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초인종 소리에 문을 열었다. 마이라 부부였다. 그들을 안으로 맞이하는데, 마이라 뒤에 누군가 서 있었다. 그들의 딸 메건이었다. 나는 “안녕?” 하고 말을 건넸지만, 메건은 인사는커녕 나를 쳐다 보지도 않았다. 멕시코인 마이라 부부는 우리 집을 청소해 주기 위해 왔다. 무리한 일을 못하는 나대신 청소를 해주던 남편이 바빠지면서 도우미를 불렀는데, 오늘은 그들이 딸과 함께 온 것이다. 메겐을 데리고 올 수밖에 없었던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인지 그들은 불안해 보였다. 그런 그들에게 남편이 반갑게 인사하자 다소 안심하는 듯했지만, 메건의 얼굴은 여전히 굳어 있었다. 그 때 마이라가 “메건은 듣지 못해요. 지금 여덟 살인데 태어나면서부터 귀머거리였어요”라고 말해 주었다.
마이라는 메건을 임신했을 때 ‘임신당뇨’ 진단을 받았다. 그런데 혈당이 잘 조절되지 않자 의사로부터 아기가 장님이나 귀머거리가 될 수 있다는 말을 들었고, 정말 메건은 귀머거리로 태어났다. 더욱이 마이라는 내 둘째 딸과 똑 같은 ‘Type 1 Diabetes’(소아당뇨)이었다. 출산 후 사라지는 임신당뇨가 평생 질병이 된 것이다. 자신의 질병도 감당하기 힘든데 메건까지 돌봐야 하는 마이라는 고단함을 이기지 못해 낙심할 때가 많다고 한다. 하지만 약하고 부족한 서로를 보면서 다시 힘을 낸다고 했다.
얘기를 나누는 동안 형편이 비슷하여 한마음이 된 마이라와 나는 서로를 안고 눈물을 흘리며 등을 다독여 주었다. 나 또한 장애를 가진 딸을 둔 엄마의 아픔과 육체의 연약함을 안고 사는 괴로움을 잘 알기 때문에 그녀에게 비춰진 내 마음을 볼 수 있었다.
마이라 부부가 일하는 동안 메건은 간식을 먹으며 두 편의 영화를 보았다. 그녀가 좋아해서 고른 영화들은 다 마법이 나오는 것이었는데, 마술을 통해 정상인의 모습으로 변하고 싶은 아이의 마음이 그 선택 속에 담겨져 있는 것 같았다. 그런 메건을 보니 예전의 내 모습이 떠 올라 기도를 했다.
“예수님! 저도 영적 소경이고 귀머거리였는데 주님께서 제 눈으로 보고 제 귀로 듣게 하셨잖아요. 메건에게도 영화 속의 마술과는 확연히 다른 실제적인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도록 동일한 은혜를 베풀어 주세요!”
떠나는 그들을 보며 오래 전 어느 날, 큰 딸을 봐줄 사람을 찾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다 일터로 데리고 갔던 우리 부부의 모습이 아련히 떠 올랐다. 다행히 빈 집이어서 페인트로 실내를 칠하고 있던 남편과 나를 사이에 두고 여섯 살 된 현아는 바닥에 누워 그림을 색칠하고 있었다. 그래서 난 메건을 데리고 온 마이라 부부의 근심을 이해할 수 있었고, 방 안에 외롭게 앉아 있던 메건을 외면할 수 없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이 보이고 그 분을 통해선 하나님을 보게 된다. 그리고 성경 속 사람들은 마치 우리의 모습과도 같다. 자연의 섭리와 현상을 보면서도 인생을 알 수 있듯이, 우리 삶의 모습들은 크게 다를 바 없이 닮아서 서로를 비춰 주는 거울인 듯싶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 분의 형상으로 창조 하셨고, 또한 인생을 서로 닮게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 거울 속에 비춰진 하나 된 모습 같이 서로를 바라보며 한마음이 되게 하시려는 뜻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