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기쁨의 소식

조회 수 1200 추천 수 36 2008.11.17 21:48:50
오늘 다윗의 동네에서 너희에게 구주가 나셨으니, 그는 곧 그리스도 주님이시다. (눅2:11)


누가복음에는 아주 중요한 탄생기사가 나옵니다. 온 인류에게 미칠 가장 강력하고 충격적인 탄생기사입니다. 이 탄생은 모든 인류사를 통해 심판과 멸망과 영원한 생명의 표적이 되었습니다. 이 명백한 사실에 대하여 다수의 사람들이 거부하고 믿지 못하고 있는것이 현실이지만 소수의 적은 무리들에게는 유일한 소망이며 기대이며 꿈이며 삶의 이유입니다. 한 사람의 출생이 어떤이에게는 가장 저주스러운 것이고 또 다른이에게는 가장 복된 소식인 것입니다.


이제 얼마 안있으면 성탄절이 다가 옵니다. 온 세상이 이날을 기다리고 기뻐하고 있습니다. 벌써부터 대형 매장은 성탄 분위기를 준비하느라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물론 이들이 진정으로 구주의 나심을 이해하고 기뻐함은 아닐것입니다. 요즘같은 세계적인 경기불황에 빠질 수 없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준비하느라 분주하겠지요.


누가의 증언은 먼저 세례자 요한의 출생부터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리아에게 나타난 천사의 수태고지 기사를 증언하면서 공통적으로 다루는 내용은 성령의 능력으로 성령으로 잉태하였다는 기사입니다. 사실 이런 성령에 의한 출생은 인간적으로 아무리 양보를 해도 결코 이해될 수가 없는 문제일 것입니다. 더구나 문명의 최고 절정기를 구가하는 오늘날의 현대인들에게 요한과 구주 예수의 탄생이 쉽게 믿어질 리가 없습니다. 하나의 신화정도로 이해를 할 뿐이지요.


인간의 이성으로는 불가능한 믿음입니다. 당연한 것입니다. 원래 믿음이란 믿을만 해서 믿는것이 아닙니다. 신비이며 은혜가 아니면 우리의 믿음은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성경을 본다고 다 믿는것은 아닙니다. 믿음으로 보는 사람이 있고 지식의 충족을 위한 만족으로 보는 이가 있으며 종교적인 의무감과 자기 만족으로 또는 이방종교와 무속신앙처럼 치성들이는 식으로나 만일 신의 비위를 거스르게 되면 화를 당할까봐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경우라고 생각 하시는지요?


본문으로 들어가봅니다. 우리의 복되신 구세주 예수께서 탄생한 기사를 누가는 비교적 간략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마리아가 첫 아들을 낳아,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눕혀 두었다.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방이 없었기 때문이다.(눅2:7)

오히려 누가의 관점은 들에서 양을 치고 있는 목자들에게 집중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입체적으로 현장을 묘사하려다보니 다양하게 접근을 하고 있습니다. 메시아의 탄생은 그렇게 아무도 모르게 진행되었습니다. 모든 세상이 고요하게 잠들었을 때 말입니다. 영적으로 가장 어두운 때 말입니다. 모든 기대와 소망이 끊어졌을 때 말입니다. 하나님은 모든것을 내려 놓고 포기할 때 시작하십니다.


그 지역의 목자들이 들에서 밤을 새우면서, 자기들의 양 떼를 지키고 있었는데,(눅2:8)

당시의 제사장들이나 바리새인들과 유력한 종교 지도자들에게는 철저하게 숨겨졌습니다. 하나님의 비밀은 하나님의 일하심은 이렇게 당연히 먼저 알아야할 지도자들에게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제 많은것들을 깊이 있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종교적인 열매를 많이 맺고 인간적인 열매를 많이 맺었고 사람들에게 존경과 인정을 받았던 것이 꼭 하나님의 은혜요 복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물론 그럴 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습니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제사장들은 이미 주의 음성을 듣고 한 밤중에 마리아가 해산하고 있을 곳으로 달려 와야만 했습니다. 경건한 바리새인들 역시 뒤질새라 달려와서 주님께 경배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오히려 이스라엘중에서는 아무도 몰랐고 먼 이방땅에서 동방에서 박사들이 별을 보고 수천리길을 위험을 무릅쓰고 찾아왔습니다. 쉽지않은 길이었습니다. 그들은 아기 예수를 찾아서 왔었고 주의 인도를 따라서 아기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며 귀중한 예물을 드리고 즉시로 그 자리를 떠나 갔습니다. 그 이후로 전혀 동방박사들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주를 위하여 무엇인가를 하면 이룩하면 꼭 그 자리에 남아있고자 합니다. 그래서 주께서 어떻게 은혜를 베푸셨노리고 간증합니다. 좋은일입니다. 주의은혜를 감사하면서 간증하며 새로운 신자들에게 영적인 신앙적인 도전과 감동을 주는 분명 좋은일입니다. 그러나 너무 오래 머물지는 마십시오. 반드시 처음의 감동은 잊혀지고 인간적인 모습만 남게 될 것입니다. 기회를 따라서 움직여야 합니다. 생명과 물은 고이면 안됩니다. 흘러야 합니다. 계속 해서 바울사도처럼 움직여야 합니다. 만약 한곳에 정착을 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우리의 본성은 변화를 싫어하고 안정을 추구할 것입니다.


당시에 목자는 아주 비천한 직업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꺼려하고 부정하다고 하는 직업입니다. 당연히 사람들에게 소외당하고 배척과 무시를 당하는 최하층에 속한 신분입니다. 그러니 그 밤에 잠을 쫒으며 추위를 참으며 맡겨진 양때를 돌봐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천사는 바로 그들에게 나타난것을 누가는 증언합니다. 그들이 설마 주의 사자들이 나타날 것을 꿈에라도 생각했을까요?  간절히 바라고 원했던 것이 실현이 되었을까요? 어쩌면 그 밤에 양을 지키면서 내 인생은 왜 이모양인가를 한탄하고 있었을지 누가 압니까? 얼마나 고단하고 고독하였을까요.


바로 그 순간에 갑자기 환한 빛에 감짝 놀라는 목자들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절망과 씨름하고 있을때는 어둠일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문제안에 같혀서 불평하고 있는한은 어둠에 속한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어둠에 눌려 있을 때는 전혀 소망이 없습니다. 전혀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하나님과 단절된 우리의 상태가 원래 흑암한 중에 있었습니다. 그때 빛이라고 생각한 것은 진정한 빛이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밝다고 좋아라 했고 믿었더랬습니다. 그 빛이 전부인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참빛이 비추었을 때 우리는 놀라워 하고 당황해 하고 두려워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지금 목자들의 눈을 부시게 하는 강력한 빛은 놀라움이었습니다. 목자들이 두려움에 어찌할 줄을 몰랐습니다. 그런 빛은 처음 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 빛도 참 빛은 아니었습니다. 참 빛으로 가는 가이드였습니다. 요한이 참 빛이 아니라고 스스로를 증언한 것처럼 말입니다. 목자들이 아연해서 놀라고 있을 때 그들에게 들리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해 준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서 너희에게 구주가 나셨으니, 그는 곧 그리스도 주님이시다.  너희는 갓난아기가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것을 볼 터인데, 이것이 너희에게 주는 표적이다." 갑자기 그 천사와 더불어 많은 하늘 군대가 나타나서, 하나님을 찬양하여 말하였다. "가장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주께서 기뻐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로다."


주의 사자들의 소식을 누가 들어야 합니까? 정작 들어야 하고 사모해야 하고 기다려야할 제사장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경건하고 율법에 열심인 바리새인들과 랍비들은 다 어디 있습니까? 성경을 연구하고 해석하고 가르치는 학자들은 율법사들은 다 어디 있습니까? 초라한 목자들에게 이 기쁨의 놀라운 소식이 들려 진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언제 변변한 예복을 차려입고 경건한 모양으로 회당이나 성전에 들어가서 예배드렸겠습니까?

누가의 증언은 도대체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하고 있는 것일까요?


천사들이 떠나자 목자들은 정신을 차리고 달려 갑니다. 천사들이 목자들에게서 떠나 하늘로 올라간 뒤에, 목자들이 서로 말하기를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려 주신 바, 일어난 그 일을 봅시다" 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급히 달려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찾아냈다. 그들은 아기를 보고 나서, 이 아기에 관하여 자기들이 들은 말을 그들에게 알려 주었다.   그리고서 그들은 증언합니다. 천사가 전한 소식을 그대로 증언합니다. 더 보탤것이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들은 주의 천사들을 만났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천사를 만나려고 하지는 마십시오. 이미 하나님의 계시가 성경으로 충분하게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분하게 보여진 계시를 믿음으로 보고 읽고 전하면 되는 것입니다. 어디서 무엇을 보았다라고 하지 않아도 말씀으로 충분하지 않습니까?


성경을 깊이 있게 사모하는 마음으로 보면 성령께서 은혜 가운데 이끄시며 각자의 길을 열어 보이시고 알게 하시고 인도하실 것입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로 고민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도와 고민은 다릅니다. 기도는 주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가 듣고자 무릎꿇고 마음을 열고서 기다리는  것입니다. 말씀하시면 듣겠나이다하며 주 앞에 서는 사무엘처럼 그렇게 들을 자세와 준비가 기도입니다. 내가 계획하고 통보하고 마무리해 달라고 때를 쓰거나 이미 저질러논것을 속히 성취시켜 달라는 억지가 아닙니다.


언제 우리가 간절하게 기도를 할 지언정 주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듣기에 열심을 낸적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늘 짜여진 기도 제목과 논리 정연함과 정당성을 담보로 해서 이것만은 꼭 이뤄주셔야 한다고 작정하고 정시에 새벽에 혹은 금식하며 주 앞에 막무가내로 들이미는 것을 엄청난 기도인양 하지는 않았는지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기회조차 허락지 않고는 일방적인 믿음의 거창한 기도를 실컷 올리고서 벌떡 일어나서 가지는 않았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나는 그렇게 간절하게 기도하지 못했노라고 탄식하며 부끄러워 하며 뒤로 물러가는 것을 봅니다. 기도가 무슨 자랑이며 공로가 되지는 않았는가 생각해 봅니다.


다시한번 하나님의 오묘하고 신비한 섭리를 묵상해 봅니다. 주께서 태어 나심은 엄청난 사건이며 우주적인 사건입니다만 그 소식을 아는 이가 많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오실 메시아를 기다리던 이스라엘은 정작 오셨지만 전혀 준비조차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많은 종교 지도자들 제사장들 랍비가 있어서 백성들을 가르치고 존경을 받고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노라 했었지만 어이 없게도 그 밤에 양을 지키느라 수고하고 소외 당하던 목자들에게 들려 졌습니다. 다윗의 왕권으로 오셔서 통치하시리라던 예수께서는 아주 작고 초라한 사람 요셉과 마리아를 통해서 말 구유에서, 사람들이 거부하고 외면하는 곳으로 오셨습니다. 비천한 사람들에게 나타나시며 빛을 비추셨습니다.


이제 곧 주께서 다시오신다는 때입니다. 밤중엘는지 한 낮엘는지 아는이가 없는 이 때에 과연 주께소 오심을 누가 볼 수 있을까요? 어쩌면 재림하실 주님께서도 초림시와 같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예상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로 나타나실른지 알 수 없습니다. 부활하실 때에도 모든 사람에게 보이시지 않으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볼 수 있도록 분명 구름을 타시고 오신다 약속하셨지요. 이제 주님 다시 오실 시간이 다가 옵니다. 정확하게 언제 오실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주님의 다시 오심은 모든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의 소원이겠지만 반면에 온 세상의 심판이기도 합니다. 목자들에게 강보에 쌓인 아기를 보리니 그것이 표적이 되리라 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주의 사자가 전한 것을 이루시는 표적이 강보에 쌓여 구유에 누인 아기 입니다. 이제 종말을 향하여 달려가는 시간입니다. 그 시간은 멈출 수가 없습니다. 다만 한가지 그 날이 더디 오기를 기대하며 오늘도 하루를 주 안에서 살고자 합니다. 지금 오시면 그렇게 기뻐할 사람들이 별로 없을 것입니다. 저도 아직 기뻐할 수만은 없습니다. 아직도 제 주위에는 전혀 복음을 듣지 못한채로 혹은 교회안에 머물기는 하지만 집사라는 직분은 있지만 맡은바 성실하게 살고 있는 이들이 있지만 정말로 주님안에서 사는 이들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따라 그런 마음이 자꾸만 드는 군요. 지금 창밖은 칠흙같은 밤으로 살을 애이는 칼 바람만 불고 있습니다.


오 . 주님.

다만 한 순간이라도 주의 얼굴을 구하며 주만 바라는 시간에 머물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시고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우리의 삶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숨쉬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숨결을 느끼며 그 마음을 느끼며 그의 뜻을 구하며 이끄심으로 만족하기를 원합니다. 아버지의 선하심이 나와 내 가정과 모든 그리스도의 가족들의 삶가운데 이루워 지기를 소망합니다. 그리스도의 은혜가 그리고 평강이 모두에게 있기를 구합니다. 아멘.


2008/11/18. 주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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