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하 6:6-7 웃사를 심판하신 이유는?
[질문]
웃사가 소가 놀라 궤를 잡은 것이 율법에 어긋나는 일이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레위인이 아닌 웃사가 잡으면 안 되는 일이었지만 그럼 궤가 땅에 떨어지게 둬야 했을까요? 웃사는 나름대로 하나님의 법궤를 지킨다고 지킨 것인데 율법대로 나르지 않고 소로 나른 것부터가 문제였는지요? 너무 급격하게 죽이신 게 아닌가 싶어 납득이 안 됩니다.
[답변]
“그들이 나곤의 타작 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더니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가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진노하사 그를 그 곳에서 치시니 그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삼하6:6-7)
웃사가 행한 일은 인간적으로 아주 선하며 순간적으로 일어난 자동반사적인 행동일 것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그 자리에서 곧바로 죽음의 심판을 내리니까 너무 냉혹하신 것 같고 그 뜻도 헤아리기 힘듭니다. 누차 말씀드리지만 성경은 반드시 앞뒤 문맥은 물론 그 사건과 관련된 다른 기록들 전체를 비교 분석하며 해석해야 합니다.
우선 궤를 손으로 만지기 전에 언약궤는 반드시 제사장들이 어깨에 메어서 운반하도록 즉, 절대로 손으로 만지지 못하도록 율법은 규정하고 있습니다.(민4:15,7:9,10:21,신31:9) 그런데 블레셋 사람들도 궤를 수레에 실었음에도(삼상6:7,8), 틀림없이 손으로 만졌을 것임에도 벌주지 않은 것은 모세의 율법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실은 절대 사람이 법궤에 손을 대선 안 된다는 점을 이미 그때에 하나님이 엄중하게 경고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에게서 궤를 인계받은 벧세메스 사람들이 궤를 들여다보다가 70 명이 심판을 받았습니다.(삼상6:19-21) 그럼 다윗 일행은 철저하게 율법을 연구하여서 온전하게 운반해야 했습니다.
만약 소가 놀라 뛰어도 궤는 흔들리기만 하고 땅에 떨어지지 않았거나, 땅에 떨어졌어도 전혀 손상이 없었을 것입니다. 언약궤가 여호와가 임재 하는 상징일지라도 구약시대에는 당신께서 직접 말씀하시고 눈으로 보이는 기적으로 당신의 뜻을 계시하였기에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실제로 사람의 도움 하나 없이 궤 혼자서(표현이 이상하지만) 블레셋 다곤의 신당에서 그 신상을 파괴하고 아스돗 사람들에게 독종을 일으켰지 않습니까?(삼상5장)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절대로 남에게 빼앗기지 않으며 당신 스스로 증명하십니다. 하나님은 소가 놀라 뛰더라도 궤가 아무렇지 않음을 다윗과 유대 백성들 앞에 명백하게 보여서 당신의 거룩한 이름을 높이려했을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웃사를 죽인 것은 단순히 손으로 만진 것을 넘어서 이미 엄중히 경고했는데도 법궤를 너무 소홀히 다루었고 율법을 전혀 살펴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일을 훼방함으로써 당신의 권능을 손상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인간에게 도움은커녕 전혀 영향도 받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실 것이라는 복음의 본질을 가르쳤음에도 베드로는 절대로 그런 일이 주께 미치지 않게 하겠다고 너무나 선한 인간적 충정으로 말렸습니다. 그 때에 주님이 그를 어떻게 꾸짖었습니까?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마16:23) 베드로가 사탄이라는 뜻이 아니라 사탄에게 미혹되어서 인간이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고 당신이 받으실 영광을 훼손시켰다는 것입니다.
간과하지 말아야 할 사항은 이 모든 일은 엄격히 따져서 그 현장에 같이 있었던 총책임자인 다윗의 잘못입니다. 다윗을 죽일 수는 없으니까 웃사가 대신 벌을 받은 셈입니다. 그렇지만 웃사가 직접 죄를 지은 당사자이므로 억울하게 심판받은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웃사를 통해 다윗에게 정신이 번쩍 들도록 경고한 것입니다. 예수님도 상기 사건에서 베드로에게 심판할 수도 있었으나 오히려 당신을 세 번이나 배반할 것이라고 예언해주었습니다. 당신의 큰일을 맡기시려고 베드로를 훈련 준비시킨 것입니다. 베드로도 그 예고대로 정확하게 스승을 세 번 부인한 후에 밖에 나가 심히 통곡하며 회개했습니다.
다윗도 웃사 사건 후에 세 달을 회개 자숙하며 여호와의 엄중하신 뜻과 자기를 준비시키려는 세심한 배려를 깊이 깨달았을 것이며 그 후에 율법대로 궤를 온전하게 모셔올 만반의 준비를 했습니다.(삼하6:9-11) 그러니까 예루살렘으로 법궤를 다시 옮기면서 얼마나 기뻤으면 왕의 위신과 체면은 전혀 아랑곳 않고 웃옷을 벗고 앞장서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지 않습니까?(삼하6:12-23)
7/21/2020
제가 이전에 이미 이 주제에 대해 두 번이나 글을 써올렸다는 것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습니다. 상기는 간단하게 알기 쉽게 쓴 답변이고 조금 더 깊이 살피려면 아래의 두 글도 참조하십시오.
(삼하6:6,7)언약궤 운반의 비밀(1)
(삼하6:6,7)언약궤 운반의 비밀(2)