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2:6) 다니엘 해몽에 숨겨진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

조회 수 837 추천 수 31 2014.02.27 00:29:51
운영자 *.119.139.57
다니엘 해몽에 숨겨진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


너희가 만일 꿈과 그 해석(解釋)을 보이면 너희가 선물과 상과 큰 영광을 내게서 얻으리라 그런즉 꿈과 그 해석을 내게 보이라.”(단2:6)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꿈을 꾸고선 바벨론 전국의 술사와 박사들에게 해몽을 하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그 명령은 너무나 특이하고도 무리한 요구였습니다. 꿈을 꾼 내용을 가르쳐 주지 않고 꿈과 해석을 함께 보이라고 했습니다. 대개는 꿈의 내용을 말해주고 해몽만 요구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초자연적 역사와 간섭이 훨씬 많았던 구약시대에도 선례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성경에서 유일한 경우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두 번째 해몽을 다니엘에게 부탁했을 때는(단4:1-18) 그 내용을 말해주었습니다.

왜 이런 억지 같은 요구를 했을까요? 자신이 내린 명령이 생떼라는 점을 전혀 몰랐을까요?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나름대로 꿍꿍이속이 분명히 있었을 것입니다. 제게 다니엘처럼 사람이 꾼 꿈의 내용까지 알아맞힐 영력은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전후사정을 살피고 인간의 보편적 성정에 비추어 그의 속내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는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꿈은 자기 평소 생각, 염려, 소망 혹은 상상의 연장이므로 스스로 그 의미를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는 하나님이 경고와 예지로 심어준 꿈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단순히 두뇌활동이 야간에도 잠재의식 속에 이어진 것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의 꿈은 평소 생각지도 못하던 전혀 엉뚱한 내용을 보게 합니다. 요셉이 어려서 꾼 두 번의 꿈이 그러합니다. 그가 아무리 철이 없고 교만했어도 감히 형들은 물론 부모까지 자기에게 머리 숙여야만 하는 높은 자리에 오를 계획은커녕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그 꿈은 하나님의 예언적 꿈이 분명했고 실제로 그의 인생은 꿈대로 진행되었습니다.    

또 하나님이 심어준 꿈은 그 내용이 아주 간단하고 선명합니다. 잡다한 해석이 생기거나  오해할 소지를 아예 주지 않습니다. 또 동일하고 선명한 내용을 다시 꾸게 해서 다른 해석이 생길 수 없게 합니다. 요셉이 꾼 꿈이나, 그가 해몽해준 애굽 바로의 꿈이 그러합니다.

반면에 꿈의 내용은 선명히 기억되는데 그 의미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신비한 꿈들이 있습니다. 여러 상징들이 어울려져 그 의미가 전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경우입니다. 꿈의 내용을 다른 이에게 알려주고 해몽을 부탁할 수밖에 없습니다. 느부갓네살의 두 번째 꿈은 이 경우에 해당됩니다.    

요컨대 꿈의 해몽을 남에게 부탁하는 이유는 둘 뿐이라는 것입니다. 첫째 꿈 내용이 너무 간단하고 명확해서 자신이 이미 해석한 것이 옳은지 제 삼자의 생각과 대조하려는 경우와, 꿈이 너무 신비해서 신령한 사람에게 해석을 의뢰하는 경우입니다. 본문의 경우는 전자가 거의 확실하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이 알아맞힌(?) 해석(단2:31-35)에 따르면 분명 부정적 비관적 의미의 꿈이었습니다.  정상적 사고와 이성을 지닌 자라면 바벨론 왕국의 파멸과 연관되는 내용이라고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을 미리 말해주고 바벨론 술사와 박사들에게 해몽하라고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결과는 안 봐도 뻔합니다. 왕의 면전에서 누가 감히 바벨론의 멸망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죽을 각오를 하지 않고는 그런 해몽은 하지 못합니다.

왕은 꿈의 의미를 스스로 짐작했고, 또 꿈 내용을 말해주었을 때 해몽할 결과도 충분히 예상했습니다. 구태여 해몽을 시킬 필요가 없습니다. 성경은 놀랍게도 다니엘의 입을 통해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 해석을 왕에게 알려서 왕의 마음으로 생각하던 것을 왕으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이다.”(단2:30b) 무슨 뜻입니까? 다음 두 가지 의미 중 하나일 것입니다. 우선 왕이 평소 왕국의 흥망성쇠를 계속 고심해왔던 대로 꿈에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아니면 왕이 스스로 짐작한 의미가 옳은지 해몽으로 알게 해주겠다는 것입니다.  

왕은 자기가 미리 말해주지 않는데도 꿈의 내용까지 알아맞히는 자가 나타나길 바란 것입니다. 그럼 그 해석도 정확한 것으로 신뢰할 수 있고, 또 자기가 이미 짐작한 해석의 옳고 그름도 판명됩니다. 그리고 해석이 정확하게 되었으므로 그 해석을 신의 절대적 경고로 받아들이고 앞으로 주의하겠다는 뜻입니다. 당시 열방을 정복한 세계 최고의 권력자요 통치자다운 영민한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지금 느부갓네살 왕의 영리함을 변호하려는 뜻이 아닙니다. 되어져가는 모든 일의 배경에 있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만약에 그가 꿈 내용을 말해주고서 해몽하라고 했다면, 이미 말한 대로 바벨론의 모든 술사는 왕국이 앞으로 번창할 것이라고 거꾸로 해석하거나 아니면 그럴싸하게 포장하여 왕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돌려서 말할 것입니다.

다니엘은 그들과 달리 직선적으로 해몽할 것입니다. 자기가 하나님께 받은 뜻을 속이고 다르게 말한다는 것은 그에겐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바벨론은 망하고 그 뒤로 제2(페르샤), 3(헬라), 4(로마)의 제국이 나타난다고 예언할 것입니다. 그럼 왕은 속으로는 그 해몽에 동의하고 그의 신령함에 탄복할지 모르지만, 왕 자신의 위신과 신하들과 다른 술사들의 입장을 봐서 그의 의견에 따르기 힘듭니다. 그를 처형시키거나 투옥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미리 말해 주지 않은 꿈의 내용까지 알아맞힌 후에는 아무리 부정적인 결과를 예언해도 그 해몽의 정확함은 물론 신령함까지 인정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다른 신하와 술사들도 입이 벌어져서 도무지 말도 못할 것입니다. 왕도 그를 살려줄 수밖에 없습니다. 앞으로도 그의 의견을 수시로 자문할 것입니다.  

왕에게 꿈으로 은밀한 것을 심어주신 하나님이 그 해몽절차마저 주관한 것입니다. 왕으로 무리한 명령을 내리게끔 왕의 생각을 이끈 것입니다. 다니엘의 생명을 보존케 하려는 하나님의 세심한 배려와 간섭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이신 당신 영광을 드러내고 다니엘만이 당신의 참 선지자임을 왕을 비롯해 이방족속 모두에게 확실하게 각인시키려는 뜻입니다.

바벨론의 술사들은 살아계신 참 하나님을 전혀 모릅니다. 그들은 흑암의 세력에 의존합니다. 아니면 자신의 지식, 경험, 사상을 적절히 활용하여서 왕의 기분만 맞추는 아첨꾼에 불과합니다. 그들은 인간을 변화 성숙시키는 영원한 진리에 대해선 완전히 까막눈입니다. 역사를 관통하는 맥락의 근처에 얼씬거리기는커녕 그 흐름을 눈치조차 못 챕니다. 오직 거룩하신 하나님만이 인간 만사를 통치합니다. 사탄의 종이 되어 인간 세상의 권세를 좌지우지 하는 자의 잠결에 빠진 두뇌마저 사용하여 당신의 완전한 뜻을 실현합니다.    

덧붙일 것은 이 기사에서 하나님의 위대하심만 보고 그쳐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분의 광대하심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이 해몽 사건만 해도 느부갓네살에 꿈을 심어준 그대로 다시 다니엘의 생각 속에 보여 주었고 그 정확한 해석마저 계시해주었지 않습니까? 바벨론 술사마저 “육체와 함께 거하지 아니하는 신들 외에는 왕 앞에 그것을 보일 자가 없나이다”(단2:11)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신령한 역사를 행하셨습니다. 그분의 광대하심은 너무나 당연하기에 그보다 그분 앞에 우리가 어떻게 서야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다니엘의 목숨을 보호하려고 느부갓네살더러 꿈의 내용과 해석을 함께 보이라는 명령을 내리게끔 했지만, 정작 간과해선 안 될 사항은 그런 명령이 없었어도 다니엘은 그 꿈을 정확하게 해석해서 정직하게 그대로 왕께 고했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모든 바벨론 박사들과는 달리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그대로 선포함에 자기에게 닥칠 위험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생명마저 날아갈 것을 충분히 짐작하고도 하나님의 계시를 결코 단 한치도 수정, 변개, 왜곡, 타협하지 않고 그대로 전했을 것입니다.

또 그러면 하나님이 다른 방식으로 그의 생명을 보호해주셨을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이 그러지 않아도 그는 기꺼이 죽었을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까닭과 근거가 무엇입니까? 그의 세 친구들처럼 하나님이 자기를 극렬한 풀무와 왕의 손에서 건져내실 분임을 확신했으며 혹시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하나님의 계시와 다른 거짓을 말할 수는 절대로 없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사나 죽으나 자신은 이미 하나님의 손 안에 완전히 붙잡혀 있음을 믿은 것을 넘어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거기다 실제로 매일의 삶에서 그분과 친밀히 교제하며 그분만이 주실 수 있는 의로운 생명 가운데서 호흡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이 알고 따른 하나님은 바로 우리가 믿는 하나님입니다. 신령한 역사를 일으키고 풀무불과 사자 굴에서 지켜주시는 능력의 하나님만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순종하겠다는 고백은 어폐가 있습니다. 당연히 구해주지 않는다고, 흔히 우리가 그러 하듯이, 의심과 불평을 쏟아내어야만 합니다.  

그는 “영원 무궁히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할 것은 지혜와 권능이 그에게 있음이로다”(단2:20)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분의 능력보다 그분의 지혜와 권능을 소망했습니다. 그리 아니 하시는 가운데 그분의 지혜는 물론 더 큰 권능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느부갓네살의 꿈을 정직하게 해몽하여 미움을 사서 죽더라도 하나님의 뜻과 영광은 그 일을 통해서 온전히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그의 이어지는 고백을 보십시오. “그는 때와 기한을 변하시며 왕들을 폐하시며 왕들을 세우시며 지혜자에게 지혜를 주시고 지식자에게 총명을 주시는도다.”(단2:21) 세상에서 최고 높고 많은 권력을 지닌 왕들의 운명도 오직 그분의 손 안에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다니엘은 세상의 것에 전혀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또 대신에 오직 하나님만 경외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계시를 굽게 전하느니 죽음을 택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껏 말한 것을 역으로 살피면 어떻게 됩니까? 다니엘과 같은 믿음을 갖고 그대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너무나 오묘하고도 세밀한 배려와 보호와 인도가 따른다는 것입니다. 또 그리 아니하시는 것 같은 경우가 아무리 자주 생겨도 그분의 지혜와 권능은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믿음이, 정확히 말해 그분을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바는 어떠합니까? 더 중요한 사항은 그 아는 바대로 행하고 있는지 여부입니다.  

2/26/2014

사라의 웃음

2014.02.27 22:44:18
*.109.85.156

다니엘을 그렇게 보호하셨군요. 세상권력앞에 해야할 말 서슴치 않고 다 말하고도 목숨을 살리시려 왕의 생각 조차도 사용하시는 하나님...그렇게나 자상하시고 부드러우시며 인자하신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말은 하지만 그 하나님을 믿으려 애를 쓰는 것인지, 믿음을 얻으려 기도만 하는지, 사랑하시어 오시어 대신 죽으신 그 사랑을 머리로만 믿고선 안심만 하고 있는지, 그 사랑 아노라면서 순종에는 너무도 게으르진 않는지....정말 여러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구함이 아니고 그 분의 지혜와 권능을 겸손히 구하며 하나님의 맘을 조금이나마 헤아리는 자로 성장시켜 주십사 기도해 봅니다.

임화평

2014.03.01 12:06:19
*.92.77.26

꿈보다 해몽이 좋다고
꿈을 꾸고나면 항상 나에게 유리한 편으로 스스로 해석하며 만족하였습니다
우리가 꾸는 꿈조차도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안에 있는 것을,잠자는 그 순간까지도 세심하신 배려로 교육하시는 것을
항상 흔히 세상에서 하는 해몽으로 점처왔음이 세삼 부끄러워집니다
우리들의 육체안에 거하시고 영혼안에 거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 만이 우리가 의지할 분임을
그래서 주님의 백성답게 그분의 거하실 처소를 정결한 생각으로 체워가며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878 (롬9:1-3) 신자와 불신자의 차이 master 2020-09-14 687
877 (욘1:1-5) 요나를 통해 보는 신앙과 우울증의 관계 [2] master 2019-12-18 561
876 (왕상10:1-13) 나아만 같은 신자가 너무 드물다. master 2019-06-29 499
875 (고전15:16-19)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2] master 2018-02-13 913
874 (고후5:18,19) 화목의 직책과 이웃사랑의 사명 [2] master 2017-08-17 747
873 (시편 78:17-20) 메마른 땅에서 감사하라 master 2016-11-17 963
872 (삼하7:22-24) 감히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지 말라. master 2016-07-28 605
871 (약5:13) 신약의 잠언인 야고보서의 결론 master 2016-07-11 590
870 (약1:2-4) 하나님이 신자에게 정말로 바라는 것은? master 2016-07-02 734
869 (딤전5:16) 교회에 헌금하지 말고 직접 도와주어라. master 2015-10-16 981
868 (삿1:5-7) 인과응보는 기독교원리가 아니다. master 2015-10-15 1416
867 (욘3:3-5) 하나님께 순종만 하면 복 받는가? master 2015-06-26 569
866 (미7:8,9) 그의 노를 당하려니와 운영자 2015-02-24 431
865 (막4:37-41) 무서움의 믿음과 두려움의 믿음 운영자 2015-02-21 642
864 (잠15:13-17) 행복의 세 가지 필수 조건 운영자 2015-02-13 955
863 (애3:19-23) 불성실만 성실히 되풀이 하는 신자 운영자 2015-02-10 483
862 (출8:8-9) 실제적 무신론이 팽배해진 현대 교회 [3] 운영자 2014-05-22 940
861 (시130:3-5) 구약의 동물제사보다 못한 신약 예배 운영자 2014-05-06 715
860 (민30:13,14) 성경이 남성우위 사상을 옹호하는가? 운영자 2014-04-08 757
» (단2:6) 다니엘 해몽에 숨겨진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 [2] 운영자 2014-02-27 837

로그인

로그인폼

로그인 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