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자기 자신이 쓰는 전도서

조회 수 1673 추천 수 104 2008.03.01 01:05:58

♣ 전1:2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Meaningless! Meaningless!” says the Teacher. “Utterly meaningless! Everything is meaningless.”)



전에, 모(某) 주제 관련 논쟁에 끼어들어, 발제자의 의견과 대립되는 견해를 피력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찬반이 첨예하게 격돌할 수밖에 없는 논쟁의 속성상, 다소의 격한 표현은 미리 각오해야 할 것입니다.  

발제자의 반론이야 당연한 일입니다만, 제가 매우 당황했던 것은 발제자의 열렬한 지지자의 댓글이었습니다. 제 글에 대해 “약간의 냉소적 느낌이 들며 학교 근처 동네 골목에서 어슬렁거리는 형, 즉 동네 불량배 중학생 같다.”는 지적에 심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비록 가상공간이지만 이 같은 인상을 풍기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되어 즉각 사과했습니다.

강한 확신의 소유자인 발제자(지지자들 포함)를 설득할 능력과 가능성도 없으면서, 괜스레 댓글 달았다 지적만 받았던 것은, 지금 생각해도 쓸데없는 헛된 짓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평범한 선남선녀 대부분은 이처럼 헛된 일들을 수없이 반복하는 실수 연속적 삶을 사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신구약 성경 66권 모두가 깊이를 가늠할 수조차 없는 진리입니다만, 전도서 역시 매우 독특한 말씀입니다. 느닷없이 전도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전도서야말로 냉소적인 책이다.’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2절)에만 5번 반복된 “헛되다”라는 단어의 뜻 역시 ‘냉소적’입니다. 참고로 이 단어가 한글 개역에는 5번 반복되지만, 영역본(NIV)은 4번이며, 히브리어본도 1절과 2절을 통 털어 4번입니다. 전도서에는 총 36회 사용되었습니다.

히브리어 ‘헤벨’(hebel)의 일차적인 의미는 「숨, 호흡, 바람, 증기, 안개」 등의 뜻입니다. 그리고 이로부터 「짧고 가치없고 하찮고 허무한 것」이라는 이차적 의미로 전의됐습니다. 아무튼, 말 자체가 이미 ‘허무’를 내포하기 때문에, 전도서는 의당 ‘냉소적인 내용’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냉소적인 내용이기에, 전도서가 인생을 다 산 8-90대 꼬부랑 노인네의 작품일 것으로 짐작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전도서는 솔로몬 왕이 늙어서 쓴 책이라 하기 어렵습니다. 학자들의 연대기 계산에 의하면 솔로몬의 향년은 59세입니다. 임종 직전 자신의 죽음을 느끼고 유언삼아 급히 썼다기보다, 죽음에 직면하지 않은 상태에서 인생을 관조하며 느긋하게 썼을 듯싶습니다. 그 집필 시기는, 요즘으로 치면 한창 나이(젊은 나이?)라 할 수 있는, 50대 중후반 수 년 간으로 추정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일 것입니다.  

아무튼 전도서는 1장부터 12:12절까지 시종일관 ‘냉소적 허무주의’의 논조를 유지합니다. “책을 짓는 것은 끝이 없고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케 한다.”는 속뜻은 당연히 ‘허무’를 전제한 표현입니다.

전도서를 12:12절까지만 읽으면 ‘인생=허무한 것’이라는 답 밖에 안 나옵니다. 각자 자신의 인생을 대입해 봐도, 성공과 성취와 업적과 자랑은 없고, 좌절과 실패와 열등과 미달뿐이니, ‘내 인생=진정한 허무’라는 결론은 정답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전도서는 12:12절로 끝나지 않고 13-14절까지 이어진다는 데에 감사해야 합니다. 바로 이곳에서 기막힌 반전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일의 결국(=12:12절까지의 결론=인생의 결론=허무)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찌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이 말씀은 전도서의 주제가 결코 ‘허무’가 아니라는 선포입니다. 지금까지 자신의 인생 상당부분이 비록 ‘허무적인 평가’를 피할 수 없다할지라도, 그러나 아직 ‘긍정’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성경적 소망’인 것입니다! 숨이 끊어지지 않았다면, 우리의 소망은 근거를 지닌다는 뜻입니다!


전도서가 피상적으로는 철저한 허무주의적 이야기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적으로는 완벽한 낙관주의입니다. 12:13-14절이야말로 참 인생의 가장 정확한 정의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전도서는 최고의 긍정입니다! 부정을 거쳐 결국은 긍정에 이른 옛 기자의 귀한 지혜를 조금이나마 맛본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은혜입니다.



우리가 비록 전도서 기자만큼 예리한 지성을 소유하지는 못했을지라도, 이제 장년에 이르렀다면 전도서의 의미를 조금은 공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르게 정립되지 않는다면, 무슨 짓을 해도 인생은 무상할 뿐이라는 것쯤은 압니다. 50여 년의 인생 경험이 그냥 얻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인생이란 자신의 살아온 족적을 기록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을 텐데, 그렇다면 이제 남은 생애 동안만이라도 제대로 된 전도서(=바르게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삶의 기록)로 마무리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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