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처한 중보기도 1

조회 수 1240 추천 수 69 2005.08.05 03:39:11
우리는 "기도해 주세요."란 부탁을 흔히 하고 "기도할게요"란 인사를 자주 건넨다. 대답은 "예"와 "감사합니다"가 일반적이다. 그런데 난 그런 부탁과 인사에 통상 난감해 한다. 무엇을 어떻게 기도해 달라는 구체적 내용이 없으며 무엇을 어떻게 기도해 주겠다는 것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말들은 흔히 인사치레 이상의 것은 아닌 경우가 많으므로 단순한 인사로 넘기곤 한다.

얼마 전에 작고하신 옛 교회의 한 권사님께서 나만 보시면, "기도하고 있어요"라며 비밀스런 웃음을 띄곤 하셨다.  당시 나는 아직 재혼 전이었고, 그 권사님은 나와 내 전처와의 재결합을 위한 기도를 드리시는 것이 분명했다. 내가 그분께 기도를 부탁한 적도 또 공개적으로 기도 제목을 내놓은 적도 없는데 기도하고 있다니, 그 건 외엔 그 권사님께서 달리 날 위해 기도할 일이 없었을 것이다.

문제는 당시 난 전처와 재결합할 의사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하나님께서 무슨 까닭에서인지 굳이 그녀와 재결합하라 하신다면 마지못해 순종하겠지만, 만약 내 의사를 존중해 주시겠다면, 난 다른 여자를 주시든가 아니면 혼자 이대로도 좋으니 그냥 내버려 두십사는 심경이었다. 굳이 그녀와의 재결합을 원하신다면 그녀를 변화시켜서 주십사고 말씀드리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데 그런 웃음--마치 아무 말 안해도 내 속을 다 안다는 듯한, 둘 만의 비밀을 공유한 사람들이 남몰래 슬쩍 교환하는 그런 웃음을 띄면서 "기도하고 있어요"라니 난감할 수밖에! "권사님 시간과 정열만 낭비하시는 겁니다, 그만 두세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권사님께서 날 위한답시고 그러시는 것이라 "감사합니다"라고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하나님, 아닙니다. 아시죠?"

물론 하나님께선 아신다. 그렇게 기도하시는 권사님 심중도 아시고, 또 내 심정도 잘 아신다. 무엇이 우리 각자에게 가장 좋은 것이고 언제 그것을 주어야 할지도 잘 알고 계시기에, 중간에서 우왕좌왕 하시는 일은 결코 없다. 그럼에도 권사님께서 그런 기도를 드린다 짐작하면서도 잠자코 있다면, 혹시 그것을 내 동의로 처리하시지나 않으실까 하는 일말의 불안감이 있었다. "흠, 저 녀석 아무 군소리 없는 걸 보니 제 놈도 그런 마음이 있긴 한 모양이군."

그 권사님께선 언제까지 그 기도를 드리셨을까? 내가 결혼할 여자라며 지금의 아내를 인사시켰을 때 그닥 놀라거나 당황하시는 기색이 없던 걸로 미루어, 아마도 진작에 그 기도를 포기하셨던 듯하다. 하나님께서 그 기도 드려봤자 소용없다고 알려 주셨을까? 아니면 당신의 만류 마다하고 다른 교회로 떠난 내가 꽤씸했던 것일까?

기도 부탁하실 때, 제발 구체적으로, 되도록 상세하게 부탁해 주셨으면 한다. 혹시 엉뚱한 기도 드리는 촌극 빚어지지 않게. 그리고 누군가 위해 기도해 주고 싶으시면 구체적 내용도 모르면서 멋대로 구체적인 기도 드리지 말고 일반적인 기도를 드리시라. 그편이 훨 낫다.  

8. 4. 2005

운영자

2005.08.05 16:46:57
*.104.232.6

남들이 미처 생각지 못하는 부분을 잘 지적해주셨네요. 기도란 항상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형편을 잘 아는 가장 가까운 사람의 기도가 가장 힘(?)이 있는 법입니다. 또 그런 기도를 하기 위해서 가까운 사람끼리 서로의 고충을 나누고 염려해주고 또 하나님께 나아가 빌어주는 그 모든 과정 중에 이미 하나의 공동체로서 하나님의 은혜는 넘치게 되는 법입니다.

귀한 글 잘 읽었습니다. 제 집사람 말대로 항상 개인적인 문제를 하나의 가감 없이 진솔하게 써주셔서 잔잔한 감동을 불러 일으킵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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