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정말로 미련했는가 ???

조회 수 1003 추천 수 180 2007.05.16 13:17:09
  
선택함을 입은 실증 (데살로니가 전서 강의 2, 1941년 8월, 151호)

데살로니가 전서 1:4 ~ 10

4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데살로니가 교우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렇게까지 길게 부르지 않아도 좋을 듯하지만 결코 무의미한 문자를 공연히 늘어놓은 것이 아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형제들을 이렇게 부름으로써 그 구원받은 원리를 해명하였다.   즉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자'가 크리스천이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1 4:10)

너희를 택하심을    원문대로 직역하면 '너희의 택함을'이 된다.   택한 후의 상태를 말함이 아니라, 택할 때의 모양이나 조건을 의미한다.   물론 택하시는 이는 하나님이다.   불신 세상에서 택하여 내는 것이다.   '택함'이라는 단어는 '부름'이라는 단어와 서로 통한다.   고린도 교인들을 부른 모양은 다음과 같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고전 1:26).

택하심을 받은 데살로니가 교우들도 이와 대동소이의 조건이었을 것이나, 특히 "...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 너희는 많는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1:5~6)라고 하여 성령의 운동이 현저하였던 것이 그 '택함'을 받을 때의 특색이었다.

이 성령의 역사가 일시적인 헛된 흥분이 아니었던 증거는 그 결과로 판별할 수 있었다.   모든 나무의 선악은 그 열매로 판단된다.   데살로니가 교우들은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에 있어서 바울로 하여금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하게" 하였으니 이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참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선별을 받은 확증이었다.

5 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

이는    데살로니가 교우들은 하나님의 택함을 받았다는 바울 자신의 신념의 '이유'를 나타내는 단어이다.   다음으로 역사적 사실을 열거한다.

우리 복음    우리들은 '복음'이라고 하면 4복음서, 곧 예수의 전기(책)를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성서 안에는 '복음'이라는 단어를 그렇게 사용한 일이 전혀 없다.   '복음'이라면 반드시 전도자의 '설교' 또는 그 전달하는 '좋은 소문'이나 '기쁜 기별'을 의미하였다.

'우리'라는 것은 실루아노와 디모데까지를 포함한다.   '우리 복음'은 그들이 전파한 복음이다.   그 중에도 바울이 전해준 복음이다.   그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박힌 것'이다(고전 2:2).   교권의 존엄을 설교하며, 의식의 신비를 보이며, 연보의 거출을 꾀하며, 자선사업의 확장을 과시하는 것으로 기독교인 줄로 자신하는 무리들이 예나 지금이나 디글디글한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박힌 사실'만을 역설하는 것이 이른바 바울의 '우리 복음'이었다.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처음 바울 일행이 데살로니가에 개척 전도로 입성하였을 때의 광경을 상기케 한다.   어떤 모양으로 전도하였으며, 또한 어떤 태도로 신자가 되었는지 너희가 스스로 입증하라는 말투이다.

말로만    헛된 성명, 물거품같이 사라지는 인간적 전도 방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단, 복음 전파에는 언어가 중요한 방편이 되기에 말로'만'이 아니라고 한 것이다.

오직 능력과    '능력'이라는 단어는 반드시 '기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기적을 의미하려면 능력이라는 단어가 복수로 씌여야 하는데, 여기서는 단수로 씌여 있다.

바울 일행이 전도하는 태도 전체에 -- 그 언사나 행동에 -- 전적으로 인상적인 능력이 나타났었던 것을 가리킨다.   단지 입술로만 전달하는 것과는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는 것이었다.   언어에 능력을 더한 것, 이것이 사람의 영혼을 살리는 힘이다.

성령과    성령의 역사함이 현저한 가운데 전도하였던 것을 말한다.   능력있었던 원인은 성령의 감동에 있었다.   바울과 그 일행들이 데살로니가에 전도하던 모양은 '성령의 역사'라는 표현 말고는 달리 형용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는 뜻이다.   성령이 임하신 후에 능력이 나타나는 것은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대로이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의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큰 확신으로    '확신'이라는 단어는 '가득 차서 넘친다'(充溢)는 뜻도 가졌다.   골로새서에는 '원만한 이해'(2:2), 로마서에는 '확신하였으니'(4:21), '확정할지니라'(14:5) 고 동사로도 사용되었다.   본절에는 바울과 그 조력자들의 확고부동한 속마음의 자신감을 형용하는 것이다.   신념의 확고함이 넘쳐 흐르는 전도자의 태도였다.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 같으니라    이는 위에서 말한 바를 다시 한번 반복한 것이다.   저들의 전도는 단순한 '말 잔치'가 아니었다.   남에게 기대지 않고, 밤낮으로 손수 노동하여 스스로 필요를 충당하였고, 말솜씨나 글솜씨나 인간적 지략으로 농락하지 않았고, 교권이나 세상 권세에 결탁하지 않았고, 확신에 넘쳐서 당당하게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달리신 사실을 전파한 것이었다.   이 모든 광경이 오로지 성령의 역사였고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증거였다.

6 또 너희는 많는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본절은 데살로니가 교회가 하나님의 특별한 택하심을 입어서 성립되었다는 다른 일면이다.   앞 절이 '표면'이라면 본절은 '이면'이다.   표리가 합하여 하나님이 예정하시고 택하시는 사실을 증거한다.

많은 환난 가운데서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 벌써 박해는 일어났다(행 17:6~).   그러나 바울이 데살로니가를 떠난 후에는 더욱 환란이 심해졌다.(2:14, 3:2, 3:5).

박해가 따르지 않은 복음은 참복음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이 전파되는 곳에는 반드시 반발이 일어난다.   "...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함으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 하나니 이는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오"(요 3:19~20).

환란으로 복음이 데살로니가에 들어 온 것은 그것은 참복음이었다는 증거다.   박해 중에서 능히 복음을 받아 믿은 것은 데살로니가 교우들이 참크리스천이라는 도장을 받은 것이었다(갈 6:17).

성령의 기쁨으로    성령으로 말미암아 솟아 오르는 기쁨, 거룩하고 깊은 기쁨이다.   밖으로 환란이 따르지 않는 것은 참복음이 아닌 것처럼, 속에서 이 환희가 솟아나지 못하는 복음도 참복음이 아니다.   밖으로는 환란의 고통을 견디며, 안으로는 '성령의 기쁨'을 경험한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진정으로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자'들이 분명하였다.

도를 받아    말씀을 받아.   즉 복음을 믿음으로 받아들임.

본받은 자    바울은 주 예수를 본받은 자였기에 남들을 향하여 자기를 본받으라고 한다(고전 4:16, 11:1, 빌 3:17, 엡 5:1, 갈 4:12).   예수 믿는 일은 '본받는 일'이 그 주요한 역사이다.   그리스도가 생명으로 세상을 사랑하여, 도리어 세상의 박해와 욕됨을 받았으되 그 속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한량없는 기쁨을 맛보셨다.   바울도 또한 모진 환란 속에 형용할 수 없는 성령의 위로를 맛본 사람이다.   데살로니가 교우들은 환란과 성령의 기쁨을 이미 맛봄으로써 바울의 심정을 능히 통찰할 만한 친구가 된것이요, 그리스도의 가슴을 더듬어 본받을 만한 참신도가 된 것이었다.

주를 본받은 자    주 예수를 본받은 일이 크리스천이 본받을 일의 절정이다.

7 그러므로 너희가 마케도니아와 아가야의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는지라.

마케도니아    로마시대 그리스 북부

아가야    로마시대 그리스 남부.  

본    그리스도는 사도의 '본'.   사도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본'.   데살로니가 교우들은 가까운 지역 일대의 신도들의 '본'이 되었다.   이리하여 기독교는 '말로만' 전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닌 것을 잘 알 수 있다.

되었으니    5절에 2번, 6절과 7절에 각각 한번씩 사용된 단어이다.   그 뜻은 발효작용을 하듯이 변질하여 '되'는 것이다.   바울 일행의 전도가 큰 확신에 넘쳐 '된것'.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바울을 본받은 자가 '된것'.   저들이 그리스 모든 지역 신도의 본이 '된것'.   이 모두가 저들 자신이 원해서 한 일도 아니요, 스스로 힘으로 한 일도 아니었다.   오직 하나님이 '영위'하신 '변질'에 의하여 '된일'이었다.   그러나 이미 완성된 존재를 말하는 것이 아니요, 현재에 성령의 능력에 의하여 변질 작용이 진행 성취 되어지는 뜻을 나타내는 단어이다.

8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케도니아와 아가야에만 즐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으니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본절은 문장의 구성이 이중 구조로 되어서 머리와 꼬리를 잡기 어렵다.   예로부터 주석가들의 의견이 구구한 것도 머리는 둘, 꼬리는 하나인 기형적인 문장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주의 말씀    주께 관한 말씀.   특히 주께서 전파하라고 주신 말씀 즉 복음이다(살후 3:1, 골 3:16).

들릴 뿐 아니라    '들린'다는 단어는 소리가 나는 그릇, 예를 들어 종같은 것으로부터 음파가 멀리 울려 나간다는 단어이다.

데살로니가 사람들이 심한 핍박에도 굴하지 않고 견디었다.   이러한 소문은 복음을 선전하는 데에 있어서 더할 데 없는 유력한 증거가 되어서 사방에 진동하였다.   또 소망 중에 기쁨이 넘쳤던 그 신앙 광경은 마치 축하의 종소리가 연이어 울려 오듯이 그 메아리는 새로운 메아리를 다시 일으켜서 널리 멀리 음파를 전하듯이 복음의 증거가 쭈-욱 퍼졌다.  

복음선전의 방법을 묻지 말라.   박해를 이기고 기쁨으로 생활하는 일, 이것이 유일의 지름길이다.   이 밖에는 동서고금에 별다른 방법이 없다.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    '너희 믿음'이라고 해도 충분할 듯한데 '하나님을 향하는'이라는 구절을 덧붙인 것.   또 전치사가 eis(into) 가 아니고 pros(for) 인 것은 바울이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데살로니가 사람들이 종래의 우상숭배에서 유일신 신앙(monotheistic faith)으로 '전향'한 역사를 뚜렷하게 나타내고자 한 것이다.

각처에    마케도니아와 아가야 이외의 지역이니, 특히 국한해야 할 필요가 없다.

퍼졌으니    소문이 널리 전파되는 것.   크리스천 상인들은 특히 아름다운 신앙의 이야기를 이곳에서 저곳으로 가는 곳마다 전파하였을 터이다.   아니, 상인 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그랬을 것이다.   인간 세상에는 기이한 소문, 놀라운 소식이 적지 않다.   그러나 인간이 정말 인간이라면 신앙에 관한 소문보다 더 놀라운 것은 세상에 없다.   이해를 탐해서도 아니요, 영예에 혹해서도 아니요, 시대 인식이 부족해서도 아니면서 오직 그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욕과, 해와, 고통과, 죽음을 감수했다는 소식, 이것은 실로 인간의 모든 흥미를 모조리 자극하는 뉴-스이다.   이는 지진보다도, 화산보다도, 모든 인류사회의 사건보다도 뛰어나게 큰 최대 사건이다.   만일 인간들이 이런 소식을 전파하지 않는다면 실로 산천초목이 전달할 것이요, 일월성신이 메아리 칠 것이다.   그래서 시인이 노래하길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시 19:3~4).   신앙을 지키는 가치의 헛됨을 말하지 말라.   이는 신앙이 없는 증거일 뿐이다.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9 저희가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고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과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신 참된신 하나님을 섬기며

저희가    온 세계 사람이다.   마케도니아와 아가야뿐 아니라 각지에서 데살로니가 사람들의 신앙 소문을 들은 모든 사람들이다.

우리에 대하여    이 '우리'는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 말고도 데살로니가 교우들까지 포함한 '우리'이다.

본절 아래에 또 '우리가'라는 단어가 있으나 이것은 원문에는 대명사가 아니고 동사의 변화뿐이다.   이 '우리가'는 바울과 그 조력자 두 명만을 가리킨다.

... 어떻게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과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을 말함이다(5절 참조).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복음이 들어갔을 때, 그것을 영접한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태도를 그린 것이다.   앞 절에 '하나님을 향하는 너의 믿음'의 의미를 더욱 충분히 부연하여 설명한 것이다.   정확하게 180도 '전향'이였다.

10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린다고 말하니 이는 장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예수가 죽은 것과 다시 살리심을 받은 것을 믿는 것은 우상을 버리고 산 하나님께로 향한 것보다 그 신앙이 한걸음 더 성장한 것이다.

그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린다    이것은 또 다시 한 계단 더 향상 진보한 신앙이다.

...고 말하니    9절 처음에 있는 '저희가' 말하는 것이다.   즉 바울이 전한 복음이 어떠한 것이라는 것을 바울 자신이 스스로 변호하는 것도 아니요, 또한 데살로니가 교회 신도들이 증명하려는 것도 아니다.   실로 불신 사회의 세상 사람들이 증거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증거는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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