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ll

조회 수 1474 추천 수 111 2005.06.14 04:40:29
지난 주일 아침의 일입니다. 차를 세우고 교회로 가는 길에 Commonwealth 쪽으로 난 교회 문에 두 무릎을 세우고 기대어 앉아 있는 무숙자인 듯한 삼십대 백인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지나쳐 모퉁이를 도는데 머리 속에 사도행전 3장 1절-10절에 기록된 사건이 떠올랐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문앞에 앉아 구걸하는 앉은뱅이를 고치는 대목입니다.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인 이 사람은 사람들에게 들려와 매일 미문이라 하는 성전 문에 앉아 성전을 드나드는 사람들에게 구걸을 했습니다. 성경은 그가 얼마나 오래 구걸행각을 했는지 기록하고 있지는 않으나 10절에 의하면 꽤 긴 시간이었으리라 추측됩니다. 그 세월 동안 그는 물질적인 것만을 구했을 것이고 또 사람들은 그에게 물질적인 것만을 주었을 겁니다. 어쩌다 한 번씩 그에게 적선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에게 적선하는 것을 습관으로 삼는 사람이 있었을 것이며, 그를 보면 멀리 돌아가는 사람들도 있었을 겁니다. 그의 딱한 처지를 동정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저런 불구자는 도와줄 가치가 없노라고 냉랭하게 대하는 사람도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그는 늘 미문 앞에 앉아 구걸하는 앉은뱅이에 불과했을 겁니다. 그들은 아마도 한 번도 그 사람이 그들과 동일한 하나님의 백성이며, 성전에 들어가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미하고 싶은 욕구가 있으리라는 것에는 생각이 미치지 않았던 듯합니다. 그 사람이 성전 문앞을 구걸터로 삼은 것은 성전 앞이 다른 곳보다 벌이가 더 좋으리라는 계산에서 그랬으리라고만 생각했을 겁니다.

베드로와 요한도 한동안은 여느 사람과 마찬가지로 그 사람을 대했을 겁니다. 그에겐 물질적인 필요외에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며, 빈털털이인 자기들은 그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으므로 늘 그를 그냥 지나쳤을 겁니다.

그러던 그들이 오순절에 성령을 받고 나서는 다른 사람이 됩니다. 그들은 더 이상 세상 사람들과 같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무심코 지나쳤던 그 앉은뱅이를 처음으로 주목하게 됩니다 (4절). 예수님의 심령으로 그들은 처음으로 그 걸인을 한 형제로 여기게 되고,그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금과 은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교제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아니나 다를까,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발과 발목이 힘을 얻어 일어나 걷고 뛸 수 있게 된 이 사내는 베드로와 요한을 따라 성전으로 들어 가면서 하나님을 찬미합니다.

성전을 드나드는 사람들이나 성전을 섬기는 성직자들이나 아무도 이 사람에게 하나님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나 봅니다. 불구자가 된 것은 죄로 인해 하나님께 벌받은 때문으로 여기고 있던 사람들인지라 (요한 9:2) 하나님은 자신들처럼 사지멀쩡하고 어느 정도 가진 것도 있고 소위 정상적인 사람들만의 하나님이라 믿고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선 짧은 공생애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귀신들리고 몹쓸 병에 걸린 사람들과 남들에게 천대받는 하층민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신체적 사회적 조건 때문에 하나님과의 공적 교제가 허용되지 않았던 그들을 치유하시고 회복시켜 주심으로써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하나님과의 교제를 이루어주셨습니다.

교회는 바로 그런 일을 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저는 함께 가던 아내를 먼저 교회 안으로 가게 하고 그 사내에게로 돌아가 필요한 것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빌"이라고 이름을 밝힌 그는 잠잘 곳이 있으면 좋겠다는 의외의 대답이었습니다.  내가 경험한 대부분의 무숙자들은 먹을 것이나 돈을 요구했었거든요. 그들은 잠은 아무 곳에서나 쓰러져 잘 잡니다. 그러고 보니 빌의 행색은 그리 남루하지는 않았습니다. 어쩌면 그는 일시적인 무숙자든지 아니면 갓 무숙자가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잠잘 곳이라. . .이 근처에 어디 그런 곳이 있단 말인가? 임기응변으로 내 차 안에서라도 자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기쁜 빛을 띄며 좋다고 했습니다. 그러다 금새 그래도 괜찮겠느냐고 조심스럽게 묻더군요. 배는 고프지 않느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는 뭘 먹을 수 있는 속이 못된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를 데리고 길가에 세워둔 제 차로 가 문을 열어 주고 의자를 뒤로 한껏 뉘였습니다. 그리곤 두 시간여 시간이 있으니 안심하고 눈을 붙이라고 하고는 문을 닫으려 하는데 그가 자기 지갑을 원하느냐고 묻더군요. 자기를 믿을 수 있느냐는 뜻이겠지요. 많은 사람들에게 단지 무숙자라는 신분 때문에 그럴만한 이유도 없이 불신을 받아 왔기에 지레 저러려니 생각이 들어 안됐기도 하고 또 되려 제가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괜찮다고 했습니다. 요구하지 않은 지갑까지 맡기려는 그가 나쁜 사람처럼 보이지도 않았거니와 차 속에 그다지 귀하게 여기는 물품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를 뒤로 하고 다시 교회로 발길을 돌릴 때 머리 속에 트렁크 안에 둔 카메라 장비가 떠올랐습니다. 다시 장만하려면 돈 천 불은 있어야 합니다.

세 시간 후 예배와 간단한 교제가 끝난 후 차로 돌아 갔습니다. 고단해서 계속 자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내가 기겁을 하면 어쩌나? 그를 버려두고 어떻게 떠날까? 집으로 데리고 가자면 아내가 그러자 그럴까?

차 안은 비어 있었습니다. 눕혔던 의자는 제 위치로 돌아와 있었고 아내는 아무런 눈치도 채지 못했습니다. 다만 차 안에 있는 노트 패드 위에 그의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I just wanted to say thank you. Bill"

나는 그에게 미안합니다. 그에게 실은 세 시간 이상의 시간이 있었었는데 제가 성가연습에 맞추어 한 시간 빨리 왔다는 것을 깜박 잊고는 (제 깜박증에 대해선 이미 밝힌 바 있습니다.) 두 시간 만을 계산했던 것이, 그래서 그에게 한 시간의 단 잠을 빼앗은 것이 못내 미안합니다. 그에게 우리 집 방 한 칸을 내어주지 못한 것이 미안하고 그에게 부드러운 음식을 제공하지 못해 미안합니다. 그의 얘기를 들어주지 못한 것이, 그에게 하나님을 소개해 주지 못한 것이 미안합니다.

저는 그가 제 차 안에 걸린 나무 십자가로 미루어 내가 기독교인임을 짐작했기를, 내 조그만 친절의 근원이 예수님이란 것에 생각이 미쳤기를, 그래서 나를 통한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을 느꼈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살아가야 할 이유와 소망을 주시고 머잖아 그에게 편히 쉴 곳과 일용할 양식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아울러 우리 교회가 빌과 같은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고 구제의 손길을 뻗치기를 소망합니다.

이번 주일 아침엔 빌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대신 제 머리 속에 예수님의 말씀이 맴을 돌았습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막 6:37)
"내 양을 먹이라" (요 21:17)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마 26:35,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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