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가 부정적 감정이 들 때에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질문]

지난번 LA 방문 때 참석했던 주일예배전의 성경공부와, 주중의 여성 소그룹 모임 때 다루어 주셨던 "감정에 대한 기독교적 해석(제 임의로 붙인 제목입니다)"에 대해서 계속 풀어야 할 숙제가 있는 것 같은 여운을 남기고 있습니다. 마치 풀리지 않던 수학 문제의  공식을 아는 듯하다가, 이제는 그 공식이 무엇이었는지도 어렴풋해 지면서, 그 공식을 신자로서 저의 삶에 어떻게 응용해야 할지...

번거롭지 않으시다면(연속된 소그룹 공부의 내용인줄 압니다만...), 감정에 대해 신자로서 어떠한 태도를 (특히 부정적인 감정) 취해야 하는지를 다시 정리 해주실 수 있는지요? 참 사랑을 가진 신자로서의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감정을 잘 다스리지 못해 실패하고 좌절 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 공부를 통해 제가 가지고 있던 감정에 대해 한번도 신앙적인 관점에서 생각 해 보았던 적도 없었음을 깨달았고, 많은 문제가 그런 무지에서 일어날 수도 있었다는 생각을 하니, 그 감정에 대한 공부를 다 참석하지 못했음이 무척 안타까왔습니다.  이런 문제가 제게만 있을 것 같지 않아 저와 비슷한 상황의 사람이 있으면 같이 공유하고 싶어서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답변]

감정에 관한 공부는 저희가 여성 신자들을 대상으로 해서 근 2년 전에 시작해 지난 주에 다 마쳤을 정도로 내용이 광범위합니다. 그 공부했던 내용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기록으로 남기려 하고 있습니다만 아직 손을 못 대고 있습니다. 또 그것을 제 웹 사이트에 별도 코너를 하나 만들어 더 많은 신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소원은 간절한데 알다시피 기존 사이트에 정기적으로 글 올리는 데만 일주일 꼬박 걸립니다. 언젠가 그렇게 할 수 있는 시간과 여유를 주님께서 주실 줄 믿습니다.

그래서 대단히 죄송하지만 제기한 질문에 대한 구체적인 답변은 조금만 더 기다려 주셔서 앞으로 이 사이트에 연재될 글들을 차례대로 읽으시면 자동으로 해답이 될 줄 믿습니다. 그러나 제가 기다려 달라는 더 중요한 뜻은 그 때까지 답변을 미루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 몇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우선 부정적인 감정이라고 포괄적으로 이야기해선 올바른 대책이 바로 서지 않기 때문입니다. 부정적 감정에는 염려, 불안, 시기, 질투, 분노, 공포, 죄책감, 열등감, 까닭 모를 눌림 등 그 종류가 많이 있으며 각각의 경우에 대한 대처법이 각기 다르기 때문입니다. 물론 모든 부정적 감정을 처리하는 성경적 원리가 결국은 예수님의 십자가로 결론 되어집니다. 그러나 왜 그렇게 되며 또 구체적으로 그 감정을 어떻게 절제하여 표출해야 하는가는 각각의 감정의 종류에 따라 다릅니다.

흔히들 앞에서 열거한 감정들을 겉으로 드러난 현상과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이 대체적으로 안 좋은 방향으로 끝나니까 일단 무조건 부정적이라고 규정합니다. 특별히 신자가 그런 감정들이 들면 마음과 영혼을 깨끗하게 유지하고 더 거룩하게 가꾸어야 할 책임이 있는데도 그렇지 못하고 오히려 더렵혔다고 생각해 버립니다. 그래서 죄를 짖게 만든 그 감정들을 무조건 없애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신앙이란 항상 고상하고 거룩하고 경건해야만 한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아주 틀린 생각입니다.

쉽게 하나만  예를 들면 하나님도 스스로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라고 선언했습니다.(출34:14) 그럼 하나님이 질투하셨으니 죄를 지으신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죄와 공존도 못하십니다. 죄를 꿈도 꾸지 못하고 죄의 그림자라도 그 분 앞에 비췰 수 없습니다. 오직 절대적 선만이 하나님에게서 나옵니다. 물론 이 말씀이 인간의 이해 수준에 맞춘 신인동형적(神人同型的)인 표현이긴 하지만 실제로 하나님은 질투하셨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질투 자체가 나쁘거나 죄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질투란 사랑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자기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를 다른 경쟁 상대에게 절대 빼앗기지 않겠다는 결심과 그에 따르는 대응입니다. 하나님은 자기가 지으시고 택하셔서 믿음을 심어 주시고 제사장 백성으로 세우신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작 당신을 두고 다른 우상을 섬기자 그 속에서 불 같은 질투심을 느꼈습니다. 하나님이 능력이란 측면에서 우상을 당신과 견줄만한 경쟁 상대로 의식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자기 사랑하는 자녀가 진정한 축복과 은혜의 길에서 이탈하는 것을 보고 너무나 안타까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경우는 질투가 아주 긍정적인 감정입니다.  

반면에 부모의 사랑을 서로 독차지 하려고 형제간에 질투 하는 것은 부정적인 것입니다. 인류 최초의 잘못된 질투는 살인까지 저질렀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 때도 질투 그 자체가 꼭 나쁜 것은 아닙니다. 아이들이 서로 부모의 사랑을 많이 받으려는 것은 자연스런 행동입니다. 역으로 생각하여 자식들이 아무도 부모 사랑을 받으려는 생각조차 없다면 그것은 벌써 생동력 있는 인간이라 할 수 없으며 나아가 부모 자식간에 올바른 관계도 형성되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질투 자체에 죄가 없다는 뜻은 형제간에 자연적으로 부모 사랑을 많이 받으려는 것까지는 아무 잘못도 없다는 것입니다. 질투가 부정적인 것이 된 까닭은 서로 사랑하고 화목해야 할 형제 간에도 모든 수단을 동원해 다투고 싸웠기 때문입니다. 만약 부모의 사랑을 받으려는 그 마음을 자기가 성숙해지고 형제끼리 함께 서로 양보하여 화목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 힘을 모았다면 최초에 일어난 질투심도 긍정적인 감정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남편이 바람을 피우는데도 질투하지 않으면 질투하지 않는 아내가 이상한 것입니다. 반면에 남편이 이웃집 여자와 일상적인 인사만 해도 눈꼬리가 올라가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에게 일어나는 어떠한 감정도 감정 자체가 부정적인 것은 없습니다. 심지어 죄책감 마저 건강하고 좋은 것입니다. 죄책감이 들어야만  회개하고 더 성숙해지는 반면에 죄책감이 없으면  죄에 대해 무감각해져 그 영혼과 삶이 황폐해져 갈 것입니다. 그러나 죄책감을 자기 비하로 몰고 가서 하나님으로부터 오히려 멀어질 때는 부정적인 감정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최초에 발생하는 감정 자체는 항상 가치 중립적이며 자연발생적입니다. 그 감정이 부정적이 되느냐 긍정적인 효과를 낳느냐는 것은 본인이 그 감정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달린 것입니다.  

따라서 일단 부정적인 감정이 들면 어떻게 처리하든 부정적인 결과를 낳을 것이니 무조건 억제하자는 것은 신자로서 취할 태도가 아닙니다. 신앙이 형식적 경건주의 내지 엄격한 율법주의로 흘러 버립니다. 또 감정 자체가 죄가 없으니 그 감정에 무조건 충실하겠다는 것도 반대 방향의 극단입니다. 신앙 대신에 자유방임주의 무도덕주의 쾌락주의가 그 자리를 차지합니다. 심지어 십자가로 인간의 모든 죄가 용서 받았다는 원리까지 오용하여 그 잘못된 감정 처리를 변명하고 합리화시키는 잘못까지 범하는 경우를 봅니다.      

그렇다고 감정을 자기 최면, 마인드 콘트롤, 정신심리학적 요법 같이 세상에서 통용되는 방법으로 절제한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런 것들은 어떤 사람에게 고착적으로 이미 나타난 어떤 증상을 치료할 때에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일반 신자가 순간순간 겪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그런 전문적 지식과 치료법을 동원해 대처할 수 없습니다. 또 도덕적 수양이나 종교적 훈련으로도 감정이 절제 되지 않습니다. 도덕이나 종교에선 둘 다 감정을 부정적으로만 보는 성향이 있고 감정의 본질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신에 신자는 감정을 성경적 원리로 처리 해야 합니다. 쉽게 말해 모든 신자의 삶에서 다 그러하듯이 하나님의 뜻대로 처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부분에서 남을 질투하는 감정이 들면 하나님은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했으니 잘못을 범했다고만 생각하고 질투 자체를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 지금까지 모든 신자가 아무런 의식 없이 저지른 잘못입니다.

감정을 하나님 뜻대로 처리한다는 것은 감정 하나하나에도 하나님의 목적이 따로 있기에 감정 자체를 하나님의 목적대로 처리하라는 것입니다. 감정이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나 이미 일어난 결과를 가지고 무조건 사랑이나 용서로 해결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질투를 예를 들면 질투라는 감정이 생겼으니 죄를 지었다고 자신을 책망하기 이전에 그 질투가 생긴 것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먼저 살펴야 합니다. 그런 감정을 주신 하나님의 뜻은 선한 것입니다. 앞에서 말한 대로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끝까지 참 사랑의 관계를 이어가고 더 성숙시키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나와 상대와 관계를 끝까지 참 사랑으로 이어갈 것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먼저 확실히 해두고 그것에 방해되거나 잘못 된 것을 반성하고 고치고 또 도움이 될만한 나의 장점을 더 발전시키면 질투를 선하게 처리한 것입니다. 그러나 질투 했다는 사실 그래서 내가 죄를 지었다는 것만을 두고 회개하면 질투한 사실을 자신의 인격이나 신앙 전체와 연결시킨 것입니다. 질투를 처리한 목적이 내가 죄를 안 짓는다는 나 혼자 만의 문제에 그친 것이지 상대를 사랑해야 한다는 하나님이 주신 목적과는 아무 연관이 없습니다. 이 차이를 이해하시겠습니까?  

신자가 감정을 잘 절제하기 위해선 가장 먼저 감정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아주 좋은 선물이라는 원리를 제대로 이해하셔야 합니다. 또 감정과 지성과 의지의 상호 관계를 아셔야 하고 그 지정의 부분이 하나님 뜻 안에서 인간의 영혼과 어떤 관계를 맺는가에 대한 기본적 이해가 전제 되어야 합니다. 나아가 여러 감정들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은 무엇이며 그 목적들이 십자가의 원리 안에서 어떻게 인간의 영혼에 영향을 미치는지 깨달아야 합니다. 감정 일반에 대한 원론적 개념을 먼저 충분히 아셔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 이해의 바탕 위에서 신자는 자기가 느끼고 있는 특별한 상황에서의 개별적 감정 상태를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또 하나님이 왜 이런 감정을 주셨는가 기도하면서 철저하게 물어 보셔야 합니다. 그래야만 지금 자기가 보이고 있는 반응과 처리한 결과가 그 목적과 일치하는지 아닌지 제대로 평가할 수 있으며, 만약 잘못된 반응이라면 어떻게 해야 고칠 수 있는가 까지 추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음에 그와 비슷한 경우가 발생하면 감정을 즉흥적, 도덕적, 종교적으로 처리하기 앞서서 이미 분석된 감정 처리의 원칙을 적용하고 훈련한 후에 다시 평가까지 해 보셔야 합니다. 우리 모두 절감하듯이 감정이란 워낙 미묘하고 예민한 것이라 절대 한 두 번의 훈련과 연습으로 절제되지 않기 때문에 정말 주님 안에서 항상 기뻐할 수 있을 때까지 이런 과정을 반복하여 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 훈련과 연습은 인간의 의지로 결단하여 노력하는 것만으로는 절대 성공할 수 없습니다. 신자에게는 십자가의 원리를 생각나게 하는 성령님이 항상 함께 하고 있음을 잊지 말고 그 분의 도우심으로 감정을 처리해야 합니다. 그러나 다시 강조하지만 십자가의 원리라고 해서 상대를 무조건 사랑하고 용서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 은혜로 신자 자신의 영혼이 어떻게 변화 되었음을 알아 그 영혼이 주님 안에서 어떻게 제대로 위치를 잡고 있느냐의 싸움입니다. 말하자면 감정은 성령으로 변화된 성숙한 영혼의 통제를 받을 때만이 제대로 절제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성령만이 신자의 영혼육 일체를 건강하고 승리하게 하여 기쁨을 누리게 해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앞으로 이 감정 사이트에서 다룰 중요한 문제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원론적 측면
감정에 대한 오해
감정의 본질-하나님이 창조하신 감정
감정에 대한 잘못된 처리와 반응
건강한 감정 절제-예수님의 감정 절제,
건강한 감정의 근원
건강한 감정으로 가는 7단계
2. 각론적 측면
중요한 감정들(염려, 공포, 죄책감, 분노, 거절로 상처 받음)에 대한 그 본질, 원인, 특성, 증상, 해결책 등

결론적으로 다시 말씀 드리면 흔히 생각하는 부정적 감정들, 염려, 불안, 공포, 죄책감, 분노, 시기, 질투, 눌림, 남에게 상처 받는 것 그 어떤 것도 부정적인 것이 없습니다. 반면에 기쁨, 감사, 즐거움, 충만함, 용기, 담대함, 온유함 같은 것들 심지어 사랑도 그 자체로 만은 반드시 긍정적이지 않습니다. 모든 감정을 주님 안에서 기도하여 감정을 오직 하나님이 주신 목적대로 건강하게 표출하고 처리할 때만이 긍정적으로 변합니다. 또 그럴 때에 감정은 오히려 우리 영혼이 성숙되어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 깊어지게 하고 참 신뢰와 사랑의 인간관계를 이루어 하나님 나라 확장에 아주 큰 도움이 됩니다.  

위에서는 질투라는 한가지 감정만으로 간단하게 원리를 설명했습니다만 앞으로 이 사이트에서 구체적으로 더 깊이 다루어질 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하며 또 그 영적인 순례의 길을 함께 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김주영

2004.08.20 01:17:04
*.27.132.94

목사님의 웹에 좋은 말씀으로 꽉 차있습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그중에도 이 부정적 감정의 처리방법에 대한 짧지만 아주 건강한 내용의 글을 읽고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목사님 말씀이 참으로 맞습니다. 부정적이든 긍적적이든 어떤 감정이 생길때 이것을 사실 그대로 잘 표현 할 수 있다면 참 좋지만 많은 경우 이것을 커버하려고 하거나, 기존에 갖고 있는 부정적인 감정에 대한 인식으로 인해 잘 표현하지 못하고 갈등하는 성도들이 많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목사님의 성경적인 감정 다룸의 내용을 더 공부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사라의 웃음

2012.09.29 23:11:47
*.109.85.156

에~~구, 정말 어려운 것 같습니다. 늘 오답을 가지고 정답이라고 우기는 고집쟁이인 저를, 생겨지는 감정들 하나 하나만 가지고 씨름하고만 있는 저를, 그래서 십자가 사랑 안에서 하나님이 주시려고 하시는 그 고침과 성숙까지는 아직 생각도 못하고선...
정말 엉뚱한 곳에서 헤매고 있고 죄책감메 눌리고 있고 그냥 거기서 머물고만 있습니다.
말씀을 대충 적용하고선 교만해지고 또 상황앞에서 쉽게 낙심해 버리고 마는 이런 버릇들을 성령님의 조명하심으로 깨닫고 회개하며 고쳐나가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귀한 말씀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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