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창조주인가?

조회 수 680 추천 수 58 2009.09.22 02:3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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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창조주인가?


[질문]

신자들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만 불신자들에게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어지지 않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창조주라는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에게는 너무나 심각하게 확인해야  할 문제가 아닐까요?

[답변]

맞습니다 맞고 말고요! 질문하신 본인께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하나님은 창조주시라는 것을 알지 못하거나 의심이 들어서 문의하신 것이 아닌 줄 믿습니다. 불신자들이 그런 분명한 사실을 제대로 믿지 못할 뿐 아니라 부인하는 것이 얼마나 엄청나고도 심각한 문제라는 것을 잘 모르고 있음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적하신 것 같습니다. 인간이라면 단 한 명의 예외 없이 창조주 하나님에 관한 문제부터 확실하게 해 놓아야 합니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지각이 들면 부모에게 가장 먼저 물어보는 질문은 “나는 어디서 났어?”입니다. 모든 인간이 자아를 발견해보려는 최초의 시도이자 자기의 정체성에 대해 생전 처음 갖는 갈등입니다. 그에 대한 부모들의 한결같은 대답은 “네 엄마 배속에서 나왔지”입니다. 그러나 아이 생각에 자기 만한 몸뚱이가 어떻게 엄마 배속에 있을 수 있었으며 또 그 큰 몸이 어디로 해서 엄마 몸 밖으로 나올 수 있었는지 도저히 이해되지 않습니다. 엄마 배속에서 나올 당시는 병아리만큼 작았다가 차츰 자랐다는 설명을 듣지만 여전히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의 배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다 철이 들어 임신과 출산에 관한 상식을 알게 되면 엄마 배는 더 이상 미스테리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과연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최초의 갈등이 완전히 해소되었는가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커서 알게 된 것이라고는 자신이 부모로부터 출산하게 된 절차 즉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고리만 발견한 것 뿐입니다. 인간 자체가 이 땅에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해답은 되지 못합니다. 내 아버지의 아버지는, 그 아버지의 아버지는 어디에서 식으로 이어 가다 보면 결국 최초 인간의 출생에 대한 궁금증은 여전히 남아 있게 됩니다.
        
인간 출현에 관한 세 가지 가능성  
              
인간이 이 세상에 출현하게 된 원인은 세 가지 경우로 가정해 볼 수 있습니다. 창조와 진화와 외계인 도래설(外界人到來說)입니다. 이 밖에 인간이 지구상에 있을 수 있게 된 가능성은 전혀 없습니다.

이 중에 외계인 도래설은 구태여 깊이 따져볼 필요가 없는 이론입니다. 호사가들이 지어낸 허무맹랑한 이야기라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과학문명이 발달해 외계를 탐험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질수록 신빙성도 오히려 더 올라갈 수 있는 이론입니다. 그러나 외계에서 지구까지 왔다면 지금 현재의 지구 과학수준보다 엄청나게 앞섰다는 뜻으로 어떤 기록이나 흔적이 반드시 남아 있어야 하는데도 그렇지 않습니다. 공상 과학 영화에서처럼 외계인이 인간을 마취시켜 전혀 기억이 없도록 해서 데려다 놓고 가버렸다고 우긴다면 할 말이 없겠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외계인 도래설은 인간이 지구라는 혹성에 존재하게 된 원인을 따질 때는 의미가 있지만 인간 자체가 어떻게 해서 생겼는가를 따지는 인간 기원에 관한 근본적 설명은 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설령 인간이 지구에 오기 전에 다른 혹성에 있었다 치더라도 그 혹성에서는 또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가를 다시 따져야 하고 마찬가지로 그 전 혹성과 그 전의 혹성에서는…. 식으로 동일한 질문이 꼬리를 물게 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외계인 도래설은 아기가 엄마 배속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된 차원에서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한 상태입니다.

따라서 인간 존재의 기원은 결국 우연히 진화한 것인가 아니면 어떤 절대자에 의해 창조된 것인가의 둘 중 하나로 좁혀집니다. 이 두 가설은 그 본질적인 성격상 상호 조정해서 타협되어질 여지는 전혀 없습니다. 하나가 맞으면 나머지 하나는 자동으로 틀린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의 첫 줄은 아무런 사전 설명 없이 곧 바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세기 1:1)로 시작합니다. 또 신자들은 이 말씀에 근거하여 불신자들에게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것을 믿으라고 권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이 계신 것도 믿어질까 말까 한데 창조를 믿으라니 도대체 말이 되는가?"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도 안 믿어지는데 어떻게 한 걸음 더 나아간 창조를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 신자들은 이 말씀은 믿음으로 받아들여야지 과학적으로 따질 문제가 아니라고 말해 줍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 해당되지 아직 믿음이 생기지 않은 사람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있다면 어떤 분인지, 또 하는 일이 무엇인지 등에 관해 전혀 감각이 없는 자에게 믿음으로 받아들이라는 것은 모순입니다. 믿음이란 본인이 완전히 믿어져야 믿는 것이지 무조건 믿으라고 해서 믿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신자나 불신자나  가장 먼저 확실히 해 두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창조와 유신론은 또 진화와 무신론은 항상 자동적으로 쌍둥이처럼 붙어 다닌다는 것입니다. 창조가 맞으면 그 창조를 이루신 하나님이 계신 것이고 하나님이 계시다면 인간은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라 창조된 것입니다. 반대로 진화가 맞으면 하나님이 없다는 뜻입니다. 뻔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런 너무나 간단하고 명백한 논리조차 사람들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기독교와 아무 상관 없는 사람들도 “무언가 조물주(造物主)는 있는 것 같아”라고 말합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하나님을 믿거나 창세기1:1의 구절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모순입니까? 조물주를 논하는 것 자체가 인간이 결코 진화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한 것입니다. 진화가 아니면 인간이 태어나게 된 가능성이라고는 창조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창조를 인정하면서도 창조의 주체는 인정하지 않는 것은 도대체 말이 안 됩니다. 마치 그랜저 승용차를 보고 이것은 절대로 그냥 우연히 생길 수 없는 물건이다라고 인정하면서도 현대자동차 공장은 없다고 떼쓰는 것과 같습니다. 자동차와 도저히 비교조차 안 될 정도로 정교하고 신비한 인체를 두고도 똑 같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신자들은 불신자들에게 “하나님이 창조한 것을 믿으시오”라고 할 것이 아니라 역으로 “온 세상이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라면 당연히 하나님도 계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라고 접근해야 합니다. 너무나도 단순하면서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논리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아무리 역으로 접근해도 불신자들이 창조를 인정 하지않으면 또 다시 다람쥐 쳇바퀴 도는 꼴밖에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안 믿어지는데 어떻게 창조를 믿겠소”라고 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창조가 안 믿어지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믿소”라고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래저래 창세기1:1은 불신자들에게는 넘을 수 없는 벽이자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핑계거리 밖에 안 됩니다.  

“태초에 천지를 창조했다고 하니 태초란 도대체 언제란 말인가? 45억 년 전에 거대한 불덩이가 태양으로부터 떨어졌을 때를 말하는가? 그 때에 하나님이 어디에 있었다는 말인가? 하나님이 창조했는데 누가 보았는가? 성경은 인간이 지은 것인데 결국 창조도 인간이 지어낸 이야기가 아닌가? 문자가 발명된 것이 기껏 수 천년 밖에 안 되지 않는가? 45억년 전의 이야기를 3-4천년 전에 기록한 것을 그것도 특정 종교의 교리나 신앙 고백적인 이야기를 믿으라고 강요할 수 있는가?” 창조는 아무도 본 사람이 없으니 수도 없는 의문이 꼬리를 물게 되고 불신자들로선 다 타당해 보이는 의문입니다.

창세기는 하나님을 믿는 자가 문자가 발명된 뒤에 적은 것은 사실입니다. 성경 학자들은 모세가 기원전 1500여년 경에 기록한 것으로 보니까 지금으로 치면 기껏 3500여년밖에 안된 기록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 기록이 단순히 모세 한 사람의 생각이거나 그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창조란 기독교 교리에 관한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 창세기 1:1은 하나님이 기록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모세의 신앙고백이 아닙니다. 자기가 창조한 백성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인간을 향해 하신 선포입니다.

창1:1의 기록이 문법적으로 어떻게 되어 있는가를 봅시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느니라.” 주어가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한 것을 믿으며 이것을 기독교의 제 일 신조로 삼는다”라고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인간이 지어낸 이야기이거나, 논리적인 하나의 가설이거나, 종교를 창시한 자의 아이디어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기록 자체는 분명히 인간이 했지만 하나님이 먼저 “내가 태초에 천지와 또 모든 피조세계와 인간인 너를 창조했다”라고 선언하신 것을 인간이 단지 받아쓰기하듯 적어 놓은 것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불은 누가 발명했는가?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 창조의 가능성을 조금 다른 식으로 접근해 보기로 합시다. 인류문명이 시작하게 된 계기가 무엇이라고 배웠습니까? 불의 발명입니다. 불이 없었다면 원시상태로 있었을 것이고 불을 발명한 이후에 문명이 발달되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입니다.  

옛날 이야기를 하나 해드리겠습니다. 옛적에 한 원시인이 살았습니다. 매일 하는 일이라고는 돌도끼로 들짐승을 사냥해 돌칼로 잡아 피 채로 뜯어 먹고 배부르면 누워 자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번갯불로 큰 산불이 났습니다. 사냥을 하려 했지만 뜨거운 불길 때문에 숲 근처에 접근할 수도 없었습니다. 오늘은 재수 없게 한 마리도 사냥을 못하는가 보다 하고 실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조금 있다가 바람이 약해지면서 정체를 모르던 그 무서운 불길이 가라앉기 시작하더니 매캐한 냄새를 내면서 꺼져버렸습니다. 그래서 숲 속에 들어 가보니 온갖 짐승들이 사냥도 하지 않았는데 죽어있었습니다. 더 놀란 것은 그 고기를 한 점 뜯어먹어 보니 기가 막히게 연하고 맛있었습니다. 생전 처음 먹어 보는 별미였습니다. 불로 인해 통 바베큐 구이가 되어 있는 줄은 알지도 못한 채 그저 호박이 통째로 굴러드는 이런 재수 좋은 날이 다음에도 또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배 터지게 재수 좋았던 날 후에는 이상하게도 재수 없는 날만 계속 이어졌습니다. 하루는 토끼를 잡으려는데 겨냥이 자꾸 빗나가 돌도끼가 바위만 맞히는  헛수고를 했습니다. 그런데 도끼가 바위에 부딪히는 순간 뭔가 번쩍거렸는데 그 재수 좋았던 날의 불의 모습과 이 번쩍거리는 것이 어쩐지 비슷하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 다음 날은 재수가  더 없었습니다. 돌도끼가 번번이 바위를 맞추었을 뿐 아니라 언덕에서 미끄러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전에 미끄러질 때는 예사로 지나쳤던 어떤 사실이 그를 흥분 시켰습니다. 맨 살과 맨땅이 서로 맞대고 미끄러지다 보니 엉덩이에 무엇인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는데 불이 났을 때 그 뜨거운 느낌과 같았습니다. 정말 엉덩이에 불이 붙은 것 같았습니다.

그는 사냥을 그만 두고 며칠을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불이 났을 때의 그 천하별미를 잊지 못하고 있던 그는 드디어 불을 만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돌도끼를 계속해서 바위에 던져 보았습니다. 무엇인가 번쩍거리는 불 같은 것은 생겼으나 계속해 타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돌도끼와 바위를 계속해서 문질러 보았더니  뜨거운 기운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번쩍거리기도 하고 뜨겁기도 한데 둘 다 불은 아니었습니다.

그 순간 불이 났던 날 마른 풀이 가장 잘 타올랐던 것이 기억 났습니다. 그래서 마른 풀 더미 옆에서 돌 도끼와 돌을 부딪혀 보기도 하고 서로 문질러 보기도 했더니 작은 불씨가 풀에 옮겨지더니 곧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불이 나는 원리를 발견하고 부싯돌을 만들고 또 불씨를 불로 옮겨 붙게 하는 건초 묶음을 들고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그는 매일 통사슴 바베큐로 식사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럼 불은 누가 발명(發明)한 것입니까? 인간이 발명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불은 자연세계에 이미 벌써부터 존재해 있었습니다. 인간은 불을 발견(發見)한 것뿐입니다. 다른 동물들은 번갯불로 자연 발화되면 그저 도망가고 타 죽기 바쁘지만 인간은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불의 원리를 깨닫고 응용해서 불을 지피게 된 것입니다.  

불의 발명자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지구도 뜨거운 불덩어리이지 않습니까? 인간이 불을 발명했다고 우기는 것은 인간이 지구를 만들었다는 말과 같습니다. 얼마나 웃기는 말입니까? 흔히 인간이 불을 발명했다고 말하는 것은 이미 자연 속에 베풀어지고 있는 불에 대한 창조주의 섭리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 원시인이 불을 발견했을 때에 지금처럼 신학적으로 정리된 개념의 하나님과 그 섭리를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인간 외의 불가사의한 절대적 힘이 존재하고 있다는 인식과 그 힘에 대한 경외감이 생겼을 것입니다.  

인간은 불을 발명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것을 받아서 활용한 것에 불과 합니다. 하나님은 이 선물을 인간이 어떠한 때에 주셨습니까? 인간이 전혀 상상도 못할 때에 주었습니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사냥 감을 놓쳐 재수 옴 붙은 날에 오히려 불을 지펴낼 수 있는 방법을 깨우치게 해 주었습니다. 인간은 고통 가운데 있었지만 오히려 그런 환난 가운데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사랑을 아낌없이 드러내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만드신 대자연 가운데 이미 인간에게 베푸실 모든 은혜를 풍성하게 숨겨 놓았던 것입니다.  

몸이 떨리는 경험

아무리 불신자라도 그랜드 캐년이나 나이아가라 폭포 같은 거대한 자연의 위용 앞에 설 때, 하늘의 수도 없이 많은 별들을 올려볼 때, 광야에 지는 아름다운 석양 노을의 장관을 바라볼 때에 자기도 모르게 두렵고 떨리는 감정을 느낍니다. 또 번개와 천둥이 칠 때 괜히 겁나 이불 속에 숨기 바쁘지 않습니까? 속으로 “하나님! 저의 잘못을 용서해 주시고 빨리 이 천둥 번개를 그치게 해주세요”라는 고백이 저절로 나오는 것을 경험해보지 않은 인간이 과연 있을까요? 죄의 회개까지는 몰라도 누구라도 최소한 인간이 너무나도 초라하고 왜소하고 정말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은 느낍니다.

“하나님은 크시니 우리가 그를 알 수 없고 그 년 수를 계산할 수 없느니라 그가 물을 가늘게 이끌어 올리신즉 그것이 안개 되어 비를 이루고 그것이 공중에서 내려 사람 위에 쏟아지느니라 구름의 폐임과 그의 장막의 울리는 소리를 누가 능히 깨달으랴 그가 번개 빛으로 자기의 사면에 두르시며 바다 밑도 가리우시며 이런 것들로 만민을 징벌하시며 이런 것들로 식물을 풍부히 주시느니라 그는 번개 빛으로 그 두 손을 싸시고 그것을 명하사 푯대를 맞추게 하시나니 그 울리는 소리가 풍우를 표시하고 육축에게까지 그 올라오는 것을 표시하느니라(욥기 36:26-33).”

자연을 조금이라도 생각하며 바라 본 자라면 누구나 동일한 고백이 자기도 모르게 입술에서 새어 나오게 마련입니다. “이 땅의 주인은 이 보잘것없는 인간이 아닙니다. 분명히 따로 계십니다. 전능자 하나님이 계십니다. 태초부터 당신이 주인이었습니다.” 역으로 말하면 하나님은 자연 속에서 “이 땅은 인간인 너희들이 주인이 아니다. 너희를 지었고 지금도 사랑하고 있는 내가 따로 있다”라고 선포해 놓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포가 먼저입니까? 인간의 고백이 먼저입니까? 그럼 창세기 1:1은 누가 기록한 것입니까?

모세도 호렙산의 위용과 홍해의 거친 바닷물을 바라 볼 때에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대로 이것들이 절대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라 그 만드신 분이 따로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은 태초에 내가 만들었다”라고 그 만드신 만물 가운데 이미 선언해 놓은 것을 보고 단지 인간의 글로 옮겨 적은 것 뿐입니다. 더구나 떨기 나무 불꽃 가운데 임재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소명을 받았고 시내산에서 당신의 거룩한 율법을 받은 그야말로 완전한 확신을 가지고 담대하게 기록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자였습니다. 창세기1:1은 대변인 모세의 입을 빌려 하나님에 대해 인간이 가장 먼저 알아야 사항을 당신께서 직접 선포한 것입니다.  

수십억 년 전 지구가 태양에서 불덩이로 떨어질 때에 인간이라고는 어느 누구도 없었고 비데오로 찍어 놓은 것도 아닌데 성경이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한다고 비난합니다. 그러나 인간이 부싯돌과 지푸라기를 사용하여 불을 지필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내었지만 불을 지필 수 있는 재료인 돌과 지푸라기는 만들 수 없었습니다. 부싯돌과 지푸라기 없이 불을 만들 수 있었습니까?

“무지한 말로 이치를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누가 그 도량을 정하였었는지 누가 그 준승(準繩)을 그 위에 뛰웠었는지 네가 아느냐? 그 주초(柱礎)는 무엇 위에 세웠으며 그 모퉁이 돌은 누가 놓았었느냐?(욥기 38:2-6).”

그래서 믿음의 사람 다윗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시19:1-4).” 또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을 하늘 위에 두셨나이다.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시8:1,3-4).”  

하나님은 창조주인가?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창조주일 수밖에 없으며 창조를 하지 않은 하나님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창조가 맞다면 하나님은 엄연히 계십니다. 그리고 그 창조하신 피조세계가 지금도 계속해서 질서 있고 아름답게 운행되고 있다면 그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우주 만물의 주인으로 역사하고 있습니다.

또 인간을 창조하신 분이 따로 있다면 그 창조의 목적도 분명히 있습니다. 모든 피조물이 창조주 하나님을 영원토록 경외하며 사는 것입니다. 특별히 하나님 대신에 이 땅을 다스릴 책임을 맡은(창1:28) 인간으로선 이 땅에서 사는 모든 순간을 그 분의 뜻에 순종하며 그 분의 영광을 드러내어야 합니다. 한 마디로 우리를 만드신 분을 경외하고 그 분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어떤 인간이라도 자기를 낳아 준 부모님을 경외하고 부모님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부모를 거역하는 자는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그 분의 뜻대로 살지 못하는 자는 자기를 낳아 준 친부모를 부모가 아니라고 하는 자와 같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불가사의한 사실은 불신자들이 조물주는 인정하면서 창조주 하나님은 아무리 납득이 가도록 설명해도 끝까지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조물주 따로 기독교의 하나님 따로라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참 하나님 앞에 겸손히 무릎 꿇기 싫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간섭이 싫으니 집을 나가 자기 마음대로 하겠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원죄로 인해 그 영혼이 부패되어 있다는 증거이며 또 원죄가 겉으로 드러나는 실질적인 모습입니다.    

물론 진화와 창조는 어느 쪽이 맞고 틀리는지 과학적으로 검증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진화가 맞다고 생각하는 자는 자기 선조가 원숭이라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대신에 창조가 맞다고 생각하는 자는 자기의 선조는 절대 동물이 아닌 인간이며 그 선조를 만드신 분 하나님이 분명히 있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출발은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고 경배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인간이 스스로 인간이라고 분명히 인식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이 땅에서 살아야 할 자기 인생의 출발을 바르게 하는 것입니다. 나면서부터 가졌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분명한 해답을 얻어 사단과 죄와 사망의 권세에 잃어 버렸던 참 자아를 바로 찾는 것입니다.

이에 반해 불신자는 그런 부분에는 전혀 관심이 없이 오직 세상에서 먹고 마시고 입는 것에만 형통하겠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낳아 준 부모를 외면한 채 먹고 마시는 것만 밝히며 동물 같이 살겠다는 것입니다. 인간으로 인생을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동물로 출발하는 것입니다. 인생을 사는 자세와 출발이 전혀 다릅니다. 출발이 다르면 그 결말도 분명히 달라집니다. 이 땅에서 그저 잘 먹고 잘사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신자들보다 훨씬 잘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삶을 살다 가는 것 뿐입니다. 죽고 난 후에도 하나님과는 전혀 관계 없는 곳으로 가게 됩니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이사야1:3)” 인간 스스로 소와 나귀를 자신의 할아버지로 모시는 자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소와 나귀도 자기의 주인은 누구인지 알지만 진화를 믿는 자는 그것들보다 못하다고 성경은 분명히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보다 인간으로서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심각한 문제가 따로 있겠습니까? 다시 한번 말하지만 질문자님의 의견은 맞습니다. 맞고 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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