셩경 속의 믿음의 선진들 외에 사실 제 영적 스승이라 할 수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호흡기도 저자인 정원 목사님, 소설가 김성일 장로님, 감자탕교회의 조현삼 목사님, 캘리포니아에 계신 박신 목사님, 은명교회의 이민재 목사님 등이시지요. 그런데 독일에 온 이후 또 한 분의 영적 스승을 만났습니다.^^;;

독일에 와서 새로운 웨이브(Wave) 인생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도 목사님의 덕이 아닌가 싶습니다. 웨이브1 - 고등학생 시절의 방언 체험, 웨이브2 - 대학2년 때의 중생 체험, 웨이브3 - 집사람과의 만남 체험, 웨이브4- 감자탕 교회에서의 성령체험, 웨이브5 - 영국에서의 사역체험, 웨이브6 - 캘리포니아에서의 말씀체험 등 이제까지 주님께서 주신 웨이브의 은혜를 넘어 독일에서의 새로운 웨이브7을 시작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아무튼 저도 한마음이라는 좋은 신앙의 터밭 위에서 지속적으로 자라가겠습니다. 주님 안에서 목사님과 모든 한마음 식구들을 사랑합니다. 샬롬~



우○○   2009-05-11 12:31

개인적으로 웨이브 4까지 듣고 은혜받아 감사했는데
요즘은 집사님의 나누어주시는 글에서도 잔잔한 감동이 옵니다.
만남이 있을 때마다 기대가 되는데 ...
집사님 다음에는 남은 웨이브 이야기 듣기를 고대해 봅니다.



강○○  2009-05-13 16:53

늦게나마 고백합니다..^^;; 실은 그 실수의 주인공이 접니다...
우리 목사님 모르시게 재빨리 원상복구를 하려 했으나 이선우집사님 명단이 교회 주소록에 없어서 황망하고 난처했습니다. 그래서 임요한 목사님께 이메일로 주소를 받아서 급하게 수습을 한다고 했습니다만...담임 목사님은 이미 다 아시게 되었고...위와 같은 뎃글도 다셨더군요...^^

제가 은혜 받고 달았던 뎃글은 달랑 "감사합니다" 였습니다. 이 돌아온 탕자의 말씀으로 제게 깨달아 지는것이 너무 다양하고 각도가 여럿이였는데...이번에도 이렇게 쉽게 그동안 고민하던 "자유의지"에 대해.."아버지의 입장"에 대해 묵상과 이해가 되면서 컴퓨터 앞에서 눈시울을 적시고 가슴이 멍멍해져 있었습니다...그러나 마음이 정리가 되지 않아 뭐라 뎃글을 쓸수가 없었습니다..그래서 한마디로 -감사합니다- 만..적어 놓고 가만히 보니..너무 무례한가...너무 짧은가...하여 민망한 생각에..삭제 하려고 들어갔다가 그만 본문을 날려버렸지 뭐에요...^^;;
이 말씀이 한주간 내내 묵상이 됩니다. 얼추 다 온것 같은데 아직 매듭을 맺지 못하고 이 말씀을 계속 생각하고 있습니다..아마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주님께서 하실 일 입니다..

어느날 부터인가 이선우 집사님이 묵상을 많이 올리시기에..아..우리교회를 아시는 선교사님인가보다..우리 목사님과 영적 토크를 참 잘도 하신다..라고 생각하고 글을 보고 있었는데..어느날 뜸금없이 궁금해 져서 교회 홈피에서 검색을 했더니..인사 소개말이 있더군요..그래서 우리교회 합류하신 집사님인걸 늦게 나마 알았답니다..

그러던 와중에 제가 실수를 저질러 집사님께서 반나절을 고민하게도 만들었더군요..
다시 한번 공개적으로 사과 드리구요..."죄송합니다..^^ "
지난 주일날은 집사님의 얼굴을 뵙고 나서 사실, 조금 더 놀랐습니다..영적 나눔이 힘이 있어서 그랬는지 전 연세가 40대 후반의 남자 분이겠거니.. 하고 막연한 상상, 대책없는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연배가 계신 분이라  더 죄송하고 민망했습니다. 그래도 얼굴을 뵙고 인사를 할수 있어서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주일날 온유한자에 대해 전해 주신 목사님의 설교로도 많은 것을 깨닫고 어찌나 은혜가 되던지요..그래..맞아 모세가 온유한 성품은 아니었지...나도 이점이 이해가 안갔었어..성질대로 살기도 했고 불같이 화도 냈던 모세가 지면에서 가장 온유한 자라니....그러나 그 온유함이 옛사람의 성품이 다 죽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의 모습이란걸 깨달았습니다...나 또한 하나님 앞에서 그리 되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온유한 자....많은 깨달음과 은혜와 감사가 있는 주일 이었습니다..

집사님의 영적나눔의 파급과 또 그 열정이 요즘 교회 홈피를 훈훈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글을 올리는 것도 생각보다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군요...^^;; ) 그러나 은혜로운 말씀을 대하고 어찌 안 쓸 수 있겠는지요..요즘 집사님의 묵상가운데서 많은 것을 깨닫고 은혜를 누리고 있습니다..^^  제 일대일 동반자께도 프린트를 해서 전해 주었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으로 파이프 역활을 담당하고 계신 집사님께 감사의 말씀을 글로 전합니다..집사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주님 안에서 행복하세요.^^



이선우   2009-05-13 22:35

집에 와서 올라온 댓글들을 보면서 감사했습니다. 아, 나눔의 즐거움이 이런 것이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사귐의 귀함을 또한 깨닫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얼마나 사귀고 싶어하는지 다시 한번 묵상을 하게 됩니다.

우집사님, 이집사님 부부께 감사를 드립니다. 저를 많이 도와 주시고, 재미없는 제 웨이브 인생살이 얘기도 끝까지 들어 주시고..^^ 5편, 6편도 시간나면 같이 나누십시다. 한나, 마리아, 이삭도 주님 안에서 아름다운 두 분의 믿음과 같이 쑥쑥 자라가기를 기도합니다.

강집사님, 정말 감동이 되네요. 굳이 실수도 아닌 사소한 것 가지고 마음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사실 말씀 안하셔도 되었을것 같았는데.. 그래서 이런 귀한 나눔을 가지게 되니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제가 묵상과 글쓰기가 취미(?)이긴 하지만, 요즘 한마음교회를 통해 주시는 은혜로 더 강도가 높아진 것도 사실입니다. 아마 가족들이 합류하는 5월말 부터는 조금 뜸해질 겁니다. 그런데, 정정드릴 것 한가지.. 저 아직은 40대 후반 맞습니다. 만으로 50이 안되었거덩요.ㅋㅋ 아직 몇주 모자랍니다.^^ 그리고 사실 우리 주님 안에선 아직 한창 어린아이죠. ㅎㅎ 암튼, 감사 감사합니다.


강○○   2009-05-14 16:01

^^;; 제가 이렇게 실수 투성이랍니다....ㅠㅠ    처음엔 30대 후반이라 했다가 수정한건데..제가 이렇게 나이 개념이 없다는... 다시 한번 사과를.... ^_______^

오늘 저녁에는 큰 딸아이를 재우면서 누가 복음 15장 돌아온 탕자 스토리를 우리말 성경으로 읽어 준 후 집사님의 이 묵상 글을 프린트하여 연이어 읽어 주었습니다..5학년 딸에게 딱 맞는 대화식의 쉬운 글이라 참 좋습니다..^^ 그동안 딸아이의 의문은 - 왜 하나님은 선악과를 만들어서 인간이 따먹게 했냐며..선악과 자체를 아예 에덴에 두지 않았으면 인간들이 그런 죄도 짓지 않았겠냐-는 질문에...나름 이 방법 저 방법으로 설명을 해 보긴 했지만(하나님이 보이지 않아서 기억하지 못할 까봐 표시로 남겨 둔 것이다, 또는 우리가 살아 갈때도 마음에 하나님의 기준이 없으면 안된단다..등..)그러나  명확하고 쉽게 이해 시킬만화 예화를 찾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 글로 인해 자유의지를 주신 이유와 가치,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의 뜻을 딸아이가 어렴풋이 이해 하는 듯 보입니다..선악과를 에덴에 두신 이유를 좀 더 쉽게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게 앞으로의 제 숙제 같습니다..^^ 이렇게 쉬우면서도 깊이 있는 묵상을 남겨주신 집사님께 거듭 감사를 드립니다.



이선우   2009-05-16 21:29

선악과를 왜 만드셨을까? 하는 의문을 저도 해 본적이 있습니다. 아마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조직신학, 특히 타락론을 깊이 연구하신 목사님들만이 정확하고 논리적으로 주실 수 있을 겁니다. 다만, 알기쉬운 부분의 자유의지와 관련 순수한 제 개인적 생각을 잠깐 나눕니다.

탕자의 비유가 좋은 예제인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입장에선 둘째 아들이 아예 처음부터 집을 떠나지 않았다면 제일 좋았습니다. 저는 둘째 아들이 집을 떠나는 행위와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는 행위가 원천적으로 같은 것이라고 봅니다. 둘째 아들의 자유는 아버지의 집 안에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의 진정한 원함은, 아들이 집 안에서 마음껏 자유를 누리며 아버지와 같이 교제하며 사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 안에서는 그가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스스로의 의지를 가지고 집을 떠났습니다. 아버지의 사랑과 기대를 저버린 것입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책임일까요? 아버지가 무슨 잘못을 했습니까?

어떤 면에서 선악과는 아담에게 주신 자유의지의 한계를 설정해 놓으신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자유의지를 쓰되, 창조주 하나님 안에서 누리고 쓸 수 있도록. 옳고 그름, 선과 악의 가치 판단은 하나님의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피조물인 나에게는 하나님과 함께 함, 하나님의 뜻이 옳은 것이요, 선입니다. 하나님과 분리되었을 때, 내게는 악이 도래하는 것입니다. 아담이 하나님을 떠나 스스로 선과 악을 판단하려고 하는 순간, 그는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하게 된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 최후적 방어선마저 아담에게 개방하셨던 것입니다. 둘째 아들이 집을 떠날 자유를 가졌듯이, 아담은 금지된 선악과를 먹을 자유를 허락받은 것이지요. 하나님의 형상, 완전한 그 분의 자유함처럼..

그런데, 재미있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악과 뿐만 아니라 생명과도 같이 만들어 주신 것을 아시나요? 생명과는 말 그대로 아담에게 영원한 생명을 줄 수 있는 실과이지요. 그리고 선악과만 금하셨지 생명과는 금하셨다는 대목은 나오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아담은 선악과와 생명과의 선택적 자유를 부여받은 것입니다. 마치, 둘째 아들이 집을 떠날 수도 있지만 아버지와 함께 평생 집에 거할 수 있는 선택권이 있었던 것처럼. 그러나 우리는 결과를 이미 알고 있지요, 아담은 생명과가 아닌 선악과를 선택했고, 그 결과로 아담의 허리에 있었던 모든 인류도 같은 운명에 처하게 되었음을..

그러나,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은 아담이 범죄한 직후 생명과를 인간이 먹지 못하도록 보호하셨습니다. 죄인으로서 생명과를 먹고 영원히 산다면 정말 끔찍한 일이겠지요.. 이 생명과(정확히는 생명나무)는 요한계시록에 다시 등장합니다. 천국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먹을 수 있는 양식으로서. 우리는 그 생명나무가 무엇인지 이미 압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부터 마음에 이미 작정하신 바 그 일,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들을 구속하시기 위한 위대한 사랑의 사역이지요. 집나간 둘째 아들을 자나깨나 기다렸던 아버지처럼, 하나님은 부족한 우리를 끊임없이 용납하시고 보듬으사 최후적 생명과로 우리를 이끄시는 거죠. 첫 아담은 선악과로 인류를 죽음으로 인도하였으나, 마지막 아담은 생명과로 (그를 믿는 모든) 인류를 영생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고전15:45).

쓰다보니 이것저것 짬뽕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쬐끔이라도 도움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강○○  2009-05-18 22:49

네..집사님..이럿게 뎃글 설명이 있을 줄이야..^^

딸 아이에게 질문을 계속 던지면서 하나님의 마음, 의도를 계속 생각하게 하면서 오히려  저도 느낀 것인데요.. 자유의지와 많은 연관성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에덴동산을 만드시고..모든 것을 다 먹어도 된다고 하시며 단지 한가지만 금하셨던 아버지께서..그 선택의 여지를 두지 않으셨으면 진짜 자유의지를 주신게 되었을까..하는것. 또 선과 악이 존재 하는것을 아버지는 이미 아셨지만 그것을 선택 할수 있는 삶은 온전히 사람에게 맡기셨던...하나님을 닮은 순도 100%의 자유의지의 사람이 아담과 하와였다는...생각 정도..

그런데요..살다보면..우리 인생도 우리가 우리 의지를 사용해서 결정할때가 많잖아요..그런데..그 일가운에 하나님은 어느때 개입 하시는지..어떻게 일을 돌리시는지..그게 참 궁금하단 말입니다..^^ 그러니까..욥기에서처럼 시험도 하나님의 허락하에 사탄이 그것을 욥에게 행하잖아요..그럼..그런 악한 일은 하나님께서 친히 하지 않으신다는 말 인데요..단지 그것을 허락하실 뿐이라는거..그래서 모든 경우를 막론하고 하나님은 선하시다는 것이구요...시험을 이기는 자는 그 사탄의 유혹에 넘어 가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는 자 이겠지요? ^^

그리고 저도 생명 나무가 있었던 대목에서 궁금한게 있었는데요..생명나무 과실을 죄를 범죄하기 전에는 맘대로 따먹을 수 있었던 거군요... 그런데 범죄한 후에 그 죄인으로 영원히 살게 될까봐 내 쫓은 거였군요..그럼..아담과 하와는 그 전에는 생명과일을 따먹으며 영원히 살수 있었던 존재였군요..^^ 궁금한게 하나 더 풀렸습니다.

하람맘

2010.08.03 12:05:28
*.163.11.120

박목사님께 처음 말씀을 배우기 시작한 즈음... 참 많이도 궁금하고 이해가 되지 않았던 부분이 많았습니다. 그때 자유의지를 말씀해 주셨는데 전 그때 그 자유의지 부분도 힘들었지요... 그런데 제가 저의 부모님과 저, 저와 아이들, 아이들을 키우면서 이제서야 이해가 되더라구요. 부모님께서 저에게 하지말라 하지말라 했던것을 왜 그러실까 하며 자라서 이제 어른이 되어서 제가 뻔이 제 아이들이 무엇을 할지 결과가 어떨지 알겠더라는 거죠... 그러면서 어떻게 못하는 그 심정... 주님의 마음을 알겠더라는 겁니다. 제가 그렇다고 아이들을 입력만하면 되는 로보트로 만들수도 없더라는 겁니다. 자유의지... 참 중요한 기독교의 포인트가 아닌가 합니다.

김순희

2010.08.04 09:52:54
*.161.88.93

탕자를 기다리시는 아부지의 애끓는 맘과 따스한 맘이 짜~~안하게 다가옵니다.
그렇게나 사랑하셔서 그렇게 기다리시는 아부지...

이렇게 댓글로 대화하신 것을 올리신 것은 우리 그예다 가족들도 이렇게 서로 가슴을 열어제치길
원하시는 것이지요??

우리 하람맘님의 열심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이곳 저곳 댓글 다시는 모습에 저도 도전이 됩니다.
우리 함께 홧~~팅!!

하람맘

2010.08.05 03:41:21
*.163.11.98

김순희님께서 힘을 주시니 한가지만 더 말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제가 13년을 살던 미국을 떠나 캐나다 잠시 들렀다가 한국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동안 터전을 일구고 살다가 - 방랑자라 해야하나? - 한국으로 귀국하는 발걸음은 너무도 무겁고 깝깝했습니다. 금위환양을 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더 그렇고, 남은 거라곤 아이셋에 옷몇가지... 저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하십니까? 돌아가 뵈야할 부모님... 친척들... 낯이 서질 않고 극단적인 생각에는 비행기가 바다에 빠져버리거나 했으면 좋겠다고까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마지막 주일에 캐나다에서 설교를 들으면서 전 펑펑 울었습니다. 누구에게 변명하고 설명하고 용서를 구하고 그런 작업들이 너무도 막막한데... 주님은 그런 저에게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으시는 분이더라는 겁니다. 말안해도 알고, 그냥 챙피하거나 죄를 자복하지 않아도 그냥 받아주시고 위로해 주시는 분은 하나님 한분이라는 겁니다... 돌아온 탕자 이야기는 저 인생에 위기때 마다 우연히 - 아니 필연적으로 접하게 되는 말씀입니다만 그날 캐나다에서 들었던 말씀은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냥 맨발로 양팔벌려 안아주시고 다 받아주시는 하나님,,, 그날 예배당에서 주님께서 괜찮다 괜찮다 하시면서 저를 안아주시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수고했다 고생했다 그래 안다...우리가 돌아가야 할 곳은 한국도 부모님께도 아닌 하나님께로 였으므로 용기를 내서 귀국한 생각이 납니다...

이선우

2010.08.05 06:41:22
*.187.96.188

열심을 내시는 두 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댓글의 파워를 여실히 보여 주셨습니다.^^
김순희 자매님 말씀대로 제가 원했던 것이 가슴을 열고
진정한 '속내'를 있는 모습 그대로 보여주자는 것이었습니다.
하람맘님께서 그대로 실천해 주심에 감사!
자매님의 뜨거운 마음이 제게도 감동으로 전달됩니다. ㄳㄳ

김순희

2010.08.05 13:01:14
*.165.73.38

긴 글에 또 긴 댓글이 달리게 되어서 그예다님들의 손가락 운동이 제법 될 것 같습니다.ㅋㅋ

하람맘님! 귀국하심에 용기가 필요하셨겠군요. 그래서 떠 따스한 하나님의 품속을 느끼셨군요. 이렇게 맘을 나눌 수 있어서 역시 우린 같은고향(하나님 나라) 사람임이 입증되는 것 같습니다.^^

저도 그저께는 좀 아팠습니다.( 맘이요) 그래서 목사님께 전화드려서 칭얼거렸지요. 이제 이곳에서 칭얼거려야겠습니다. 같은 고향사람들이기에 맘 편하게 칭얼거리겠습니다.^^

제 별명이 거지중에 상 거지입지요.ㅋㅋ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천국백성임을 확인시켜 주신 후론 늘상 하늘의 구름만 보아도 가슴이 퍼~엉 터질 듯 부풀어진 가슴으로 하루를 내가 이곳에서 사는지 하늘에서 사는지 모르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거지가 좀 이상한 거지이지요 너무도 기쁜 거지. 너무도 즐거운 거지이지요.ㅋㅋ
그런데 몇일전 아이들 잠을 자는 모습에 그만 맘이 애잔해졌서 새벽기도 시간에 펑펑 울어버렸지요. 사실 집이 없어서 저는 동생집에 얹혀 살고 아이들이 저희동네 맘이 좋은 할머니가 거두어 주신답니다. 격일로 아이들과 함께 잠을 자는데 침대대신 삼단요를 빌려 쓰고 있기에 세 사람이 자기에는 좁잖아요? 그래서 제가 함께 잘 때는 세로로잘 수가 없어 가로로 잔답니다. 자고 일어나면 허리며 다리가 많이 아프지요. 그런데 그저께는 유난히 딸들이 안스러워서 가슴이 아팠습니다. 다른 것 말고 그냥 푹신한 침대에 뉘일 수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그 작은 소원이 그날 하루를 아주 힘들게 했습니다. 물론 다음날부터는 다시 구름 속으로..ㅋㅋ


그런저런 간증은 게시판의 운영자 명의로 "표정관리가 힘든 파산지경의 어느교인"이란 제목으로 제 멜이 실려있습니다.^^

이런 자리 만드시느라 애를 쓰시는 우리 이 선우님께 뜨거운 박수를 .. 짝 짝 짝

이선우

2010.08.06 17:42:18
*.187.97.198

누구에게나 주어진 십자가가 있지만 김순희님이 지신 십자가는 좀더 무거워 보입니다.
그래도 주님으로 인해 행복하고, 주님으로 인해 기쁨의 표정 관리하기조차 힘드니..ㅋㅋ
제 웨이브6기 생각납니다(롬폭 훈련소 시절..)
지금 생각해 보니, 저도 그곳에서 표정관리 하기가 상당히 힘들었습니다.ㅎㅎ
선하시고 신실하신 주님께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실 것을 믿고,
그리 기도하겠습니다. 올인! & 샬롬~

정순태

2010.08.07 01:00:05
*.75.152.231

자유의지와 탕자의 연결을 통한 작은 이해의 과정,
많은 이들이 걸어간 영적 탐구의 길이었을 것입니다.
(저도 똑 같지는 않으나 비슷한 과정을 거친 듯 합니다. ^^)

선우 형제님의 "waiting God!"
하람맘 자매님의 "아시는 하나님!"
순희 자매님의 "상 거지 하나님!"
뭉클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우리의 지식 저 넘어에 계시는 광대하신 하나님을
또다시 기대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야겠지요.

즐겁게 읽었습니다. 감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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