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기야의 기도

조회 수 1315 추천 수 51 2008.11.06 21:03:48
기도는 성도에게 너무나 익숙한 단어입니다. 기도는 성도의 삶의 전부라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교회에서 기도를 말하지 않는것은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기독교 이단 사이비 종파들도 기도를 중요하게 가르칩니다. 모든 종교에는 예외없이 기도를 가르칩니다. 무신론자들은 기도할까요? 만약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면 기도할 이유가 없지요.

신을 믿지 않는다면 결국은 스스로를 믿는 자신교 이겠지요. 자기가 자기의 신이되는 것이니까 엄밀하게 말한다면 무신론자가 아니지요. 그러므로 모든 인류와 모든 역사와 모든 세계는 신과 아무런 관계가 없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종교를 거부하거나 신을 인정하지 않는다 할찌라도 결국은 자기가 신적인 대상이기에 절대적인 무신론자는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절대 절망의 상황 에서는 기도 행위를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부인할 수 없는 피조된 존재라는 증거입니다. 어떤이는 기도하여서 극적으로 위기의 순간들을 지나갑니다만 또 다른이는 끝까지 기도하지 않아서 비극적인 시간을 견뎌야하는 경우도 허다 합니다. 이것은 기도가 인간의 선택과 결단과 의지로 할 수 있지 못하다는 의미입니다.

내가 기도해야지 하면서도 그것이 안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요? 나중에 겪을것 다 겪은 후에 기도에 대하여 의식하지 않았지만 이미 기도하는 자신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나중에야 그때 왜 기도하지 못했을까라며 후회하기도 합니다. 기도를 안한것이아니라 못한것이고 할 수 없었다는 뜻입니다. 이것도 결국은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라는 것이지요. 기도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공급 하여주시기에 기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기도하는 히스기야왕

어느날 선지자 이사야가 찾아와서 히스기야 왕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얼마나 능력이며 힘이며 구원인지요. 다윗은 고백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다고 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은 정미하여 정금보다 더 귀하고 송이 꿀보다 더 달콤하다고 합니다. 또한 여호와의 말씀은 공의로우며 심판의 검과 같습니다. 그 말씀에 숨어 피할 자가 없습니다. 한번 말씀하시면 변개하거나 취소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에게 전한 이사야의 메세지는 충격적인 것이었습니다.

그 무렵에 히스기야가 병이 들어 거의 죽게 되었는데,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 예언자가 그에게 와서 말하였다.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죽게 되었으니 네 집안의 모든 일을 정리하여라. 네가 다시 회복되지 못할 것이다."(왕하20:1)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왕입니다. 전에 히스기야왕이 치리하던 제 십사년에 즉 그의 나이 서른아홉살 되던 해에(왕이 된 나이가 스믈다섯) 앗시리아의 산헤립 왕이 올라와서 성을 포위하면서 위협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싸워보기도 전에 금은보물을 많이 보내어서 전쟁을 피했지만 후에 다시 재차 공격하려고 왔습니다.

그때 히스기야왕은 백성들에게 오직 여호와만 의지하라고 두려워 하지 말라고 단단히 주의를 주고 앗시리아의 사자가 하는 말에 대꾸하지 말라고 명을 내렸습니다. 왕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걸 알았고 이제야말로 여호와외에는 구원자가 없다는 것을 믿은 것입니다. 랍사게의 조롱과 비웃음과 모욕적인 말을 듣고서 히스기야왕은 이사야 선지자에게 기도를 요청하고 왕도 직접 성전에 올라가 기도하였습니다.

기도의 응답은 곧 현실적으로 위기를 극복하였고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가운데 히스기야왕은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그의 믿음역시 한차원 높아졌을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갑자기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을 얻어서 시름시름 앓아가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과로와 피곤이 겹쳐서 그랬을거라 생각하였고 의원들이 최선을 다하며 정성을 드리고 치료하기에 좋아질거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매일 매일 기도하며 주를 의지하던 히스기야왕에게 오늘 이사야 선지자는 최후의 선고를 하고 있습니다. 정말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주의 말씀입니다. 그렇게 신실하게 신앙생활하던 왕입니다. 역대 다윗왕 이후에 히스기야왕보다 더 신실한 믿음의 왕이 없었다고 기록한 왕입니다. 전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실천하며 살았던 왕입니다.

그 무렵에 히스기야가 병이 들어 거의 죽게 되었는데,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 예언자가 그에게 와서 말하였다.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죽게 되었으니 네 집안의 모든 일을 정리하여라. 네가 다시 회복되지 못할 것이다."

더 살려고 애쓰지말고 정리하라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씀입니다. 왕도 사람인지라 영원히 살수는 없지만 아직도 한창 일할 나이입니다. 무슨 특별한 엄청난 죄를 하나님께 범하여서 징계를 받는다면 그럴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왕은 개인적으로 살펴봐도 크게 실수한적은 있을찌라도 허물은 있을 찌라도 여호와께 범죄한 사실이 없다는 것입니다.

안그래도 병이 나을 기미조차 없어서 두려움에 떨고 있었던 왕에게 이사야는 구원의 전령사였을 것입니다. 그동안 간절하게 기도한 왕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좋은소식을 전하라고 보냈다고 생각하였을것입니다. 왕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말을 이사야는 하고 있습니다. 어찌 이럴수가 있습니까라며 항변해야할 왕은 전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욱 여호와께 다가갑니다.

이 말을 듣고서, 히스기야는 그의 얼굴을 벽쪽으로 돌리고, 주께 기도하여 아뢰었다. "주님, 주님께 빕니다. 제가 주님 앞에서 진실하게 살아온 것과, 온전한 마음으로 순종한 것과, 주께서 보시기에 선한 일을 한 것을, 기억해 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하고 나서, 히스기야는 한참 동안 흐느껴 울었다.

저는 히스기야왕의 반응을 보면서 만일 내가 저런 입장이었다면 어떻게 반응했을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기대가 무너지고 기도가 거절 되었을때의 상실감은 오히려 절망과 원망의길로 가는것이 대부분입니다. 시험을 당하고 싶은 사람은 없겠지만 시험은 필수 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도 시험은 피할수가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시험은 성도들의 유익을 위한 은혜의 방편이며 성장시키려는 테스트이지 벌을 주시기위한 것이 아니라고 믿습니다. 자녀를 괴롭히려고 작정하는 부모는 없습니다. 아무리 악한 부모라도 자기 자녀에게는 혹시 엄하게 대하더라도 잘되게 하기위한 것입니다. 하물며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가 주는 시험이라면 결국은 선하고 좋은것입니다.

왕에게 병이들도록 하시고 또한 그것을 이기도록 하신것은 알지못하는 크고도 비밀한 일을 행하시며 그 기이한 빛을 보여주시고자 하심입니다. 왕이 그렇게 절망적인 시험을 받을때 가장 먼저 보인 첫번째의 반응이 어쩌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답이 아닐까요? 물론 왕이나 우리들은 하나님의 답을 정확하게 모르지만 말입니다.

부모가 섭섭하고 냉정하게 대한다해서 화를 내면서 자기 고집대로 뛰쳐나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무리 철이 없기로서니 부모가 언성을 높이고 본인의 입장에서는 억울하다해도 말입니다. 아버지가 그럴 줄 몰랐다면서 난 역시 친 아들이 아니라서 그런것이라며 집을 뛰쳐 나간다면 부모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히스기야왕은 전혀 자기 기분대로 하지 않고 더욱 더욱 여호와께 나아 갑니다. 이전보다 더욱 가까이 진정으로 나아갑니다. 그동안도 진심으로 기도하며 나아갔지만 이번에는 질적으로 다르게 나아갑니다. 완전히 결단하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나아갑니다. 이제는 하나님뿐이라며 나아갑니다.

이말을 오해하면 곤란합니다. 우리도 히스기야를 본받아서 뜨겁게 열정적으로 금식하며 하나님께 메어달리면 응답을 받는다는쪽으로 가면 곤란합니다. 한동안 유행한 '강청기도'처럼 오직 기도외에는 이런 류가 나갈 수 없다며 열심으로 기도하자로 가면 곤란합니다. 기도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기도는 정성이나 분량이나 그런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시한번 히스기야왕의 기도를 살펴봅니다.

내가 이렇게 이렇게 하나님을 섬겼으니 이번만 살려주시옵소서가 아니라 그저 기억해 달라는 것입니다. "주님, 주님께 빕니다. 제가 주님 앞에서 진실하게 살아온 것과, 온전한 마음으로 순종한 것과, 주께서 보시기에 선한 일을 한 것을, 기억해 주십시오." 기억해 주시기만을 구합니다. 살리시고 죽이시는것은 하나님의 권한이니 다만 불쌍히 여겨 달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해달라는 요청이 아니라 다만 그동안의 관계를 기억해달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연 이렇게 하나님께 기억해달라는 기도를 할수 있을까요? 저는 도저히 자신이 없습니다. 그저 불쌍히 여겨 주시기만 간구할 뿐입니다.

하나님앞에 내세울것이 전혀 없습니다. 공로가 없습니다. 행함도 없습니다. 다만 가슴을 치며 참회하며 애통하는 심령으로 나아갈 뿐입니다.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흘리신 주님의 피를 의지하여 나아갑니다. 그 귀하신 이름 예수 이름만으로 나아갑니다. 그렇게 나아갑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행한대로 심판하시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행한대로 갚으신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우리의 중보자가 되시며 구원자가되심을 감사하며 찬양합니다. 오늘도 주님 이름 의지하면서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나의 방패시며 피할 바위시며 굳건한 반석이신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아멘.

2008/11/07.

김광찬

2008.11.06 23:3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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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 귀한 묵상의 나눔에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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