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에 어제 밤 제가 올린 글을 되뇌다, 이것 내가 벌집 건드린 것 아닐까 난감한 느낌이 들더군요. 문제 해결의 묘책도 없으면서 공연히 여러 사람들의 심경을 불편하게 만든 것은 아닐까, 정당하고 합당하게 직분을 받아 그 직분을 겸손하고 충실하게 잘 이행하고 있는 분들에게 누를 끼친 것은 아닐까 염려 되었습니다. 하지만 직분을 호칭으로 사용함에 따른 부작용—직분간의 우열과 서열을 만들고 고착화 하여 교회 내에 담을 만들고 계급의식과 권세욕과 교만심을 부추기는 숨은 병폐를 언제까지 방치할 수는 없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까놓고 그 대책을 함께 모색해야 해야 할 것입니다.
앞 글에서 말씀 드렸듯이 교회 다니지 않는 사람들과는 호칭상 별 어려움이 없습니다. 교회 밖에선 김유상씨라고 부르던 김선생님이라 부르던 별 괘념치 않으면서 교회 내에선 왜 그렇게 부르면 안 된다 하십니까? 왜 굳이 집사님 장로님으로 불려야 하는지요? 그렇게 불리면 덜 경건한 듯이, 믿음이 부족한 듯이, 세상적인 듯이 여겨지기 때문입니까? 우리의 믿음이 어떻게 불리느냐에 좌우될 정도의 얕은 수준이라 하더라도, 우리의 신앙 생활을 그 수준에 맞추어야 하겠습니까? 아직 도달하진 못했지만 우리가 도달해야 할 수준에 맞추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교회에선 세상처럼 말고 교회처럼 하자고 집사님 장로님으로 호칭하자면서, 세상 사람들처럼 계급놀이 하고 권위 의식 느끼고 담을 쌓고 있으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지낼 수 있다니요. 자가당착에 빠진 제 모습을 왜 보지 못합니까? 아니면 보고도 못 본체 하고 있는 건가요?
말로는 섬긴다면서 호칭부터 섬김을 받고자 하는 것이 우리의 실체입니다. 세상에선 힘센 자가 저보다 약한 자의 위에 군림하고 발 아래 사람으로부터 섬김을 받습니다. 힘센 자가 좋은 것을 하나라도 더 갖게 마련입니다.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해 가진 힘을 사용합니다. 하지만 장차 천국 백성들이 모인 교회에선 힘센 자가 저보다 약한 자를 받쳐 주고 섬겨 주어야 하지 않습니까? 가진 자는 없는 자에게 가진 것을 나누어 주고 약한 자를 보호하는 데에 그 힘을 사용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렇다면, 교회에선 권위 의식을, 계급의식을, 우열의식을 몰아 내어야 합니다. 진정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한 지체란 인식이 있다면, 서로 간에 우열을 가리고 서열을 따지고 편을 짓고 하는 일들을 그만 두어야 합니다. 그것이 해결되어야만 호칭 문제도 풀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 된 한 형제 자매들입니다.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기에, 세상적인 관계에 구애됨 없이 할아버지와 손자가 할머니와 손녀가 형제 자매가 됩니다. 천국에서는 더 이상 장가 가고 시집 가는 일이 없다 하셨으니, 하늘 나라엔 혼인이나 혈연 관계에 따른 호칭 또한 없을 것입니다. 내 아들이 하늘 나라에선 더 이상 내 아들이 아니라 형제이며 내 아내가 내 아내가 아니라 자매일 뿐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서로를 교회 안에서는 그렇게 부르는 훈련을 함이 어떨지요? 처음엔 당연히 어색하고 불편하고 더러는 불쾌하기도 할 겁니다. 하지만, 그것이 단지 호칭일 뿐이라면, 그 호칭에 다른 아무런 뜻이나 감정 담아 부르지도 듣지도 않는다면, 머잖아 익숙해지고 편해지지 않겠습니까? 사실 형제 교회에선 서로를 형제 자매로 부르고 있습니다. 심지어 부부 사이에도 서로를 그렇게 부르더군요. 저도 서로를 형제 자매로 부르는 교회에서 믿음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형제들 중엔 목사 일을 맡은 자도 장로 일을 맡은 자도 또 집사 일을 맡은 자도 있을 것이며, 주일학교 교사를, 전도사를, 선교사를 맡은 자도 있을 것입니다. 그들의 직분을 굳이 밝힐 필요가 있을 경우에는 아무 직을 맡고 있는 아무개 형제(님)으로 부르면 될 것이고, 굳이 밝힐 필요가 없다면, 직분을 맡고 있더라도 아무개 형제(님)으로 부르기를 제안 합니다. 단 담임 목사만은 목사님으로 호칭해도 무방하며 어쩌면 그리 하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그 직분이 갖는 교회의 대표성 때문입니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어제 쓴 글을 반추하다가 제가 너무 가볍게 이 문제를 다룬 듯하여 제 나름의 해결책까지 제시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미진한 느낌은 지워지지 않습니다. 혼자 노력으로 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겠지요. 호칭 문제가 당장 해결되지 않더라도, 호칭에 가려져 있는 우리의 권세욕과 교만심만큼은 제대로 보고 있기를 그리고 그것을 내려 놓는 작업을 우리 함께 열심히 하기를 권면합니다. 아자!
2010년 8월 12일
종교 9단끼리의 심오한(?) 대화가 오갔습니다.
목사 : 직분 받으셨습니까?
교인 : 아뇨. 준다는 거 거절해버렸습니다.
이후 : (자연스레 집사로 호칭)
소감 : 이 나이쯤에 교회 옮길 때는 나름대로 말못할 사정 있다는 것쯤은 다 눈치로 감잠을 수 있는 능구렁이 같은 사람들이었기에, 껄끄러운 부분 일체 건드리지 않고 무난히 새신자등록을 마칠 수 있었다고 생각함.
* 목사, 장로, 집사로 고착된 제도, 쉽게 고쳐지지는 않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